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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영화, 이젠 열려있다 <#살아있다> 유아인
2020년 6월 25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유아인에게 <#살아있다>가 특별한 영화라면 그건 그동안 출연을 망설였던 장르 영화에 처음으로 도전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 스스로가 진지한 사람인 만큼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가 힘이 있으리라고 믿어왔던 날들이지만, <#살아있다>는 그에게 장르 영화도 충분히 어떤 종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 현장이었다고 말한다. 좀비 떼가 출몰하는 아파트에 가족 없이 홀로 살아남은 청춘의 비극과 환상을 드러내는 영화의 초반 수십 분을 보면, 그의 말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장르 영화인 동시에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는 <#살아있다>를 선택하기까지의 개인적인 고민을 조금 더 들어본다.

장르 영화에 처음 출연한다.
이번 영화를 선택할 때 고민이 많았다. 그동안 다양한 작품을 해왔지만 장르 면에서는 상당히 한정적이었다. 공포 영화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왜 이렇게 장르 영화에 출연을 안 했을까. 잘 만들어서 좋은 평가를 받기 쉽지 않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좋은 작품을 만나기 어렵다고 말이다.

단순히 스릴러 장르도 아니고 좀비 영화를 선택했다.
<국가부도의 날>과 같은 제작사인 영화사 집 작품이다. <국가부도의 날>을 홍보하던 시기에 제안을 받았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여하게 됐다. 그동안 장르물을 피해 다니는 성질이 있었는데, <#살아있다>는 장르에 대한 도전 의식을 자극하면서도 장르에 잡아먹히지 않을 여지도 있는 작품이었다. 이런 장르에서는 보기 드물게 배우, 그러니까 인물에 집중하는 영화였다. 뭔가 새로운 생명(력)을 느낀 듯했다.

장르물을 피해 다닌 이유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했다. 진지한 작품에 더 끌리는 면이 있었다. <#살아있다>처럼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작품의 의미를 크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오락적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작품에 임해보니) 충분히 재미가 있더라. 그 재미의 가치를 좀 더 크게 봤다. 덕분에 장르 영화 출연 가능성을 활짝 열게 됐다. 상당히 어려운 시기에 개봉하기 때문에 자신 있게 선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준 영화다.


영화 초반을 단독으로 끌고 나간다. 부담감이 있었을 법도 한데.
영화 초반에 이 정도로 혼자서만 등장하는 영화는 나도 처음이었다. 많이 부담스러웠고 책임감도 느꼈다. 하지만 그 부담과 책임을 느끼고 싶어서 이 작품을 선택한 거다. ‘준우’ 캐릭터의 변화가 작품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배우로서 현장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가는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 내 역할을 어디까지 설정하고 어느 부분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 것인지 등 많은 고민이 반영된 현장이었다. 이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노련하게 이루어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험의 현장이었고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판단한다.

현장에 어느정도 만족한 것 같다.
언제까지 명감독님에게 기대는 신인배우의 상황도 아닐 것이고, 언제까지 개인적으로 갇혀 있기만 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내가 날 어떻게 운용해볼 수 있을까 싶어 했던 도전이다. 그러다 보니 (연기) 연습도 많이 하게 되고, 감독님이나 다른 배우와의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게 됐다. 물론 자기만의 확고한 색깔을 지니고 어느 경지에 이른 명감독과의 작업은 항상 기대하는 부분이다.(웃음) 한편 새로운 도전 의식으로 자기 스타일을 창조해낼 감독과의 기대감도 크게 생겨난다. 내가 그 정도 수준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배우가 명감독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고 본다. 새 작업을 통해 그런 부분을 모색해보고 있다.

조일형 감독은 첫 장편을 선보이는 신인 감독이다. 그와의 협업 과정이 궁금하다.
섬세하고 준비가 많은 분이다. ‘준우’의 감정 곡선을 그래프로 그려서 만들어 줄 정도로 충실하셨다. 아무래도 내가 함께해온 다른 감독님에 비해서는 현장 경험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아쉬움보다는 당연히 그러리라는 생각이 컸다. 대신 해외의 여러 현장을 경험한 분이었기 때문에 유연함이 있었다. 서로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장르의 틀 안에서만 만들기보다는 인물의 감정을 주요하게 여겼다.

감독이 건넨 감정 곡선 그래프 중 가장 높았던 지점은…
가족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감정 곡선은 (내 의견이 반영돼) 조금 변화했다. 나는 가족의 죽음을 확인하기 전에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가족의 환상과 마주하는 부분의 감정 곡선을 더 높이 잡았다. 가족과의 이별을 알았을 때의 감정 진폭이 높은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되려 그 앞에 등장하는 알 수 없는 갑갑한 감정이 뒤섞인 순간이 인물의 상태를 아주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점 같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시대의 갑갑함을 은유적으로 그려낼 수도 있을 것 같아 욕심이 났다.


