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빛이 말한다 <남한산성> 이병헌
2017년 9월 28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범죄 액션 오락 영화 <내부자들>, <마스터> 이후 완전히 다른 결을 지닌 감성 드라마 <싱글라이더>를 선택했던 이병헌. 그가 정통 사극 <남한산성>으로 돌아왔다. <광해, 왕이 된 남자>, <협녀>에 이어 세 번째 사극이지만 이번에는 액션도, 멜로도, 풍자도 없다. 오로지 침통한 역사가 있을 뿐이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으로 걸어 들어가 사상 논쟁의 중심에 섰던 인물 ‘최명길’로 화(化)한 이병헌.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고 큰 동작 한번 없이 그의 눈빛이 말한다. 절절히 끓는 비통함과 참담함을, 치욕의 삶을 선택할 만큼 커다란 애국과 애민의 마음을.

(해당 인터뷰는 <남한산성>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남한산성>에 대한 평이 좋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거 같다.

어떨 거라 예상했나.
요즘 자극적이고 너무 센 거에 익숙해져 있어서,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나는 좋아서 참여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시사회 직후 호평에 놀랐고, 특히 기자분들이 좋아하더라.

관객의 평가만 남은 건가.
아직 개봉 전이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완전 다른 영화지만 <덩케르크>(2017)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2015) 등에 열광하는 분들이 상당한 걸 보면 다양성에 목말라 하는 관객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의 어떤 지점이 마음에 들었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상황에, 역사에 너무 놀랐다. 국사 시간에 배운 건 그냥 사실, 정보였지 감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역사적 사실을 감정으로 옮긴 점이 좋았다

시나리오를 본 첫 느낌은.
어떤 액션보다 강렬하고 그 어떤 멜로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다. 단순한 이야기와 말로 이렇게 사람을 울릴 수 있구나 싶더라.

극 중 ‘최명길’(이병헌 분)을 연기했으니 당연히 감정 이입했겠지만, 최명길과 김상헌(김윤석 분), 누구의 사상에 더 공감되던가.
뻔한 답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두 사람이 가진 사상에 딱 반반으로 공감된다. 누가 옳다, 혹은 그르다, 선택이 안 된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위험한 요소이자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아닐까 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어떤 쪽이 옳은지, 마음이 어디로 기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보다 더 ‘김상헌 vs 최명길’의 대립 구도에 초점이 맞추어진 느낌이다. 그만큼 상대역이 중요한데, 누가 캐스팅됐는지 알고 참여한 건가.
기억이 확실히 잘 안 나는데 아마 몰랐던 거 같다. 시나리오를 먼저 받고, 후에 ‘최명길’ 역으로 예정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그렇다면 시나리오 읽으면서 가장 연기하고 싶었던 인물은.
읽으면서 누구든지 해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 .

김윤석과는 첫 호흡인데, 그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김윤석뿐만 아니라 그후 박해일, 박희순, 고수, 조우진 등 한 명, 한 명 캐스팅 소식을 듣고 천군만마를 얻은 거 같았다. 영화는 권투처럼 일 대 일로 싸워서 이겨야 하는 스포츠가 아니기에 좋은 배우가 많이 붙을수록 좋다. 훌륭한 시나리오에 연기 잘하는 배우가 이렇게 많이 합류하니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진중하고 묵직한데, 현장에서도 긴장감이 감돌았나.
오히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남자들도 이렇게 수다를 떠는구나 싶을 정도로 난로 앞에 옹기종기 앉아 얘기 나누기 바빴다.

극 중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신, 속칭 ‘대사 배틀’이 영화의 백미다. 공기부터 다르더라.
워낙 중요한 장면이었기에 그날만은 현장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선배님들과 스태프도 다 우릴 배려해 주셨고. 게다가 워낙 긴 장면임에도 감정을 이어 나가고 몰아붙이기 위해, 중간에 끊지 않고 갔다. 그러다보니 선배님들은 계속 뒤에서 무릎 꿇고 있어야 했고. 카메라도 여러 대 동원됐던 장면이다.

그 장면 촬영 시 김윤석이 대본 바뀐 걸 몰라서 당황했다고 시사회 때 고백(?)했는데.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자면 좀 긴데...시나리오 자체가 재밌는 한 권의 소설처럼 각색돼 있었고, 너무 완벽해서 고칠 곳이 없었다. 또, 실제 역사를 고증한 거기에 단어 심지어 어미까지 대본 그대로 따라야 했고, 애드립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최명길’이 계속 엎드려 있다 처음 몸을 세우고, 그래도 눈을 내리깔고 있지만, 인조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돌직구를 날리는 장면이 있다. 고치기 전 대사는 내용은 같지만 좀 더 우회적인 대사였는데, 한 번 바꿔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서 감독님한테 건의했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 부분만 바꿔 주셨는데, 아마 ‘김상헌’의 대사도 약간 바뀌었던 듯하다. 그 상황을 미처 전달받지 못한 거고. 촬영 들어가기 전 하루분 대본을 보다가 비로소 살짝 달라진 것을 알게 되어 부랴부랴 외워 촬영한 거다.

