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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를 단거리처럼 뛰는 에너자이저 < PMC: 더 벙커> 하정우
2019년 1월 11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하정우가 돌아왔다. 2017년 겨울과 2018년 여름, 전후 두 편으로 2천 만 넘는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신과함께>에서 저승사자로 그린매트를 구르고 허공을 향해 검을 날렸던 그. 이번엔 지하 벙커 깊숙이 들어가 절뚝이고 때론 기어 벙커 구석구석을 샅샅이 누빈다. 벙커를 벗어난 후에는 창공으로 올라가 추락하는 헬리콥터에서 낙하산 탈출하는 등 ‘톰 크루즈’ 급 고공 액션을 펼친다. 관객에게 호쾌함을 선사했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선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관절과 사지에 와이어를 묶은 상태로 촬영하는 게 쉽지 않았단다.

최근 하정우는 <터널> <신과함께> <PMC: 더 벙커> 그리고 차기작 <백두산>까지 소위 ‘대작’ 영화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소소하고 현실적인 드라마를 향한 갈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롤러코스트> 같은 영화를 또 만들기 위해 배우와 감독에 이어 제작까지 영역을 넓히며 맹렬히 일하고 있는 그. 장거리를 단거리처럼 뛰는 진정한 에너자이저다.


<더 테러 라이브>(2013) <터널>(2016) 그리고 이번 <PMC: 더 벙커>(이하 <더 벙커>)까지 고립된 상황에서 탈출하는데 일가를 이룬 것 같다.
그렇지, 어쩌다 보니 말이다. <터널>이 좀 수동적이었다면 이번엔 훨씬 적극적으로 사투를 벌인다.

앞으로 ‘정우 크루즈’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웃음) 영화 후반부 낙하산 액션이 압권이었다.
아, 그거? 극 중 ‘에이헵’(하정우)이 부상당한 채 계속 지하 벙커 속에 고립돼 있다가 처음으로 외부에 나오는 부분이기에 시원한 해방감을 전달하고자 했다. 동시에 그가 좋은 인물인지 나쁜 인물인지 내내 아리송했던 점을 해소해주는 지점이다. 음악도 일부러 감성적인 멜로디를 배치했는데 그 의도가 제대로 통했는지 궁금하다.

보는 내내 촬영 방법이 궁금했다.
원신 원컷처럼 보이지만, 여러 장면을 연결한 거다. 관절마다 와이어를 부착했었다. 영화 보는 입장에서 체감이 잘 안 되겠지만, 낙하산이 한 번 퍼지면서 날아가는 거리가 대략 15m 정도 된다. 이를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하나하나 와이어로 당겨서 촬영했다. 체력이 금방 바닥나서 하루에 촬영할 수 있는 분량이 한정적이었고 무엇보다 내 관절을 타인에게 맡긴 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다행히 <신과함께>에서 프리비주얼로 구현해본 경험이 있어 그나마 수월했고, 게다가 그때와 같은 팀과 작업했기에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다.

완성본을 본 소감은.
영화 보는 내내 어깨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몰입감이 높았다. 거의 체험 무비라고 할까. VR 영화로 구현해도 어울리겠다 싶었다.

<더 벙커>가 액션 영화를 넘어 전투 영화라고 할 만큼 화려한 총격전을 선보인다.
액션을 구성한 컷이 1인칭 형식을 따라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에이헵’과 일행이 벙커 속에 고립된 후 그(에이협)가 팀원들과 북한 의사 ‘윤지의’(이선균)에게 디렉션을 주며 지휘한다. 관객이 영화 속에 들어가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길 바랐다.

영화가 1인칭 (슈팅) 게임 같다는 의견도 있다. 평소 게임을 즐기는 편인가.
전혀. 완전히 문외한이다. 밖에서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어릴 때도 즐기지 않았었다.

