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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마더> 아름답고 잔혹한 '모성'의 추억
2009년 5월 27일 수요일 | 하정민 기자 이메일



<살인의 추억>과 <괴물> 사이 어딘가

봉준호 감독이 살인사건에 휘말린 아들을 직접 구하는 엄마를 내세운 영화를 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의 영화를 한편이라도 본 사람들은 나름의 짐작과 추측을 내놓았을 것이다. 아마도 <살인의 추억>(2003)과 <괴물>(2006)이 가장 뚜렷한 추측의 근거와 영감의 원천이 됐으리라. 아들을 위해 엄마가 살인범을 직접 찾아 나선다는 줄거리와 스릴러라는 장르 때문에 <살인의 추억>의 연장 혹은 번외편으로 읽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엄마의 사투라는 점에서 현서(고아성)를 위해 가족이 괴물과 사투를 벌이던 <괴물>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의 추측대로 실제 <마더>에는 두 영화와 닮은 점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남들보다 모자란 자식이 살인 용의자로 몰리는 것은 <살인의 추억>의 백광호(박노식)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 아닌가 싶고 부실한 수사로 인해 엄마가 직접 범인검거에 나선다는 설정 역시 <살인의 추억>의 무능한 시대를 연상케 한다.

이를 농담처럼 입증하듯 영화에는 “웬일로 현장 보존이 이렇게 잘됐어?”라는 자기 패러디 대사와 형사들이 미드 <CSI>를 운운하는 장면 등이 등장한다. 절절한 모성이 원동력인 <마더>의 어머니는 <괴물>의 아버지들과도 포개진다. 공기 속 불균질한 입자까지 포착하는 봉준호 영화 특유의 생생한 공간감도 여전하다. 무엇보다 그토록 잡고 싶은 대상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마더>는 <살인의 추억> <괴물>과 궤를 같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마더>는 봉준호 감독의 인장이 분명한 영화지만 어느 한 지점을 깊게 파고들며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원을 그린다. 영화는 '괴물' 같은 시대보다 원형적이고 본질적인 대상을 향해 나아간다.

처음부터 영화는 전작들과 다른 요소들을 매설해놓지만 중반까지는 <살인의 추억>이 선보인 스릴러 양식에 더 충실한 인상이다. 도준이 호프집에서 친구 진태(진구)에게 바람맞은 밤의 불길한 기운은 다음날 여고생의 사체가 옥상에서 발견되면서 현실화 된다. 범죄현장 근처에서는 도준의 골프공이 발견되고 도준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남보다 지능이 모자랄 뿐 둘도 없이 착한 아들이 살인범으로 몰리자 혜자는 눈이 뒤집힌다. 그녀는 "내 아들은 아니야!"라고 절규하지만 경찰과 변호사는 서둘러 사건을 종결시켜 각자의 이득만을 챙기려 한다. 결국 혜자는 직접 나선다. 확신에 차서 진태의 집을 뒤지기도 하고 살해된 여고생의 주변을 탐문하기도 한다. 그렇게 조금씩 실체가 드러나는 사건은 엄마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더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럼 도대체 누가 범인인가? 영화는 긴장과 이완의 서스펜스를 적절히 버무리며 혜자의 추적을 뒤쫓는다. 치밀한 내러티브는 초반엔 대수롭지 않아 보였던 인물들에게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장르적 긴장감을 관객의 턱 밑까지 끌어올린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혜자가 구석에 몰리고 예상치 못했던 사건의 면면들이 드러난다. 벌어진 진실의 틈에서 새어나오는 불온한 공기는 부조리한 시대라는 거대한 배후가 등장했던 <살인의 추억>과 <괴물>의 비극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혜자의 고군분투가 마침내 사건의 꼬리를 잡는 순간 영화는 전작들과 다른 방향으로 선회한다. 사회적, 시대적으로 확장되는 듯 했던 진실은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혜자가 너른 벌판에서 기이하고 슬프고 우스꽝스러운 독무를 선보였던 오프닝 시퀀스가 원점이다. 단순하리만치 솔직한 제목으로 일관했던 다른 봉준호 영화와 마찬가지로 <마더>는 제목대로 엄마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마더>는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범인을 마침내 잡는다. 어느 수사관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낸 것은 다름 아닌 엄마다. 맨발로 어두운 밤길을 내달리고 굵은 빗줄기 속을 성큼성큼 걸어서 엄마는 범인의 뒷덜미를 낚아챈다. 모성의 힘으로 해낸 것인가? 맞다. 하지만 <마더>가 부릅뜬 눈으로 응시하는 것은 괴력에 가까운 모성의 힘이나 모성신화가 아니다. <마더>는 <괴물>이 보여준 자신의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부모애에서 더 멀리 깊게 나간다. <마더>의 모성은 우리에게 익숙한 모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우리가 몰랐던 혹은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모성의 어두운 이면을 들춰 보인다. 실제로 <마더>에 나오는 엄마 혜자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엄마이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엄마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했던 두 모성의 공존은 사건 발생 이전부터 관객을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몰아넣는다. 혜자가 도준에게 쏟아 붓는 모성은 너무나 본질적이어서 생경하다. 아들의 숟가락에 끝없이 반찬을 올려주던 혜자는 골목까지 쫓아나가 벽에 오줌을 싸는 아들에게 한약을 먹인다. 지나치리만큼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시하고 생활은 물론 잠자리까지 아들과 공유하는 엄마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모성의 집착과 광기다. 혜자와 도준이 함께한 장면에서 종종 성적 욕망이 감지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원초적이고 맹목적인 모성이 품은 괴이한 광기는 <마더>를 이끄는 모든 원동력이다.

