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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전>, 웃으면서도 불편했다.
2005년 5월 26일 목요일 | 박부식 영화평론가 이메일


과감한 줌인과 줌아웃 이어지는 풀샷, 전형적인 70년대 스타일의 카메라 워크로 시작하는 <극장전>은 리얼리즘적인 영화와는 다른 예의 그 모던한 면모를 드러낸다. 홍상수의 등장에서부터 한국영화의 모던함을 본격적으로 논하기 시작했으니 우선 그의 모던함에 대해 말해보자.

홍상수 영화의 모던함은 초기에는 주로 ‘일상성’에 대한 현미경 같은 묘사 같은 수사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강원도의 힘>을 거쳐 <오, 수정>과 <생활의 발견>에 이르러서는 홍상수의 영화는 그 자체로 한국영화에서 여타의 다른 리얼리즘적인 영화와 대별되는 독보적인 모더니즘적 영화로 자리잡았다. 영화적 실험의 의지는 더욱더 강력한 형식적 자의식과 섹스와 여자에 대한 유별난 감각으로 확대되었고 이즈음 페미니스트적 비평담론에 의해 김기덕 감독과 함께 비판되기도 했으나 굳건한 그의 지지자들은 여전히 홍상수의 미학적 감수성에 놀라워 했다.

● <극장전>, 새로운가?

<극장전>의 개봉을 앞두고 솔직히 말해 가장 놀라운 점은 ‘이렇게 찍어도 영화가 되는구나’하는 놀라움이다. 나이 70이 넘어서야 도달한다는 ‘종심’의 경지에 이른 것일까? 아니면 즉흥적 연출스타일에 따른 번뜩이는 감수성의 확대에 불과한 것일까? 그런데도 그는 좀처럼 설명하려 하지도, 연출스타일을 바꾸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복고풍의 카메라 스타일에 재미를 붙인 것일까? 지난 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중국집 여종업원에게 수작을 걸던 좌우 패닝의 파노라마가 이번엔 줌zoom의 과도한 사용으로 옮겨갔다. 뿐만 아니라 2개의 에피소드가 서로 ‘차이와 반복’을 드러내며 교묘하게 서로를 희롱하는 스토리도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감독의 시선만큼이나 얄궂다.

이번 영화가 홍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하기는 어렵겠지만 몇가지 형식적 실험과 내용면에서의 변화를 살펴보면 그다지 새롭다고 할 수는 없을 듯 하다. 아니 이전의 홍상수 월드의 새하얀 칼날 같은 냉소가 잦아들었다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96년 한국에 본격적인 모더니즘 영화를 선보인 중견 감독치고는 그의 행보가 이제 관객을 희롱하다 못해 ‘벌거벗고’ 나서는 모습처럼 보여 조금은 익숙하면서도 실망스런 느낌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날선 해부가 <강원도의 힘>에서 ‘기괴한 낯설음’을 더욱 부각시키며 마치 스크린 뒤에 감독의 음흉한 미소를 봐버린 듯 한 느낌을 전했다면 <극장전>에서는 형식적 실험은 진보한 듯 하나 어째 빤히 들여다보이는 듯한 조롱에 맞대거리를 하며 기분 좋게 웃을 수 있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감독이 원하는 진정한 소통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믿는다. 관객과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장치로서 관객자신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되비추는 ‘홍상수 영화’ 특유의 미덕이 이번에는 반복되는 이야기와 형식적 테두리에 오히려 묻혀버린 듯한 것이다.

<극장전>에서 줌의 사용이 컷과 컷 사이를 연결 지으며 효과적인 촬영을 가능하게 한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과감한 줌의 사용이 가져오는 효과가 초반에 집중적으로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제한적으로만 쓰이면서 그다지 별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추억 혹은 향수를 자극하는 하나의 장치일 뿐, 오히려 후반으로 갈수록 프레임은 타이트하게 배우들에게 달라붙어 평범한 이야기 중심의 영화로 귀결되는 것 같다. 이전 영화들의 멀찍이 들여다보는 요지부동한 프레임의 지속은 요령부득한 줌으로 대체되고 알레고리화한 이야기는 무언가 홍상수 영화만의 아우라, 즉 위선을 까발리며 목도하게 하고야 마는 그냉정함과 차가움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듯 하다.

