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불청객 같은 고봉수 사단? 전주국제영화제 단골 고봉수 감독
2020년 6월 1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21번째 생일을 맞은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 28일(목) 무관객 영화제로 개막했다. 국내 나아가 세계 최초로 온라인 상영 방식을 선택한 영화제는 코로나 국면에 맞서 향후 타 영화제의 선택지에 있어 의미 있는 선례를 남길 거로 기대된다.

영화제는 주요 상영작 발표와 개막식 모두 온라인 라이브를 통해 진행한다. 원래 영화제 기간인 5월 28일부터 6월 6일까지 ‘퀘이 형제 특별전’을 비롯한 국내 경쟁, 국제 경쟁 등 96편을 OTT 플랫폼 웨이브를 통해 상영한다. 이후 9월20일까지 전주 일대에서 오프라인 상영을 통해 영화와 영화인을 향한 격려와 지지를 길게 이어갈 예정이다.

기성 감독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 독립·예술 영화의 흐름을 조망하는 ‘코리안시네마’ 섹션에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띈다. 고봉수 감독이다. 그가 ‘순수한 사랑 이야기’(전주국제영화제 문석 프로그래머 해설 중) <근본주의자>로 관객을 찾는다.

고봉수 감독과 출연 배우들, 일명 ‘고봉수 사단’은 영화제가 발굴한, 영화제의 단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주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고봉수 월드’를 소개한다.
 <델타 보이즈>
<델타 보이즈>

고봉수 사단 – 불청객 시리즈?

<델타 보이즈>로 2016년 전구국제영화제 국내 경쟁 부문에서 <연애담>(연출 이현주)과 공동 대상을 수상한 고봉수 감독과 배우들. 이듬해 <튼튼이의 모험>(2017)으로 또 영화제를 노크했다. 무성 흑백 영화 <다영씨>(2018), 페이크다큐멘터리 <갈까부다>(2018), 올해 초청된 <근본주의자>까지 감독과 배우들은 초저예산으로 특유의 단짠 웃음을 일구며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다.

고봉수 사단 영화를 처음 입문할 때 머릿속을 스쳐 가는 것은 ‘리얼리티’와 ‘촌스러움’ 두 단어다. 일부러 꾸민 누추함이 아닌 생활 냄새 물씬 밴 공간과 인물이 처음에는 상당히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후 그들이 발산하는 눈물 콧물 빼는 정서와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하는 순수함, 곳곳에 포진한 개그 코드, 투박한 위로까지 영화가 지닌 온기와 기운에 흠뻑 빠지게 된다.

‘고봉수 사단’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영화마다 분명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연작이 아니라는 것, 배우는 늘 보던 배우다. 그들이 매번 다른 캐릭터로 분한다. 마치 예전 만홧가게가 흥할 당시 양산형 만화책의 캐릭터 운용 같은 인상이다. 유명 만화가가 주요 캐릭터를 가지고 매번 다른 스토리를 들려주는 식이다. 예를 들면, 이현세- 까치, 이재학 -추공, 박봉성-강타, 고행석-불청객 등이다.

감독의 영화는 (개인적으로) 고행석 만화가의 ‘불청객 시리즈’와 매우 흡사한 인상이다. 세계관과 이야기가 아닌 함유한 정서가 그렇다. 친근한 이웃을 넘어 평범 이하, 보잘것없는 인물들이 시전하는 찌질함의 향연. 그 모양새에 실소하다 문득 우스꽝스러움 속에 녹아 있는, 우리네 인생과 맞닿는 어떤 부분에 다다른 순간,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몸과 마음을 때리고 순식간에 저만치 유유히 사라진다.

