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깊이 알아간다는 것, 그 행복함에 대하여 <다시, 벚꽃> 유해진 감독
2017년 4월 14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고 서영란, 정창원 부부의 아린 사랑을 담은 TV 다큐멘터리 <너는 내 운명>(2006)을 기억한다면, 유해진 감독을 파악하는 데 조금 더 수월할 것이다. 보는 사람의 가슴을 기어코 무너트리고야 말았던 <풀빵엄마>(2009) <붕어빵 가족>(2013) <해나의 기적>(2013) 등 여러 휴먼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베테랑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수개월 동안 한 사람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반복해온 그의 눈에 띈 사람, 이번에는 뮤지션 장범준이다.

휴먼에서 음악으로, 그는 잠시 전공분야를 벗어나는 걸까? 다큐멘터리 <나는 록의 전설이다>(2011)로 음악에 대한 오랜 애정을 표현한 바 있다고 설명하지만, 사실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은 장르를 초월하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를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점이다. 시대를 역행하는 아날로그 감성의 버스커버스커 1집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은 2012년의 장범준을 기억하는 그가, 오해와 논란 그리고 실패를 경험한 뮤지션 장범준을 바라본다. <다시, 벚꽃>이다.


영화로는 첫 작품이다. 자기소개를 해달라.
아!(웃음) 나는 유해진이다. 전에는 이름 때문에 여자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배우 유해진이 데뷔한 이후로는 그런 오해를 안 받는다.(웃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벌써 오래 전 얘기다.(웃음) 배우 유해진과는 MBC 휴먼 다큐 사랑 시리즈 <붕어빵 가족> 편에서 내레이션을 맡으며 시작된 인연으로 안다.
사실 알게 된 건 그 전 이다. 그 사람 참 괜찮다. 어느 날 이태원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데 어디서 “감독님!”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 돌아보니 유해진이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멈춰서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드니까 사람들이 주변에서 “유해진이다!” 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PD라는 호칭이 익숙하겠지만, 이번 작품은 영화이니만큼 감독으로 칭하겠다.
안 그래도 영화 쪽에서는 내가 맡은 역할을 감독이라고 하더라. PD는 제작에 관여하는 프로듀서를 의미한다고. 나는 “피디님!” 하면 본능적으로 쳐다보는데 듣고 보면 내가 아니다.(웃음)

지금까지도 MBC 소속 프로듀서이니 그럴 만하다.
96년에 MBC에 입사했다. 사실 KBS 다큐멘터리가 너무 좋아서 거길 가고 싶었는데 MBC에 먼저 붙어버려서…(웃음) 입사 후 6개월간 직무훈련을 하고 전문 분야를 선택할 때 국장이 드라마, 예능, 시사 교양 중에 넌 뭘 전공 할래? 하고 물었다. 다큐멘터리를 하겠다고 그랬다. 사실 그때는 그런 대답을 할 처지도 되지 않았는데(웃음) 아무튼 초지일관 다큐멘터리였다. 귀신 나오는 재연 프로그램 <이야기 속으로> 조연출 생활을 3년 하고 <생방송 화제집중>으로 입봉했다. 그 후로는 <타임머신> <피디수첩> 등 많은 방송을 연출했다. 2005년에 들어서 장기적으로 진행하는 휴먼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와, 4명의 피디가 모여 휴먼다큐 시리즈를 만들었다.

<너는 내 운명>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2007~2009) <풀빵엄마> <해나의 기적> <붕어빵 가족> 등… 대중에게 워낙 사랑을 많이 받은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보람이 컸을 것 같다.
물론 그 이전에 <피디수첩>을 할 때도 큰 보람을 느꼈다. 내 작품으로 법과 제도가 바뀌고, 세상이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간다는 게 좋았다. 그런데 휴먼 다큐 사랑 시리즈를 할 때는 또 다른 보람이 생기더라. 특히 <너는 내 운명> 방송이 끝난 날,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갔다가 새로고침 버튼을 누를 때마다 쭉쭉 늘어나는 후기를 봤다. 생각하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그동안 남편에게 소홀했는데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거나,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겠다는 글에 눈물이 나더라. 아, 이게 내가 피디를 하는 이유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쭉 오다 보니, 휴먼 다큐가 마치 전공처럼 됐다.

