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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표, '너는 내 운명'의 감독이야!
2005년 10월 4일 화요일 | 최경희 기자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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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의 일반 시사회장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무대에 올라선 박진표 감독을 보고 내심 놀랬다. 큰 키에 고집스러운 얼굴. 그는 보통의 감독들보다 알 수 없는 ‘확고함’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성실하게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던 그를 보고. 풋내기 시절 반했었다. 공공연하게 ‘내 이상형’은 박진표 감독 스타일이라면서 떠들어 대던 어느 날, 고대하던 그와의 인터뷰가 드디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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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팬클럽 회장 같은, 열에 들뜬 마음을 감추면서 불성실하게 준비해 온 질문을 장황하게 쏟아낼 수록, 그의 대답은 간단해져만 갔다. 통속멜로 영화, 정확히 말하면 전작과는 다른 목적에서부터 차이점을 긋는, ‘상업성’에 방점을 찍은 영화를 만들고도 그는 여전히 고집스럽고 명쾌했다. 중간 중간 그의 날선 대답과 아닌 것에 대한 확실한 ‘NO'의 의사표시는 <너는 내 운명>의 뻔뻔함과 어찌나 그리 닮아 있던지.

느릿느릿한 말투는 그의 ‘갑옷’이고 길게 내 뿜는 담배 연기는 동의하지 않는 질문에 대한 단죄의 ‘칼’이다. <너는 내 운명>의 박진표 감독과 ‘운명’을 걸고 한 혈전 인터뷰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주시라.

※ 여기서 잠깐
이 인터뷰는 <너는 내 운명> 개봉 바로 전날 했음을 밝혀둔다.

최경희(이하 최): 곧 개봉이다. 전작 <죽어도 좋아!> 개봉 당시와는 좀 다른 기분일 것 같다.
박진표 감독(이하 박): 아직까지도 많이 설레고 조금은 기분 좋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 두렵다는 말의 뜻이 장사(상업적 성공)가 될 것이냐에 관련한 기분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얼마큼 <너는 내 운명>에 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다. 한마디로 ‘떨린다!~’

최: <죽어도 좋아>에서도 그렇고 이번 <너는 내 운명>에서도 ‘빨간 고무 다라이’ 안에 들어가 남녀 주인공들이 사랑을 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빨간 다라이에 대한 애착이 남 달라 보인다.
박: (웃음) 다라이에 대한 애착이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 통 안에 들어가 여름을 나기도 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시골에서도 얼마든지 그렇게 목욕하고 놀 수 있다’를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극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설정이라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사실, <죽어도 좋아>를 못 보신 혹은, 두려워서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 한 번 더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그런 여러 가지 마음이 그 장면에 담겨 있다.

최: 박감독님의 전작 두 편을 보고 어느 정도 다음 작품은 이렇게 찍지 않을까? 나름대로 예상도를 그려봤다. 그런데 <너는 내 운명>은 그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업 장르로써의 급선회를 보인다. 마치 체질개선을 한 듯 말이다. 아니면 취향이 원래부터 이쪽이었나?
박: 그런 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기대를 했는지는 피부로 와 닿지 않은 문제여서 생각해 본 적 없다. 그저, <너는 내 운명>이라는 이야기에 어떤 형식이 가장 잘 어울릴까? 하는 고민은 했다. 모티브가 된 실제 주인공들의 얘기를 듣고 ‘가슴 아픈 사랑,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사랑을 나라도 축복해주고 싶다’라는 의지에 불타 만들었기 때문에 원칙대로 나가는 정공법, 즉 통속적인 형식이 가장 맞는 것 같아, 그 방법(장르적)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래서 초고를 쓸 때부터, <너는 내 운명> 위에다 ‘통속사랑’이라고 붙여버리고 작업에 들어갔다(허허~). 뻔뻔하고 솔직하게 밀고 나가야 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최: 그 통하는 방식에 중점을 둔 거라면, ‘에이즈’라는 소재 자체는 관객에게 좀 부담스러운 소재 아니었을까?
박: 감독의 입장에서 보자면, 내 얘기를 세상에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가 중요하지, 이 이야기가 관객에게 속된 말로, 먹힐까?를 먼저 고민한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하게 된다. 처음엔 관객과의 공감보다는 ‘온전히 이 얘기를 할 수 있어야 될 텐데’에 대한 고민을 먼저 했다. 사실 관객과의 소통 문제는 계산해서 될 일도 아니지 않는가.