● 낡아버린 홍상수 월드의 형식에 대한 자의식

그렇다면 집중해야 할 초점은 미학적 실험보다는 이야기의 구성에 놓여져야 할 듯한데 이야기의 구성이라는 것도 ‘포스트모던’이라는 현재의 추억을 다시금 끄집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극장전>을 굳이 거창하게 상호텍스트성이라는 수사를 빌리지 않더라도 영화에 대한 개념이 영화의 안과 밖을 허물고자 하는 시도라는 것은 쉬이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이 포스트모던한 개념이 현재 받고 있는 가장 커다란 비판들 중 하나가 단순한 차이와 반복 그리고 그 미세한 변화들이 물론 중요하긴 하나 그것이 또한 창작의 결핍을 드러내는 징후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조금은 과격한 비판일 수도 있고 보는 이의 양식의 부재를 드러낼 수도 있는 이런 ‘새로움의 부재’는 그래서 <극장전>이 떠올리게 하는 다른 영화들과의 비교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물론 홍상수는 스스로 독자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 감독이니 이런 식의 비교가 그의 영화 내적인 아우라를 해독하는 데는 쓸모없을 것이지만 그의 영화를 바라보는 한국영화의 지형과 관련 지어 생각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수는 있다.

<극장전>을 보고 떠올릴 수 있는 연상작용은 데이빗 린치와 차이밍량을 거쳐 루이 브뉘엘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엄지원의 이중적 역할은 <로스트 하이웨이>와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결코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되지 않는 캐릭터의 이중적 분열상들과 닿아있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상훈(이기우)과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가 두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남산정이라는 모임에서 불려지는 등 에피소드 속의 사소한 사건들의 연쇄는 비슷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가고 같은 수법으로 여관방으로 들어가고 비슷한 상황에 들려지는 내레이션에 관객은 웃는다. 그리고 다른 남자의 같은 체위, 한번은 자살 소동으로 또 한번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어설프게 흐느끼는 것으로 극장 앞, 극장 이야기는 끝난다.

이 단순한 차이의 은근한 변주는 특히, 김상경과의 정사장면에서 엄지원이 신고 있는 까만 스타킹은 브뉘엘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의 육체를 가지고자 끝없이 애쓰다가 볼짱 다 보는 그 영화에서 의미심장하게 여자는 잠시 나갔다가 오겠다며 전혀 다른 여자가 들어오지만 늙은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애쓰는 그 영화는 욕망의 속성이 결코 만족될 수 없는 ‘결핍 그 자체’를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홍상수 월드에서 ‘차이와 반복’은 있으되 결핍 그 자체에 대한 시각화는 도무지 발견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 관한 이야기 중 최근에 가장 주목해서 본 영화는 단연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이었다.

<애정만세>로 롱테이크를 도시적 풍광에 대입했다면 <안녕, 용문객잔>은 사라져가고 있는 영화의 추억을 애도하는 사려 깊은 영화였다. 극단적인 롱테이크의 <안녕, 용문객잔>이 사멸해가고 있는 대만영화의 현실에 대한 비유라면 <극장전>은 어수선하게 각개각진하는 한국영화의 불안한 현실이라고 비교하는 것이 적절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위에서 말한 브뉘엘이나 린치의 영화들에서처럼 어쩔 수 없는 연상작용이며 또한 그 때문에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 것이다.

● <극장전>, 웃으면서도 불편했다.

차이와 반복은 단순히 그 뿐일 뿐, 차라리 주목되는 지점들은 오히려 엄지원과 상훈의 여관방 장면에서 유난히 도드라지는 꿈과 환상장면에 있는 것 같다. 상훈(이기우)가 여관방에서 엄지원과 같이 있으면서 꾸는 첫번째 꿈은 엄지원의 왼쪽 가슴을 잡았다가 꿈에서 깨서 오른 쪽 가슴을 같은 상황에서 만진다. 그런데 그 가운데 꿈이 개입한다. 꿈에서 상훈은 문을 열고 계단에 앉아있는 백인여자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사과하나 드실래요?’ 이런 생뚱맞은 상황은 이전작인 <생활의 발견>에서 김상경이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라고 하며 도망치듯 뛰어가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굉장히 드물게 개입된 이런 환상의 명시적인 개입과 의도적인 에피소드의 반복적 병치는 물론 모던한 방식의 언술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모던함이 영화적 전통에서나 ‘홍상수 월드’에서나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데 있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구분은 홍상수 감독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겠지만 최근의 영화들의 분화양상을 지켜본 영화광들은 홍상수 감독이 이제는 익숙해진 방식을 새로운 것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을 던져준다. 그의 지지자들이 무언가 미처 발견해내지 못한 것이 있지 않을까라는 조바심을 던져줄 정도로 익숙한 것들의 반복적인 제시와 그다지 튼튼하지 않은 영화플롯으로 인해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고 변죽만 쑤시고 다니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을 던져주는 것이다. <극장전> 역시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바람 같은 영화처럼, 말하자면 홍상수감독의 이전 영화들에 대한 복기이자 변주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단순한 복기만 있을 뿐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이미 바래버렸고 형식에 대한 자의식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고전적 형식으로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극장전>을 보고 웃었지만 불편했다.

10 )
isquare
재밌기만 하드만.ㅋㅋ   
2005-05-31 01:29
okok78
불편하지 않았어요^^ 홍상수감독다워서 좋았는데^^   
2005-05-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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