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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을 모아 기록하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김미례 감독
2020년 8월 21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1970년대 일본에 나타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자국 전범 기업을 대상으로 폭탄을 터뜨렸던 무력 운동 집단이다. 1974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와 미쓰이물산 본사를 폭파하면서 사상자를 냈고, 이어지는 과격한 방법론에 경악한 일본 사회는 그들을 빠르게 잊어냈다. 종종 ‘전공투 세대’라는 이름으로 소환되는 일본의 운동권과도 계보를 달리하는 외톨이다. 한국인 김미례 감독이 그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20일 개봉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다.

김미례 감독은 왜 이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을까. 예상치 못한 접점은 전작 다큐멘터리 <노가다>(2005)에서 생겼다. 감독은 평생 공사 현장 형틀 목수로 일해온 아버지가 IMF로 일감이 끊기자 ‘집에서 눈치를 보느니 차라리 노숙자가 되겠다’고 말한 데 충격을 받아 건설 현장의 현실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원청과 하청으로 이어지는 소위 ‘노가다 판’의 부당한 운영 원리는 일본 식민지배 시절로부터 유래했고, 그 원류를 찾아 일본 오사카 가마가사키로 향한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그곳 가마가사키에서다. 1970년대부터 ‘노가다 운동’을 했다는 이들 중에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에 합류한 이들이 있었다. 감옥에 갇히고, 죽고, 일본을 떠났다고 알려진 이들은 2020년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도쿄교도소, 홋카이도 동북지방 등 일본 각지에 파편처럼 흩뿌려진 이들의 조각을 찾아 모으고 기록했다.



1970년대 일본에서 무력 운동을 벌인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하 ‘전선’), 한국에서는 아주 낯선 이름이다. 일본에서도 잘 알려진 존재는 아니라고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한데.
아버지 일터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노가다> 취재를 시작했다. 그때 소위 ‘노가다 판’의 문제가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됐다는 걸 알았다. 한국 건설 현장에서는 여전히 그 시절 용어를 쓰고 당시의 지배 방식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기자 주: <노가다>는 일본으로부터 유래한 원청업체 – 전문건설업체 – ‘오야지’와 일용직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식 제도의 문제를 짚었다) 본질적인 문제를 알고 싶어서 일본 오사카 가마가사키에 위치한 거대한 인력 시장을 찾았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취재하려던 지역이 일본 야쿠자와 여러모로 관련돼 있어서 취재 과정에서 그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았고, 자신들의 역사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들에게서 처음으로 전선 이야기를 들었나보다.
이야기가 나오긴 했다. 그런데 그때는 별 관심이 없었다. 2005년 10월 <노가다>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고 2006년 3월부터는 일본 현장에서도 상영됐다. 그때 1970년대 일본에서 ‘노가다 운동’을 했다는 분들이 찾아와 영화를 보셨다. 과거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그래서 노동조합도 만들 수 없어서 관련 운동을 했던 이들인데, 그들 중 일부가 전선에 합류했다는 거다. 지금까지도 감옥에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 얘기를 기록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이 참 절실하게 들렸지만, 외면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당신의 대응은 어쩐지 납득이 간다. 아버지와 그의 일터를 좇는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와는 결이 전혀 다른 소재로 느껴진다.
일본어를 잘하고 일본의 상황도 잘 아는 일본인이 다루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역량도 안 되고 감당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 한국에서 세월호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때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국가라는 권력이 지니는 문제가 있고, (사회) 운동은 그 문제를 다뤄나갈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 그런데 한국에서 (국가라는 권력의 힘이 강력한 데 반해) 운동은 (이미) 실패하고 힘이 약해진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작업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일본이라는 국가의 비대한 권력에 강력한 문제를 제기했던 이들의 흔적을 쫓게 된 것이다. 그들이 활동했던 1970년대 상황에 대해 좀 더 들려준다면.
전선 안에는 ‘늑대’, ‘대지의 엄니’, ‘전갈’ 세 부대가 있었다. 부대마다 출발점도 성격도 달랐지만, 모두를 관통했던 문제의식은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로 아시아 인민을 착취하고 심지어 학살까지 한 일본이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아무런 반성도 성찰도 없는 채로 1970년대까지 흘러와 부와 번영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해의 역사를 싹 잊어버리고 (미국으로부터) 원자폭탄 피해를 본 희생자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강조한다는 것도 문제 삼았다.