최: 그 계산이 안 보이는 씬이기도 한, 석중(황정민)이 모텔 층계에서 은하(전도연)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멀리 놓고(부감샷) 찍었다. 중반 이후 클로즈업이 많지만 초반에는 왠지 모르게 인물들의 폭발하는 감정에 카메라를 들이밀지 않는다.
박: 본능적인 거다. 에이즈 영화냐? 아니냐? 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밀려나 둘만 벼랑 끝에 선 사랑에 주목한 거지 에이즈에 주목한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에이즈’라고 하면 굉장히 두려워하는 일종의 포비아 현상이 있다. 이 영화를 보고 조금이라도 편견에서 벗어나 이 사랑에 눈물짓고, 이 사랑을 보면서 울고, 이렇게 감동을 받으면 은연중에 생겨나는 따뜻한 마음이 있을 게다. 결국 내가 보고 싶은 세상에 관한 이야기가 ‘너는 내 운명’이다.

최: 혹시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이 사랑이 어떻게 될까? 하는 감독님의 개인적 궁금증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박: 그럴 수도 있다. 사람은 호기심이나 궁금함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그것을 시작 삼아 출발한다. 직설화법으로 말하자면 <너는 내 운명>의 엔딩 장면에서 두 주인공이 행복하게 떠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우리가 볼 때는 미안함과 불쌍함 그리고 씁쓸한 마음이 든다. 다시 말해, 이런 복합적인 기분에서 내 스스로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그 둘을 제대로 축복해주자’ 이런 마음인데 그게 통할지 안 통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최: ‘은하’는 좋은 여자지만 사랑으로 덮어주기에는 왠지 극단까지 밀려나거나 혹은, 몰아가는 인물이다. 왠지 나쁜 여자와 좋은 남자의 사랑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박: 단편적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끈적끈적 깊이 생각하면 결정적인 순가에 판단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용서해 주는 건 ‘은하’다. 어쨌든 마지막에 손을 잡아주는 것도 은하고. 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석중의 진심, 석중의 사랑 이야기, 지고지순함을 드러낸 게 아니다.

둘의 아름다룬 사랑을 찍었고 또한 두 배우가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은 거고. 나 자신은 절박한 심정으로 영화를 만든 거고 그래서 영화 안에 진심이 녹아 있고, 그 진심이 관객들한테 전달되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 참 예쁜 사랑인데, 어렵고 힘들어도 이렇게 예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여태까지 참 치사하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을 관객들이 하면서 이 사랑을 축복해주는 마음이 진심으로 생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찍었다.

최: 그래서 관객들이 좀 더 쉽게 그런 마음이 들라고 어찌보면 참 뻔한 설정으로 보이는, 80년대 멜로의 감수성을 영화에 나열한 것인가?
박: 그런 것 같다. 표현 방법이 옛날식인 문제는, 복고가 유행할 때는 그게 요즘 스타일이 되듯이,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없다. 대신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 방식 또는 표현의 문제에 있어 너무 유치해 보여 못하는 것들을 요즘 아무도 영화 속에 담아내지 않는다. 그런 영화도 없고 해서 나라도 해보자 했던 거다. 좀 구닥다리로 보여도 그런 영화적 표현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은 없다. 왜냐면 아까부터 말하지만 뻔뻔하게 갈려고 작정하고 찍었고 그게 일반 대중들의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박: 그렇지 않나?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 사랑하실 때 애인한테 ‘너 내 옆에 있어줄 꺼지 끝까지? 너 언제까지 사랑할 거야? 죽을 때까지 지켜줄 꺼지?’ 이런 말 기자양반은 안하남?
최: 애인이 있다면 당근 하죠~ ㅠㅠ 나도 정말 그런 말해보고 사는 게 소원입니다!!
박: 그거 한다고 해서 옛날식이냐? 다만 요즘 영화들이 포장을 세련되게 달리 할 뿐이다. 다들 그렇게 말하거나 생각하지만 유치해서 남들 앞에서 말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생각한다. 뭐 사실, 표현 방식이 투박하고 뻔뻔스러워서 나도 좀 죄송한데~ 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

최: 소재를 고르는 안목이나 시선이 참 좋다. 그런 쪽으로 능통해 보인다는 말이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쪽 방면으로 능력이 발달돼 보이는데 어떻게 하면 그런 시선을 가질 수 있는가? 세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훈련이라도 따로 하는가?
박: 발달돼 보이나?
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당근이다
박: (웃음)남들이 굳이 하지 않으려는 소재,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얘기, 안 해도 될 이야기만 골라서 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게 뭐 특별한 시각(감독의 시선)이 발달해서가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다큐멘터리 PD생활을 방송국에서 10년 이상 하다 보니, 좋은 선배들 밑에서 일도 배우고, 그 선배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고 닮아야 되겠다고, 다짐 비스무래 한 적도 있다. 어쨌든 남들이 하기 싫거나 못하는 얘기 나라도 할 수 있고 한번 해볼까? 한 거지, 발달했는지 안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이때 겸손한 미소 한방! 날리다)