그러다가 영화라는 새로운 계열에 발을 들였다. 장범준의 2집 준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다시, 벚꽃>이다.
2011년에 MBC에서 <나는 록의 전설이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그게 반향이 컸다. 그해 MBC 다큐멘터리를 통틀어서 시청률이 두 번째로 잘 나왔다. 참고로 시청률은 13.5%였다.

첫 번째로 잘 나온 건?
지금 화제가 되는 안철수 씨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였다. <안철수와 박경철>이라고, 시청률 14%를 기록했다.

그런 숫자를 다 기억하나.
피디들은 그런 건 전부 다 기억한다.(웃음) 아무튼 <나는 록의 전설이다>를 통해서 좋은 음악과 좋은 이야기가 만나면 꽤 괜찮은 작품이 나온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럼 TV에서 계속 연출했어도 될 텐데.(웃음) 새로운 플랫폼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방송에서는 음악을 15초, 20초씩 길게 쓸 수가 없다. (시청률 때문에) 짧은 호흡에 대한 강박감이 크다. 공간이 잠시라도 비면 내래이션이라도 집어넣어야 한다. 게다가 정해진 시간은 1시간이다. 광고를 빼면 50분 정도 된다. 촬영하면서 획득한 영상의 살아있는 모양새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고 싶은데, 때로는 손도 자르고 머리도 쳐내야 한다. 그렇게까지 편집을 해서 눌러 넣어도 튀어나올 때가 많다. 아마 TV 다큐멘터리스트라면 다들 느끼는 한계일 것이다. 그게 늘 아쉬웠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방송 시간이 지나 가버리면 시청자의 선택을 다시 받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을 듯하다.
그렇지. 다큐멘터리는 정해진 방영 시간이 지나가면 시청자와 다시 만나기 힘든 운명이다. 드라마는 첫 몇 편을 놓쳐도 흐름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중간부터 볼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매번 개별 작품이다. 홍보도 하기 어렵다. 그러니 갈수록 시간대도 변방으로 밀려난다. 나는 그걸 방송 다큐멘터리의 찰나적 속성이라고 부른다.(웃음) 그런 저런 아쉬움이 누적된 상태에서 우연히 영화 다큐멘터리를 연출 할 기회가 와서 도전하게 됐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의도된 걸로 보인다.(웃음) 직접 장범준을 찾아갔다고 들었다. 사연이 궁금하다.
내가 워낙 음악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는 헤비메탈, 20대 때는 프로그레시브 락에 빠져 살았다. (장)범준이 음악을 듣게 된 건 버스커버스커 1집이 나왔던 2012년인데 그 시절에 개인적인 기억이 얽혀있다. 예민한 이야기니 이 부분은 자세히 얘기하기 어렵지만(웃음) 아무튼 음악이라는 게 듣다 보면 당시의 추억을 환기하지 않나. 변진섭 노래를 들으면 여자친구 집 앞에서 7시간 동안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던 때가 생각나듯이.(웃음)

그 후로 다시 한번 장범준의 노래를 듣게 됐을 때는.
2015년에 영화에 도전해보려던 차에 범준이 노래가 또 들려오더라. EDM이라는 장르까지 생겨날 정도로 음악은 진화하는데 아직도 어쿠스틱 기타를 활용한 아날로그 음악으로 버젓이 살아남았다니, 놀라웠다. PD들은 이 정도 궁금하면 그 사람에 대한 자료를 찾아본다.(웃음)

어떤 정보를 입수했나.
정보 자체가 별로 없더라.(웃음) 범준이가 미디어 친화적이지 않은 인물이란 걸 그때 알았다.

