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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자와 방조 내지는 비호자... 바시르와 왈츠를
ldk209 2008-11-24 오후 7:31:36 11484   [15]
학살자와 방조 내지는 비호자...★★★★☆

 

이 영화의 장르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이스라엘 출신인 아리 폴만 감독은 친구와 얘기하던 도중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가 뭉텅,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980년대 초반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쟁에 참여한 당시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이다. 자신과 같이 복무했던, 또는 복무했다고 주장하는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동료의 기억을 쫓아 자신의 기억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아리 폴만 감독은 스스로가 잊고 싶었던 가슴 아픈 진실과 마주대하게 된다.

 

선택적 기억이라는 말이 있다. 이건 스스로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거나 또는 불리한 건 기억하지 않으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아리 폴만 감독이 겪고 있는 기억상실증은 일종의 정신병 증상이다. 자료에 보면 아리 폴만 감독의 증상은 ‘해리성 기억상실’이라고 하며, 이는 뇌의 이상이나, 약물 중독과는 상관없이 외상적 경험이나 감당할 수 없는 내적 고통을 경험하면서 갑자기 특정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잊어버리는 증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리 폴만 감독이 동료와 만나 얘기를 들으면서 그가 찾은 기억의 끝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었을까? 아리 폴만 감독은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가 저지른 1982년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의 현장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학살이 용이하게끔 도와준 사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은 1982년에 벌어진 학살을 어느 정도 알지 못하고선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건 ‘광주항쟁’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화려한 휴가>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스라엘은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해 남부 레바논을 장악한다. 당시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을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은 레바논의 기독교 수장인 바시르 제마엘을 친이스라엘 꼭두각시 대통령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을 앞둔 바시르가 폭탄 테러로 살해당하면서 바시르를 영웅시하던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는 광분하게 되고 보복하겠다며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사브라와 샤틸라에 들어가 학살을 자행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들 기독교 민병대는 이스라엘 군이 점령하고 있던 난민촌에 들어가 3일 동안 3천 명이 넘는 인명을 학살했으며, 이 가운데 절반은 어린이와 여성이었다고 한다. 학살이 언론 보도를 타면서 샤론 국방장관은 학살자 또는 도살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20년이 지난 2001년에 이스라엘 총리가 되었다.

 

아리 폴만 감독은 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자신의 기억을 찾는 얘기의 영화화를 위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독특한 형식을 도입한다. 이런 형식의 도입에는 어쩔 수 없는 현실 - 영화 출연을 기피하는 동료들 - 로 인한 선택이라는 측면이 있지만, 결과물로 보면 정말 최고의 선택이랄 수 있다. 특히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의 판타지와 무의식 속 꿈의 표현은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그토록 인상 깊게 자리 매김 했을 것이다. 여성의 품속에서 전쟁의 참화를 피하는 병사의 모습이라든가 비행장에서 헤매는 아리 폴만 감독,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이 된 바시르의 거대한 초상 앞에서 왈츠를 추듯 기관총을 난사하는 병사의 모습 등은 정말 인상적이다. 또한 <베이루트에 폭탄을 떨어트리자>는 등의 가사가 돋보이는 음악의 사용도 적절하다.

 

정확하게 현실과 조응하면서 퍼즐을 맞추듯 결말로 내달리는 영화가 남겨 놓은 것은 아리 폴만 감독의 꿈이 의미하는 바이다. ‘아리 폴만 감독은 벌거벗은 채 바다에서 일어나 환한 대낮처럼 조명탄이 켜지는 도시를 향해 군복을 입으며 걸어 들어간다. 골목길에서 그가 만난 건 무리지어 다가오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이다.’ 대체 이 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 때문에 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사실을 잊어버린 것일까?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독특한 형식이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지점은 바로 영화의 엔딩에서다. 아리 폴만 감독의 꿈은 애니메이션에서 교묘하게 실사로 전환한다. 단언컨대 <바시르와 왈츠를>의 엔딩은 최근 그 어떤 영화보다 강렬하고 슬프다.

 

※ 이 영화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반성하는 입장에서 서술한 것이다. 또한 전체적인 틀 속에서 조망한 것이 아니라 전쟁에 참여한 당사자, 그것도 주로는 사병 입장이다 보니 분명한 한계가 있다. 특히 아리 폴만 감독이 대학살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1982년 학살을 넘어서서 아우슈비츠 수용소까지 확대시킨 것은 어쩌면 이스라엘도 역사적으로 피해자라는 점을 은연중에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 군이 학살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불과했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공개된 이후 일부 서구 및 이슬람 언론에서 사브라-샤틸라 학살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회피해 온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아리 폴만 감독은 ‘이 영화는 전적으로 개인의 기억에 의존했으며, 학살을 자행한 게 기독교 민병대라는 사실은 분명하다’라며 반박했다. 감독의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엔 (비유가 너무 가볍긴 하지만)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확실히 더 밉다.

 


(총 0명 참여)
jhee65
어제 교육방송에서 해주던데   
2010-08-22 16:26
hynee
참 정보를 하나 드리면 베이루트에 폭탄을..이라는 노래는 한국에 폭탄을 떨어뜨리자 라는 한국전쟁 배경의 노래가 원작이라는군요   
2009-01-17 10:34
hynee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받은 영화   
2009-01-17 10:32
ldk209
2008년 개봉 영화 중 최고의 엔딩....   
2009-01-01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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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르와 왈츠를(2008, Waltz With Bash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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