최: 요즘 감독님이 인터뷰에만 응하다 보니 정작 자신이 더 묻고 싶은 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답만 하는 입장인지도 모르겠다.
박: 궁금한데 영화가 워낙 쉽지 않은가~. 이거 뭐 어린애들이 봐도 물론 나이제한 때문에 못 보지만, 이해하기 쉬운 얘기고 때문에 과연 이 사람들이 뭘 궁금해 할까? 라는 의문은 안 든다. 다만 ‘너도 이 이야기에 동의하니? 울었니? 울고 나서 창피하지 않았어? 어떤 기분이야?’ 이런 것이 궁금하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사람들이 많이 울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많이 울수록, 그 울고 나서 받은 감동들이 본인들 스스로 창피하지 않게 생각되고, 그걸 내 입장에서 해석하자면 내가 하는 얘기들을 많이 받아들인 걸로 나는 알아듣기 때문이다. 일부러 막 울리려고 작정을 한건 아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듣고 느꼈을 때,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울기를 원했다.

박: 이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최: 부끄럽게 감독님은 별걸 다 물어 보시네~ 사실, 많이 울었다. 이 지긋지긋한 신파 멜로에 내가 또 다시 무너질지 미처 예상 못했다. 그 뻔함 안에 진심을 느껴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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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영화의 감정선을 조절하는 게 상업 장르 안에서 감독의 몫이다. 웃음과 눈물의 수위조절은 어떻게 했는가?
박: 나도 나름대로 거기에 대한 계산을 미리 했다.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게 이렇게 좀 왔다갔다 찍으려고 했는데, 그게 성공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지금 유보 상태다. 본능적으로 이 얘기에, 극중 인물들에게 관객들이 꽂혀야 되고 꽂히면 꽂힐수록 결국엔 내가 하고 싶던,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사랑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줄 거고 관심을 가져주면 에이즈 보균자나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편견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조금씩조금씩 알아가는 과정들, 내 생각에 물들어가는 과정들이 나에겐 기쁨이 된다.

최: <죽어도 좋아>를 보면서 영화라는 매체를 가지고 자신의 하고픈 말은 다 한, 욕심 많은 감독으로 당신을 기억한다. 아니나 다를까! <너는 내 운명>을 보면서도 욕심 안 부린 척 하지만 할 말은 다 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예를 들자면 은하의 환상장면은 감독으로서 말하고자 하는 것 때문에 전작의 다큐멘터리적 기법과는 대비되는 방법을 취한 것 같다.
박: 욕심 안 부렸는데..(허허) 그 환상장면은 은하가 사실은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장면이다.
※ 여기서 잠깐
박진표 감독은 전도연을 ‘은하’라고 부른다. 그에게 전도연은 은하요, 은하가 전도연이란다.

나조차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에이즈를 ‘천형’이라고 부른다. ‘에이즈’라면 ‘윽’하는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은가? 만약 그 병에 걸렸으면 과연 어떤 마음일까? 그 장면의 컨셉은 이런 생각에 기초해 죽음보다 더 커다란 외로움, 죽음보다 더 무서운 두려움, 이런 것들까지 다 포함한 ‘외로움’으로 표현 해보자. 그래서 환상장면으로 찍었다.

최: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배우와 감독 그리고 스텝들 상호간의 신뢰가 없었다면 참 만들기 어려운 작품이다. 영화를 보기만 해도 당신들의 신뢰감이 보일 지경이다.
박: 그냥 배우나 스텝들에게 ‘우리 잘 해보자’. ‘잘’ 주로 이런 방법을 현장에서 썼다. 상황을 배우들에게 던져줘 배우들이 고민하게 만들고 나름대로 배우들이 그 인물에 빠져 어떤 구체적인 상황을 꺼내들면 스텝들이 그에 맞는 현장 준비를 해주었다. 난 그동안 띵띵~ 놀고(웃음). 석중과 은하의 면회실 장면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황정민씨가 뛰어 올라가서 손이라도 잡고 싶다고 해서 스피커 만들고 그게 뚫어지게 미술팀이 만든 거다. 대본에는 상황만 주어지고 그런 디테일한 게 없었는데 배우와 스텝들이 인물이나 이야기에 동화돼서 같이 만들어 갔다. 음악 틀어놓고(웃음)

최: 맞다! 유행가(싸이의 ‘낙원’같은) 틀어놓고 작업했다는 말을 들었다.
박: 내가 들은 건 아니고...... 사실, 나도 들었다(허허~) 유행가 들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나? 배우와 스텝들 현장에 오면 많이들 긴장한다. 그럴 때 음악 틀어주면 긴장도 풀리고 쾌적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어 좋다.