<델타보이즈>(2016)

250만 원의 초저예산으로 만들었음에도 탄탄한 만듦새로 제작비가 영화에서 절대 요소가 아님을 입증한 빛나는 데뷔작. 남성 사중창 대회 참가를 꿈꾸는 네 남자, ‘일록’ (백승환), ‘예건’(이웅빈) ‘대용’(신민재), ‘준세’(김충기)가 이름도 멋진 ‘델타보이즈’를 결성,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합창대회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아카펠라, 라면, 도넛, 생선가게가 대표 이미지로 억지 부리거나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순도 높은 웃음을 안긴다. 처음엔 회의적이었다가 가장 열심히 매달리는 ‘일록’역의 백승환 배우를 주축으로 전개된다.
 <튼튼이의 모험>
<튼튼이의 모험>

<튼튼이의 모험>(2017)

실제 나이 평균 33세의 세 배우(백승환, 신민재, 김충길)가 18세 소년 튼튼이 1, 2, 3호로 변신! 레슬링 전국체전 예선에 도전한다. <델타 보이즈> 백승환 배우의 바통을 김충길 배우가 이어받아, 몸도 마음도 건강한 레슬링을 사랑하는 튼튼이 ‘충길’로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끈다. 노숙한 외모, 동네 아저씨를 연상케 하는 원색의 겨울 점퍼, 외모와는 달리 서로 깐죽거리고 놀려대는 유치찬란함까지 그 어디서도 정제됨을 찾아볼 수 없는 투박한 모습 그대로 자연스러운 매력을 발산한다. 감독과 배우가 십시일반 제작비를 마련, 2000만 원이라는 한결 넉넉한 예산으로 촬영했다고.
 <델타 보이즈> 인터뷰 당시, 왼쪽) 고봉수 감독, 오른쪽) 백승환 배우
<델타 보이즈> 인터뷰 당시, 왼쪽) 고봉수 감독, 오른쪽) 백승환 배우

위 영화 두 편은 한마디로 ‘꿈’에 관한 이야기다.

감독과 배우는 <델타 보이즈> 당시 무비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예술 계통 일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가 ‘넌 이쪽엔 재능이 없다. 차라리 돈 되는 걸 찾아봐라’ 이런 말이다. 나와 배우들 역시 그런 소리를 듣는 이들 중 하나. 하지만 영화가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꿈을, 희망을 놓지 말고 계속해서 해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봉수 감독)

“꿈이 원래 거창하지도 않았고 지금 상당 부분 이룬 것 같다. 감독님과 처음 작업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뭐 하니?’ 이런 시선이었다. 돈도 없이 영화 만든다고 하루 만에 찍고, 우리끼리 교회 지하에서 작은 프로젝트로 보면서 재미있다고 좋아했었다. 그때는 우리와 같이 작업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왔다가 그냥 가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같이하려는 사람이 생겼다. 극 중에서와 같이 처음에는 우리를 진짜 우습게 봤는데 지금은 ‘잘하네?’ 이런 시선으로 바뀐 거다. 아무도 개봉을 생각 못 할 때도 우리는 잘 될 거라 믿고 있었다”(백승환 배우)

이후 선보인 <다영씨>, <갈까부다>, <근본주의자>는 사랑 이야기다. 무성 흑백, 페이크 다큐 등 새로운 형식을 접목해 사랑에 빠진 다양한 얼굴을 전하는데 다소 소품에 가까운 인상. 러닝타임도 61~76분 내외로 상당히 짧은 편이다.
 <다영씨>
<다영씨>

<다영씨>(2018)

백승한, 김충길에 이어 이번에는 신민재 배우가 주인공을 할 차례였고, 고 감독은 그가 평소 해보고 싶었던 무성+러브스토리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나온 영화가 <다영씨>다. 흑백으로 촬영한 영화에서 신민재는 퀵서비스 기사 ‘민재’로 분해 짝사랑의 진수를 보인다. 택배 배달 가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에 회사 구성원들에게 구박당하기 일쑤인 ‘다영’에 반한 남자는, 변변찮은 사정에서도 그녀를 돕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항상 헬멧을 쓴 채로 다영씨 앞에 서는, 얼굴 보이는 것조차 수줍은 남자가 건네는 사랑과 위로에 뻔하지만 마음 움직인다. 대사의 공백을 메우는 배우들의 표정과 동작 연기가 일품이다.

