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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살인의 추억>에 열광하는가? 살인의 추억
lee su in 2003-05-15 오후 4:21:15 4476   [53]
개봉 3주차..
물경 300만 고지를 향해 맹렬히 관객수를 늘리고 있다.
헐리웃 블록버스터 <엑스맨 2>의 공습도 토종영화의 위력에 힘을 뻗지 못한다.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동시에 받는 영화의 등장은 실로 오랜만이다.

난 이 영화를 세번 봤다.
웃고울고 때론 분노하고 답답해하기도 하면서,
뭔가에 이끌렸는지 모르겠지만 영화관으로 향한 발걸음을 자연스레 이 영화로 옮기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영화 최고의 수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정말 놀랄만큼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 영화에 대한 감탄사를 몇 개쯤은 날려야 될 것 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 시나리오와 연출력의 완벽한 조합

좋은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가 나온다.
물론 좋은 시나리오라고 하더라도 감독의 연출력이나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되지만 말이다.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만든 연극인 <날 보러와요>를 시나리오로 각색하면서부터 올해 가장 주목받는 영화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었고, 단편 <지리멸렬>에서부터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연출력을 입증했던 봉준호 감독의 풍경과 인물 그리고 사건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디테일한 묘사는 화면 전체에 짜임새있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메뚜기를 잡는 소년의 얼굴로 시작해서 시대를 추억하며 정면을 응시하는 박두만(송강호)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영화 전체를 아울러 어느하나 빠지는 장면이 없을 정도로 이 영화의 촘촘한 화면에 빠져들게 된다.

그 중에 몇 가지 주목할만한 장면!

첫째, 벼베기를 끝낸 논 한가운데서 발견된 두번째 여인 살해현장.
이 장면은 롱테이크 기법으로 카메라가 사건 현장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박두만 형사를 편집없이 길게 보여주고 있다.
시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노는 동네 꼬마들, 사건 현장을 지켜보는 동네주민, 경찰, 기자들의 모습, 범인의 발자욱을 무심히 지나가는 경운기의 모습 등, 아직 감식반이 도착하지 않아서 제대로 현장보존이 되지도 않는 어수선한 풍경을 단 한컷으로 놀랄만치 잘 보여준다.

둘째, 숲속에서 자위행위를 하고있던 유력한 용의자를 뒤쫓는 장면.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털어 가장 긴박감있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으로 관객의 숨통을 조여올 정도로 영화적 재미가 극대화되어 있다.
용의자를 뒤쫓아 마을로 들어섰던 3명의 형사가 용의자를 놓쳤다가, 개 짖는 소리를 통해 인근 공장까지 다시금 용의자를 추격하고 결국에는 어떤 단서(영화를 안 본 사람을 위해 생략)를 통해 용의자를 검거하기 까지의 과정은 잠시도 숨돌릴 틈이 없다.
특히 용의자를 추격할때 쾅쾅 울리던 음악이 용의자를 놓치면서 멈췄다가 다시 추격하면서 급박하게 사용되는 음악은 영화음악의 적절한 사용이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셋째, 사건 용의자에서 유일한 목격자로 바뀐 동네 바보 청년 백광호(박노식)를 찾아가서 만나는 일련의 장면.
이 장면은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드라마틱하게 일련의 사건이 이어지는 장면이다.
박두만과 서태윤(김상경) 형사는 백광호가 살인사건의 목격자임을 알고 백광호의 집을 찾아가고, 이때 용의자에 대한 가혹한 구타로 반장(송재호)에게 질책받은 조용구(김뢰하) 형사는 백광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고기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괴로움을 달랜다.
때마침 텔레비젼 뉴스는 부천 성고문 사건을 다루고 있고, 뉴스를 보던 손님들은 고문 형사를 비난하고, 이에 열받은 조용구는 난장판을 일으킨다.
이 와중에 백광호가 등장, 못이 튀어나온 각목으로 조용구의 다리를 내리치고 도망치고, 박두만과 서태윤은 백광호를 뒤쫓아 논두렁으로 달려간다.
무서워하던 백광호, 박두만의 달래기로 이윽고 목격담을 얘기할려는 찰나,
동네 청년 규찰대와 백광호의 아버지가 등장하면서 다시한번 현장은 뒤엉키고 백광호는 다시한번 위험천만한 기차길로 달아난다.

