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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숏버스’. 내 얘기 좀 들어볼래? 숏버스
jslyd012 2009-03-19 오후 2:42:27 1279   [0]

내 이름은 ‘숏버스’. 내 얘기 좀 들어볼래?


 


안녕, 내 이름은 숏버스.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나는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 없어. 그러면서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무슨 말이냐고? 그런 모순 섞인 말이 어디 있냐고.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 없으면서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영화라니. 허허, 그러게. 하지만 좀더 들어봐. 그러면 이해하게 될 걸? 

대한민국에서 나는 그런 얄궂은 운명을 지닌 영화가 됐어. 알다시피, 나는 일반 여느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 불가능해. 영화제에서만 가능하지. 심의 때문이야. 나는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어. 이 판정은 ‘상영 불가능’과 같은 말이야. 제한상영가 영화를 틀 수 있는 극장이 없거든. 그러다 지난 7월 헌법재판소가 제한상영가 등급 규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어.

나를 수입한 스폰지도 영상물등급위원회를 상대로 ‘제한상영가’ 등급 분류 취소 소송을 냈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승소했어. 조만간 제한상영가라는 딱지를 붙인 영화는 없어질 거야. 불행은 더 이상 지속돼선 안 되지. 내가 마지막이 됐음 좋겠어. 더 이상 이런 불행한 역사가 계속 돼선 안 되지. 암, 그럼 그렇고말고. 물론 비슷한 시기에 나와 같은 처지를 겪고 있는 몇몇 동지들도 있긴 한데, 그들과 내가 마지막 열차여야 해. 


그러나 아직 나를 정식 극장개봉 영화로 볼 수는 없어. 그건 제도적 법규 정비와 행정적 절차를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야. 어이없지만, 그것이 지금-여기의 관람 현실. 나는 그래서 여전히 변칙 상영이 불가피해. 영화제 등의 합법적인 경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 아니면 인터넷을 통한 어둠의 경로를 활용하던가. 그래도 기왕이면 스크린이라고, 말 많고 화제 만발한 나를 보기 위해서는 영화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올해도 몇몇 영화제를 통해 나는 관객들과 만났어. 다행이었지. 날 수입한 회사에서도 그런 식으로 나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랐고. 


서독제 2008에 어김없이 나타난 <숏버스>

정말 전혀 과장 않고 지금 우리에게 닥친 시국을 봐 별별일 다 있었던 2008년. 나라고 순탄한 것만은 아녔지만,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달에도 나는 달리게 됐어. 지난 11일부터 막을 올린 34번째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가 날 빠뜨리지 않았지.

가만 보면 난 꽤 인기 있는 스타야. 크건 작건, 각종 영화제가 날 불러주잖아. 종종 언론도 타고 말이야. 레드 카펫이라도 깔아야 할 판인데, 누가 협찬 좀 안 해 주나? 하하. 농담이고. 난 그렇게 게릴라야. 치고 빠지지. 한곳에 머물지 않아. 여기저기 ‘숏버스 바이러스’를 뿌리며 다니는 노마드 같은 존재. 뭐? 숏다리라고? 에이, 농담은 이제 그만~ 

내 아버지, <헤드윅>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작품을 연출한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은 그런 말도 했더군. 대한민국에서 나를 제대로 만날 수 없다면,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서라도 꼭 만나라고. 허참, 이건 불법을 자행하란 얘긴데.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좀더 많은 사람과 만나 소통하길 바라는 게지.

 


무엇보다 풀고 싶은 오해가 있어. 난 세간에 일부 알려진 것처럼 ‘바바리 맨’이 아냐. 바바리 맨은 맥락 없이 바바리를 열어젖혀. 그래서 혐오감을 주지. 한마디로 외설이자 변태.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성기 노출부터 삽입섹스, 갖가지 체위들, 난교 등으로 화제가 되고 논란을 낳았다고? 하하.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그건 제대로 영화를 보지 않은, 느끼지 못한 사람들의 입방아야. 그저 살 보이고 성기나 음모가 노출되면 호들갑부터 떨어대곤 하는 찌질한 사람들이 날보고 깜짝 놀라 확성기를 틀어놓은 탓이지.

