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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직한 거리에서 바라본 공간, 그 삶의 속내 <경주> 장률 감독
2014년 6월 17일 화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두만강> 이후 영화를 그만둘까 했다는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어요. <풍경>이라는 다큐를 찍고 4년 만에 다시 극영화로 돌아왔는데 그동안 연출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있었나요?
밖에서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스스로는 그 변화를 몰라요. <풍경>이란 영화는 전주영화제에서 이방인이라는 주제로 부탁해서 찍었어요.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였어요. 그 당시 중국에 가서 영화를 찍을 여유가 없어서 한국에서 찍게 된 거죠. 극영화를 찍으려면 한국에 사는 이방인들을 만들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한국에서 사는 이방인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되는데 그 시기에는 그런 작품을 만들 여유나 정서가 없었어요. 또 제가 그때까지 다큐를 안 찍어 봤지 않습니까. 한국에 사는 이방인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그와 유사한 감정은 있었어요. 그래서 다큐의 정서에 맞춰서 한국 땅의 이방인들은 어떻게 사는지 한번 성실하게 찾아가보자, 하고 다큐를 찍게 된 거에요. <풍경>을 찍고 몇 년 동안 영화를 찍지 않았죠. 하지만 다큐도 영화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 작품이 끝난 다음에 그 흥분이 금방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스탭들과 술 먹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경주 이야기가 나와서 만들게 된 거죠.

언론에서 감독님을 경계인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다른 사람들이 이름 붙인 것이지만 한 번도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남들이 이름을 붙이는데 못 붙이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냥 그런가, 했죠(웃음). 평소에 그렇게 추상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오늘 무얼 먹고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것처럼 속물적인 것을 생각해요(웃음). 영화를 찍을 때는 그 인물이 어떤 인물인가에 집중하죠. <경주>를 찍고 나서 경계인 이미지를 벗었다든지, 경계인 이미지가 두드러졌다든지 실제 그렇게 많은 생각은 안 해요(웃음).

감독님 작품은 지명이 제목인 경우가 많아요. <경주>도 마찬가지인데,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름이 지명인 것은 사실 다른 제목이 생각나지 않았어요(웃음). 1995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지인들과 경주에 있는 찻집에 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뒤로도 그 공간이 계속 생각났어요. 그 찻집, 그리고 그 찻집에 있던 춘화도 생각났고요. 그리고 몇 년 뒤 그때 같이 갔던 형이 돌아가셔서 전화를 받고 대구에 왔어요. 그 때 경주에 다시 가게 됐어요. 춘화는 없고 주인이 바뀌었더라고요. 그것까지는 실화지만 사실 그 일을 영화로 만들자는 생각이 있던 건 아니었어요. 그때는 영화에 관심도 없었고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생각도 별로 없었어요. 그 공간에 같이 갔던 사람들은 다 고인이 되었고요. 그런데 경주에는 무덤이 많지 않습니까. 이상하게도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러다가 작년에 <풍경>을 찍으면서 스탭들과 옛날이야기 하다가 경주라는 공간이 재밌다니까 옆에서 그거 영화 찍으면 재밌겠네,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이야기를 만들고 배우들도 흔쾌히 하겠다고 해서 만들게 된 거죠.

상업영화라 좀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그런 것은 없었고, 인물과 이야기가 변했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간 것뿐이에요. 어떻게 특별히 더 노력해서 대중한테 다가가야겠다, 그런 건 없었어요.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에요(웃음).
그래도 전작들에 비해 <경주>가 친절해졌다는 반응이 있어요.
이전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중국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중국 이야기들은 중국 관객들이 보기에 친절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어요. 영화를 한국에서 상영하는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상영하는지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요. <경주>는 아직 외국에서 상영되지 않아서 지금은 잘 모르지만 외국에서 상영되면 관객들은 아마 더 모를 거예요. 영화 속 무덤이 무덤인 것도 모를 거예요(웃음). 한국에서 이번 영화를 보고 좀 더 친절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제가 생각했을 때는 <경주>가 아는 공간이고, 어디서 본 것 같은 아는 사람, 아는 이야기들, 그리고 아는 정서를 다루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전에는 되게 차던 사람인데 따뜻하게 됐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아닌가? (웃음)

