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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6.25의 아픔 태극기 휘날리며
titter 2004-02-08 오전 6:45:54 1104   [7]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놓는 할아버지의 뒤로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건내는 그의 손녀가 있다. 형의 소식을 알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연변에 다녀오시기까지 하셨던 할아버지임을 알고 있는 손녀임에도 그녀는 그저 마당 청소를 거들 것인가를 여쭈며 조금 서운하셨겠지 하는 정도로 할아버지의 실망을 짐작해버린다. 그리고 직접 가봐야겠다며 운전을 부탁하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자신의 엄마에게 전하는 그녀의 말투는 나들이를 가는 듯 경쾌하기만 하다. 할아버지의 아픔을 지켜보기는 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아픔은 아닌 것이고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본 일도 아닌 것이기에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고 그의 일을 조금 거들어 드리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이었다. 그리고 직접 도착한 6.25유해 발굴 현장에서 할아버지는 그토록 기다리던 형의 유골과 마주하게 된다. 50여년의 세월동안 기다렸던 형을 이렇게 늦게 그것도 유골로 만나게 된 그 기막힌 아픔에 할아버지는 오열하신다. 그의 손녀도 그런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큰할아버지의 유골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란 말로 세뇌되어있는 6.25는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기에 나 역시 책을 통해 혹은 언론을 통해 그 아픔을 살짝 곁눈질로만 훑어 볼 뿐이었고 아픈 역사였다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역사라는 단순한 몇 마디의 말로 그 아픔을 공감하는 듯한 어설픈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6.25 그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듯한 이 영화를 마주 대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제는 눈물을 흘리며 손녀가 생각했을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중의 하나가 죽음이다. 그 공포를 한 순간도 잊기 힘든 곳이 바로 전쟁터인 것이다. 수많은 죽음을 눈으로 보아야 하고 내 눈 바로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또 내가 사람을 죽여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죽음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 그 중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견디기 힘든 공포. 그 공포를 조금이나마 잊어보기 위해 다른 무엇인가에 매달리게 되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극한의 공포를 조금이나마 잊어보기 위해 매달리는 다른 무엇인가에 옳고 그름이라는 이성적 판단의 잣대를 댈 수 없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인 것 같다. 극과 극은 마주 통한다고 했으니 극한의 공포는 또 다른 극과 맞닿아있어야 할 것이고 그 극한의 상황에서 누가 이성을 찾을 수 있을까.

형 준태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한 동생의 죽음이라는 극한의 공포와 맞서기 위해 훈장이라는 극을 택한다. 동생 준석은 자신의 목숨을 위해 공을 세우려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형을 바라보며 자신은 죽지 않을 것 같다는 일말의 안심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일말의 안심 뒤에 닥친 것은 형의 죽음에 대한 공포였고 그 극한과 맞서기 위해 준석이 택한 것은 형에 대한 증오였다. 준태가 용석을 죽이는 만행까지 저지르며 전쟁광이 되어버린 것은 그것이 잘못된 일임을 몰라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잘못을 판단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오로지 그의 머릿속에는 훈장과 동생의 제대만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준석은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쉽게 적을 죽이지 못하고 포로의 무자비한 학살은 양민을 무참히 학살한 인민군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그나마 제대로 정신이 박혀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다 형 때문이었다. 형이 자신의 목숨을 철통처럼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판단할 힘이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그대신 형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지 못한 것이 바로 준석이었다. 나중에 형의 편지를 읽고 나서야 형에 대한 판단을 바로 잡으며 그는 이제 형을 구하기 위해 형의 목숨을 위해 자신을 인민군의 적진으로 보내주지 않는 국군들을 형 대신 공포의 반대편 극에 세운다. 그리고 형에게로 가기 위해 자신을 막는 국군을 죽이고 탈출을 한다. 인민군도 쉽게 죽이지 못하던 그가 국군을 죽이고 탈출을 한 것이었다.

직접 전쟁 한 가운데 서 있는 듯한 화면을 마주하며 나 역시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했고 나 역시 아무런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분명 우리는 한 동포인데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것인데 누구 한 쪽에게 적의를 품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양민 학살의 참혹한 현장을 대하며 인민군을 향해 주먹을 꽉 쥐고, 공형진(극중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이 죽어가자 그를 쏜 인민군 병사에 대한 적의로 입에 물고 있던 빨대를 질근질근 씹었다. 그 인민군 병사도 결국 죽음을 맞이했고 우리의 양민이 죽었다면 북에 있는 양민 역시 그처럼 학살을 당했을 것이었다. 생계를 위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고 했던 일 하나하나가 용공행위로 몰려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죽임을 당해야 했던 양민들도 있었지 않았는가. 사상으로 인해 한 동포가 적이 되어 죽고 죽여야 했던 전쟁에서 그 누구하나 제대로 사상 때문에 총구를 겨눈 사람은 없었다. 자신의 가족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총구를 겨누어야 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사상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위해 위에서 정해준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누어야 했던 것이다.

한 번 적이 된 이상 그들이 15살의 중학생이든 나와 친분을 나누었던 사람이었든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들은 모두 적, 그 이름 하나뿐인 것이었다. 죽음이라는 극한의 공포에 둘러싸여 이미 미쳐있는 그들에게 어떠한 판단도 기대할 수 없는 이상 전쟁이 빨리 끝나 가족의 품으로 살아서 돌아갈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지 왜 이 전쟁을 하고 있으며 내가 왜 이들을 죽여야 하는 지에 대한 깊은 생각은 필요치가 않고 또 한다고 하더라도 지속되기 불가능한 생각이었다. 태극무공훈장을 받을 만큼 국군을 위해 열심히 싸웠던 준태가 영실과 준석의 죽음과 함께 바로 인민군에 투항해 버리고 이제는 그들을 위해 열심히 싸우다 준석의 생존을 확인하고는 자신은 언제든 투항을 하면 된다고 말하는 그 모습이 바로 이 전쟁의 아픔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상 때문에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전쟁이었지만 이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했던 것은 가족이었다. 사상은 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또 이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내 가족을 죽인 사람이면 바로 적이 되고 내 가족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쪽이 바로 내 편이었던 것이다. 전쟁의 그 어디에도 사상은 없었다.

다시 국군으로 투항하지 못한 채 동생 준석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인민군복을 입고 인민군을 향해 총을 쏘았던 형 준태는 앙상한 유골로 50여년 만에 동생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의 손녀가 보고 있다. 그의 손녀는 눈물을 흘리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할아버지의 아픔이 이제는 그녀의 아픔이 되었을까. 국군과 인민군으로 마지막에 헤어져야했던 형제가 형의 죽음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6.25의 아픔을 이제 우리 세대가 짊어져야할 아픔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형제애를 통해 굳이 6.25를 바라본 영화가 말하고 있듯 북이든 남이든 우리는 형제라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가 되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한 것일까. 그리고 꼭 평화통일이어야 한다고 다짐한 것일까. 내가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에 다짐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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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태, 준석이 아니고 진태, 진석 아닌가요? ^^;   
2004-02-0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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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2004, Taeguk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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