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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을 재확인 한” <거미집> 김지운 감독
2023년 10월 25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도 회의감이 일기 마련이다. 김지운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좋아서 ‘영화’를 하면서도 때때로 환멸을 느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지, 영화를 왜 시작했는지 질문하곤 했다. 그 자문의 결과물이 송강호와 다섯 번째 호흡을 맞춘 영화 <거미집>이다. 작업하며 영화의 목적이자 꿈 그리고 출발점으로 돌아가 다시금 영화를 향한 사랑을 확인했다는 감독을 만났다. 어떤 환멸의 시간을 통과 중인 사람이라면 <거미집>을 보고 다시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김열’(송강호)을 통해 용기와 힘을 잃지 말라고, 하고 싶은 걸 계속하도록 박차를 가하라 한다.

김 감독 캐릭터에 자신이 어느 정도 투영됐을 것 같은데 어떤가.

아무래도 그렇다. 현장에서 느꼈던 생각이나 느낌, 에피소드들이 김 감독의 대사에 들어가 있다. 특히 김 감독이 신상호 감독과 만나는 장면이 그렇다. 이는 자기 이상형과 가상의 만남이라 하겠는데, 이때 김 감독의 진솔한 감정이 드러난다. 스스로 준비가 돼 있다고 강하게 확신하다가 순간 자기 재능을 의심하고, 한편으로는 주위 모두가 자기를 방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확신과 의심이 혼재하는 그 내면을 보여주는데 이때 김 감독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감독이라는 직업군 나아가 우리들의 자화상 같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세트 뒤의 앙상한 뒷면, 삶의 표면과 이면, 고독한 자신과 군중 속의 자신 등 인생의 여러 대비를 상징한다.

김 감독처럼 온 우주(?)가 방해한다고 느낀 경험이 있나. (웃음)

그렇지, 간혹 ‘왜 나한테만’ 혹은 ‘왜 내게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예전에 박찬욱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루는 천재 같기도 하고, 하루는 쓰레기 같기도 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다. 평소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편이고, 현장에서도 그렇고자 노력하는 감독 중 한 명인데, 그런데도 천국과 지옥을 오가곤 한다. ‘와, 이건 누구도 못 해낼 걸 해냈네!’ 했다가도 ‘왜 이렇게밖에 못 하지, 엉망이네’ 싶다. 도대체 현장이 뭔데, 영화 한 편이 뭐라고 이렇게 나를 뒤흔들어 놓는지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럽다가 또 엄습하는 환희에 찬 순간이 있다. 하루에도 십 수번 반복하곤 한다.

이번 <거미집>도 천국과 지옥의 무한 반복이었나.

이번엔 대체로 천국이었다. 조금 편안하게 찍었다. (웃음) 일단 한 세트장에서 소화해서 이동이 없어서 편했고, 무엇보다 배우들이 다들 알아서 제 역할을 해줬다. 송강호 배우를 비롯해 중심을 단단하게 잡는 배우들 덕분에 편안하게 촬영했다. 정말 캐스팅의 중요성을 실감한 현장이었다.

이번 캐스팅의 우선 기준이 있었다면.

인물들이 끊임없이 대사를 주고받아서 마치 음악처럼 들리도록, 대사를 잘 다루는 배우를 우선적으로 고려했었다. 딕션이 좋고 템포와 호흡에 있어서 감칠맛을 살리는 배우를 찾았다. 한 공간에서 벌어질 일이라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어서 대사로 리듬감을 살리는 동시에 세트를 구석구석 활용했다. 평소 약간 공간 집착형이라, 세트를 만들어 놓으면 그 공간을 모두 활용하는 편이다. 덕분에 미술감독이 뿌듯해한다. (웃음)

‘평론가는 예술가가 되지 못한 사람’이라는 김열의 표현이 재미있더라. 크고 작게 평론 받는 입장에서 하는 귀여운 항변 같은 느낌이랄까.

어느 유명 평론가가 그의 저서에서 사용한 표현이다.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김 감독이 하면 유머러스할 것 같아서 차용해 봤다. 평론가가 점차 사라지는 시대라 어떤 평이든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흥행 여부를 떠나서 <거미집>이 리뷰나 평론에 작은 영향을 미쳐서 조금이라도 활성화에 보탬이 됐으면 한다. 한국영화가 한참 잘 되던 시절에, 영화 잡지만 대여섯 개 발행되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는 1년 내내 매주 (내가) 호명 안되는 날이 없을 정도로 영화를 많이 다뤘었다. 그때는 만든 사람의 코드와 의도를 읽은 후 평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일방적인 비평에 심난하고 상처받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조차도 귀한 시대가 되어서, 영화 속에 옮겨봤다.