김윤석과의 호흡은.
연기를 할 때 보니 자신을 던지는 느낌이더라. 매 테이크마다 패턴이 다르고. 거기에 호흡을 맞춰야 해서 처음에는 당황했다. 왜냐면 상대가 변화하는데 나만 같은 톤으로 나갈 수는 없지 않나. 내 패턴을 고집하지 않고 강하면 강하게, 약하면 약하게 맞춰갔다. 당시는 힘들었지만, 결과물은 더 좋았던 거 같다. 아마 관객 입장에서도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극 중 김상헌과 최명길은 첨예한 의견 대립은 보이지만 서로를 존중한다. 특히, 마당에서 눈 쓸면서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좋더라.
나도 그 장면 좋아한다. 왕 앞에서는 피 토하듯 자신의 소신을 얘기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친한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사상과 방법론이 다를 뿐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같기에 서로 존중하고 상대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인조에게 환궁하게 되더라도 ‘상헌’은 버리지 말라고 말하지 않나. 그게 ‘최명길’의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최명길’의 눈빛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것도 시나리오에 있나.(웃음)
그냥...(웃음)

‘김상헌’과 달리 ‘최명길’은 개인적 모습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감정 연기하는데 힘들었을 거 같은데.
‘상헌’은 꼬마 나루와 부정 비슷한 모습도 보이고, ‘서날쇠’(고수 분)와 우정이랄까 여하튼 인간의 결, 인간미를 보여준다. 그건 아주 좋은 선택인 거 같다. ‘상헌’이 ‘명길’과 비교할 때 더 딱딱하고 꼿꼿하게 그려지기에 그런 모습마저 없다면 인간미 없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명길’은 친구 ‘이시백’(박희순 분)과 술 한잔 기울이는 장면 외에는 개인적 모습이 전무하다. 그 장면에서 아마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며 남과 얘기할 거다.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지만 그렇지 않기에 다른 매력도 있을 수 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에 말이다.

역사극 준비는 어떻게 했는지.
사실 모든 역할은 상상하면서 연기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정확히 그 상황에 처한 경험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사극은 더 상상이 필요하다. 380년 전의 문화와 생활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일부러 당시의 예스러운 표현이나 단어를 자꾸 사용하고 연습한 거 같다. 그럼으로써 ‘최명길’이 살았던 시대를 느껴보고자 했다.

<남한산성>을 통해 느낀 점은.
음...똑같은 생각과 말도 시대에 따라 역적이 되기도 영웅이 되기도 한다는 거. 지금 같으면 ‘최명길’의 의견은 합리적이고 당연하다 받아들여질 수 있는데, 당시는 어떻게 보면 왕따처럼 고립되지 않나. 그런게 아이러니하더라. 지금도 강대국들 틈 사이에서 여전히 눈치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 않나. 머리로는 다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 실행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고 말이다.

박해일의 ‘인조’를 평가한다면.
시나리오 읽고 인조를 누가 할까 궁금했고, 누가 연기하든 정말 힘들겠다 싶었다. 박해일이 맡았다고 듣고 너무 다행이라 생각했다. 현장에서 만났을 때 괜찮겠냐고 물으니 사실 고민돼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고 하더라. 그가 연기하는 걸 유심히 봤는데, 아주 완벽히 자기만의 것으로 선을 잘 따라서 연기하더라. 폼 잡지 않은 담백함이 좋았다.

‘연기 잘 하는 배우’ 호칭이 늘 따라붙는데, 그럼에도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있는지.
연기라는 게 객관적인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아마 계량화된 수치가 없는 평가를 받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늘 불만족스럽지 않을까. 사람들이 잘했다고 하면 안도하고 고맙지만, ‘잘 한다’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 숫자로 1등, 2등 매길 수가 있는 게 아니라서 계속 갈증이 있을 거 같다.

