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있다 <도둑들> 이정재
2012년 8월 2일 목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매너저에게 들으니, 홍콩에서 촬영할 땐 오늘(낮 기온 32도)보다 더 더웠다고.
아우, 이거보다 훨씬 심했지. 거기는 막 40도 42도! 게다가 습하기까지 했다.

불쾌지수가 상당했겠다. 그런 날씨엔 사람이 가장 무서운 법인데, 촬영하면서 스태프들끼리 괜히 언성이 높아지고 그러진 않았나.
그런 스태프는 이제 거의 없다. 아무리 경험 없는 막내라도, 상대에 대한 예우나 기본적인 것들은 다 갖추고 있다.

예전에는 아니었다는 말인가?
예전에는 뭐라고 할까. 옥신각신하는 일들이 더러 있었지.

그나저나 축하할 일이 있더라. 인터뷰 나오면서 들었는데, <도둑들>이 <괴물>을 제치고 역대 한국 영화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다고.(이 인터뷰는 영화 개봉 바로 다음 날 이루어 졌다.)
그런데 그게 어디에서 조사한 스코어지? 왜, 조사한 곳마다 기록이 들쑥날쑥 하고 그러잖나.

영진위 영화관통합전산망(이하 ‘영진위’) 통계 아니었을까? 요즘은 영진위 통계가 공신력이 커져서, 거기 자료를 많이들 이용해서 기사를 쓰는데. 어째, <도둑들> 오프닝 신기록 관련 기사들을 믿지 못하는 눈치다.
아... 아침에 들었을 때는 얘기가 조금 달랐거든. 아침 10시 조금 전이었나? 전화가 왔는데, 우리가 43만 5,000명으로 역대 오프닝 순위 2위라고 하더라. <괴물>이 45만 명으로 1위고.

내 기억으로는 <괴물>이 39만 명인 걸로 안다. 음… 어디에서 조사한 기록인지 인터뷰 후에 확인해 봐야겠다. 배급사가 발표한 수치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보통 영진위 통계보다 배급사가 자체 조사한 통계가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확인결과 영진위가 조사한 <괴물>의 오프닝 기록은 39만 5,951명, 배급사 기준으로는 44만 9,500명이다. 그러니까, 영진위를 기준으로 하면 <도둑들>이 오프닝 순위 1위. <괴물>을 배급한 청어람 조사를 기준으로 하면 <괴물>이 1위다.)
그러니까. 배급사 기준이면, 자기네 마음대로 수치를 얘기 할 수 있을 테니.(웃음) 그런데 수치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다. 대중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지. 이게 올림픽 금메달 따는 것도 아니잖나.
흥행에 연연하지 않는 편인가?
연연하지 않는다기보다, 영화가 일단 재미있다는 평을 많이 받는 게 좋다. 물론 투자한 분들이 계시니까, 투자에 대한 이익실현도 완전히 배재한 수는 없다. 요즘은 스코어 자체가 금액적인 부분과 연결되니까. 하지만 영화는 문화잖나. 아직은 상업적인 면보다 대중문화예술의 측면이 크다고 보기 때문에 흥행보다는 재미에 의미를 더 두는 편이다.

지금 최민식, 황정민과 함께 <신세계>를 촬영 중이다. 한창 <신세계>를 맛보다가 잠시 <도둑들> 세계로 돌아 온 셈인데, 차기작을 찍는 도중에 전 작품 홍보를 위해 인터뷰 할 때의 심정은 어떤가. 어떻게 보면 헤어진 연인을 다시 불러다 놓고, 기자들이 그 연인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것과 비슷하다.
별 문제 되지 않는다. 예전 캐릭터에게 인물이입을 하는 게 아니라, 추억을 잠시 되살리는 것일 뿐이니까. 방해 받지 않는다.

그럼 뽀빠이를 다시 만나고 있을 때 <신세계>의 형사 자성은 뭐 하나? 잠시 잊나?
아니. 대본을 통해 끊임없이 만난다. 인터뷰 오는 길에도 대본을 봤다. 틈틈이 보는 편이다.