시종일관 총격 액션이 이어지고 주인공 ‘에이헵’이 주도적으로 극을 이끌지만, 당신의 액션 연기가 기대보다 적다는 인상이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예고편에서 보면 ‘에이헵’이 뭔가 다 해결해줄 듯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지. 우리 영화의 미덕이라면 고립된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 주목해 잘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테러 라이브> 이후 김병우 감독과 바로 작업에 착수해 5년 만에 완성했다. 직접 제작에 참여했는데 영화의 어떤 점에 확신 혹은 매력을 느꼈는지.
어떤 작품에 들어가든 그 결과에 대해 확신하고 들어가진 않는다. 매번 알 수 없고 내 기대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일단 <더 벙커>의 경우 막연하게 한국에서도 새로운 형식의, 이런 글로벌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점에 끌렸다. 전 세계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추세에서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도 공감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배우로서 연기 외에 작품에 기여(?)한 바는.
음, 기여라…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 아이디어를 던졌던 것 같다. 그게 2013년 12월인데 이후 김병우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해 초고 나오기까지 약 1년 정도 걸렸다.

제작 기간이 길어지면서 고민은 없었나. 5년 전에 시작했다고 하기엔 남북 관계와 북핵 사안을 비롯한 국제 정치 지형이 현재와 놀랄 정도로 흡사하다.
제작자 입장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는 감독을 바라볼 뿐 참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없다. 처음부터 지금과 비슷한 설정이었고 진짜로 이렇게 국제 정세가 흘러갈지 몰랐다. 오프닝에서 사용된 자료 화면 등은 보충해서 찍은 게 있는 거로 알고 있다. 오프닝 부분은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각기 입장이 있다 보니 구체적으로 밝히긴 힘들다. 양해해 달라.

극 중 대사의 대부분이 영어로 구성됐는데 혹시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둔 포석인 건가.
어느 정도는 그렇다. <신과함께>가 해외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에 고무돼 <더 벙커>의 경우도 해외 홍보 스케줄이 다 짜여 있는 상태다. K-pop, 드라마에 이어 영화로 한류를 일으킬 기회가 된다면 의미 있을 것 같다. 물론 국내 관객에게 소개되고 사랑받는 게 먼저겠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맡은 캐릭터를 보면 전혀 다른 장르와 서사를 따라가지만 비슷한 면이 많다. 마냥 정의롭지도 그렇다고 악하지도 않은 흔들리는 인물로 어떻게 보면 아주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이번 ‘에이헵’도 동료와 자신의 안위 사이에 끊임없이 선택의 딜레마에 빠진다.
이면이 있어 보이는 인물에 흥미를 느끼고 끌린다. <신과함께>의 ‘강림’이나 ‘에이헵’ 같이 강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부족하고 구멍 있는 그런 모습에 쉽게 이입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라서 그럴 거다. 사실 완벽한 사람이 드물지 않나.

‘에이헵’은 PMC(Private Military Company, 국적이나 명예보다 돈을 최우선시하는 전쟁도 비즈니스라 여기는 글로벌 군사기업)의 리더다.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참고한 자료가 있다면.
그는 미국에서 살아남아 불법체류자로 살아가는 동료들을 이끄는 인물이다. 그만큼 강한 추진력과 리더로서 인간적인 매력을 지녔을 거로 생각했다. 미국 내 흑인 혹은 히스패닉 사회에 들어가 그들과 어울리고 공감하며 자리 잡았겠지.

실제 미국에서 십수 년 고생한 친구가 있다. 그로부터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고단한 삶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친구는 현재 영주권을 땄지만, 그 이전까지는 아프면 안 되고 다른 주로 멀리 가서 운전면허를 따야 하는 등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하더라. 친구가 이방인으로서 새로운 사회에 자리 잡고 성장한 과정을 ‘에이헵’의 전사를 쓰는 데 많이 참고했다.