전작들과 다르게 <경주>에서 특별히 남녀 간의 감정을 다룬 이유가 있나요?
제가 이전과 같은 작품들을 찍었다고 남녀 간의 감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잖습니까(웃음). 그런 영화를 찍었더라도 남자의 감정이 있을 수 있고요. 그리고 그 공간에는 죽음도 있지만 시각적으로 연관해보면 춘화가 있지 않습니까. 춘화는 어떻게 보면 남녀의 감정이 가장 격렬한 부분을 그린 건데 그 그림도 계속 구상에 두고 있었어요. 또 최현이 지금은 중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 사람이잖아요. 그 친구도 청춘이 있지 않았겠는가 생각했어요. 고향에서 떨어져 외국에서 살다 보면 보통 청춘이 생각나고 또 옛 사랑이 생각나고 그러는 게 정상인 것 같아요. 또 찻집 주인이 아름다운 여자면 더 좋지 않습니까(웃음). 배우들도 현장에서 그래요. ‘감독님, 어떻게 그렇게 남녀 간의 감정을 잘 압니까?’ 그러면 ‘나도 남자야!’ (웃음) 저도 남녀 간의 감정을 찍을 권리는 있겠죠.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가 과거의 애착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던 것 같아요.
남녀관계에는 감정이 있잖아요. 하지만 어떤 남녀 관계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에요. 그 사람의 성장 과정이 있고, 기억이 있고, 또 주변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영화를 찍을 때 그 인물에 맞는, 또 그 생활의 질감에 맞는 쪽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기억 같은 부분들도 담기겠지요.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기억을 되찾는 것에 더 간절해요. 그런 것이 다 복합적으로 같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영화 속 여정(윤진서)이 ‘지울 수 있는 건 다 지워야 된다’고 말하는데, 감독님도 혹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었던 건 아닌가요(웃음).
저는 최현 교수와 많이 달라요(웃음). 누구에게나 다 기억하고 싶은 기억이 있고 아니면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있고, 또 어떤 부분은 기억하기 싫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또 그게 다가 아니에요. 여정이 지울 수 있는 건 다 지워야 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얼마 되지 않아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메시지를 보내오지 않습니까(웃음). 사람이 그런 거예요. 정이 있으면 그래요. 그 정에서 출발하고, 다 지우고 싶은데 그 정 때문에 또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그러고요. 그게 사람인 것 같아요.
<경주>에서도 감독님의 절제된 카메라 움직임은 여전해요. 카메라를 고정해서 촬영하는 방법을 특별히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항상 인물과 공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편인 것 같아요. 공간이 항상 인물에게 영향을 많이 준다고 생각하는 편이니까 고정해서 찍게 되는 것 같아요. 적절한 순서로 그 공간을 보여줘야 그 공간의 느낌이 나오는 것 같아요. 급하게 따라가면 공간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급하게 따라가며 찍는 영화들 중에도 좋은 영화들 많지 않습니까.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공간이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그 말 대로에요. 사람은 공간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아요. 커피숍에서는 우리가 이런 리듬으로 이런 정서로 움직이지만, 클럽에 가면 또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이 다른 것 같아요. 공윤희가 말하는 리듬, 그 사람의 행동도 그 찻집과 잘 맞아요. 전통 찻집에 가서 관찰해보면 그 리듬이 다른 공간의 리듬과는 전혀 다릅니다. 커피숍 사람들은 더 빨리 가져다 줘요. 커피숍의 그런 리듬은 그 공간에 맞지만, 찻집에 가서 보면 그 리듬은 다 깨져요. 모든 것이 찻집이라는 공간에서는 천천히 가죠. 실제로 그런 전통 찻집에 가보면 사람들은 영화에서 공윤희가 움직인 것보다도 더 천천히 움직여요. 한 공간에 오래 있으면 리듬이 그렇게 되요. 그래서 사람이 공간에 받는 영향은 너무 너무 커요.