전선은 단순히 구호에 그치는 운동이 아니라 폭파 등 무력을 수단으로 했고 그로 인해 인명 살상 문제도 불거졌다. 문제의식에 동의하더라도 다수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을 텐데.
전선 중 일부는 1960년대의 전공투 운동에도 참여했지만, 당시 함께했던 많은 사람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엘리트 코스를 밟고 일본이라는 국가에 충성하는 일원이 돼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류) 운동으로부터 떨어져 나왔고, 제도라는 틀을 벗어나 비합법적인 운동을 하게 된 거다. 그렇기 때문에 전선의 활동은 일본 운동권 계보에도 결코 속하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


영화가 담은 건 그들의 현재다. 도쿄구치소에 수감됐다가 출소한 대지의 엄니 부대원 에키타 유키코 씨, 전갈 부대원으로 체포됐다가 출소한 우가진 히사이치 씨 등 여러 관련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만날 수 있는 당사자는 다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에키타 유키코 씨는 도쿄 구치소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면회가 불가능했다. 도쿄구치소는 자신들 건물만 찍어도 경비원이 달려와서 경찰을 부른다고 할 정도였다. 도쿄 근교에 혼자 사는 우가진 히사이치 씨는 이미 병들어가고 있었다.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여서 밖으로 나가 산책을 했는데, 그렇게 동네를 유유히 걸어본 건 이사한 지 5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더라. 그만큼 전선 관련자를 향한 ‘이지매’가 심하다는 것이다. 일본이라는 국민 국가 안에서 비국민은 그렇게 살아간다.

전선 활동을 한 사람들에 대한 일본 사회의 집단적 따돌림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우가진 히사이치 씨의 가족은 이미 다 이민을 갔다. 전선은 그만큼 일본 사회의 터부 중 하나다. 내 말을 통역해주던 분께서 “미례 씨는 지금 일본 사회의 터부를 건드리는 거예요”라고 말해준 적도 있다. <노가다> <외박> 등 내 전작을 감동적으로 본 일본인들도 전선에 대해서 물으면 얼굴색이 달라지기 일쑤였다. 능청스럽게 질문을 계속했지만 그럴 때마다 상대가 당황하는 게 눈에 보였다. 전선 때문에 일본의 운동권이 사람마저 살상하는 비윤리적이고 무자비한 것처럼 비치게 됐다고 생각하는 흐름이 존재하는 것 같다. 관련 이야기는 해주겠지만 촬영은 안 된다는 조건도 많았다. 게다가 일본 사람들은 만나기 전에 기획 의도는 뭐고,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묻는 편이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과정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기획서가 있다고 한들 그대로 되지는 않는다면서 끝까지 버텼다.(웃음)

취재에도 일정 정도 한계가 있었으리라고 본다. 일본 각지에 흩뿌려져 있는 조각을 모으고 또 모았지만 현장 영상과 인터뷰가 빼곡하게 들어찼던 <노가다>에 비하면 정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선 당사자들은 구치소에 갇혀 있거나 집에 가만히 있는 분들이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장소를 내가 가보는 식으로 영상을 대체하기도 했다. 거기서 내가 느끼는 마음을 표현한다면 관객에게도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까 했다.

감독 자신의 변화도 반영됐을지 모른다. <노가다> 이후 15년이 흘렀다.
<노가다>를 만들 때만 해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면서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부딪히고 깨져보니 세상이 그렇게 녹록지 않고 나는 참 미약한 존재라는 걸 알겠더라.(웃음) 세상에는 나와 다른 무수한 인간이 있고, 내가 아는 세상도 정말 작다. 그러다 보니 좀 겸손해졌다고 해야 할까. 지금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무리해서 지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배웠다.


그동안 <주전장> <카운터스> 등 한국 일본 양국 관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등장했고, 한일 양국에서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동아시아반일전선>도 비슷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가.
너무 크게 주목받는 건 오히려 우려된다. 한국에서야 상관없지만 일본에 사는 전선 관련자들이 괜찮을지 걱정되고 겁도 난다. 설령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조사했던 자료가 모여 언젠가 그들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제공될 수 있도록 힘쓰는 정도가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연구활동가 심아정 씨와 함께 관련 자료 아카이빙 작업을 한다고 들었다.
한국의 5.18이나 병역거부 등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고민과 전선의 문제의식을 엮어 쓴 글을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영화를 상영하고 난 뒤에 벌어지는 토론의 발제문도 모으고 있다. 이렇게 이어지는 흐름이 평화 운동의 흐름으로 확장되길 바라고 있다. 전선은 이미 1970년대에 자기 몫을 다 했다. 그들이 제기한 문제를 안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들은.
지나가다가 산의 풍경을 본다든지, 장마가 걷힌 뒤의 맑고 파란 하늘을 볼 때. 그 때가 정말 좋다.

사진_이종훈(스튜디오 레일라)



2020년 8월 21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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