영화인이 좋아할 영화라는 평이 많다. 상대적으로 대중성은 떨어진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견해다.

대중성은 항상 고민하는 지점이다. <거미집>으로 오랜만에 칸영화제에 갔는데, 결과물에 대한 인정도 있지만, 필름마켓에서 더 많이 팔릴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다음 작품을 만들 기반을 확보하니 말이다. 이번 <거미집>을 하며 여러모로 <조용한 가족>(1998)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더라. <거미집>보다 더 파격적이고 리스크가 큰, 그야말로 앙상블 코미디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상업영화로는 절대 흥행할 수 없다는 몇 가지 리스크가 있었다. 우선 혼합장르에, 원톱이나 투톱이라 할만한 주인공이 없고, 스타 캐스팅도 아니고 또 엔딩이 열린 구조로 모호하다는 점이 그렇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목록에 네다섯 가지나 걸렸지만, (웃음) 그럼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그래서 대중성이 낮다는 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대중문화는 특수한 것에서 보편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새로움을 갈망하던 이들이 <조용한 가족>을 환호해 준 것처럼 <거미집>이 다시 이런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양한 영화가 조금씩 많아진다면 한국 영화의 체질이 개선되고 하나의 돌파구를 찾지 않을까 한다.

새로움은 당신이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추구할 방향성인 것 같다.

노후를 생각해야 할 감독이 이런다는 게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 같기도 하고, 한국 영화의 자화상 같기도 하다. 최근 <잠>을 아주 흥미롭게 봤다. 작은 이야기를 확장해 나가면서 무엇인가를 탁 건드리더라. <거미집>은 대중의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내가 대중의 취향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 취향대로 가면서 조금씩 대중성을 확장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다양한 영화의 소비층을 위해 관객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 한국영화에서 (내가) 해야 할, 점유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한다.

이번 작업을 하며 영화에 대한 애정이나 시선 혹은 태도가 변화한 점이 있다면.

좋으니까 하면서도 때때로 환멸도 느낀다. 일에 대한 환멸과 자기 환멸이 온다. 나를 의심하게 되고 내가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지 질문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처음 영화를 ‘왜’ 시작했는지 묻게 되더라. 팬데믹 시기에 특히 그랬다. 떠올려 보면 영화를 너무 사랑했고, 내가 사랑한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은 바람이 내 영화의 목적이자 꿈 그리고 출발이었더라. 환멸의 시간을 거치면서 영화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지 않았나 싶은 마음에 <거미집>을 만들었던 것 같다. 나같이 어떤 환멸의 시간을 통과 중인 사람이라면 <거미집>을 보고 다시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김열’을 통해 나 같은 감독도 많으니 용기와 힘을 잃지 말라고, 하고 싶은 걸 계속하도록 박차를 가한 걸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비단 씨네필이 아니라도 충분히 대중적이라고 생각한다.

특정하고 특수한 상황이나 이야기에서 인생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번 <거미집>이 꼭 영화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자기실현의 집착이 강하고, 시행착오와 좌충우돌을 거치면서 어떻게든 해내는 김열, 그 과정에서 자기 검열을 멈추지 않는 그 모습은 여러 면에서 우리들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영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 보편성을 찾으려 하고 관객 역시 찾을 거로 생각한다.

<거미집>의 소소한 웃음 포인트가 여럿이다. 특히 사무실 직원 캐릭터가 그렇다.

웃음 장치를 여기저기에 뿌려 놨다. 빵빵 터지는 웃음이 아니라 ‘킥킥’ 대며 웃는 영화가 되도록 말이다. 물론 모두가 동시에 빵 터지기를 의도한 장면도 몇 부분 있다. 사무실 직원 캐릭터는 배우 자체가 너무 독특한 표정과 얼굴로 말하는 친구다. 상황의 흐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모드가 있다고 할지. 이를 잘 살리면 또 다른 웃음 포인트가 될 듯해 배우의 특징을 그대로 가져갔다.

마지막 질문이다. 송강호 배우와 무려 다섯 번째 작업이다. 그는 당신에게 어떤 배우인가.

장르 영화, 특히 코미디를 만들 때 나만이 느끼는 독특한 뉘앙스가 있다. 다른 사람은 안 웃어도 나만 웃기는 부분이 있었고, 이를 잘 형상화하면 모든 사람이 웃겠다고 생각할 때 만난 배우가 송강호다. 일상의 유머를 너무나 잘 소화하는 배우로 그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독특한 상황과 타이밍에서 특유의 템포로 유머에서 페이소스를 끌어낼 파트너이자 콤비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가를 이룬 사람은 대체로 그 과정이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송강호 배우를 보면서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역시 훌륭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는 이를 실현해 준 배우다.


사진제공. 바른손이앤에이

2023년 10월 25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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