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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다는 것... 달려라 자전거
ldk209 2008-12-31 오후 9:32:42 1295   [2]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다는 것...★★★

 

한적한 지방 소도시의 한 대학에 막 입학한 하정(한효주)은 밝고 풋풋한 대학 새내기스러운 외모와는 달리 어두운 내면을 간직하고 있다. 작가였지만 알콜중독자이기도 했던 엄마는 자살로 삶을 마감했고, 오빠는 가출해 생사조차 알 길이 없으며, 엄마의 자살 이후 아버지는 술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 고1인 남동생은 몽유병 증세에 걸핏하면 싸움박질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하정은 대학 근처로 이사 오던 날 길에서 만난 자전거 타던 수욱(이영훈)을 헌책방에서 우연히 재회하고는 첫눈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자전거까지 배워 수욱과 가까워진 하정은 수욱이 매주 경마장에서 우승할 가능성도 별로 없는 말에게 배팅을 하고 있으며, 그 이유가 몇 년 동안 병상에 누워 있는 여자친구와 약속했던 세계 여행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련한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달려라 자전거>는 하정과 수욱의 아픈 상처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빛깔은 곱고 빛바랜 사진을 보는 듯한 애처로움이 담겨 있다. 배경 자체도 지방 소도시라는 점 때문인지 날카로움보다는 부드러움, 직선보다는 곡선이 어울리는 그런 느낌을 선사한다. 물론 곱고 부드럽다는 얘기는 어쩌면 조금은 심심할 수도 있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하정과 수욱, 둘 모두 과거에 발목 잡혀 있다는 점은 배경이 현대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이 영화가 과거의 얘기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영화의 단점은 아니다. 영화의 단점을 꼽자면 톤이 균일하지 않으며, 하정과 수욱을 제외한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이 냉정하고 비인간적이라는 점이다. 하정과 수욱의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중반부까지 영화는 대학 새내기의 풋풋함을 상징하듯 적절한 유머(임성운 감독은 2001년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희극지왕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로 영화의 톤을 한껏 밝게 채색해 놓으며, 그 사이사이로 비치는 하정 집안의 우울함은 유머와 어울려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수욱의 아픔이 드러나는 시점부터 영화는 유머를 잃고 오로지 아픔과 눈물이라는 침전된 감정의 골로 빠져 들어간다.

 

이런 문제는 하정과 수욱을 제외한 기타 인물들의 등장 퇴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하정의 대학 생활은 수욱과의 로맨스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거세되어 나타난다. 유일하게 선영과의 관계가 조금 그려지지만, 선영은 단지 하정이 수욱에게 접근하도록 독려하는 역할 때문에 필요한 인물이다. 그 역할이 끝나자 선영은 마지막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그건 하정의 남동생인 승휘도 마찬가지다. 꽤 비중 있는 역할인 듯싶었던 승휘는 ‘하정이 이렇게까지 힘든 집안에서 살고 있다’는 충분한 설명이 되어지자마자 미련 없이 사라져 버린다. 작은 감정들의 변화에 미련을 두고 있는 <달려라 자전거>같은 영화가 작은 배역들을 무차별적이고 비인간적으로 활용하는 건 보는 사람을 꽤나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무척이나 가슴 아팠고 많이 울었다.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심정이 너무도 진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최근에 친구가 떠났다. 오랫동안의 투병 생활 끝에 얼마 전 같으면 쉽게 넘겼을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사람들과의, 그리고 이 세상과의 인연의 끈을 놓아버렸다. 아직 젊은 아내와 이제 겨우 갓 돌을 지난 아들의 존재마저도 그를 더 이상 잡아두지 못했다. 최근 10년간 누구보다 그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누구보다 많은 술을 마셨고 고민을 나누었기 때문에 그 친구 가족의 핸드폰 번호가 이른 새벽에 내 핸드폰에 아로새겨질 때의 심정이란 지금도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아프다. 빈소에 달려가 내내 울다가 문뜩 배고픔과 졸림이라는 생리학적 문제와 처리하지 못한 일의 뒤처리에 대한 고민들이 떠올랐다. 왠지 친구에게 미안하고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고작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친구가 죽은 슬픔마저도 극복해내는 생리학적 욕구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존의 문제라니. 이래서 떠난 사람만 불쌍하다고들 하는 것인지.

 

※ 처음 만난 상대에게 반말로 말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이 영화의 최대 불만은 그것이다. 아주 어린 학생도 아니고 이미 성인이 된 상대에게 하정의 아버지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길 병원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나?”라고 반말로 묻고, 그 반말을 들은 수욱은 손님으로 가게에 찾아 온 하정에게 “잔 돈 바꿔와”하고 반말로 대한다. 나는 성인을 상대로 초면에 반말하는 사람의 성정은 기본적으로 ‘파시스트적’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파시스트적이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초면에 반말로 지껄이겠는가. 이런 사람들이 대체로 나이와 경력, 직위로 인간의 상하를 구분하고 그걸 기준으로 사람을 대한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감독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 문제 의식 없이 이런 장면을 넣었긴 했겠지만 이런 걸 별 생각 없이 바라보는 그 시각이야말로 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총 0명 참여)
naredfoxx
잘 읽었습니다.   
2009-12-05 19:52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7-07 14:06
jhee65
너무 아련하네요   
2009-02-12 23:00
kajin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는것..생각만해도 굉장히 아련하고 슬프네요   
2009-01-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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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자전거(2008, Ride Away)
제작사 : 핑퐁 / 배급사 : (주)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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