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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측하고 위험해서 짜릿하다 아치와 씨팍
jimmani 2006-06-29 오전 11:39:58 1572   [2]

사람의 상상력이란 한도가 없는 것이어서, 아무리 사람이 이성의 동물이라고 한들 때로는 그 상상력이 이성의 통제를 벗어날 때가 종종 있다. 도덕적, 사회적으로 용인이 불가능한 수위의 공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명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하겠지만(물론 바깥으로 표출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상상이기에 그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 특유의 은밀함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 역시 이런 인간의 상상력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역시나 대중 매체이니만큼 그 표현 수위에만큼은 어느 정도 한계가 존재한다. 상상력에 있어서 가장 제약이 적을 애니메이션 장르는 그 장르에 대한 특유의 "전체 관람가"적 선입견때문에 특히 더 건전한 상상력이 대다수를 차지하기도 하고.

그런데 가뜩이나 어른들까지 즐기기에는 좀 유치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아온 국산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어른들도 당혹스러워 할 만한 수위의 상상력을 지닌 애니메이션이 나왔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성인 애니메이션이 종종 만들어지긴 했으나, 이 영화는 단순히 표현의 발칙함을 넘어 상상의 발단부터가 "발칙"을 넘어 "망측" 수준까지 가기 충분할 만큼 아슬아슬하다. 제목의 어감부터 공공연히 발음하기가 다소 민망한 이 영화 <아치와 씨팍>은, 그런 점에서 인간의 상상력을 보다 은밀하게, 그래서 어쩌면 더 피부에 와닿게 충족시켜주는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는 언젠지 알 수 없는 미래.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은 이미 고갈되고, 에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자원은 망측하게도 인간의 "변" 밖에 남지 않은 도시가 있다. 그만큼 이 곳에서는 "배변"이라는 행위가 매우 필수적인 요소인지라, 시민들로 하여금 배변을 장려하면서 그 보상으로 마약 성분을 지닌 "하드"라는 물건을 내린다. 때문에 배변량은 충실히 유지되고 있으나 하드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각종 범죄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더구나 하드 과다섭취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생긴 돌연변이들인 이른바 "보자기갱단"들의 횡포가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 우리의 주인공 아치(류승범)와 씨팍(임창정)은 사실 이들보다 별로 나을 게 없는 놈들. 선량한 시민들의 하드를 빼앗아 밀거래하고 그걸로 먹고 사는 전형적인 양아치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이들의 눈앞에 절세미녀가 나타나니 그녀는 바로 이쁜이(현영). 그런데 아치와 씨팍은 이쁜이로부터 충격적이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그녀가 천혜의 배변능력 즉 압도적인 하드 생산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런 이쁜이를 둘러싸고 그녀를 지킴과 동시에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아치&씨팍과 이쁜이를 이용해 하드를 다량 확보, 도시를 지배하려는 보자기갱단, 그리고 이들을 쫓는 정부의 숨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비단 표현방식에서의 발칙함 뿐 아니라 상상의 시작부터가 발칙함을 넘어서 망측하기까지 하다. 한국영화 역사상 이 영화처럼 "변"이라는 소재가 전면에 내세워진 영화는 없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중요한 갈등의 발단이 바로 이 "변"이며, "변"을 눌 줄 아는 능력이 중요시된다. 심지어 많은 범죄물에서 중요시되는 "돈"이라는 소재는 내팽개쳐진 채, 이 영화에서는 "변"이 등장인물들이 오로지 추구하는 중요한 물질이 된다. 기본 바탕이 되는 소재부터가 이리도 남사스러운데 사건 전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들은 오죽하랴. 항문에다가 아이디칩이라고 배변량을 인식하는 칩을 끼워넣질 않나, 냄새 풀풀 나는 화장실이 중요한 에너지 자원 생산장치가 된다. 때문에 사건 전개, 캐릭터들의 성격,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까지 영화의 모든 면에 있어서 이러한 발칙하고 망측한 컨셉이 세세하게 파고든다.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 면면을 살펴보면, 이 영화는 단순히 유명세를 이용해 경직되고 모범적인 멘트만을 구사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대사에서도 온갖 욕과 상스런 소리가 난무하는 이 영화에서는,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 역시 정제되고 다듬어졌다기보다 거칠고 인정사정 없이 죽죽 뻗어나간다고 할 수 있다. 아치 역을 맡은 류승범은 예의 거친 양아치 캐릭터를 이번에도 제대로 살려 욕이 아주 입에 쫙쫙 달라붙는 감칠맛 나는 목소리 연기를 보여주었고, 임창정은 <비트>로 대표되는 기존의 촐싹맞은 이미지에서 약간은 벗어난, 우직하고 막무가내인 성격의 씨팍 역을 그러면서도 능글맞게 잘 소화해내었다. 이쁜이 역의 현영은 특유의 코맹맹이 목소리와 더불어 상소리도 적절히 곁들여주면서 이쁜이 특유의 "천박해 보이지만 우아한 척 하는" 캐릭터를 무난히 소화했다. 신해철의 보자기킹 목소리 연기 역시 그가 기존에 쌓아온 "마왕", "교주" 이미지가 뭔가 음습하고 악랄한 카리스마가 있는 보자기킹의 모습과 잘 매치가 되어서 적절한 목소리 캐스팅이었다고 생각된다. 목소리 배우들이 우리가 흔히 더빙하면 생각하게 되는 닭살스럽고 지나치게 능글맞은 멘트가 아니라 실사 영화 속 대사처럼 거칠고 사실적인 멘트를 구사함으로써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느끼기 쉬운 현실과의 이질감도 확 줄어들지 않았나 싶다. 심지어 이들 배우와 함께 등장하는 유명 전문성우들까지 상소리를 섞어 써주니 이 어찌 걸쭉한 연기가 아닐 수 있으랴.