<다시, 벚꽃> 언론시사회 때 보니 말하는 데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더라.
자기 생각은 분명하지만 그걸 멋있게 표현하는 습관이 안 돼 있다. 좀 어눌하기도 하고.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미디어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 특히 TV. 그래야 자기 작품이 알려지고 가치를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데 범준이는 아니었다. 뭔데 이렇게 특이해?(웃음) 그래서 2015년 6월쯤, 먼저 연락을 하게 됐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섭외단계에서는 작품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는 편이다. 휴먼 다큐 사랑 시리즈를 할 때는 보통 사는 얘기로 운을 뗐다. 나도 애들 키우는 이야기를 주로 했고… 그런 식으로 상대방과 공감대를 형성하다가 약간의 신뢰관계를 획득하면 그다음부터 작품 이야기를 꺼낸다. 아무래도 범준이를 만났을 때는 음악 이야기를 많이 했다.

워낙 음악을 좋아하니까 이야기가 편했겠다.
처음 만났을 때 자기가 만든 음악을 들려주더라. 범준이가 만든 기타 프레이즈가 내가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마크 노플러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소개해줬더니 엄청 신나 했다. 그러더니 이 곡은 어때? 이 곡은 또 어때? 하면서 자꾸 들려주더라고.(웃음)

만사형통이네.(웃음)
그래도 범준이가 <슈퍼스타K> 이후로 방송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버렸기 때문에 좀 걱정이 됐다. 방송이라는 게, 자꾸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보이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자기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마음 말이다.

특히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때나 지금이나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이 많다.
그래서 <나는 록의 전설이다>와 휴먼 다큐 사랑 시리즈의 DVD를 건넸다. 내가 여태까지 만든 프로그램은 이런 거고, 난 이런 방식으로 작업한다고 말이다. 연출이라는 이름 아래 그 사람의 진심과 다른 모습을 요구하거나 왜곡된 이미지를 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마 장범준도 그 DVD를 봤을 거다. 봤으니 제안을 수락했겠지.
그렇지. 그리고 범준이 어머니가 휴먼 다큐 사랑 시리즈를 완전 좋아하시는 덕에.(웃음)

아티스트의 20대는 무궁무진한 창작력이 샘솟는 시기라고 말한 바 있다. <다시, 벚꽃>에 담긴 장범준의 시절도 20대의 막바지다.
<나는 록의 전설이다>도 사실 백두산, 부활, 시나위의 20대에 대한 이야기다. 때마침 임재범이 MBC 음악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나와서 화제를 일으키고, 김태원이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 ‘국민 할매’라는 애칭으로 뜨기 시작해 가능했던 연출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때 느낀 건, 아티스트에게 20대는 정말 폭발적인 에너지가 터져 나오는 시기라는 거다. 어떻게 보면 거칠고 서툴지만 그만큼 창작에 제한이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비틀스의 명곡 ‘Yesterday’나 ‘Let It Be’도 존 레넌이 20대 때 만든 노래다. 너바나, 커트 코베인, 퀸, 메탈리카는 물론이고 그들만큼 유명하지 않은 밴드라도 20대만큼은 정말 보석 같다.

예시를 드는 가수를 보니 록을 엄청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 록 좋아하면 ‘아저씨’ 소리 듣는다.(웃음)
(하하하) 젊을 때는 록 이외의 장르를 보고 ‘쟤네는 하위 장르야’라고 그러기도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최고로 치고 다른 건 별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웃음)
록에는 시대정신이 있어! 이러면서?(웃음)
맞아 맞아.(웃음) 30대 이후부터는 그런 배타성을 내려놓게 되더라. 좋은 음악은, 그냥 좋은 음악이다. 뽕짝이라고 저급인 게 아니고 클래식이라고 고급인 게 아니다. 보통 사람의 마음을 적셔줄 수 있으면 충분하다. 그때부터는 시끄러운 록 밴드 음악이 담긴 앨범에 한두 곡씩 들어가 있는 통기타 어쿠스틱 곡의 매력에도 눈을 뜨게 되더라.

장범준이 하는 음악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김광석 생각도 좀 나고.
댓글에서 실제로 장범준 음악이 김광석과 비슷하다는 내용을 많이 봤다. 시대를 역행한 듯한 음악이다. 젊은 친구가 다소 올드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80년대 감성을 품고 음악을 만드는 게 참 독특하다. 본인도 그걸 알더라.