연기하면서 외적 혹은 내적으로 힘들었던 점은.
고립된 공간에서 촬영하는 게 답답했지만,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쉽지 않았다. 다리를 한쪽 사용하지 못한다는 게 큰 핸디캡으로 작용해 생각보다 불편했다. 다른 쪽 무릎에 하중이 쏠리면서 통증이 오고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보니 표정 연기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정우’가 몸 고생하는 만큼 영화가 흥한다는 속설도 있다. 지금까지 고생한 순서로 줄 세워본다면? (웃음)
그 속설이 맞았으면 좋겠다. 가장 힘들었던 건 <황해>(2010)다. 또 <군도>(2014), <터널>(2016) 그리고 <신과함께>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이 영어 대사인데, 준비는 얼마나 한 건가.
대부분의 사람이 ‘영어’라고 하면 신경 쓰이고 부담되지 않나. 나만 그런가. (웃음) 일단 모든 지문을 하나하나 독해하고 단어도 일일이 다 찾아본 후 개인 교사로부터 발음 하나하나를 교정받았다. 이후 하와이에 가서 하루 10시가 정도 한 달간 집중적으로 훈련했었다. 당시는 정말 잠꼬대도 영어로 할 정도였다니까!

김병우 감독을 ‘이과적 연출자’라고 표현했던데, 그래서인지 서사가 좀 약하지 않나 싶다.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김병우 김독은 영화를 다루는 자세가 굉장히 학구적이다. 수치화시켜서 그래프로 그리고 미술 세팅도 직접 레고로 만들어 확인할 정도다. 그래서 ‘이과적’이라고 표현한 거다.

<신과함께>에 이어 <더벙커> 그리고 차기작 <백두산>까지 대작의 연속이다. 내외적으로 부담감은 없나.
<터널>은 70억 대이고 촬영 중인 <클로젯>은 50억 대 규모다. 제작비 50~70억 사이의 영화가 요즘엔 중급 정도로 분류된다. 즉 내가 꼭 대작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웃음) 소재가 다양해지고 그에 맞춰 규모가 확장되다 보니 제작비가 커질 수밖에 없다. 소소한 멜로나 로맨스 영화는 이제 드라마로 넘어가는 추세인 것 같다. 스튜디오 위주의 미국 제작 환경을 따라가는 게 아닌가 한다.

부담감이라 하면…. 투자하는 입장에선 패키지를 보고 투자하니 참여 배우로서 몫을 다해야 한다는 거? 흥행 등 여러 면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소소한 현실을 다룬 작품을 향한 갈증은 없나.
늘 하고 싶다. 저예산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고 또 다양화돼야 하지만 다만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가령 투자가 될까 배급을 맡아줄 곳이 있을까 등등 말이다.

무조건 지원받는다는 전제하에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성취하고 싶은 장르는.
당연히 <롤러코스터>(2013, 하정우 연출) 같은 장르의 영화지! 평소 우디 알렌, 코엔 형제, 기타노 다케시 감독 팬으로 블랙 코미디를 좋아한다. 최근엔 <쓰리 빌보드>를 매우 흥미롭게 봤다.

배우와 감독에 이어 제작자로 나섰는데 향후 지향하는 방향은.
<더 벙커>가 ㈜퍼펙트스톰필름의 창립작이 될 거로 생각했었는데, 이주영 감독의 <싱글라이더>(2016)가 첫 작품이 됐다. <싱글라이더>는 남다른 감성을 지닌 파격적인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시장에 다양하고 새로운 공기를 주입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영화 외 다른 방송 활동 계획은 없는 건가.
일부러 영화만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닌데 영화를 계속 찍고 있고 워낙 장기플랜이다 보니 드라마 제의를 받아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백두산 폭발을 막기 위한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백두산>과 1947년 보스턴 마라톤 실화를 그린 <보스턴 1947>이 예정돼 있다.

마지막 질문! 최근 행복한 일을 꼽는다면.
얼마 전에 하와이 마라톤에 참가했다. 7시간 내에 들어오는 게 목표였는데 한 시간 앞당겨 6시간 3분 기록으로 완주했다!


2019년 1월 11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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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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