#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이 영화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단연 발군이다.
물론 송강호라는 배우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낸 감독의 연출력도 놀랍지만, 송강호라는 배우가 우리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다.
그 특유의 에드립하며 관객을 웃겼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짠하게 만드는 그의 연기를 보고있노라면 정말 한국 최고의 배우는 한석규도 아니요, 설경구도 아닌 송강호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스타급 배우들이라고 하더라도 부실한 영화에 출연해서 그의 명성에 흠집을 종종 내곤 하는데 반해서, 송강호는 정말 좋은 시나리오를 보는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초록물고기>, <넘버 3>, <조용한 가족>, <쉬리>,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YMCA 야구단>..그리고 <살인의 추억>에 이르기까지 그가 출연했던 대부분의 영화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 있는 영화들이였다.

<생활의 발견>에서 배우의 발견을 보여준 김상경의 연기 또한 송강호에게 다소 가렸다 뿐이지 영화 뒷부분에 이를수록 미칠듯한 광기로 폭발하는 그의 연기를 보고있자면 소름이 다 돋는다.
특히 유전자 감식결과 마지막 유력한 용의자가 범인이 아니라는 서류를 받고 퍼붙는 빗속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김상경의 모습에서 그 당시 형사들의 범인을 잡고자하는 간절한 열망을 느낄 수 있으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관객들도 가누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한 답답함이 밀려옴과 함께..

그리고 반장 역할의 변희봉, 송재호와 3명의 유력한 용의자, 그 밖에 조연과 단역을 가리지 않고 출연한 모든 배우들의 연기 또한 화면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가 적재적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영화를 보는 것 또한 흔치 않다는 데 이 영화가 얼마나 치밀하고도 생생한 영화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사회적 통찰력

살인을 추억하라고..
아름다운 추억도 아니고 어찌 살인을 추억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묻혀졌던 아픈 과거를 다시금 끄집어 내서 곱씹어봐야 하는가.
이 영화에는 이에 대한 모든 해답이 숨어있다.

우리는 1986년부터 1991년에 대한 어떤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가.
그 시절 중고교를 보냈던 나에게는 공부라는 삶의 스트레스가 적지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겠지만,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통해 대외적으로 고양된 대한민국이 그리고 독재에서 민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의 혼란한 시대상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1986년 1차 사건에서 1991년 마지막 12차 사건에 이르기까지 화성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 자랑스런 88 서울올림픽을 치렀던 우리 국민의 단결된 힘은 이 조그만 화성군의 여자들을 보호할 힘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을까.
신문에 아시안 게임 개막을 알리는 큼지막한 기사 한 귀퉁이에 화성 살인사건이 토막기사로 날 수밖에 없었단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국가의 공권력은 화성의 여인네들을 지켜주는 대신 부천 성고문 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으로 권력을 유지하기에 바빴고, 형식적인 민방위 훈련과 민생치안력의 부재는 정작 우리가 필요로 하는 국민의 안전은 뒷전이었다.

첫 번째 용의자였던 바보 백광호는 시대적 아픔의 소산이며,
두 번째 용의자였던 착실한 가장 조병순은 자위행위를 통해 억눌렸던 당시 시대적 욕구를 분출하고 있으며,
세 번째 용의자였던 박현규는 대학교육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공장노동자로 사회의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슬픈 젊은이를 대변하고 있다.

이들이야 말로 당시 사건의 범인이라기 보다는 어두웠던 시대적 희생자들이며, 우리네 사회가 얼마나 내적으로 허술했는지를 희화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비록 아픈 과거이고 묻혀졌던 기억들이지만..
우리는 살인을 추억해야만 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시대의 어두웠던 공기를 걷어내고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가장크게 느낄때가 두 가지 있다.
가슴 뭉클한 감동이 밀려올때와, 참을수 없는 전율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극장 문을 쉽게 나서지 못할 때이다.
전율이 그치지 않았던 <살인의 추억>은 분명 올해의 최고영화의 목록 상위에 등록되는 영화가 될 것이 확실하며, 모든 한국영화가 이와 같은 완성도를 보여줄 순 없지만, 수준높고 영화적 재미가 극대화된 영화가 계속 나오기를 갈망한다.

(총 0명 참여)
yuyangjae
정말 대단한 글솜씨 입니다. 정말 부러움을 떠나서 소름이 돋습니다.
  
2006-05-25 19:19
님의 글솜씨에 전율을 느낌니다...존경합니다.   
2003-05-23 20:21
정말 엄청납니다.. 이렇게 많은 이렇게 심도있게 작품을 분석하시다니... 굉장합니다...   
2003-05-1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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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2003, Memory of Murder)
제작사 : (주)싸이더스 /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www.memoriesofmur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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