하지만 <마더>에 등장하는 엄마와 모성은 변종된 그 무엇이 아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잘 숨겨져 있을 모성의 태생적인 끔찍함을 <마더>는 엄마를 극한의 상황에 밀어 넣고 뒤집어 보인다. 제 새끼를 위하는 어미의 맹목적인 애정은 처음부터 고통스러운 딜레마를 안을 수밖에 없다. 내 새끼를 살리자면 다른 누군가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마더>에서 엄마가 해내는 것은 범인을 잡은 것만이 아니다.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에 자식을 위해 가장 뜨거운 불덩이를 끌어안는다. 때문에 아들은 구했지만 엄마의 고통은 도무지 지워질 수가 없다. 이런 모성의 다면성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관객의 감각과 감성을 낚아챈다. <마더>의 스릴러적 쾌감이 절정에 이를 때도 사건이 풀려나갈 때가 아니라 모성의 광기가 번뜩이는 순간이다. <마더>의 모든 영화적 요소는 모성의 다면성을 보여주기 위해 기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마의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를 담는 극도의 클로즈업라든지, 늙은 몸을 부리는 엄마의 움직임에 리듬을 맞추는 음악이라든지 하는 영화적 요소들은 모성의 질감을 풍성하게 살려낸다.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장면에도 장르적 쾌감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모성의 숨겨진 어두운 측면을 펼쳐놓는다고 해서 <마더>가 모성신화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데 목적을 둔 영화는 아니다. '엄마'라는 가장 감성적인 소재를 골랐음에도 봉준호 감독이 여느 작품에서보다 인물을 가장 냉혹하게 밀어 붙이는 <마더>는 징글징글하지만 그래서 애처로운, 아름답지만 그만큼 참혹한 모성에 관한 영화다. 모순을 평생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엄마의 고독과 그래서 짐승이 될 수밖에 없는 어미의 숙명적인 비극에 관한 영화다. 영화에서 혜자의 클로즈업만큼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멀리 홀로 있는 혜자의 모습이다. 카메라가 최대한 멀리서 수평 구도로 담아낸 장면에서 혜자는 아무도 없는 벌판을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간다.