성기만 노출되면 포르노라고 단정 짓는 그 단순함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워낙 포르노를 많이 봐서 그런 거야, 아님 DNA 자체에 미학이 결핍돼서 그런 거야? 이왕 나온 것, 이것 꼭 물어보자. 신체장기가 밖으로 튀어나오거나 한 사람을 짓누르고 죽여야 되는 마이너스의 태도를 지닌 폭력이 나쁜 거니, 성기가 나오지만 두 사람이 결합하는 플러스의 태도를 지닌 섹스가 나쁜 거니? 내 아버지도 물었어. “여성이 성폭행당하는 영화는 개봉할 수 있고, 여성이 오르가슴을 찾는 영화는 안 된다는 걸까.”


소통과 생의 긍정을 선사하는 이야기

내 속살을 좀더 드러내볼게. 우선 호사가들이 떠벌린 섹스 운운은 내 진면목이 아냐. 나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꼭 필요한 흐름일 뿐이야. 참, 내 이름부터 궁금할 텐데, 그건 노란 스쿨버스를 탈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의미하는 은어야. 그것이 내게선 언더그라운드 살롱의 이름이지. ‘재능 있고 하자 있는 사람들의 살롱’. 그래, 메타포(은유)야.

내 안에선 성(性)과 관련된 아픔이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나와.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섹스 테라피스트, 소피아가 있고, 남자친구 제이미를 사랑하지만 어릴 적 성매매에 대한 죄책감으로 성관계를 맺지 못하는 동성애자, 제임스도 있으며, SM플레이를 직업으로 하지만 진정한 연인을 찾고픈 세브린도 있지. 각자 나름의 속사정을 지닌 이들이 모인 곳이 바로 나이기도 하지. 

그들이 엉키고 뒤섞여. 처음에 그들은 타인의 시선에 속박 받고 관계 정립에서도 그 주체가 자신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어. 그리고선 소통이 안 된다고 쩔쩔매. 하지만 내가 누구야. 난~ 섹스하고 싶으면 섹스하게 했을 뿐이고. 얘기가 필요하면 얘기를 나누게 했을 뿐이고. 그저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통’하는 것이 즐거웠을 뿐이고. 그러다 혼란도 겪지만 난 시종일관 발랄한 풍경을 유지하지. 위안도 주고.

특히 이런 기억도 나. 게이가 아닌 척 살아오면서 고통을 겪은 전직 뉴욕시장 할아버지가 젊은 청년의 따뜻한 키스로 위로받고. 격렬하게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자가 그 장면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소피아에게 보내는 따스한 눈빛 같은 것. 뭐랄까. 내 안에선 평화가 느껴져. 

그 평화로운 감정. 그게 뭘까. 맞아. 포르노라고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이지. 그 사람들은 아마 나를 음침하고 탁한 매음굴 정도로 여길 거야. 어떤 정서적인 환기가 있는지도 몰라. 관계가 구축한 행복도 몰라. 그저 ‘섹스’라는 피상적인 행위에만 눈을 두는 게지. 과연 나는 없는 얘길 한 걸까. 이 세상에 섹스가 없고, 성기는 없는 것, 아니잖아.

거듭 말하지만, 나에게 섹스는 관계망을 다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야. 위로하거나 화를 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그것을 몸으로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러니까, 한편으로 섹스는 언어일 뿐이야. 그것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변태지. 그들은 나를 보고 성기가 솟구치나봐. 다른 사람에게 갑작스레 달려들게 될까봐, 그렇게 자신을 제어하지 못할까봐, 겁내고 있는 건가봐. 아주 웃겨~ 

나도 물론 힘들어. 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길 들어줘야 하잖아. 그들이 쏟아내는 감정만 받아내는 것도 벅차. 그렇지만, 난 알아. 혼란과 방황을 겪으면서 그들은 한발한발 나아가. 그렇지만 그게 문제의 말끔한 해결은 아냐.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나의 충만한 에너지 덕분으로 도시의, 지구의 불빛이 들어왔다손, 그 쌓이고 중첩된 문제가 일거에 날아간 것은 아니라고. 살아가면서 그들은 또 비슷한 문제,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할 거야.

