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악의 기준의 애매모호함을 너무나도 잘 묘파한 1인 2역의 야쿠쇼 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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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전설에서 비롯된 도플갱어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외모와 일치하는 또 다른 자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외모와 완전 붕어빵인, 하지만 인성은 극단적으로 배치되는, 누군가가 뜬금없이 갑작스럽게 떡하니 내 앞에 나타난다면 어떠시겠는가? 물론, 그런 요상스런 상황을 접해보지도 접할 일도 없다고 우리는 생각하기에 별 시답지 않은 일로 치부할 것이다. 허나, 섬뜩함이 엄습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바로, <도플갱어>는 이러한 예기치 못한 기이한 현상을 맞닥뜨리면서 제 몸을 관장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아의 정체성을 죽이고 되살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단, <도플갱어>를 보실 분들을 위해 공지 사항 하나를 전달해 드리자면 당 영화, 호러 분위기로 주구장창 러닝타임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그런 종류의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스릴러의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예의 그 장르만의 긴장감은 간헐적으로 툭툭 치고 들어오는 코미디로 이완이 되고 중반을 넘어서는 한 마디로 골 때리는 또는 B급 스타일의 로드무비로 진입한다. 한 마디로 갖가지 장르를 비빔밥 마냥 뒤섞어 놓았다는 것이다. 대신, 전주비빔빕의 그것처럼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게끔.
| 화끈하게 돌아버려 다 박살내는 하야사키 또는 도플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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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거부할 수 없는 기괴한 방식을 통해 영화의 감독인 구로사와 기요시는 시스템으로써는 더할 나위 없이 합리적인 자본주의의 세계를, 그렇지만 인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부조리한 이 세상을 유쾌하게 조롱한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 역시 부조리함으로 가득함을, 하는 일마다 배배 꼬이는 <원더 보이즈>의 그래디(마이클 더글라스) 교수처럼, 과학자 하야사키(야큐쇼 코지)를 통해 농담 반 진담 반 식으로 던진다. 특히, 구로사와 기요시는 자신의 그러한 의중을 자아를 분열하며 복제해내는 하야사키를 이중 삼중의 분할화면으로, 둔중한 둔기로 뒷통수를 가격당하듯 화들짝스런 장면으로 드러낸다. 때문에 도플갱어란 낯익은 문학적 영화적 소재를 다룬 이 영화는 그리 친숙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대신, 범상치 않은 누군가를 만나면 쉬이 가까이 할 수는 없지만 불현듯 자꾸만 떠올려지듯 은근슬쩍 보는 이의 심사에 꼬드김을 던진다.
미이케 다카시와 함께 V시네마 출신으로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구로사와 기요시는 비주류?를 통과한 자신의 토대를 때로는 무너뜨리며 때로는 구축하며 구로사와만의 영화적 지평을 공포라는 장르를 변주하며 지금 여기에 다다랐다. 당 영화를 통해서도 그는, 물론 전작에 비해 엄격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불안과 혼란스러움을 독특한 언어로 풀어낸다. 마치, 지리멸렬한 삶의 짓누름을 더 이상 유한한 자신의 몸 안에 쌓아 가둬 두지 말고 내 안의 또 다른 나 혹은 진정한 나를 불러내 한번쯤 확 돌아버려 맘껏 쏟아내라고 살짝이 말하듯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행동방식이야말로 팍팍한 이 놈의 세상에 구멍을 뚫고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