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엄하게도 "캐러비안의 해적"을 보러갔다가 선후배들과 같이 엄하게 보게 된 영화....
기존에 나는 이 영화를 볼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본의아니게 스포일러를 너무 많이 접해버렸었다. "씨네21"을 통해서 읽은 칼럼만 두세개는 되는듯 하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의 내 감정은 이랬다. 바람난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감독의 메시지... 하지만 난 그게 너무 싫다. 인정은 하지만 동의는 싫다... 는게 내 심정의 요약이랄까....
줄거리는 위에 적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자.
일단 이 영화에서 맘에 안든점은 남자의 도구화이다. 감독은 기존의 억눌려져서 성의 억압속에 살아가는 여자들의 모습을 이 영화에서 해방시킨다. 결혼해서 오히려 더 섹스를 안하는것 같다는 문소리의 고백은 곧 고삐리녀석과의 정사로 이어지고.. 황정민이 연기한 남자주인공의 바람상대는 능동적으로 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한 자유연애를 펼친다. 물론 윤여정의 남자선택 또한 무시못하겠지. 다만..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난 그런 사랑관은 싫지만... 그건 내가 보수적이어서지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는건 아니다. 즉 나랑 다르지 나랑 틀린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왜 그런 역할 역전현상이 남자에게까지 나타나는가... 이 영화에서 남자는 여성의 성적 해방을 위한 도구로서 존재한다. 황정민은 여자배우의 오르가즘을 위해 필요한 도구이다. "엉덩이 더 올려봐 " 등의 낯뜨거운 대사 등등 =.=;;; 윤여정이 택한 재혼남이나 고삐리나 머... 하여간 도구다. 여자를 위한 도구.. 그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는가?
성의 해방도 좋다. 하지만 성의 해방이 곧 오르가즘은 아니다. 성의해방시켜준다고 그게 사랑의 대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난 적어도 최소한 인간이 인간적 가치를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사랑이란 정신적 사랑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단순히 성적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상대적 도구로서 사랑을 결정짓는다는 것은 내가 보수적이어서라고 변명하기에는 너무나 인정하기 싫은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녀가 이영화에서 바뀌었어도 싫다 =.=;; 사랑은 정신적인 사랑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난 믿으니까.. 내 가치관이 변하지 않길 바란다. 쩝..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화가 내세우는 가치관은 음미해볼만 하다. 모두가 소유욕에서 비롯되는 애정의 비극들... 결혼이라는 제도는 그 정점에 있다. 하지만 그 제도자체가 아직 남성위주로 짜여져있기에 (물론 그로인해 남자가 받는 피해 또한 존재한다) 적어도 성적 가치관에 있어서는 여자가 피해받는게 얼마나 크던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문소리의 가치관은 정말 소위말하는 쿨한 여자이다. 남편의 바람이 그의 즐거움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상관이 없다는 생각들.. 정말 쿨 하다 -.-;;;
이러한 가치관들은 도덕을 무시한다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설픈 소유욕으로 인해 고통받는 일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대안적 가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가치관 거부하겠다. 기본적으로 사랑은 소유욕을 기반으로하고 그것은 과거까지 가지 않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상호 소유를 인정하는 가치관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황정민은 자기가 비록 바람을 폈지만 아내의 고삐리와의 연애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정말 문소리는 남편같은 불만이 없었을까? 정말 그정도로 쿨했을까...
이 영화의 백미는 문소리가 고삐리(봉태규)와의 섹스에서 오르가즘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억압되어온, 참아야만 했던 욕망속에서 해방되면서 느끼는 눈물... 하지만 과연 그 눈물이 그런 복잡한 성적인 회한에서만 기반한 눈물이었을까...
그냥 씁쓸하다. 이런 가치관을 표방하는 영화가 대안으로서 주목받는다는건... 나는 오히려 이 영화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불쌍했다... 소유하지도 소유받지도 않기에 자유로워보이지만 사실은 외로워서 괴로워하는 캐릭터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불쌍한 사람들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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