뮤지션으로서의 매력은 그뿐만 아닌 것 같더라. 다큐를 보니 돈 되는 행사에 잘 가지 않는다고.
장범준이 큰 행사에 가서 한 시간 노래를 부르면, 정말 큰돈을 받는다. 그런데도 안 간다. 콘서트를 열면 2분 만에 매진되는 가수가 10명, 20명 모아놓고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걸 더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벚꽃 연금’이 있으니 그렇게 살아도 상관없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돈이라는 사물은 끊임없이 욕심을 자기 복제한다. 있는 사람들이 돈 욕심은 더 많다.

다큐에서 장범준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내가 노래 한 곡 부르고 이만큼 받아도 되는 건가?” 대체 얼마를 받길래? 궁금해지더라.(웃음) 당신은 액수는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너무 발가벗기면 재미없잖나. 은근해야지.(웃음)

그게 당신만의 연출 색깔인 것 같다. 장범준의 어린 딸은 나오지만 아내는 나오지 않는 것도 그런 판단 때문인가.
사실은 아내를 촬영하긴 했다.

그런데?
범준이는 자기의 모든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 아내를 노출하는 건 좀 걱정하더라. 일단 촬영을 하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편집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보고 빼달라고 하기에 뺐다.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음악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는 확실히 있더라. 가족 이야기가 들어가면 그들의 관계에 대한 상상력이 자꾸만 가지를 칠 것 같다.

그래도 딸과 놀아주는 장면은 정감 가고 좋았다. 카메라를 즐기는 편은 아닌 걸로 아는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완전한 민낯을 보여주게 만들었을까? 싶더라.
아마 당신은 언론시사회장에서 장범준을 처음 봤으니, 더 그랬을 것이다. 코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나까지 당황하게 되더라. 좀 주눅 들기도 하고 말이다. 공간이 주는 압도감이 있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그런 압도감 없이, 서로 잘 해보자는 마음을 가지고 한 거니까.(웃음)
많이 친해졌겠다.
지금은 범준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하다. 하지만 촬영하는 동안에는 늘 존대를 했다. 스무 살 차이가 나지만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찍었다. 범준이는 워낙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스타일이다.

그럴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본인의 기준은 상당히 또렷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자기가 이미 내린 결론은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다. 정말, 내가 방송 생활 20년 하면서 만난 최강자다.(웃음)

장범준의 그런 성향을 드러내고자 한 티가 곳곳에서 난다. 뮤지션 선배가 자신의 작업실 겸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하니까 ‘여기서는 안 돼요’하고 은근히 단호하게 말하더라.
범준이와 2집을 함께 작업한 분들은 음악 분야에서 베테랑이다. 그래서 범준이가 거의 모든걸 다 받아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기준만큼은 꼭 지키더라. 담배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은 자막이 들어가지 않아서 흘러가듯 지나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치 빠른 관객들은 전부 캐치하는 것 같다.

함께 일하면서 자신의 기준을 지키려는 그의 고집 때문에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보도자료에도 쓴 에피소드이기는 하지만, 촬영 도중 택시를 탈 일이 있었는데 카메라를 끄자고 하더라. 나를 비롯한 촬영팀은 황당했지만 나중에 듣고 보니 기사님이 안면 장애가 있어서 배려한 거라고 했다. 그 외에도 대체로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촬영을 부탁하는 상황을 어려워했다. 부담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카메라 스탭은 범준이가 자꾸 ‘NO’를 하니까, 대체 왜 이것도 촬영을 못 하게 하냐면서 화를 내기도 했다.(웃음)

당신 입장에서는 상황을 잘 추슬러야 했을 것 같다.
물론 범준이의 그런 성정 때문에 촬영이 더디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걔는 그래서 멋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서 다독였지. 우리가 이해하자고.(웃음) 다들 이해하더라.