<신세계>는 ‘한국판 <무간도>’로 불리는 작품이다. 당신은 범죄조직에 잠입하는 형사 역할을 맡았고. 영화가 나오면 <무간도>의 양조위, <디파티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당신을 비교하는 기사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렇겠지. 홍보할 때는 아무래도 아기자기하게 뭔가를 만들어야 하니까. <도둑들>도 막상 공개되니까 <오션스 일레븐>과 많이 다르다는 얘기를 듣지만, 그 전에는 같은 선상에서 계속 얘기됐다. 관객들이 그 작품을 보다 빨리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뭔가를 갖다 붙이는 거지. <신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도둑들>은 설정상 <오션스 일레븐>과 닮긴 했는데, 후반부에선 오히려 <본> 시리즈 느낌이 나더라. 예전 인터뷰에서 <본> 시리즈의 사실적인 액션을 인상적으로 봤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도둑들>에서는 마카오 박(김윤석)이 그런 사실적인 액션을 선보인다. 아파트 외벽에 매달린 채 펼치는 김윤석의 고공 와이어 액션씬은 살짝 욕심이 나지 않았을까도 싶다.
지금 그렇게 말하니까 기억이 나는데, <태풍> 찍을 때 아마 그 영화를 봤을 거다. <태풍>때 장동건씨와 함께 하는 후반 액션씬이 있었다. 그걸 찍기 전에 어떤 색다른 액션씬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여러 영화들을 챙겨봤다. 그때 마침 <본 아이덴티티>인지 <본 슈프리머시>인지가 나와서 보게 된 건데, 액션을 사실적으로 잘 살렸더라고. 그런 걸 한국 실정에 맞게 보여줄 수 없을까, 하면서 얘기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때는 또 그때인거고, 이제 한창 지났잖나. 욕심이 나거나 그러진 않았다.
당신의 움직임이 크게 두드러진 건, 자동차에 부딪히는 씬이 아닌가 싶다. 혹시 대역 없이 한 건가. 감쪽같던데.
합성이다. 차에 치이기 직전까지 달리는 건 나다. 돌아서 차 쪽으로 가는 사람이 스턴트맨. 차에 치인 다음에 굴러서 일어나는 곳부터는 다시 나. 요새는 기술이 너무 좋다. 연출자의 상상력과 어떻게 하겠다는 확실한 의지만 있으면 뭐든 가능한 시대다.

올해로 데뷔 20년이다. 그런 영화계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다.
그렇지. 이젠 한국에서도 영화 찍을 맛이 나는구나, 싶다.(웃음)

반면에 그런 건 없나? 예전의 소박하고 아날로그적인 현장이 그립다는 생각. 영화가 너무 상업적으로 변하기 전의 시대 말이다.
그거야 어느 분야에든 있지 않을까. 어떤 면에서는 ‘지금의 발전된 환경이 편해서 좋구나’ 싶다가도 어떨 때는 ‘그래도 정감 있는 옛날이 좋았다’ 싶다. 이런 생각의 편차는 앞으로 더 심해질 테고. 그런데 배우 입장에서는 지금의 환경이 더 좋다. 일단 요즘은 영화를 보는 관객층이 다양해졌다. 관객이 자기의 주관을 올릴 수 있는 공간도 많이 생겼고.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풍부해진 거지. 그런 걸 보면서 ‘아, 관객 분들이 이런 걸 더 좋아하시는 구나’, ‘아, 이건 별로 안 좋아하시는 구나’도 더 잘 파악하게 됐다.

관객 반응은 자주 찾아보나?
가끔씩 찾아 볼 때가 있다. 기자 시사회 끝나고 한 번 후루룩 훑어보고, 개봉했을 때 관객 분들이 어떻게 봤는지 찾아보고. 그 정도다. 그 외에는 잘 안 본다.

