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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는 끝나도 음악은 흐른다. 프레리 홈 컴패니언
kharismania 2006-10-18 오전 11:11:17 1030   [4]
맥아더 장군은 '노장은 죽지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했다. 다소 생겹게 느껴질 지 모르지만 모든 사물과 행위에는 마감의 시간이 다가온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무언가 깊은 아쉬움을 남기는 법이지만 누구나 거쳐야 하는 종결점으로써의 미덕이 있다. 하물며 인간도 언젠가는 죽는다. 결과적으로는 거쳐나가야 하는 하나의 과정인 셈이다. 이 영화는 그 마침표에 찍히는 감정적 애틋함을 소중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의 타이틀인 '프레리 홈 컴패니언(A Prairie Home Companion)'은 극중에서 등장하듯 미국의 전설적인 현재진행형 라디오쇼다. 물론 극중의 마지막이라는 설정은 단순히 영화를 위한 설정에 불과하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전설적인 버라이어티 쇼에 마지막이라는 쇠고적 단어를 씌운것은 그 단어로부터 음미되는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도이자 시대너머로 상실되는 것들에 대한 애착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함일테다.

 

 미중서부 미네소타의 세인트 폴의 WLT라디오 방송을 통해 30년 전통을 이어가던 버라이어티 라이브 쇼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여전히 적지 않은 청중을 모으고 있음에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인상덕분에 새로 방송국을 인수한 텍사스의 기업의 방침에 의해 종영되기로 결정된다. 그래서 주말마다 라이브방송이 공연되던 피츠제랄드 극장은 철거될 예정이고 마지막 라이브쇼는 마치 평소처럼 진행된다.

 

 최근 '라디오스타'가 각광받고 있는 것은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향수를 부르기 때문이다. 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는 쓸모있는 것들을 쉽게 버리곤 한다. 좀 더 편하고 좀 더 자극적인 것들에 밀려가는 과거의 영광은 현재에 이르러 보잘 것 없는 퇴물로 낡아갈 따름이다.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는 라디오 생방송의 마지막 보루이자 사라져 갈 영광이다. 하지만 방송은 아직 유효하다. 마치 세월이 흘러도 읽혀지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지'처럼 프레리 홈 컴패니언을 찾아 주말마다 피츠제럴드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들은 그것을 입증한다. 하지만 시대를 볼모로 라디오방송국을 인수한 회사의 집행관은 극장의 철거를 지시한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쇼는 막을 내려야한다.

 

 영화는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마지막임에도 쇼는 흥겹다. 항상 그랬듯이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은 재치있는 입담과 소박한 가사를 담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통해 관객을 즐겁게 한다.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공연의 협찬사들의 광고까지도 즉석에서 라이브로 들려주는 생(raw)쇼 그 자체이다. 방송이라는 형태의 격식은 차리지만 기본적인 틀외에는 현장성이 중시되는 아날로그적인 현장감이 돋보이는 공연이다. 그리고 그 공연의 묘미를 살리는 것은 공연의 진행자인 G.K(게리슨 케일러 역)이다. 지금까지 실재하는 400만명의 청취자를 즐겁게 하는 '프레리 홈 컴패니언'의 진행자이기도 한 그가 직접 자신의 쇼를 영화화한 작품의 시나리오를 공저하고 출연까지 하며 쇼의 분위기를 한껏 돋군다.

 

 영화속 인물들은 마치 연기가 아닌 쇼를 즐기는 듯 하다. 사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애석하지만 영화는 끝이라는 형태를 장례식장의 애도석상이 아닌 졸업식장의 시원섭섭함으로 잡아낸다. 망자의 묘비가 아닌 졸업식의 졸업장을 보듯. 그래서 그곳은 애도와 서글픔 대신 격려와 흥겨움이 발산된다.

 

 물론 마지막의 이미지는 단지 공연의 끝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긴 세월동안 공연과 함께 생을 나누던 척(L.Q.존스 역)은 자신의 무대를 마치고 연인을 기다리다 숨을 거두고 이 공연을 라디오로 듣던중 사고로 숨져 사자(死者)를 인도하는 천사(버지니아 매드슨 역)까지 공연장을 배회한다. 30여년간 지속되던 공연의 여생이 끝나는 순간 죽음의 기운까지 찾아온다. 하지만 척의 죽음은 비극이라기보다는 연인을 기다리다 설레는 마음으로 죽은 축복으로 이해되고 라디오 방송을 듣다 천사가 된 그녀의 사연도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느껴진다. 끝나버리는 것들에 대한 몰지각한 애도보다는 넉넉하게 받아들여지는 이해적 소통이 따른다.

 

 '숏컷', '고스포드 파크','패션쇼' 등을 통해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군상들의 에피소드적 뒤엉킴을 하나로 엮어내던 노장 로버트 알트만은 낡고 허름한 시골 극장에 다시 군상들을 결집시켰다. 자신의 낡아빠진 신체처럼 세월에 바래져가는 라디오쇼와 그 세월뒷전의 라디오쇼를 지탱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훈훈한 추억담처럼 아름다운 소박함이다. 그리고 메릴 스트립, 케빈 클라인, 우디 해럴슨, 토미 리 존스, 린제이 로한, 버지니아 매드슨 등의 많은 배우들은 추억담처럼 간직될 마지막 쇼를 영롱하게 빛낸다.

 

 물론 아직까지 인기리에 방송되는 실존쇼에 사멸의 이미지를 덧씌운 설정적 연민은 살짝 작위적이다. 더욱이 자신이 현재도 진행하는 쇼의 마지막을 직접 설정하고 진행하는 게리슨 케일러의 모습도 의아하다. 물론 그런 의아함따위는 신경쓸 겨를도 없게 쇼의 묘미는 그럴싸한 재미를 주며 일상과 쇼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정도로 느슨한 출연진의 사담과 노래의 흐름은 재치가 넘치고 흐믓하다.

 

 문 하나가 닫히면 또 하나가 열리는 셈이라는 욜란다(메릴 스트립 역)의 말처럼 끝은 단절이 아닌 연결의 선상에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비극이 아닌 희극에 대한 예감으로.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헤어지고 많은 것들을 버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다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얻으며 살아간다. 쇼는 끝나도 어디선가 노래는 들려온다. 단지 추억의 공간성만이 상실되고 묵혀질 뿐 그 행위의 형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끝은 슬픈 연민보다는 흐믓한 미소로 소통된다. 그리고 그 마지막 무대를 관객은 흐믓하게 지켜보면 된다. 다소 저질스러운 농담조차도 기분좋게 풀어내는 프레리 홈 컴패니언에서 말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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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리 홈 컴패니언(2006, A Prairie Home Compa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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