이런 걸쭉한 연기 덕분에 영화 속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개성이 넘친다. 덩치가 작아 꼬맹이 취급받지만 얍삽하고 비열한 구석으로 가득찬 아치, 쓸 줄 아는 건 힘 밖에 없지만 사랑 앞에서만은 대책없이 무릎꿇는 씨팍, 자기 몸 귀하게 여기면서도 은근히 노출증이 좀 있는 삼류배우지망생 이쁜이, 꽤 귀엽게 생긴 겉모습과 목소리와는 달리 하는 행동들은 잔악무도한 보자기갱단, 불법영상물로 인한 사기범죄에 능한 만큼 입만 살고 주책맞은 느끼남 지미, 세일러복 입은 미소녀같이 생겼으나 성격은 오지게 더럽고 폭력적인 국장과 반대로 생긴 건 전형적인 마초이지만 국장한테 끊임없이 맞기만 하는 부국장 등 어떻게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영화 속에 가득 펼쳐져 있다. 그나마 전형적인 악당 캐릭터인 보자기킹이 다소 평면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을 뿐, 심지어 나름 착한 편이 될 수 밖에 없는 아치와 씨팍조차 양아치 근성이 다분한, 다른 영화였으면 대번에 악역이었을 캐릭터일 정도로 다들 성격이 전복적이고 다채롭다. 상상의 음과 양을 뒤집는 영화 전체의 분위기에 걸맞게, 등장인물 또한 전복적 재미를 추구하면서 특유의 뒤집는 재미를 더 강화하는 것이다.

