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다. 기존의 나를 버리다. 그리고 반대편에 서다’
하지만 배우로서 10년의 시간을 보낸 김석훈은, 이번만큼은 변신을 하고 싶은 욕심에 대한 그동안의 망설임에 용기를 내었다. 그리고 여균동 감독의 영화 <1724 기방난동사건>에서 악역이지만 결코 미워하기 힘든 매력적인 ‘만득’으로 변신을 했다. “이번 영화는 기존의 나를 다 버리고 그냥 180도 반대편으로 간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봐주실 지 잘 모르겠고, 기대와 동시에 우려가 되기도 해요. 어떤 분들은 나의 모습을 보면서 재밌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말 연속극을 보는 아주머니들이 보면 ‘으윽’ 할 수도 있거든요.(웃음) 사실 그건 두려운 부분이에요. 각오는 하고 있지만.”
김석훈이 변신을 위해 선택한 만득은 조선 뒷골목 최고의 재력과 최강 세력을 자랑하는 명월향의 주인이다. 그러나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기생 설지와, 자신에게 겁도 없이 자꾸만 덤비는 천둥 때문에 자꾸만 인생이 꼬여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석훈이 표현한 만득은 착한 이들에게 당하는 것이 당연하고 속 시원한 인물이기 보다는, 뭔가 여러 개의 나사가 살짝살짝 풀려있어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고, 그리 무서워 보이지도 않는 인물이다. 여기에 첫 등장부터 보여 지는 그의 나른한 표정이나 몸짓은, 그의 변신을 낯설음에서 코믹 적 친숙함으로 순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연기 인생 10년 만에 악역을 하는데 어찌되었건 나름 잘 했다는 얘기를 듣고 싶었어요. 근데 내가 아무리 악랄하고 포악하게 한다 해도 그건 현재 누군가가 했던 이미지인거잖아요. 그래서 좀 다른 걸 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런 생각이 미치자 그는 정말로 많은 고민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만득이라는 캐릭터가 모든 걸 다 가진 인물이라는 것에 집중했다. “사람이 놀아 볼 때로 다 놀아 보고, 가진 것도 많고, 주변에 여자도 많고 그러면, 세상에 대해 아무 흥미도 없고 성격도 좀 이상하게 갈 수 있어요. 만득도 그런 거죠. 세상의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인데 그렇다면 뭔가 좀 특이하고 이상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 거기부터 출발했어요.” 원래 시나리오 상에는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비주얼 적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단지 만득은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굉장한 주먹의 소유자, 그냥 악역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만 가지고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악역을 더 돋보이게 할까를 생각하면서 머리나 메이크업, 악세서리, 의상, 목소리 톤까지 그런 부분에 맞춰서 접근을 했죠. 그러는 중에 그 부분을 담당하는 감독님들의 제안을 거의 다 받아 들였고요. 머리도 인물의 나른함 같은 걸 표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보면 남자 같고, 어떻게 보면 여자 같기도 한 그런 스타일로 연출했던 거예요.”
‘만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김석훈 식’ 노력’
극중에서 만득은 악역이긴 하지만 그다지 똑똑하지도 않고, 의리가 넘치지도 않으며, 강자에게는 적당할 만큼 약하다. 하지만 똑똑하지 않다고 해서 주인공에게 무작정 당하지도 않는, 딱 중간에 위치한 인물이다. “만득은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악해진 거예요. 건달로 만족할 게 아니라 좀 더 나은 권력을 갖고 싶어서 양반 벼슬아치의 하수인으로 붙은 거고요.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그런 인물이죠. 그래서 밉지 않게 보이는 걸 수도 있어요.” 어쩌면 자칫 평범한 악역일 수 있는 만득을 자신의 방식대로 표현하는데 있어서 연기를 잘하는-배우로도 활동하는- 여균동 감독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았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연기 터치를 하지 않았어요. 니가 알아서 해라.(웃음)”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 자신의 노력에 대해 얘기했다. “이 작품은 촬영 전에 두 달간 연습 했어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2시부터 5시까지, 마치 연극처럼요.” 리딩을 하고 그 만큼의 시간을 들였다는 건 역할을 단순히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갔다는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 때는 힘들었죠. 하지만 감독님과 처음 상의한 소중한 내용들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만들어 지니까, 감독님이 저한테는 그다지 많은 디렉션을 주지 않으셨던 거 같아요.”
‘
CG가 많다고요? 그래도 우리 영화와 잘 어울리지 않나요?’
<기방난동사건>은 알려진 대로 CG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영화다. 이러한 영화는 배우들의 부족한 연기를 포장해서 채워주기도 하지만, 영상의 현란함으로 인해 배우들의 연기를 평가절하 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연기를 한 배우들조차도 완성된 영화를 보고 예상하지 못한 것들에 놀라기도 한다.“CG를 맡으신 감독님이 여균동 감독님과 코드가 잘 맞았고, 편집도 그 분이 하시면서 CG의 역량이 굉장히 커진 영화가 됐어요.” 김석훈은 예상보다 CG의 영역이 더욱 확대된 이유에 대해 말하며 전반적인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힌다. “촬영할 때 CG가 많은 부분을 차지할 거라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런 것들에 그리 무리가 있지는 않았다고 봐요. 장단점이 있을 터인데 우리 영화의 특성에는 좀 맞지 않았나 싶거든요. 좀 만화적이기도 하고, 변신에 목표를 두고 출연한 배우들의 이미지를 좀 더 보충해 주는 것도 같고. 그래서 그리 당황스럽지는 않아요.” 하지만 분명 우려하는 것도 있음을 내비친다. “우리 영화는 이것저것 볼게 많아요. 그래서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자칫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되고요. 그런 것들은 걱정이 되죠. 이것저것, 그 부분들을 다 챙겨서 재밌게 보시면 좋을 것 같은데.(웃음)”
‘또 다른 김석훈을 기대하며’
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재밌게 보내는 편이라고 말한 김석훈은 인터뷰 내내 털털하고 유쾌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영화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밝혔고 우려되는 부분에 대한 고민도 털어 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영화를 비롯해 어려운 시기를 건너고 있는 한국 영화의 불황에 대해, 다시 과거의 부흥기를 그리워하기 보다는, 이쯤에서 냉정하게 뒤를 돌아보고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발전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는 소신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김석훈은 현재 <기방난동사건>과 연이어 또 다른 사극 한 편을 촬영하고 있다. KBS에서 방영 예정인 드라마 <천추태후>다. 그는 여기서 고려를 전복시키려는 신라 계 사람 ‘김치양’을 연기한다. 김치양은 나라를 찾기 위해 천추태후를 사랑하는 척 하다 정말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다. 왠지 그동안 김석훈이 보여주었던 순수한 사랑의 태도를 다시금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만득으로 인해 변신에 대한 두려움도 걷히고 연기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어 졌는데 어떤 역할을 맡고 싶은지에 대해서. 그러자 그는 “멜로 해보고 싶어요. 절절한 멜로 말고, 밝고 기분 좋은 멜로.” 부디 망설임 없이 대답한 그의 바람이 ‘김석훈 표’ 밝고 기분 좋은 멜로가 되어 우리 곁으로 오길 기대해 본다.
2008년 12월 11일 목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
2008년 12월 11일 목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