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역시 선택, 사람에 감사하다 <버닝> 전종서
2018년 5월 29일 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정제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진솔하고, 복잡한 생각을 품고 있는 듯 보이지만 꽤 담대하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으로 인생 첫 영화 주연이라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칸영화제라는 큰 무대까지 경험한 전종서는 담백한 태도로 한 시간 남짓의 대화에 임했다.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의 비판 앞에 섰고 여전히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맞닥뜨리는 중이지만, 뉘우칠 건 뉘우치되 오해 역시 누군가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단단함이 특별히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마 자신을 존중하고 배려해준 많은 사람에게 몇 번이고 감사함을 표현하던 모습 덕분일지 모른다.

상당한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이 5일째다. 하루에 7개 정도의 매체와 인터뷰를 한다. 앞으로 비슷한 일정이 2~3일 더 남았다.

아무래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겠다.
질문의 영역이 어느 정도 겹치기는 했다. 다들 칸영화제에 관련된 질문을 처음으로 하셨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똑같은 답을 하지는 않았다. 질문이 비슷하더라도, 내가 만나서 대화하는 사람은 늘 새로운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웃음) 어린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던 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배우가 뭔지도, 연기가 뭔지도 모르지만 가장 호기심이 컸던 분야였다. 특히 영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비디오를 빌려서 영화를 보던 시절 <악동 클럽>(The Little Rascals, 1994)을 계속 돌려보다가 제때 돌려주지 못해서 연체료를 낸 적도 있다. 하도 연체를 하니까 내 이름으로는 더는 비디오를 빌릴 수 없게 돼서 엄마가 대신 빌려다 주시곤 했다. 그 비디오 가게 이름이 ‘공룡코딱지’였다.(웃음)

비디오를 빌려 볼 때라면, 당신에게는 꽤 어린 시절 이야기이겠다.
초등학교 1~2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해리포터’ 시리즈다. 영화에 나오는 지팡이나 망토를 사서 학교에 들고 가곤 했다. 영화 주인공을 따라 하면서 느끼는 단순한 재미도 분명 있었지만, 그러다 보면 진짜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뭔가를 보고, 누군가를 흉내 내는 걸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렇기도 했고, 예술적인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화실을 오래 다녔고 바이올린과 발레도 오랫동안 배웠다. 그런데 막상 배우가 된다고 하니 집에서는 일종의 반대 같은 게 있었다. 연기자가 되거나 방송업계에 몸담으면 결과에 대한 보장이 없으니까… 안정권 안에서 무언가를 꿈꾸길 바라셨던 것 같다.

모두의 부모님은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으신 것 같다. 자식 문제이기 때문일까.(웃음) 어쨌든 꿈꾸던 직업을 갖고,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어떤 분들은 어릴 때 데뷔하는 배우에 비해서 첫 시작이 늦은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어떤 분들은 시작한 시점에 비해서는 굉장히 빨리 뜬 거라고도 한다. 내 생각엔, 연기자에게는 나이가 빠르거나 늦다는 식의 제한은 없는 것 같다. 서른 넘어, 마흔 넘어 연기를 시작하는 분들이 존재하지 않나. 나는 그런 분들의 꿈을 존중한다.

칸영화제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첫 경험이니만큼, 인상적이었던 장면과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제를 위해 간 거긴 하지만, 유럽이라는 외국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하늘과 건물의 풍경, 나무의 생김새와 바다까지… 그런 장면은 처음 봤다. 메이크업과 헤어를 담당해주는 분과 스타일리스트까지 함께 출장을 갔는데, 모두 여자였다. 그들과 말하고, 웃고, 떠들고, 울면서 그간 쌓인 감정을 많이 풀어냈다. 촬영장에서부터 영화를 위해 소화해야 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까지 대부분 남자와 호흡을 맞춰야 했다. 상대 배우도, 촬영 감독님도 남자였다. 여자들끼리만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감이 부재한 상황이었고, 내 마음과 정신 상태를 털어놓을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주로 무슨 이야기를 했나.
음… 그분들이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다. 내가 워낙 언니들을 잘 따른다. 서로 인간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보통 언니들이 내가 자고 있는 방으로 찾아오면서 하루 일정이 시작되는데, 주로 “방 정리 좀 해라” 같은 말을 많이 들었다.(웃음) 언니들은 외국 출장 경험이 많으니 그와 관련된 조언과 충고도 꽤 도움이 됐다.