그러면 그때는 그때 방식대로 한발한발 나아가면 된다는 거지. 그게 다야. 그건 삶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닌, 생의 밑바닥에서 끌어낸 긍정이야. 난 내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서 그걸 느꼈어. 이토록 사랑스러운 나. ^^

 


아니 이런 나를 두고 외설이니, 포르노니 하면서 삿대질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이해가 안 돼. 날 제대로 보긴 한 거야? 미학적 예술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날 볼 자격도 없어. 고로 내 결론은 이래. 나를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여전히 (미학적) 후진국임을 증명하는 사례라규! 그래도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지만은 않을 거야.

상영 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서독제 해외기획전에 ‘숏버스’를 추천한 <미쓰 홍당무> 이경미 감독 GV시간.

Q: 이 영화를 추천했는데, 이유는 뭔가? 
“작년에 스폰지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 영화를 봤다. 혼자 갔는데, 관객 5~6명 정도가 있었다. 여자는 나 혼자였다. 영화 볼 때 눈물에 인색한 편인데 눈물이 났다. 특히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고 숏버스에 사람이 모였을 때, 소피아의 바스트 숏을 보여주는데 (안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바스트 숏에서 감정을 이렇게 끌어올릴 수 있다니, 놀랐다. 이 작품이 (일반 극장에서) 상영금지된 사실에 화가 났다.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었으면 내 체험을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었을텐데. 왜 단지 몇 사람이 이 권리를 박탈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Q: 두 번째 보니까, 어떤가.
“처음 봤을 때는 비도 오고 시나리오는 나왔는데 펀딩은 안 되고, 외롭고, 감정이입을 잔뜩 해서 봤다. 그런데 오늘 보니 해피하게 느껴지는데 이유가 뭘까. 모두 정전이 됐는데, 딱 한 곳, 숏버스만 정전이 안 됐다. 이것은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숏버스가 친근감을 주는 이유가 집단난교 장면에서였다. 누군가가 소피아에게 “구경하는 것도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잖나. 그게 참 인상 깊었다. 우리는 참 배타적인 곳에 살고 있질 않나. 우리는 비밀집단이 생기면 배타적이 되고 그러는데, 숏버스는 오랫동안 경험 못한 평화로운 무경계의 공간 같았다. 우리 가까운 곳에 그런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숏버스라는 공간이 주는 특별하고 절실한 느낌이 들었다.”

Q: 남자친구나 남편과 함께 숏버스 같은 곳에 갈 수 있나. 

“<미쓰 홍당무>를 끝내고 건강이 좀 나빠져서 ‘야메’ 침술원을 다니고 있다. 비밀번호가 있고 점조직처럼 돼 있다. 어머니와 같이 갔는데, 아주머니들이 부끄럼도 없이 찜질방보다 노출이 많은 정도로, 침 맞으면서 밥 먹고 차 마시고, 그런 일상을 영위하고 있더라. 공동집합체 같았다. 침 놔주는 분도 비주얼이 꼭 무당 같은데, 여자 분들이 그 분 앞에선 충실한 신도가 된다. ‘건강해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모인 사람들일 텐데, 그 공간도 꼭 ‘숏버스’ 같다. 무엇보다 그 공간은 평화롭다. 각자 상처를 갖고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일 때 생기는 평화로운 모드는 특별하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 숏버스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갈구하는 건 아닐까. 통하고 싶은 거다. 아마 남자친구나 남편이 있어도 같이 나누고 싶을 것 같다. 좋은 건 나눠야지. 함께.”

[상상마당 매거진 기고]


(총 0명 참여)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6-2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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