뽀빠이에 대한 어떤 평이 가장 마음에 들던가.
여러 관점이 있는 것 같더라. 귀엽다는 사람도 있고. 후반부가 조금 아쉽다는 사람도 있고. 각양각색이던걸. 개인적으로 뽀빠이는 굉장히 인간적인 인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시나리오 상에서 느낀 뽀빠이와 직접 연기하면서 느낀 뽀빠이, 화면으로 만난 뽀빠이는 조금씩 다른 색깔이지 않을까 싶다.
다르다. 시나리오 상에서의 뽀빠이 보다는 촬영 현장에서의 뽀빠이가 조금 더 유쾌하다고 해야 하나? 극의 분위기를 재미있게 띄워준다든가 심각한 상황인 것처럼 눌러주는 그런 역할을 조금 더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여유가 느껴져서 참 좋았다. 연기도 연기지만 뭔가 신나게 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나뿐 아니라, 여기에 출연한 배우 대부분이 그랬다. ‘내가 이런 사람들이랑 한 번 작업을 해 볼 수 있구나’라는 마음을 베이스로 가지고 모이다 보니, 다들 즐겁게 연기했다. ‘여기에서 잘 놀다 가면,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하면서 촬영했다.

워낙 개성 강한 배우들이라 자칫하면 화합이 안 될 수 있는데, 서로의 다른 점이 오히려 잘 맞물려 돌아간 케이스 같다.
감독님이 그렇게 되게끔 분위기 조성을 잘 하신 것도 있다. 잘 섞이지 못할 것 같은 배우는 캐스팅에서 제외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뽀빠이는 분위기를 띄워주는 캐릭터라고 했는데, 실제의 이정재는 현장에서 어떤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나?
실제에선 뽀빠이와 많이 다르다. 연기라는 게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모호하게 전달될 때가 많다. 관객이 ‘저 사람이 아픈 걸 연기하는 건가,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연기하는 건가’ 불분명하게 느끼면 연기에 실패한 거라고 본다. 나는 짠 맛을 보여드리려 했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밍밍하다고 느끼면 안 되니까 명확하게 연기할 필요가 있는 거지. 현장에서는 그런 걸 고민하기에 바쁘다. 그러다보니 분위기 띄어주는 그런 건 잘 못하고. 내 원래 스타일이 그렇다.

최동훈 감독님이 “이정재랑 같이 일하면서 즐겁다는 게 뭔지 알았다”고 하던데, 그건 뭔가.
일에 대해 열정적으로 얘기하는 게 재미있었다는 얘기 아닐까.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 ‘저렇게 해 보는 건 어떠냐’ 이런 저런 의견들이 많이 오갔다. 현장에서 “어제 뭐 먹었어요?” 이런 걸 굳이 애기 하진 않는다.

프로들끼리 모여서 작업하는 게 재미있었다는 얘기군.
그렇지.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이 그렇게 일 한다. 다만 그 사람 성향이 말수가 적느냐 많으냐. 혹은 위트가 있어서 중간 중간 유머를 섞어서 얘기하느냐 건조하게 일 얘기만 하느냐의 차이인 건데, 이번에 모인 배우들은 다들 위트가 있으신 분들이라 즐거웠다. 김윤석 선배도 유머를 좋아하시고, 김혜수 선배도 호탕하게 잘 웃으시고.

당신은? 위트가 많다고, 본인 스스로 종종 얘기 하던데.(웃음)
하하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남들이 그렇게 생각을 안 해 주는 게 문제지.
반응이 별로 안 좋나봐.
억지로 반응해 주는 듯한 느낌?(웃음)

당신에겐 댄디하고 도시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런 이미지를 기대하는 팬들에게 뽀빠이는 이정재 기존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캐릭터일 수 있다.
그래서 아까도 말했듯, 반응이 나뉘는 것 같다. 나에게 어떤 걸 원하느냐에 따라서 보는 관점이 다른 거지. 이정재 하면 이런 캐릭터를 보여주겠지, 라는 기대를 품고 오는 분들이라면 의아할 수 있을 거다.