영화 촬영이 모두 끝난 상태에서 칸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다. 함께 했던 감독과 배우를 좋은 자리에서 다시 만날 기회였으니 반가웠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면 같이 작업한 분들과의 인연도 끝나는 줄 알았다. 마음을 다해 작업한 만큼 아쉬움이 너무 컸다. 영화제가 그 아쉬움을 달래준 것 같다. 만약 내가 경험 많은 배우였다면 칸영화제가 그 자체로 선망의 장소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순수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그만큼 들떴고 또 만족했다.

이창동이라는 베테랑 감독과의 만남에서도 많은 걸 배웠을 것 같다.
회사(소속사)를 알아보기 위해 돌아다닌 기간이 굉장히 길었다. 그 과정에서 연예계에 종사하는 분들께 많이 실망했다. 인격적으로 상처받은 일이 많았다. 내가 아무리 신인이고 존재감이 없을지라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 이상 상대와 나는 동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동등 의식’을 전혀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더라. 그런 면에서 이창동 감독님은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주셨다. 정말 소중하게 다뤄 주셨다. 함께 작업한 배우와 스태프도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저 생각에 그친 게 아니라 어떻게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다.

사람 운이 좋은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을 만난 건 물론이고, 어느 정도 자기 연기 철학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경력을 쌓은 스티븐 연과 유아인과 호흡을 맞췄으니 안정감 있었을 것이다.
인복이 좀 있는 편이다. 부모님도 나에게 늘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일단 본인들을 만난 것부터 인복이 있는 거라고.(웃음)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고 나니 달라 보이는 게 많다.

영화 외적인, 이런저런 논란도 있었다. 대처하는 모습이 담대하다고 느꼈다.
상대와 직접 대화하는 게 아니다 보니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하는 표현이 언론이나 영화 스크린 등 하나의 단계를 더 거쳐서 전달되는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는, 유명인은 꽤 약자다. 많은 사람이 제 얼굴과 이름을 가리고 인터넷을 통해 타인을 비난하지만, 그에 대응하는 사람은 대개 자기를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대중에 노출된 많은 분에게 그런 비애가 있는 것 같다. 비판의 화살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나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오해 역시 누군가의 선택이다. 나는 내 모습이 있는 그대로 보이길 원한다. 물론 상대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다. 태도 문제를 지적할 때도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은 인정하고, 개선하고, 뉘우치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지적은 공감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내 타당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무조건 내가 옳다는 게 아니라,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다. 곧 당신의 첫 작품 <버닝>의 모든 공식적인 일정이 종료된다. 앞으로는 어떤 작품에 참여해보고 싶은가.
여성 인권을 이야기하는 시나리오나, 여성이 주도적으로 어떤 지향점을 제시하는 작품이 있다면 꼭 오디션을 볼 것 같다. 물론 떨어질 수도 있다.(웃음) 영화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많은 관객이 그런 영화를 보기를 원할 것이다. 또 많은 이들이 그런 영화에 직접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다.

여성 문제에 꽤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실제로 많은 관심을 두고 관련 운동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보면 여성 인권이 보호받아야 하는 측면은 여전히, 굉장히 많다. 미투만 봐도 그렇다. 어떤 분들은 미투가 변질됐다고도 하고, 그런 상황을 두고 마녀사냥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떤 건에 대해 모두 일관적인 반응을 내놓을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미투 운동은 계속해서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운동이 반짝 하고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원하는 작품에 꼭 참여하게 되길 바라겠다. 곧 쉬는 시간을 맞게 될 텐데, 특별한 계획이 있는가.
파리 여행을 가고 싶은데… 함께 갈 친구들과 일정을 맞추는 게 힘들다. 시간이 맞으면 경제적인 게 맞지 않고, 경제적인 게 맞으면 시간이 어긋난다. 그렇다고 혼자 가면 너무 공허할 것 같고.(웃음) 함께 여행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재미가 있는 건데 말이다.

하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도 나쁘지 않다. 이유는… 말하지 않겠다.(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음. ‘소확행’에 관한 질문이네.(웃음) 최근 스타일리스트 언니와 <데드풀2>를 보러 극장에 갔다. 끝나고 케이크를 사 먹었다. 정신없는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 소소하게 행복했던 날이다.




2018년 5월 29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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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CGV 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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