이 시대의 갑갑함이라는 건, 역시 코로나 19로 인한 상황을 말하는 거겠다. 인터뷰 중인 지금도 서로 마스크를 쓰고 있다. 기자간담회 때도 모든 기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한 칸씩 띄어 앉은 모양새를 봤을 것이다. 이 장면 자체가 일종의 장르 영화 같다는 의견도 많다.
전에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안 봤으면 좋겠고, 하지만 또 보게 될 것 같은 장면이다. 새로운 시대에 대해 생각해볼 수는 있지만 시각적으로 마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이렇게 보게 되니까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코로나19 발생 아주 초창기에 콘서트를 간 적이 있는데, 현장에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도 굉장히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자기만의 시간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많은 경우 배우들의 사정이 그런 것 같다.
원래도 진지한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그런 시간을 갖게 되는 게 이질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서 의외의 시간을 갖게 되기는 하더라. 내 전작을 훑어본다든지…(웃음) 나는 전작 다시 보기를 거의 안 하는데 드라마 <밀회>를 전편 다시 봤다. 심지어는 <시카고 타자기> <버닝> <베테랑> <사도>까지 쭉 훑어봤다.

다시 보니, 기분이 어땠는지 묻지 않기 어려운데.(웃음)
하…(웃음) 최근 (연기) 방향성에 대한 모호함이 컸다. 그런데, 딱히 제대로 (연기)한 적도 없었는데 무슨 그런 걱정을 했나 싶더라. 앞으로 개선의 여지가 많다!(웃음) 당시에는 꽤 잘 해냈다고 생각했던 작품도 다시 보니까 빈틈이 많이 보이더라. 물론 몇 가지 장점도 보였지만, 당시에도 어느 정도 인식했던 나의 약점이 훨씬 크게 보였다. 지금은 그 해결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면이 생긴 것 같다.

연기 욕심이 많아 보인다는 건 관객도 동의하는 지점일 것이다.
생활 연기에 대한 집념이 있기는 하다. <베테랑> <사도>보다 <완득이> <밀회>를 좋아한다.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흔히 말하는 ‘연기하지 않는 연기’ 조차도 어떤 도식이 있다. 그것조차 벗어나고 싶다는 임무를 (스스로) 지워줬다. 물론 모든 게 (결론적으로는) 연기이기 때문에 조금 더 강렬한 눈속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기는 평생의 연구 과제라고 생각한다. 내 나름의 접근과 해석이 필요하다.


(끄덕끄덕)
내가 가방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연기라는 걸 제대로 배워본 적 없다는 것도, 내가 갖지 못한 것이 장점으로 극대화될 수 있도록 집중하는 편이다. 물론 그러면서 소위 말하는 ‘쪼’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물론 명배우에게는 시그니처로 불리는 그 사람만의 스타일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내 경우에는 다른 말투를 시도하고 반복적인 어조에도 변화를 준다. 작품 수가 쌓여갈수록 본래 스타일을 이어 나가면서도 적극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관객을 설득하는 과정이 전과는 다른 무게의 숙제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의지로 변화하려고 해도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좋은 건 새로운 캐릭터를 맡는 것이다. 기꺼이 또 다른 현장으로 들어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작품 선택의 폭을 넓히고 거기에 뛰어드는 것, 거기서 발생하는 연기라는 현상을 갈무리하는 것이 나로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배우로서, 대중이 원하는 모습이 뭔지 파악하는 시간도 필요할 텐데.
예전에는 네이버 댓글이 여론이었지만(웃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다양한 취향, 배경과 환경, 방향성과 가치관을 지닌 분들이 있다. 그 다양성을 인식하는 게 더 중요하다. 물론 작품의 성격에 따라서 타깃 연령대에 집중적으로 파고들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배우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좀 더 포괄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로서는) 대중의 다양성을 이해하려고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기대하는 바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확실히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면이 다양한 것 같다. 누군가가 멋있게 생각하는 부분을 누군가는 이상하게 생각한다.(웃음) 사실 한동안 남의 시선 신경 안 쓴다고 말하는 걸 좋아헸는데… 어느 순간 (나 역시) 거기서 크게 자유롭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집으로 파고들게 되더라. 나를 편하게 느껴주면 좋은데 불편해하고 어려워하고… 예전처럼 바깥 활동이 많지는 않다. (온스타일 예능 프로그램) <런치 마이 라이프>에 출연했을 때와는 또 달라진, 조금은 힘이 빠진 모습이다.(웃음)

(웃음)
그때는 너무 호기로웠고, 부러 더 호기롭게 굴었다. <성균관 스캔들> 이후 처음으로 큰 명성이라는 걸 얻은 뒤에 선택한 작품(프로그램)이었는데, 다름을 핍박하고 지양하는 대한민국 연예계에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예능 <나 혼자 산다> 출연을 결정한 것도 의미가 있다. 혼자 살기에는 다소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현재의) 삶과 내가 목표로 하는 삶 사이의 괴리가 있는데, <나 혼자 산다>가 생각보다 진지하게 그런 점을 다뤄보고 싶어 하더라. 예능 촬영 자체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 의미가 있다. 영화계보다 더 철저한 예능계의 룰을 따라가 봤다.

다음번에도 또 장르물에 출연할 것 같은가.
<#살아있다>같은 장르 영화를 하다 보니 엑스맨 같은 슈퍼히어로 역할도 떠오른다. 좀 더 기술적인 연기가 필요한 것 같다. 최근에 <반지의 제왕> 메이킹 필름을 봤는데, ‘호빗’과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와도 호흡을 맞추고 있지 않은 ‘간달프’(이안 맥켈런)가 사실은 너무 외로웠다고 하더라.(웃음) 나도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다. <마녀>를 봤을 때도 저런 영화에 출연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그려온 모습과 달라서인지, 장르물 제안이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 나, 많이 얼려있다.(웃음) 블루스크린에서도 잘 할 수 있으니 좀 불러줬으면 좋겠다.

사진제공_UAA


2020년 6월 25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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