예전에 모 남성잡지에서 익명의 투자자의 말을 인용해 톱배우들의 현재를 평가하는 글을 본적이 있다. 당신에 대해 어떤 투자자가 “젊은 시절의 연기 톤이나 이미지를 바꿔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는 평가를 했더라. 당신이 그 글을 본다면, 조금 억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미지 변신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해 온 배우로 당신을 알고 있거든. <모래시계>나 <정사> 같은 작품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태양은 없다> <이재수의 난> <기방난동사건> <순애보>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왔다. 그걸 몰라봐 주는 게 억울하진 않나?
시각이라는 건, 주관적인 거잖나.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고 느낀 거니 억울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평가들이 다 좋은 이야기꺼리다. 어쨌든 이때까지 걸어온 행보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니까. 그게 무엇이 됐든.

비판도?
그럼. 사실… 사실 그런 평가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나도 이제 어느 정도 판단기준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거든. 그런 기준이 없다면야, ‘저 사람 왜 저렇게 얘기하지?’ 하면서 감정적으로 반응했을 거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그런 얘기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그럼 다음에 다르게 해야 하나?’ 이러면서 쉽게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생각보다 긍정적이다.
어떤 게 좋고 어떤 게 나쁘지, 이제 그 차이 정도는 안다. 캐릭터에 있어서야 항상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걸 원하고 또 기다린다. 그런데 어떤 작품이나 캐릭터를 만난다는 게, 나만의 힘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1994년 <젊은 남자>로 정말 ‘핫’하게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 영화로 대종상․청룡상․백상예술대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하고, 그 다음해에 <모래시계>로 큰 인기를 얻었는데, 그게 불과 데뷔 2-3년 안에 벌어진 일이다. 어땠나? 어린 나이라면 어린 나이였는데, 그 모든 게 감당이 되던가?
어린 나이에, 그것도 데뷔한지 얼마 안돼서 빠르게 성공한 케이스들이 더러 있다. 더러 있는데, 그 중에서 나는 적응을 잘 못한 케이스다.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아쉬운 게 정말 많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사회에 나와서 “이리와라” 하니까 가서 일하고, “시간 됐으니까 빨리 저 쪽으로 가서 저거 해” 하면 또 이동해서 일하고 그랬다. 정신없었다. 그때 조금이라도 나를 측은하게 생각한다든지, 혹은 “너 그러면 안 돼”라는 따끔한 충고를 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주위에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하다못해 매니저라도 “정재야, 네가 갑자기 성공한 만큼 실력을 쌓아야 한다” 내지는 “앞으로는 이렇게 하자”, “이런 것들은 조심해라”라고 애길 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다 똑같았다. 모두가 다. 그런 것들이 조금 아쉽다.
결국 시간이 터득하게 해 준 건가? 홀로 외로웠겠다.
어느 누구를 찾아가서 물어봐야 될지, 그 조차 몰랐다. ‘이게 뭐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하지?’ ‘내가 지금 뭣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거지?’ ‘어떤 작용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거지?’ 그런 질문들이 쏟아질 때 나는 겨우 스물둘 스물 세 살이었으니까. 그래서 ‘길잡이가 될 선배 한 명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반대로 그게 내 후회를 남에게 미루는 거라면, 그 때 스스로가 왜 현명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도 든다. 누구 하나 롤 모델로 정해서 멘토로 여길 수 있었을 텐데, 내가 그러지 않았던 거니까. 거기에 대한 자책도 없지 않다.

당신처럼 이른 나이게 성공을 맛 본 후배들을 만나면 이런 얘기를 해주나? 사실 마음이 있어도 선뜻 얘기해 주는 게 쉽지는 않잖나. 괜히 간섭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후배들에게 언지는 준다. 그러니까, ‘나, 이야기 잘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느낌을 이야기 중간 중간에 던진다. 그 느낌을 받아서 다가오는 후배들이 있으면 ‘탁’ 잡아주지. 조언도 해 주고.