한 사람을 장기간 관찰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서로 짜증 나고, 힘든 상황이 생길 것이다.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촬영하는 긴 호흡의 프로그램은 사실 촬영을 한다기보다 그 사람과 깊이 알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당하다. 물론 어느 누구라도 오랜 기간 붙어 있으면 갈등이 발생하겠지만, 감사하게도 범준이를 비롯해 그동안 프로그램으로 만난 모든 사람과 상당히 행복한 시간을 나눴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면 그동안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소식을 알 수 있더라. 지난 인연을 유지해나가는 모습에서, 조금은 낯간지러운 표현이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그렇게 알게 된 인연인 유해진, 김성령 배우도 <다시, 벚꽃> VIP 시사회를 찾아줬다. 아마 그들도 내 프로그램을 통해 멋진 경험을 했으리라고 생각한다.(웃음)
어떤 멋진 경험인가. 아무래도 공개하고 싶은 사례가 있는 듯한데.(웃음)
유해진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이 내레이션을 맡았던 <붕어빵 가족>의 집이 어디냐고 묻더니, 자기가 키우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찾아가 아이들과 놀아주고 왔더라. 아이들 맛있는 것 사주라고 얼마를 주고 왔다는데, 얼마 전 tvN에서 차승원과 <삼시 세끼>에 출연할 때 또 한 번 돈을 보냈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생각났다고 하면서 말이다. 김성령은 내레이션을 맡았던 프로그램 <날아라 연지>(2014)에 출연한 조선족 가족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사비를 털어 금전적 지원을 해줬다. 좋은 일은 나누면 더 빛이 난다는 생각에 보도자료를 쓰려고 했더니 김성령이 그러지 말라고 펄쩍 뛰더라. 그때 알았다. 그 사람,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진심이 있다는 걸. 내 프로그램에 관계한 많은 사람이 다 이런 식이다. 감춰져 있는, 때로는 억눌려 있는 자기 안의 선한 마음을 끌어올린다. 내 프로그램이 누군가의 선한 마음을 자극해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웃음)

<다시, 벚꽃>은 인간의 선한 마음을 자극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포인트가 강조된 걸로 보인다.
범준이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건 좀 다르다. 한 분야에서 뭔가를 해내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인 노력이 수반 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 열정과 노력에 한 번쯤 사람들이 자극받았으면 좋겠다. 범준이는 카메라가 비추고 있으니 더 열심히 했다고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꾸준히 노력한다는 건 쉽지 않다.

이번 도전으로 관객의 선택을 받을 자신이 있나.
어제 CGV 앱도 들어가 보고, DC 인사이드 같은 인터넷 사이트도 찾아가서 영화 후기를 봤다. 일단 보기가 어렵지, 보고 나면 재미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특히 여자분들은 장범준의 섬세한 감수성에 더욱 호응하는 것 같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굳이 돈 내고 봐야해? 하는 의견도 있어서 고민스럽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극장까지 오게 만들 수 있을까 싶지만… 결국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재간이 없다.(웃음)

아무리 작품이 괜찮아도, 소재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관객의 선택을 받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동안 <원스>(2006) <비긴 어게인>(2013) 같은 음악들이 꽤 괜찮은 성적을 냈다. 한국 사람들이 음악을 워낙 좋아한다. K-POP STAR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만 봐도 시청률이 얼마나 잘 나오나. 음악 프로그램의 포맷을 변주한 복면가왕, 듀엣가요제도 상당히 사랑받는다. <다시, 벚꽃>도 비슷한 음악 프로그램인데, 모르겠다. 장범준이라는 아티스트의 캐릭터가 너무 강해서 호오가 갈리는 걸 수도 있다. 어쨌든 작품을 본 분들은 다 좋다고 한다.(하하하)

돈을 내고 직접 극장에 찾아가야 한다는 선택의 장벽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 점이 TV 다큐멘터리와 가장 다른 지점이기도 하다.
그게 걸림돌이지. 그것 말고도 다른 점이 한 두개가 아니다. 다큐멘터리 <감독 봉준호>(2013)를 촬영할 때 영화는 정말 방송과 다르다는 걸 한 번 느낀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좀 더 피부에 와 닿았다. 모든 호흡이 다르다.