다양한 역할을 해 왔는데, 힘들었던 작품은.
<중독>(2002), 동생이 형인 척하면서 그 인생을 대신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고 다가가려 했는데,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 점이 힘들었던 거 같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싶은 작품과 그 이유는.
<번지점프를 하다>(2000)와 <내부자들>(2015), 스스로 놀면서(?) 즐기면서 했던 거 같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의외다.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소재였고, 감정 연기가 힘들었을 듯한데 말이다.
그게 불안하고 힘든 것과 신나서 작업한 것이 뒤섞인 감정인 거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남한산성>처럼 든든한 배우들이 역할을 분담해준 게 아니라, 함께 한 배우들이 대부분 신인이었다. 은주(故이은주)도 아직 작품을 몇 편 안 했을 때고, 연출을 맡은 김대승 감독님 또한 입봉작이었다. 그러다 보니 같이 연구해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런 기분으로 한 장면 한 장면 만들면서, 마치 학생 작품 만들 듯이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가고. 당시 흥행은 크게 못 했지만 특별한 작품이다.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직접 작품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하고 싶지만 못할듯하다.

이유는.
영화 현장을 많이 봐 왔지만 아직도 감독이 갖춰야 할 자질이 뭔지 모르겠다. 그래서 감독하는 후배들을 보면 용감해 보이고 존경스럽다. 하정우가 연출한 <롤러코스터>(2013)에서 택시가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에서 박수를 쳤다.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더라.

꼭 감독이 아니라 제작자로 참여할 수도 있는데.
그런 제안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 그 롤에 필요한 게 뭔지 모르기에 정확히 알 때 하고 싶다. 할리우드에서도 배우 출연과 함께 제작자 참여 제안도 들어왔었는데 내 역할 없이 형식적으로 이름만 올리고 싶지 않아 고사했다.

배우로서의 롤은 너무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데, 배우의 자질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는데, 음... 관찰하는 거? 아니면 역지사지?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랄까.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는데 ‘저 사람 왜 저래?’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하는 이유는 뭘까? 상상하는 거 말이다. 호기심이나 궁금증에서 시작하는 거 같다. 나중에 내 상상과 추측이 맞는 경우도 있고, 완전 딴판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과정이 배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무래도 마음속으로 이해를 한다면 그 역할이 수월해지고 그렇지 못한다면 어려워질 수 있겠다.
마음속에 수많은 본성을 지니고 있지 않나. 그중 자주 꺼내는 것도 있고, 저 깊은 곳에 방치된 것도 있을 거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은 수많은 본성 중 툭툭 튀어나온 몇 가지라고 본다. 평소에 내가 꺼내지 않은 기질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그 역할에 젖어 드는데 확실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다면 ‘최명길’은 본인의 어떤 기질을 끌어온 건가.
명길과 상헌, 모두 소신이 뚜렷하다. 유하고 부드러운 말투와 표정 속에 감춰진 신념은 어떤 것보다 단단하고 절대 타협 안 하는데... 그래서 힘들었다. (웃음) 나는 좀 우유부단한 인조 같은 스타일이다. 결정 장애 같기도. 예를 들면, 레스토랑에 가서 내가 메뉴를 잘 선택하지 못하고 남에게 미루는 편이다. 짬짜면 같은 느낌? 그렇다고 인조를 연기하라고 했다면 그 또한 쉽지 않았을 거다!

힘든 이유는.
두 시간 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 계속 고뇌하고 때론 무능하고 얼마나 힘들겠나. 또, 고민하는 걸 계속 보여줘야 하는데, 그것도 강도와 질감을 달리해서 말이다.

겨울 촬영이라 힘든 점이 많았겠다.
추워서 어려운 건 별로 없었다. 다만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찍고 싶었는데, 입김이 많이 나와 감독님이 오케이 할 거 같아 불안한 적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케이 하시더라.

뭔가 사연 있어 보인다. 자세히 들려달라.
감독님이 극한 추위 속에서 항쟁한 당시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의지가 아주 강하셨었다. 그래서 아주 입김에 연연(?)하시는 거다! 실제 첫 장면은 입김이 덜 나와서 두 달 후 다시 찍기도 했다. 물론 나만 나온 장면이지만 말이다. 일기예보를 항상 체크하며 추운 날 일부러 촬영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얼마 안 남았는데, 한마디 한다면.
무대 인사와 겹쳐서 더 좋다. 사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고 싶어서 그 시기에 다른 스케줄이 없었으면 하고 대부분이 바랄 거다. 많은 동료 배우와 영화인을 만나고 술 한잔할 수 있는 그야말로 큰 잔치다. 벌써 기대된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연말에 드라마 촬영에 들어간다.

최근 행복한 순간은.
영화 얘기라 진부하겠지만 <남한산성> 리뷰를 요즘 읽고 있다. 우리끼리 불안감과 긴장감 속에 있다가 좋은 평가가 나오면 확 풀어지면서 행복감이 퍼지더라.

2017년 9월 28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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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퍼스트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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