빠른 성공만큼 시련도 늦지 않게 찾아왔다. 1996년과 1997년에 <알바트로스> <박대박> <불새> 등을 거치면서 약간의 시련을 거쳤다. 당시엔 힘들어도 배우라는 큰 그림에서 보면 마음가짐이나 진로에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인생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몇 번의 슬럼프는 온다. 당시에야 내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닌가 싶고, 하늘이 꺼지는 것 같지.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어? 꺼질 줄 알았던 하늘이 그대로네.”를 알게 된다. 연륜이 쌓인다는 말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게, 인생인거다.

지금은 굉장히 단단해 보인다. 외부에 오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게 된 시기가 있을까.
아니. 지금도 흔들리고, 아마 평생 흔들릴 거다.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안 좋은 일들은 죽는 순간까지 올 테니까. 다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사건들에 일희일비 안하게 되는 게 차이인 거다. 전보다는 조금 더 차분하게 꼬인 문제들을 풀어내려 하겠지. 경험이 주는 선물이다.

도둑이라고 해서 대도 조세형이나 신창원처럼 나쁜 놈만 있는 건 아니다. 괴도 루팡, 의적 로빈 후드, 홍길동, 장발장 등 선한 도둑도 있다. 혹시 연기해 보고 싶은 도둑 캐릭터가 있나?
나는 그냥 지금의 뽀빠이가 가장 마음에 드는데? 인간적이잖아. 솔직하고. 물론 배신도 하고 이익을 독식하려고도 하지만, 코믹한 색깔을 입고 있는 영화 안에서의 그 정도 악인은 귀엽다고 생각한다. 허술한데, 오히려 그 허술함이 군데군데 많이 있어서 더 좋았고. 허술하지 않았다면 괜히 얄미워 보였을 거다.
당신이 도둑이라고 가정해 보자. 어떤 미지의 방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젊음’, ‘명예’, ‘사랑’이 있다. 이 중 한 가지만 훔칠 수 있다면 어떤 걸 가지고 나오겠나.
다 훔치고 싶은데 어쩌지.(웃음) 하나라면 젊음? 젊음에는 가능성이라는 게 내포돼 있다. 뭔가를 계속할 수 있는 느낌이 든 달까. 그게 권력이든 명예든 사랑이든 뭐든, 뭔가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젊음을 훔치고 싶다.

당신도 지금 젊지 않나?
젊지. 아직 젊다. 나는 지금이 가장 좋은 것 같다.

30대를 앞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20대에는 나를 만드는 작업에 열중할 거고, 30대에는 배우로서 잘 익어가고 싶다”고. 그러면서 “잘 관리한 40대 남자가 제일 멋있어 보인다”는 말도 했다. 이제 40대로 진입했는데, ‘잘 관리한 40대’라는 건, 어떤 걸 포괄하는 건가.
여러 가지지. 먼저는 건강해야 할 것 같다. 건강해야 뭐든 할 수 있으니까. 건강하지 못한 분들이 이런 얘길 들으면 안 좋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이든 건강은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마음 씀씀이가 건강하려면 일탈 같은 건, 지양해야겠지.

전 세계를 통틀어 어떤 배우의 육체와 연기의 어떤 부분을 훔칠 수 있다면 누구의 것을 훔치겠나?
많다. 좋은 배우가 너무 많지. 제레미 아이언스도 좋고, 리차드 기어도 좋고.

오. 두 배우가 연기해 온 캐릭터에 당신을 대입해 보니, 너무 잘 어울리는 걸. 은근 이미지가 겹치기도 하고.
아무래도 좋아하는 배우다 보니까,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배우들의 영화를 많이 보면서, 그런 이미지들이 내 머리에 많이 쌓이기도 했을테고.

당신 성격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점이 있다면 뭔가?
별로 없는데.(웃음) 내 입으로 그런 걸 말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그런데. 하하.

