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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속으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바시르와 왈츠를
novio21 2011-06-16 오후 6:49:10 666   [0]

  도피, 어쩌면 인간이 갖고 있는 근원적 갈망일 것이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아니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욕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망각이 존재하고 환락이 존재하고, 외면이 존재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도피를 할 수 있을까?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은 이런 철학적 물음 위에 이루어진 불행한 과거사의 조명 영화다.
  기이한 시작이었다.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의 친구의 꿈을 갖고 주인공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는 시작, 말이다. 충격은 외부로부터 왔다. 타성에 전 한 명의 인생이 친구의 꿈 이야기와 그 해석에 송두리째 바뀌는 장면이기도 했다. 어느 유명한 배우가 나와서 연기하는 것이 아닌, 애니메이션을 통해 제공된 어느 중년 남자의 캐릭터를 통해 보이는 모습은 독특한 인상을 풍겼고, 사실보다 더욱 사실적인 모습을 띄게 됐다. 이 영화,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스라엘 영화라는 점과 함께 정말 뭔가 독특했다.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경험했지만 망각 속으로 침잠했던 과거를 찾기 위해 그가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장면들은 의미심장했다. 그것은 어쩌면 망각 속의 과거가 자신만의 경험도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고 또한 자신만의 문제가 아님을 드러내는 효과를 지닌 장치다. 그가 만난 친구들이나, 관련자들과의 대화는 그래서 의미심장했다. 1인칭 주관적 관점에서 보긴 했지만 주인공의 개인적 이야기와 고민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닌, 일반화되고 집단화되며, 또한 혼자만의 고민이 아닌 것이 된다. 즉 동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자, 결국 망각과 도피가 됐던 것이다.
  이 묘한 장치는 관객을 이상한 세계로 끌고 가는 환상적 코드를 지니고 있다. 그 속에서 자신 역시 주인공의 경험을 공유하게 되고, 공감하게 되고, 그리고 책임감이라 할지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뭔지 모를 고통을 느끼게 된다. 즉 충격이었다. 자신도 그때 그곳에서 그렇게 다는 됐다는 알면서도 방관한 주인공이나 그런 사실이 있었을 것임을 짐작하면서도 모른 채 하는 동시대의 인간들의 무관심 역시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처럼 어쩌면 망각하면서 도피하려고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망각과 도피는 꿈이란 또 다른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다시 주인공과 그 친구들에게 다가 왔고, 그런 그들을 영화를 통해 보는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잊고 싶어서 잊고 있었던 과거를 다시 재생하기 위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어느 영화감독의 이야기는 그래서 슬프고 무서웠다. 간접적으로만 확인된 현실을 찾기 위해 마치 로드무비처럼 친구들과 관련자들을 만나기 위해 떠난 그의 여행에서 레바논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학살의 참상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애니메이션이자 한 개인의 과거사 찾기라는 주관적 설정이지만 그러나 내용은 매우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며, 충격적이었다. 그런 것들에 의심을 품은 관객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의 참상을 실사로 보여줬는지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꿈처럼 전해진 이야기가 실제로는 사실임을 여지없이 보여준 명장면이기도 하고, 그것을 통해 꿈에서 깬 주인공과 관객들이 마주한 현실을 보여주는 멋진 구성이기도 하다.
  20년이라면 과거와 단절되면서 현실에 안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봤을 때, 그것은 결국 오해다. 현실은 과거와의 지독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져 가는 것이며,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나마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망각일 것이며, 역사적으로는 역사왜곡일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 한 편에 도사리고 있는 망각으로 감춰진 공포는 항상 그의 옆에 있으며, 그의 생활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이 이 정도인데, 한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가 공유하는 역사적 아픔을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것일까? 정치적 놀음으로 인해 정치유력인사가 살해되고, 그에 대한 피의 보복을 위해 엄청난 대량학살을 자행한 집단과, 자신과 같은 편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만행을 방관한 이스라엘 군대는 그 행위로 인해 그 이후의 인생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이 영화는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평화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원한과 증오, 그리고 불편한 진실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바시르와 왈츠를’이란 영화제목, 매우 역설적이다. 학살의 비극이 누군가에게 즐거운 파티와 같다는 이 역설은 영화 곳곳에 넘친다. 그리고 원수만 같다고 여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도 인간적 관계가 있으며, 죽고 죽이는 것이 그들간에도 결코 편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전쟁에 참여한 군인의 입장에서 전쟁의 당위성은 차치하고라도 공포감으로 인해 인적이 드문 곳에 총질을 계속 한다던가, 군인들간의 총격전을 마치 전쟁놀이를 보듯,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하는 장면, 그리고 상대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춤을 추듯 총을 난사하는 장면들은 비극과 희극이 기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정말 묘한 파티에서의 왈츠를 추는 듯한 인상도 받게 된다. 그래도 비극이겠지만 말이다.
  과거를 망각한 그는 전쟁의 가해자였지만 사실 피해자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와 그의 친구들 역시 사실 끌려와서 전쟁군인으로 복무했을 뿐이다. 레바논 침공 동안, 그들의 조국, 이스라엘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그들의 생활을 보냈고 즐겼다. 언젠가 제대를 할 것이겠지만 군인으로서의 복무기간 동안 군인으로서의 그들의 책임과 복무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그냥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있었던 무가치한 존재였을 뿐이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소외된 자로 살아갔던 그들의 고통은 동시대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고, 허술하게 처리됐다. 
  과거를 망각했지만 죄책감이 떠난 것은 아니었고, 꿈을 통해 그는 그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렸을 뿐이다. 즉 그들은 심적 고통으로 인해 아팠던 것이다. 이유 없이 총을 쏴야 했던 이들의 고통이 주목 받지 못하면서 그냥 도망치듯 과거를 망각하고 살았지만, 꿈이란 방식으로 그때의 비극적 참상은 그와 그의 전쟁 친구들 사이를 떠돌고 있었다. 그 꿈 속에서의 모습은 언제나 악몽이자 비극의 모습, 그것이었다. 현실과 꿈 사이, 어디에도 그들은 편한 모습으로 살지 못했다. 그들은 아직도 그때의 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죽였던 개들이 꿈 속에서 자신을 쫓는 모습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벗어나고 싶지만 과거를 결코 지울 수 없는 법이다. 가련한 인생이 그 속에서 양산되는 것이다. 이런 비극을 이 영화는 역설적인 제목을 통해 이야기한다. 전쟁은 결코 피해자도 가해자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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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르와 왈츠를(2008, Waltz With Bashir)
배급사 : 서울엠피필름(주)
수입사 : 위드시네마 / 공식홈페이지 : http://www.bashir200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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