<갈까부다>(2018)

처음 <델타 보이즈>로 뭉친 네 배우와 감독, 미국에 거주하는 이웅빈을 제외하고 한 번씩 번갈아 주연을 꿰찼다. 이후 감독이 직접 나서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자신의 사랑 경험을 들려준다. <갈까부다>는 18살 어린 국악 전공 대학생 ‘은비’와 사귀게 된 ‘봉수’ 이야기다. 봉수는 나이 차 큰 상대를 만나는 것에 대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반대와 나아가 조롱과 야유에 맞닥뜨린다. 심지어 은비의 아버지한테는 얻어맞는 등 온갖 수모를 겪고 이별의 아픔으로 엉엉 울기에 이른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여친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국악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고야 마는 감독 봉수, 멋지다! 빈말이 아니라 고봉수 감독이 극 중 인물 중 가장 흐뭇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본인이 나오는 신만 흑백과 멋진 각도로 촬영, 사심이 들어갔다는 합리적 의심도.^^

<근본주의자>(2019)

지난 28일(목)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상영작. 현재 웨이브르 통해 만날 수 있다. 돌고 돌아 이번에는 백승환 배우가 다시 주인공을 맡았다. 금연하려 노력하고, 술은 입에도 못 대는 남자 ‘승환’은 배우(신민재)의 매니저로 일하다 도저히 적성에 안 맞아 그만두고(짤리고) 가업인 붕어빵 장사에 나선다. 밥 먹으러 들린 곳에서 구박받는 ‘진주’를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원칙을 중요시하는 남자의 순수한 사랑이야기. 담뱃갑을 구겼다 폈다, 던지기를 반복하는 승환의 모습에서 고봉수 감독이 좋아하는 영화로 꼽았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펀치 드렁크 러브>(2003) 속 아담 샌들러가 떠오르기도.
 <갈까부다>
<갈까부다>
 <근본주의자>
<근본주의자>

고봉수 사단의 상상력의 원천? 친.목.모.임

고봉수 감독과 배우들은 장르와 형식을 넘나들며 가까이 있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발굴해오고 있다. 뚝딱뚝딱 영화를 쉽게 뽑아내는 것 같은 감독과 배우들에게 그 상상력의 원천에 대해 묻은 적이 있다.

“우린 매주 월요일 정기 모임을 가진다. 타이틀은 기도 모임인데 일주일 근황을 이야기하고 맛있는 것 먹고 차 마시는 친목 모임이다. 서로 고민을 나누고 영화 이야기하다 아이디어 나오면 좀 더 발전시키기도 한다”고 건전한 답변을 내놓은 고봉수 감독. (<다영씨> 무비스트 인터뷰 중)

이렇듯 감독 혹은 배우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고봉수 사단이다.

“‘감사’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고마운 팀이고 고마운 감독님이다. 이렇게 건강하면서 마음도 맞는 영화 집단을 어디서 만날 수 있겠나! 서로 자극을 주고받고 무엇보다 현장 자체가 매우 재미있다” ( <다영씨 > 무비스트 인터뷰 중 신민재 배우)

“영화를 시작한 지 15년 됐는데, 십몇 년 하다 보니 영화를 촬영하고 편집하는 등 스킬이 생겼다. 그 스킬을 보유하면서 만난 배우들이다. 이 배우가 없으면 난 스킬만 쌓다가 말았을 거다! 정말 보석 같은 친구들이다”(<다영씨> 무비스트 인터뷰 중 고봉수 감독)

고 감독은 함께 해온 배우들을 ‘캐도 캐도 계속 새로운 모습이 나오는 광산’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다. 그렇기에 배우들의 나이와 상관없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다양한 장르를 통해 그들의 숨은 재능을 더 끄집어내고 싶다는 바람처럼, 앞으로 계속될 고봉수 사단의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

2020년 6월 1일 월요일 | 글 박은영 기자(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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