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내성적이고 수줍은 감성 <시인의 사랑> 양익준
2017년 9월 15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배우이자 감독인 ‘양익준’ 하면 자동 검색어처럼 따라붙는 단어가 있다. 바로 ‘똥파리’. 연출과 주연을 맡았던 <똥파리>(2008)의 거친 용역 깡패 ‘상훈’을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변화하고 있었다. 전직 조폭 똘마니이자 모지리 동네 3인 방 중 한 명인 ‘익준’(<춘몽>(2016))으로 순화되고, 마침내 시인 ‘택기’로 돌아왔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을 지녔던 그가 사랑을 노래하고 시를 읊조리다니! 하지만 시인 ‘택기’는 표현에 서툴고, 내성적이고 수줍은 그의 천성과 어쩌면 그 어떤 배역보다도 닮은 모습일지 모른다. 발화되지 못한 내면의 외침을 ‘상훈’을 통해 목이 쉬도록 외쳤으니 후련하다는 양익준, 그의 섬세한 감성에 다가선다.

작품 합류 계기는.
김양희 감독과는 10년 전 함께 단편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중간에 촬영하다 접어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었다. 일본 체류 중, 근 10년 만에 연락을 받았는데, 시인이 나오는 시나리오라고 하더라. 가능하면 했으면 좋겠다고. 당시 일본에서 다른 작품 작업 중이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기에 처음에는 확답을 못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읽게 됐다.

시나리오에 첫눈에 반한 건가. 어떤 면에 끌렸나.
맞다, 바로 전화했다. 감독님도 당황하더라.(웃음) 음... 연기자 입장에서 받아보기 힘든, 귀한 시나리오였다. 일상적인 공간, 제주도가 특수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터전이니까, 평범한 생활의 이야기임에도 특별한 인물이라고 할까.

작년 공개된 영화 <춘몽>의 모습과 외양 변화가 크더라. 일부러 체중을 늘렸다고.
영화를 찍을 당시, 일본에서 권투 영화를 촬영한 직후였기에 72kg에서 62kg으로 감량한 상태였다. <시인의 사랑>에 들어가기까지 한 달여 기간 동안 15kg 정도 찌운다고 약속했는데 아무리 먹어도 보름 동안 1kg도 안 찌더라. 격투기 선수에게 고민을 상담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원래 시합 끝난 후 2~3주는 아무리 먹어도, 마셔도, 체중 변화 없는, 휴가 같은 기간이라는 거다. 그것도 모르고 맥도날드에 하루 세 번씩 가곤 했던 거지! 그 이후 닥치는 대로 먹었는데도 생각만큼 못 불렸다. 목표가 76kg였는데 70kg까지밖에 못 갔다.

체중을 늘리려 그토록(?) 노력한 이유는.
시나리오상, 뚱뚱한 시인이기에. 극 중에서도 수업 중 아이들이 놀리지 않나, ‘시인이 왜 그렇게 뚱뚱해요?’ 하고 말이다. 내가 먹으면 배가 나오는 타입이라 다행히 복부 노출은 자신 있었다. (웃음) 그리고 겨울이라 옷을 많이 껴입고, 설정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들 눈에는 뚱뚱해 보일 거라는 나만의 생각을 위안으로 삼았다.

같은 ‘창작자’로서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시는 잘 모르겠고 소설은 써 본 적이 있다. 이번 작품하면서 권투 연습하던 중 아픈 팔을 소재로 시를 두어 편 써서 감독님에게 보냈더니 웃고 말더라.
모티브가 된 ‘현택훈’ 시인과 만났는지.
촬영 3일 전에 제주도에 도착했다. 사실 제주도를 좀 더 체험한 후 촬영을 시작하고 싶었는데, 비용을 비롯해 여러 가지 여건상 할 수 없었다. 도착하는 날 바로 현택훈 시인과 만났다. 정말 동글동글 귀여운 인상이었다. 헤어질 때도 진짜 곰돌이 푸우가 걸어가는 듯했다.

‘현택훈’ 시인에 대한 느낌은.
그동안 감독님한테 얘기로 듣던 정서와 정말 흡사했다. 감정적인 표현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더라. 상대에 반하는 의사를 전달할 때는 아주 천천히 생각하고, 말을 많이 안 하시는 편이었다.