영화가 가지는 상상력의 발칙한 정도가 때론 위험수위에서 왔다갔다하는지라, 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확 갈릴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기본 소재에서부터 바로 연상되는 지저분한 화장실 유머와 성적인 농담, 사람 몸을 두부처럼 여기듯 뎅강뎅강 잘려나가게 하는 유혈낭자 액션과 대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거칠고 때론 창의적이기까지 한 욕설들까지, 영화는 곳곳에 삼류적인 감성을 가득 불어넣음으로써 도발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거기다 <미저리>, <전함 포템킨>, <원초적 본능>, <파리의 연인> 등을 수시로(물론 매우 삐딱하게) 패러디하면서 주류에 맞서 반항적 기질을 내뿜는 비주류적 감성 또한 마음껏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삼류스런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진 가운데서도 영화 그 자체는 삼류가 되지 않은 것이, 7년의 제작기간에 걸맞는 때깔 죽이는 화면빨이 그것이다. 비록 등장인물들이 욕을 입에 달고 살고, 지저분한 유머와 불쾌한 폭력이 수시로 스크린을 수놓지만, 애니메이션으로서 가지는 기술적 측면은 상당히 진보한 구석이 보여서 꽤 스케일 큰 블럭버스터 애니메이션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3D로 구축된 유연한 배경 속에서 펼치는 초반의 보자기갱단과 특수경찰 게코의 추격전, 계단에서 벌어지는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총격전, 후반부 광산에서 벌어지는 이쁜이를 둘러싼 추격전 등 영화는 영화 자체가 가지는 B급+삼류 감성과는 다소 역설적으로 화면 구성에서만은 고급스러운 최첨단 기술을 잘 활용한 듯 싶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하면 으레 부자연스럽고 경직된 움직임으로 인해 매끄러운 맛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지만, 이 영화만은 그렇지 않다. 걸쭉하고 쫙쫙 달라붙는 이야기 전개에 맞게 비주얼 또한 매끄럽게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때깔 고운 화면도 결국은 비주류적이고 어딘지 싸보이는 영화 특유의 감성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다. 심지어 <X-파일>의 멀더와 스컬리 콤비로 활약하던 두 성우분들까지 나서서 그 자신들이 갖고 있던 이미지를 통쾌하게 뒤집어버릴 만큼 영화가 가지는 도발적이고 위험한 뒤집기는 그러면서도 꽤 매력적이다. 영화가 아무리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라 하더라도 거칠고 막무가내인 표현방식을 추구하긴 하지만, 그래서 보는 사람 역시 때론 웃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고 망설이긴 하지만, 한번 그 도발에 넘어가 웃음보를 터뜨리고 난 뒤에는 거침없이 그 "싸보이는" 감성에 빠져들게 된다. 여기서 줄곧 얘기해온 "천박한", "싸보이는", "지저분한", "불쾌한"과 같은 단어들은 이 영화를 비하하려고 꺼낸 단어들이 아니다. 이 영화는 일부러 이런 분위기를 의도한 것이다. 여태까지 한국 애니메이션, 아니 한국 영화 전체에 있어서도 이렇게 대놓고 양아치적 감성을 표출하려고 한 영화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이렇게 메이저급 영화에서 유명 배우들과 성우들의 목소리, 화려한 제작 기술을 통해 오히려 싼티나는 양아치적 감성을 드러내기로 작정한 이 영화의 도발은 매우 반갑게 다가온다.

정부가 하드라는 마약성분의 물질을 통해 시민들의 배변을 장려하는 한편 조종하고, 대책없는 살인과 고문을 일삼는 모습에서 살벌한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를 만든 이들도 그렇듯, 이런 무겁고 진지한 메시지는 아무렴 중요하지 않다. 폭력적인 액션신으로 시작해 엽기적인 암시로 끝나는 이 영화가 강조하는 건, 우리가 평소 일상생활에선 꿈도 꾸지 못할 수위의 발칙한 카타르시스를 영화 속에서나마 통쾌하게 경험해보라는 것이다. 지저분하고 말초적인 유머들, 잔혹하고 때론 눈살 찌푸려지기도 하는 폭력, 순식간에 청각을 무뎌지게 만드는 거친 욕설의 향연들 모두 그런 도발성만큼의 짜릿한 쾌감을 지니고 있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이런 발칙한 카타르시스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볼 수 있으랴. 어느 관객들은 너무 망측하고 너무 위험한 발상과 표현이라 하면서 극도의 거부감을 표시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음지에 도사리고 있는 우리들만의 은밀한 말초신경을 알아서 찾아 자극해주는 이 영화가 주는 은밀하지만 그만큼 짜릿한 즐거움에 대해 반색을 표시하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중에서 후자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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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와 씨팍(2006, AAchi & SSi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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