최: 다방문화에 관해 감독님이 참 정확히 알고 있다는 분석을 모시기 기자분이 했다(웃음).................
박: 다 안다고 하면 내가 무슨 그런 사람도 아니고. 어쨌든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는데 익숙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했던 사람으로서,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어야 그런 장면이 나온다. 사전 취재도 많이 하고 직접 가서 얘기도 듣고, 그렇게 해서 영화 속에 표현해낸 것이다.

최: 장례식장에서의 월드컵 응원 장면은 은하와 이별한 석중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것인가? 아니면 웃기려고? 실제로 월드컵 시절 이랬지만 말이다. 영화로 막상 보자니 참 재미있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더라.
박: 계산해서 그 장면이 나온 게 아니다(웃음). 정말 본능적인 것 같은데 장례식장에서 선주들까지 그렇게 대한민국에 열광하는 게, 그런 애국심이, 말도 안 되는 애국심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월드컵 당시 대게 궁금했다. 나 자신도 평소에 축구를 좋아하던 사람도 아닌데 막~ 열광하면서 응원했다. 그런 와중에 생겨난 일이었고 그래서 가감 없이 영화 속에 집어논거고... 석중의 마음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게 맞나? 맞겠죠(표정은 아닌 듯).

최: 처음부터 ‘은하’역에는 ‘전도연’이라고 점찍은 걸로 알고 있다.
박: 일단 대한민국 여배우 중에,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 통속적인 대본을 들고 나타나 시나리오를 건넸을 때, 더더군다나 기존에 있던 캐릭터가 아니라 에이즈보균자에 윤락녀 역할도 해야 되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누가 한다 싶었을까? 생각된다(웃음).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은 역할인데다 이런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여성, 거기다 촌스러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섹시함까지 아우르는 배우는 ‘전도연’ 밖에 없다고 본다.

최: 마찬가지로 ‘석중’ 역할도 처음부터 ‘황정민’을 생각했는가?
박: ‘황정민’은 정말 다행이도 대본을 보고 많이 울었다. 울고 나서 해보겠다고 단박에 답변을 줘서, 감독으로서 고맙게 여긴다. 같이 작업하고 싶던 배우들하고 실제로도 고스란히 같이 영화를 만든 건 정말 행운이다.

최: 제작사 봄(대표:오정완)과 함께 이번 작품을 같이 했는데, 제작사와의 믿음도 이 영화엔 묻어난다.
박: 제작사 ‘봄 영화사’는 이 시나리오를 가져갔을 때 흔쾌하게 ‘합시다’라고 해줬다.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 여기서 잠깐
박진표 감독은 자신의 전작 <죽어도 좋아>가 워낙에 쎈 영화고 인상 깊은 데뷔작이라 은연중에 남들이 자신을 어떤 고정관념으로 보지 않을까 에 대한 염려가 아주 살짝 보였다.

그 동안 ‘영화사 봄’의 작품을 보면 기획영화도 없고 대부분 용감한 영화들이 많았다. 그런 점이 오히려 <너는 내 운명>의 색깔과 잘 맞았던 것 같다. 상업영화를 처음 해보는 거라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영화 속의 거침을 세련되게 세공해주었을 뿐, 그 나머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하게 도와주었다. 좋은 ‘동지’자 파트너였다.

최: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 본인의 모습을 ‘석중’에게 투영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박: 시나리오를 쓸 때 거의 모든 등장인물에 내가 들어간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은하’같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석중이 같다고 한다. 모든 등장인물도 마찬가지라 본다.

최: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은하’라는 인물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걸 석중을 통해서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질문 한 건데... 내가 질문을 잘못한 것 같다. 죄송합니다~
박: 네~ 사과하세요(웃음)

최: 박진표 감독님의 ‘정체성’이 궁금하다! 다음에 어떤 작품을 찍을지 가늠이 안 슨다. 정체를 밝혀라~
박: 정체성 나도 잘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을지 나도 모르기 때문에(웃음). 다만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사랑이야기이든 어떤 이야기든 간에 ‘사람!’, 사람에 관한 작품을 찍는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상업적인 형식을 빌리든 반대로 비상업적인 소통 방식을 취하든, 그런 그릇이나 포장은 나한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얼마큼 ‘변질’되지 않고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최: 약속한 시간이 끝났다. 인터뷰에 응해줘 감사하다.
박: 카메라로 찍는 것에 익숙한 사람인지라 카메라에 막상 내가 찍히려니 어색해 혼났다(웃음).
최: 예쁘게 영상과 사진 뽑아줄게요. 걱정 마시라!

취재: 최경희 기자
사진: 이한욱 PD
영상: KTV
영상편집: 권영탕 PD

9 )
yutogirl
음...많은 걸 배우고 갑니다. 옹골찬 인터뷰네요   
2005-10-05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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