연기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현실의 시인 ‘현택훈’도, 극 중 ‘현택기’ 도 아닌 양익준이 시인을 연기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양익준이기에 상대역인 혜진 씨와 가람에게 느끼는 감정이 있는데, 그것들을 스스로 막는다는 게 어느 순간은 모순이라 느껴지더라. 연기하다보면 즐거워 웃거나 아내가 갑갑하게 행동하면 ‘에이씨’, 이런 말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지 않나. 왜냐하면 부부니까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하니까. 그런데 감독님이 생각하는 ‘현택기’는 ‘에이씨’ 이런 단어는 한 마디도 사용 안 하는, 그만큼 순하고 순수한 인물이었다. 그 점이 초반 답답하고 아쉬웠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음... ‘택기’는 침대 위에서, 아내 ‘강순’(전혜진 분)은 침대 밑에서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강순에게 ‘당신, 정말 시인 같아’ 말하는데, 그 순간 아내가 너무 귀여워, 아래로 내려가 막 껴안으면 어떨까 했다. 그렇게 시나리오에 없는 내 감정이 툭 튀어나온 순간이 있더라. 하지만 감독마다 성향이 다른 거니까. 김양희 감독이 생각한 시인은 그렇게 즉흥적으로 튀어나오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캐릭터다. 그 점이 이성적으로는 이해되는데, 연기하다 보면 몸이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있더라. 아까 말했듯 그 점이 약간 답답했다. 하지만 감독님은 현택훈 시인과 오랜 시간을 보냈고, 그를 얼마나 뜯어보고 해체했겠나. 그의 분위기를 전달하려 한 의도라고 본다.

감독 양익준으로서는 그렇게 툭 튀어나오는 연기를 선호하나.
연출 시 리허설하면서 미리 감정 소모하는 걸 꺼린다. 카메라 워크가 복잡한 경우에만, 배우들에게 일체의 감정을 쏟지 말라 주문하고, 동선만 확인해 보는 정도다. 그냥 처음 나오는 직관적 감정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또, 배우들이 느낌과 정서가 준비됐다면, 촬영 세팅이 제대로 안 됐어도 시작한다. ‘그 순간’에만 나올 수 있는 ‘어떤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그 순간’을 실제 촬영 전에 겪으면 데자뷔같이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리허설과 철저한 준비를 선호하는 배우도 있을 거다.
솔직히 대부분의 배우가 그렇다. 리허설 없는 걸 꺼리는 배우들이 많고, 초반에는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3, 4회차 넘어가면 내가 왜 그렇게 연출을 하는지 납득하더라. 지시를 받고 내리는 것에 익숙하기에 초반에는 지시를 내려주는 것에 편해한다. 그런데 아무 설정을 주지 않으니 낯선 거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카메라 안에서는 그들이 연기하는 거니까.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기에. 이건 배우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배우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예를 들어 카메라 감독이 두 사람이 싸우는 장면을 촬영 중이라 하자. 그중 한 명이 앵글에서 나간다면 카메라 감독이 선택해야 한다. 남은 자를 비출지, 아니면 나가는 자를 따라갈지, 그도 아니면 스스로 뒤로 물러서며 둘을 다 잡을지 등 말이다. 난 카메라 감독의 선택에 따르고, 그런 점이 흥미롭다.
‘택기’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둔 주안점은.
음... 일단 귀여우려고 노력했다.

극 중 아내 ‘강순’역의 전혜진과 호흡이 척척이더라.
그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자유롭고 건전한 에너지가 좋았다. 사람과 사람의 궁합이랄까, 그게 잘 맞았다, 나이도 비슷하고. ‘나는 배우야’ 라는 명찰을 일부러 붙이려 하지 않는 배우더라. 또, 실제로도 자신있고, 건강하고, 진취적인 여성을 좋아한다. 그래서 현실의 ‘혜진’, 영화 속 ‘강순’. 둘 다 너무 좋은 거다. 거기에 아직 장가를 못 간 처지라 부부생활 연기가 어떤 로망을 실현해주는 거 같아 흥미로웠다.

소년을 연기한 정가람과의 호흡은.
‘강순’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가람과는 교류가 상대적으로...(웃음). 극 중 소년은 ‘택기’기 지닌 창작가의 갈증을 해갈하는 역할이다. 솔직히 동성을 바라보면서 영감을 받는다는 게 개인적으로 공감은 안 됐다. 또, 내가 서른 즈음부터 남성 친구가 많이 사라졌다. 뭐랄까, 여성 친구가 섬세한 감정을 나누기에 더 좋더라. 만나는 친구가 10명 있다면 그 중 9명이 여자 사람 친구라고 보면 된다.

의외다. 마초적 이미지도 있고, 남성끼리 ‘의리, 의리’ 이럴 거 같은데.
전혀 아니다. 나에게 이전에 그런 이미지가 있다면 일부러 노력한 결과일 거다. 완전히 수줍음 많이 타고 내성적이다. 어릴 때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고 싶다고 얘길 못 할 정도로 표현에 서툴렀다. 이성에게 좋아한다는 고백도 마흔 넘어서 처음 해 봤다. 속으로는 내가 연기했던 센 역할처럼 날 표현하고 싶은데, 겉으론 다 누르고 살았던 거지.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작품으로 표출된 건가.
답답함을 드러내고 소리 지르고 싶은 양익준이, 30대 초반에,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한 거지. <똥파리>(2008)에서는 가족을, <바라만 본다>(2005)에서 사랑에 대해 마음껏 드러낸 것 같다. 이후 머릿속에서 아이디어는 많은데 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고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후 연출이 뜸한 건가.
두 작품을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를 실컷 외쳤기에 그 후는 목이 쉰 상태라고 할까, 내 생각보다 세게 쏟아낸 듯하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생길 순 없지 않나. 익고 숙성할 시간이 필요하다. 연출 면에서는 어떻게 보면 번아웃 상태라 봐도 좋다. <똥파리> 이후 8년 정도 정신이 약해진 상태였다. 연기는 늘 해오던 것이라 지금도 할 수 있는 거고.