사람들의 관계도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똑같은 사람이라도 최현과 공윤희의 관계가 찻집에서, 식당에서, 또 공윤희의 집에서 다른 것처럼요.
노래방에서는 또 훨씬 다르죠(웃음).

감독님 작품은 공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 주는 매력이 있어요. 공윤희의 집에서 하나의 벽면만 보여주다 점차 집 내부의 다른 공간들을 보여주는 순서가 인상적이었어요. <경주>에서는 부분적인 공간을 먼저 보여주고 전체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공간을 담는 순서도 그 순간순간의 감정에 따라서 담아요. 모두 부분부터 보여준 것은 아니고 크게만 보여준 것도 있어요. 어떤 공간도 좋고, 사람의 언어도 좋고, 보여주는 순서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나와요. 그래서 그 순서가 그 감정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이 부분을 먼저 보여주고 두 번째는 이걸 보여주고 세 번째는 이걸 보여주고 그 순서가 전체 스크린 안에서 어우러지는 거죠. 관객들은 일단 그 공간에 못 들어가지 않습니까. 감독이 이렇게 들어가라, 저렇게 들어가라 만들잖아요. 그렇게 스크린 안에 그 공간이 주는 전체 느낌을 담아요. 인물의 감정에 맞게, 순서에 맞게 배치해야 관객들이 그 공간에 들어가서 아, 이 공간은 이렇구나(웃음), 하고 느낄 수 있어요.

찻집 아리솔이나 공윤희의 집 같은 경우 공간의 전체적인 모습보다 프레임을 비교적 좁게 잡은 이유는 어떤 감정 때문이었나요?
그 쪽 공간은 그런 인상을 좀 줘요. 능을 생각할 때 그 안에 사람이 요만한 공간에 들어가잖아요. 그 공간이 그렇게 만들지 않습니까. 꼭 좁게 찍는 것을 염두에 두거나 원칙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그런 이상한 생각들이 막 떠오르는 거죠. 찻집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관객도 그렇고 우리도 고수가 아닌 다음에야 어느 공간에 들어갔을 때 그 공간을 한눈에 파악 할 수는 없어요. 한 부분부터 살펴본 후에 대충 이런 공간이다, 이러잖아요. 한 부분부터 이렇구나, 이렇구나, 파악되면서 전체가 보이는 거예요. 그런 감이 있는 거죠. 실제 우리 생활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카메라 움직임이 최대한 절제되다 보니 카메라가 조금만 움직여도 눈에 띄더라고요. 영화 후반부 경주 전경을 360도 회전하며 찍은 장면을 볼 때는 최현이 찻집을 촬영하기 위해 360도 회전하는 부분이 곧바로 연상됐어요.
디테일하게 보셨군요(웃음). 감정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카메라 움직임은 다 의도했어요. 최현이 찻집에서 한번 그렇게 회전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공윤희 집에 가서 촛불을 불지 않습니까. 실제 그 신을 찍을 때 박해일이 모든 힘을 다해서 불었어요. 그런데 촛불이 계속 꺼지지 않잖아요. 박해일이 기가 좀 약한 거 같아요(웃음). 세 번? 불고 나서야 촛불이 꺼지는데 그때 최현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손을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연기가 아니고 진짜 핑 도는 느낌, 사람이 핑 도는 감이 실제로 드는 거예요. 그때의 정서? 또 문이 조금 열린 방 안에는 공윤희가 있고요. 그런데 그 장면이랑 관계없이 능에 가서 360도를 도는 부분은 회전하는 행동, 핑 도는 느낌이 리듬에 맞고 또 정서에도 맞아요.

핸드헬드로 찍은 숏에서 갑자기 최현이 사라져서 당황스러웠어요. 순간 이제까지 본 영화의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고, 부동이던 카메라가 갑자기 움직이니 영화와 관객이 분리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이럴 때는 감독이 입을 닫아야 되는 것 같아요. 그래야 관객들이 서로 더 이야기 하면서 이해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감독이 말해준 대로 그렇게 따라서 생각하자,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웃음).