엄마 김혜자의 얼굴

이미 많은 매체들이 리뷰에서 중요하게 다뤘지만, <마더>는 김혜자를 언급하지 않고 마무리 될 수 없는 영화다. 모성의 끔찍한 본질까지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만드는 힘의 8할은 배우 김혜자에게서 나온 것이다. "김혜자로부터 시작된 영화"라는 봉준호 감독의 고백을 새삼 떠올리지 않더라도 <마더>는 김혜자가 아니었다면 존재하기 힘든 영화다. 김혜자를 클로즈업한 장면만으로도 이토록 극적인 감정을 전달받을 수 있는 것은 치밀한 연출과 명연 덕도 있지만 우리가 '김혜자'라는 배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더>의 혜자는 배우 김혜자가 그동안 연기해온 모든 엄마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마더>에는 행여 자식이 몸 상할까봐 전전긍긍하고, 보는 것도 아깝다는 듯 애틋한 눈길을 보내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심장은 물론 영혼까지도 내어주려는 엄마가 있다. 여기에 <마더>는 '엄마' 김혜자의 모정 속에 잠복했던 광기 어린 얼굴을 끄집어낸다. 혜자는 아들의 여자관계에 은근한 경계심을 내비치고 지독한 모성애 뒤로 비죽이 나온 히스테릭한 기운이 동시에 느껴지는 엄마다. 누군가 제 새끼를 해치려할 때 뿜어내는 섬뜩함은 광기보다는 살의에 가깝다. 김혜자는 그 많은 엄마의 얼굴을 치켜 올린 눈과 애써 꼭 다문 입술, 메마른 뺨으로 복기하고 변주한다.

돌이켜보면 김혜자가 이질적인 엄마의 모습을 연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깝게는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2008)의 김한자부터 멀게는 <마요네즈>(1999)의 철없는 엄마와 <사랑이 뭐길래>(1991)의 대발이 엄마까지 그녀의 엄마들에게서는 신경쇠약직전의 어떤 여자들이 발견됐다. 심지어 그녀에게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아준 <전원일기>에서도 김혜자의 엄마에게서는 종종 피로한 강박이 묻어났다. 그렇게 한 배우가 반평생 가까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엄마라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이 영화 최고의 미장센이자 풍성한 텍스트다. 때문에 엄마의 이름이 김혜자의 본명인 '혜자'를 빌려 쓸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마더>가 김혜자의 춤사위로 시작과 끝을 맺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마더>는 비장한 사회파 스릴러를 기대하고 온 관객에게는 다소 밋밋한 영화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마더>의 영화적 성취를 반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신을 완벽하게 장악하며 탁월한 테크니션의 면모를 과시한 봉준호는 영화 내면적으로는 외연을 확장하는 대신 깊게 들어간다. 뒤로 가면서 하나둘씩 사회적 장치를 빼고 인물을 덜어낸 영화가 응시하는 것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던 엄마라는 존재다. 차츰차츰 엄마의 내면으로 들어간 영화는 결국 고통의 근원을 집어내고야 만다. 그렇게 낮고 내밀한 목소리로 이야기한 모성의 잔혹한 추억은 독하고 서글프다. 이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엄마는 막춤을 추며 통곡을 삼킨다.

2009년 5월 27일 수요일 | 글_하정민 기자(무비스트)

29 )
loop1434
봉준호 작품들의 연장선상에서 빠질 수 없는 영화   
2009-06-03 12:50
gkffkekd333
놀라운 반전..   
2009-06-03 00:33
gurdl3
음..그다지...감동이 별로 와닿지않는...   
2009-06-02 04:00
wnsdl3
모성애가 이토록 무서울줄이야..;;   
2009-06-02 03:46
shelby8318
잘 봤어요!!   
2009-06-01 17:11
bjmaximus
과연 김혜자의 명연기란..   
2009-06-01 10:55
ldk209
모성의 가족이기주의가 공공성을 얻지 못했을 때...   
2009-05-31 16:24
skdltm333
반전이 있군요..기대됩니다..   
2009-05-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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