(웃음)그럼 스스로가 느끼는 본인의 단점은?
끈기가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 감정적인 화도 조금 덜 냈으면 좋겠고. 너그러운 사람이면 좋겠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보니 쉽지 않다.
당신을 특별히 화나게 하는 게 뭔가?
성폭행 이런 건 정말 참을 수 없다. 아동 성폭행은 말 할 것도 없고, 학교폭력에도 화가 치민다. 그건 건 반드시 바뀌어야 하고, 반드시 처벌돼야한다. 사회라는 건 함께 사는 건데, 그건 사람이 아니지 않나.

<시월애> OST는 지금도 즐겨 듣는다. OST를 듣다보면, 중간에 당신이 영화에서 내뱉은 대사가 나온다. “우울할 땐 요리를 하세요”(웃음) 당신은 정말 우울할 때 뭘 하나?
전시회도 가고, 공연도 보러 다니고. 아, 그리고 요리는 언젠가는 정말 제대로 배울 거다. 지금은 연기적으로 도전해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 힘들고, 50대가 되면 요리를 배우지 않을까 싶다.

미술학도의 꿈을 품고 학창시절 미대를 꿈꾼 걸로 알고 있다. 미술을 다시 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최근 하정우씨가 개인전을 열기도 했는데.
글쎄. 그러기엔 그 쪽으로 열정이 많이 식지 않았나 싶다. 보는 건 좋은데, 직접 하는 건 모르겠다.

어떤 시대 어떤 화풍을 좋아하나?
근대미술을 보면 가슴이 떨린다. 현대미술은 아직 어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미술과 영화를 비교 대조한다면?
둘 다 표현예술이라는 거. 예술이라는 건 다 표현에 중점을 둔다. 음악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예술가가 본인이 주관적으로 느낀 것들에 시대성을 가미해서 표현하는 건데, 다만 표현 도구가 다를 뿐이다. ‘음악’의 악기냐, ‘영화’의 연출이냐 배우냐, ‘그림’의 붓이냐. 그런 것의 차이일 뿐이라고 본다.

당신은 표현하는 사람이네.
그렇지. 당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배우를 여러 각도에서 인터뷰 하지만, 결국 기사는 기자의 주관이 바탕이 돼서 기사화 되는 거니까. 그러니 그것도 어떻게 보면 표현 예술인 거다.

이정재 데뷔 20주년 특별전이 열려서 세 작품을 상영한다면, 어떤 작품을 선택할 텐데.
오~ 어렵다.(웃음) <젊은 남자>는 일단 들어가야지. 그리고 연기의 재미를 알게 해준 <태양은 없다>가 들어가야 할테고. 나머지 하나는 모르겠다. 다 내 입장에서는 소중하니까. 연기의 불충분으로 혹평을 받았든, 스코어 상으로 저조했든, 그런 작품들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도둑들>도 만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내 작품들은 한 장도 빠질 수 없는 벽돌들인 셈이다.


2012년 8월 2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2년 8월 2일 목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총 4명 참여)
cjrrbs
너무나 맡은 연기를 잘 소화해내 기존의 신사이미지가 사라지고 찌질해 보이고 치졸해보이기까지 했던 뽀빠이.. 빛나는 연기에 감탄합니다 ^^   
2012-11-06 12:15
phj8383
잘생기진 않았지만 매력이 있다. 저런 남자가 멋진 남자겠지...   
2012-08-10 16:02
dowu87
난 뽀빠이 매력있고 좋았는데. 개인적으로 예니콜 다음으로 매력있는 캐릭터였습니다.   
2012-08-09 13:26
goodman43
이정재의 연기는 왠지 가벼워 보이는것 같다. 김수현은 잠깐을 나와도 존재감과 카리스마가 느껴지던데... 이정재도 모래시계의 그 보디가드처럼 카리스마있고 분위기 있는 역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2012-08-0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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