<경주>에서도 그렇고 외화면 활용이 적극적이에요.
실생활에서도 많이 남겨 놓지 않습니까. 남겨 놓는다 해도 그 안에 어떤 정서가 있는 것 같아요. 한 번에 다 채우지 않지 않습니까.

최현의 아내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 감독님 이전 작품들도 그렇고 작품에 노래를 많이 사용하잖아요.
그게 나빴어요?

아니요, 좋았어요. 좋았는데(웃음).
(웃음) 그러니까 그 때 노래가 나오는 게 좋지 않습니까. 정서에 맞고요. 그리고 중국 아내가 전화로 이야기하는 대사 안에서도 사랑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아무리 부부간이라고 해도 사랑의 감정을 모두 대사 안에서 언어로만 이야기하면 어색해요. 그래서 노래를 넣었습니다. 말로 어색할 때는 음률을 줘서 부드럽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거죠. 노래는 천 년, 이천년 전에도 남녀들이 산 이쪽에서 저쪽으로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쓰였어요. 실제로 남녀가 사랑하는데 말로 표현하기 어색하면 노래를 부를 때도 있지 않습니까. 이 노래 안에 이 사람의 감정이 표현됐다, 그런 뜻이 아닌가 싶어요. 다른 작품에서도 <두만강> 같은 경우 장례식에서 노인들이 앉아 노래하는 장면이 있어요. 장례식이 그래요. 노래는 감정과 관계되지 않습니까. 앉아서 노래도 하고 실제 생활에서 오는 거예요.
영화 속에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로 인한 오해들로 빚어지는 재밌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런 언어의 한계를 염두에 둔 설정인가요?
일단은 최현이 중국에서 왔고, 또 경주라는 공간에 실제로 가보면 알겠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요. 그리고 최현 교수의 직업에서 나온 거예요. 동북아 정치를 하는 사람은 한국말, 중국말, 일본말은 거의 기본이에요. 그런데 사람이 어떨 때는 자기가 알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지 않습니까. 저 같은 경우도 식당에서 옆 사람이 중국말로 이상한 말을 할 때가 있어도 내가 그 말을 알아듣는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런 실생활이 많아요. 그리고 최현 그 친구는 좀 엉뚱한 면도 있고요. 알아들을 필요가 있을 때는 알아듣고, 모른 척 하고 싶을 때는 또 모른 척 하고 그게 사람인 것 같아요.

언론시사회에서 감독님이 ‘한잔 하고 하세’와 ‘사람들 흩어진 후 초승달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는 영화 속 글귀로 <경주>를 정리했는데 두 글귀를 특별히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해서 감독이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은 사실 영화를 만들고는 없어져야 되는데 영화는 만들고 나서도 감독이 극장에 가서 관객을 만나 홍보해야 하니까요. 감독이 일단 입을 벌리면 영화가 멀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 안에 등장하는 두 글귀만 이야기하면 영화가 크게 왜곡되지 않지 않겠는가, 해서 그 글귀를 언급했어요. 그리고 그 글귀의 정서도 다 영화 안에 있지 않습니까. 관객들이 영화 전체를 다 같이 느끼면 좋겠어요.

연출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실망하실 텐데요(웃음). 전 그런 것이 없어요. 어느 부분을 제일 신경 썼다, 그런 것이 없고 전체의 어떤 느낌을 있는 그대로 담고자 해요. 관객은 권리가 있어요. 서로 어느 점이 제일 좋았다, 이야기하고 그렇게 느끼면 되고요. 요리로 말하면 잡채? 잡채를 만들면 그 안에 당면도 들어가고 여러 가지 재료들이 들어가는데 당면만 먹어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당면을 싫어하는 사람은 다른 것을 먹고, 뭐 그러는 거죠(웃음).

2014년 6월 17일 화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사진_권영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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