어떤 면에서.
방송은 어찌 보면 공장 시스템 같다. 나에게 주어진 아이템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스탭들과 상의해 자막과 음악을 넣으면 모든 게 끝난다. 그런데 영화는 훨씬 오래 걸린다. 일단 모든 단계에서 파트너를 직접 찾아다녀야 한다. 믹싱이나 색 보정 등 작업에 걸리는 시간도 방송에 비해 오래 걸린다. 처음에는 저게 왜 저렇게 오래 걸리지? 했다.

왜냐면 MBC 소속 스탭이 아니니까!(웃음)
맞다. 방송은 ‘내일까지 해주세요’ 하면 밤새고 해주신다.(웃음) 게다가 영화 편집이라는 건 끝이 없더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편집 감독과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어 조언을 구했는데, 그쪽은 편집만 1년을 했다고 하더라. 물론 처음과 마지막 버전의 차이는 대략 20% 정도로 그리 크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편집을 할 때마다 조금씩 더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는 거다. 나도 그걸 느꼈다. 이렇게 바꿔보고, 또 저렇게 바꿔보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다 보면 미처 내가 깨닫지 못한 편집 포인트가 있다. 아무튼, 한 번 해보니 영화인들의 자부심이 이해가 되더라.(웃음)
후배 PD들도 영화 연출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다.
꽤 있다. 특히 드라마나 예능이 아닌 다큐멘터리는 방송 시장에서 다소 뒤로 밀려있는 게 사실이다. 이전에는 돈은 못 벌어도 공영적인 가치를 충족시키는 장르라는 자부심을 느꼈지만 시대가 변했다. 사람들이 전만큼 그런 가치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MBC에서도 그래서 이직이 많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를 포함해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선후배들이 TV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자괴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고 본다.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영화 같은 플랫폼에 관심을 둔다. 내가 잘해서 자기들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동생들도 있다. 그런 면에서는 모종의 사명감이 있는데, <다시, 벚꽃>이 잘 될지는 모르겠네.(하하하)

MBC PD 출신 최승호 감독도 얼마 전 <자백>을 연출해 개봉했다.
최승호 선배가 <피디수첩> 팀장일 때 나도 그 팀에 있었다. <자백>은 아직 못 봤지만, 꼭 보려고 생각 중이다. 요즘은 마음이 너무 바빠서, 조금 안정을 찾으면 공부하는 마음으로 보려고 한다.

<다시, 벚꽃>의 관객은 얼마나 들면 좋을까.
흐흐흐.

내가 생각해도 치사한 질문이긴 하다.(웃음)
그래도 손익분기점은 넘어야…(웃음) 요즘에는 IPTV 같은 부가시장까지 포함해 계산하는 것 같더라. 어쨌든 3만 명은 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개봉 전에는 5만 명이 목표 관객 수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내가 물정을 몰랐던 거지.(으하하)

갑자기 생각난 질문인데, 궁금한 게 있다. ‘잘할 걸’은 왜 안 나오나. 그 노래 참 좋은데.
넣었다. 그런데 아내분이 나오는 대목에 삽입했기 때문에 결국 빠졌다. ‘잘할 걸’을 좋아하는군?(웃음) 그것 말고도 ‘향수’나 ‘사말어사’ ‘사랑은 타이밍’ 등 좋은 노래가 많이 빠졌다.

몇 곡이 아쉽게 빠지긴 했지만, 봄바람 살랑대는 때에 잘 어울리는 작품임은 분명하다.(웃음) 다음 작품도 준비한다고 들었다.
그건 정통 휴먼 다큐멘터리다. 제주도에 사는 세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68세 할머니가 88세의 친정엄마와 105세의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거다. 그래서 임시제목은 <내 엄마, 내 어머니>다.(웃음)

음. 벌써 눈물이 날 것 같아…(웃음)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인데, 아빠가 영화감독 된다고 기뻐하더라. 근데 이 친구가 나처럼 세상 물정을 몰라서 아빠 영화가 대박 날 거라고 믿고 있다.(하하하)


2017년 4월 14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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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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