차기 연출작이 궁금했는데.
연출과 연기는 영화라는 같은 생태계 안에서 너무 다른 분야다. 연출은 일단, 너무 많은 사람과의 교류가 필요하다. 연기는 솔직히 나만 그 캐릭터 속에 들어가면 되는 데 비해 말이다. 어딘가에서 리서치 한 결과 가장 많은 선택이 요구되는 직업군 1위가 대통령, 2위가 영화감독이라 하더라. (웃음)
시인과 같은 입장이라면, 현실의 ‘양익준’은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만약에’ 라는 상상을 안 하는 편이다. 내 삶 자체는 그냥 두고 싶다. 시인의 입장을 상상해보려면 일단 연애하고 결혼부터 해야.(웃음) 또, <똥파리> 제작 이후, 미래를 상상하지 말고 지금 현재 중요한 거부터 처리하자고 결심했다.

시인은 소년을 사랑함으로써 진짜 시인이 된다. 아마 터닝 포인트였을 거다. 당신의 터닝 포인트는.
특별한 사건, 시기라기보다 내가 예측하지 못한 순간,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개인의 역사성 안에서 발견되는 거 같다.

영감의 원천을 꼽는다면.
내 영감의 뿌리는 가족, 그리고 영감의 소스는 10대라고 생각한다. 연기하는 캐릭터에 알게 모르게 ‘양익준’스러움을 부여해야 하는데, 그 색깔이 가장 선명한 시기가 10대였던 거 같다. 또, 실제 영감을 준 친구도 있었다. 중학교 때 굉장히 거친 친구가 있었는데, 시인이 소년에게 영감을 받듯, 그 친구는 <똥파리>의 ‘상훈’을 탄생시켰다.

가족과 사랑을 주요 테마로 해왔다.
맞다. 가족과 사랑. 장르에 상관없이, 아마 판타지를 써도 그 두 가지는 꼭 들어가 있을 거다.
그런데 서로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랑에 대한 결격감이다. 표현을 못 하는 거지. 지금까지 만든 작품 속 인물들이 모두 헤어지거나 고백도 못 하는 캐릭터였다.

일본에서 작업한 <아, 황야>에 대해 얘기 좀 해달라.
영화, 연출, 시, 소설 등 문화 전반에 영향을 준, ‘테라우마 슈지’가 쓴 유일한 장편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를 둔 32세의 이발소 직원, 아버지 학대를 받던 아이가 30대에 들어서서 권투를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상대역 ‘신지’(스다 마사키 분)는 소년원에서 갓 나온, 야수성을 가진 늑대 같은 소년이고, 나는 축사 안의 토끼 같은 존재인데 둘이 만나서 권투를 하는 내용이다. 소설은 60년대 ‘가부기 쵸’를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무대로 한다.

언제 공개되나.
같은 소스를 기반으로 영화 전, 후편과 드라마 6부작으로 제작됐다. 영화는 일본에서 10월 7일에 전편, 10월 21일에 후편이 개봉 예정이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지금은 <시인의 사랑> 홍보를, 그리고 10월에는 <아, 황야> 개봉을 준비할 예정이다. 그리고 12월에 드라마 <나쁜 녀석들>에 들어간다. 또, 예능에서 단편 영화를 하나 제작할 계획이고. 내년 1월 <나쁜 녀석들>이 끝나면 완전 백수로 돌아간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기억이 있다면.
올해 진짜 주야장천 일했다. 좀 전에 말했듯 드라마, 영화 홍보, 예능까지. 일하며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데, ‘아, 내가 잘 견디고, 잘 해나가고 있구나. 스트레스는 당연히 있는 거야, 넌 1월까지만 일하면 반 년 쉬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그 스트레스가 잦아들고, 스스로 뿌듯한 느낌도 든다. 그런 순간순간이 행복하다.

2017년 9월 15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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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박은영

(총 1명 참여)
cmnix
양익준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하신 영화도 모두 성황리에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양익준님의 터닝포인트 대담을 보고 느낀 점이 있습니다. 개인의 역사성이라는 것! 기게 사람 죽이는 것 ㅋㅎ 암튼 내년 1월 이후에 ...아니 이번 부산영화제때 나들이 한 번 안하시렵니까? 서울수서에서 SRT기차로 갈 수 있다고 하던데요 ? 추석연휴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잘 지내시길 요망? 합니다.^-^   
2017-10-04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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