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노장 감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밀리언 달러 베이비
jimmani 2005-03-08 오전 10:01:31 885   [1]


뉴스나 시사 프로 등 각종 매체를 접하다보면 '늦깎이'라는 말이 붙는 사람들이 등장할 때가 많다. 서른이 넘어서 중학교 공부를 다시 하는 조직 출신 아저씨가 화제가 된 적도 있었고, 한글 공부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쩌면 남들 배워야 할 나이에 배우지 않고 뒤늦게 배운 것이 때를 잘못 잡은 게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 대다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뒤늦은 도전에 아름답다는 찬사를 보낸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은 단지 나이들었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고 뒤늦게 찾아온 기회를 꽉 잡았다는, 용기있는 일을 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열정에 비하면, 그들의 나이 따위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부터 얘기할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그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두가 늦었다고 생각할 시기에 다시 새로운 목표가 생긴 사람들, 그들의 서로의 동병상련을 이해하고 서로를 받아들이기까지가 조용하지만 깊은 호흡으로 그려졌다. 아마도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연세에 상관없이 칠순이 훨씬 넘어서도 여전히 감독 활동을 하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들어서 더욱 마음에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젊었을 적에는 상처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다 트레이너로 전직한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 이미 나이를 많이 먹은 그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허름한 체육관에서 30년이 다되도록 친구 사이인 스트랩(모건 프리먼)과 체육관을 운영하며 고집스럽게 복싱 인생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의 고집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인지, 그가 키우던 챔피언이 유력했던 젊은 선수도 유명 매니저에게로 가버리고, 어느 순간 그는 외로운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런 그의 체육관을 항상 방문하는 이가 있었으니, 나이 서른이 넘어서 뒤늦게 복싱에 입문하게 된 여인 매기(힐러리 스웽크). 가난한 형편에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음식을 모아서 끼니를 해결해도 모자란 상황이지만, 복싱에 대한 열정은 감히 상상을 불허한다. 이러한 그녀의 열정이 무모해보였는지, 프랭키는 처음엔 그녀를 돌보기를 극구 거부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녀의 그런 열정에 어느 정도 탄복을 했는지, 아니면 중간에서 중매를 선 스트랩의 역할이 성공했는지, 프랭키는 그녀를 돌보기 시작한다. 오로지 열정만으로 뭉친 그들, 그들은 서로의 힘으로 시합을 이어나가면서 서로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되는데...
 
이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주요 연기상을 수상한 만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에 나오는 세 주요인물-힐러리 스웽크, 클린트 이스트우드, 모건 프리먼의 연기 모두 훌륭하다.
힐러리 스웽크는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 이어 이번에도 여성복서라는 제법 강렬한 역할을 맡으면서 아카데미를 거머쥐었다. 정말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매기의 열정이 어쩌면 실제 그녀의 열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복서 연기를 하기 위해 훈련도 많이 받았다는데, 영화 속에서 훈련을 받고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게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중에서도 그녀가 줄넘기를 하는 장면에선, 울퉁불퉁 꼼지락거리는 근육에 극장 안의 사람들이 나지막히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변신만으로 아카데미상을 탄 건 아니겠지. 내적으로도 그녀는 강하고 나지막한 액센트의 목소리로 대사를 소화하며, 열정으로 똘똘 뭉쳐 거칠 것이 없는 매기의 모습으로 온전히 변해 있었다. 특히나 여기서 결말을 얘기할 순 없지만, 후반부에서의 그녀의 연기는 실로 대단했다. 많은 대사가 없이도, 표정이나 눈빛 하나로도 감정을 거의 완벽히 표현해내고 있었다. 역시 젊은 나이에 아카데미를 두번 거머쥘 만한 연기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에서 그가 감독뿐 아니라, 연기도 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사실 지금까지 그가 영화 속에서 보여준 연기는 그의 목소리도 그렇고 평소 이미지도 그래서인지, 남자답기만 하고 다소 경직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그렇지 않았다. 노쇠한 트레이너로서, 괴팍하고 까다로운 구석이 있는 그냥 보통 어르신의 모습을 훌륭하게 소화해내었다. 중간중간에 모건 프리먼과 주고받는 말싸움을 듣고 있자면 나이가 드셨지만 두 분이 참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머리도 많이 벗겨지시고, 성질도 많이 부리고 그만큼 눈물도 많이 흘리는 영화 속 역할이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 어느 때보다 마음에 와닿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가 아니었나 싶다.
모건 프리먼의 연기도 역시나였다. 영화 전체의 나레이션을 맡기도 한 그는, 특유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약간의 허스키함을 넣어 변화를 주면서, 영화 속 그가 맡은 스트랩의 다소 괴팍하면서도 엉뚱한 면을 그대로 표현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무뚝뚝하고 무관심한 척하지만, 늘 뒤에 가서는 극진한 애정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이 참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이는 별다른 기교 없이, 마치 연기를 하지 않는 것처럼 툭툭 대사를 내뱉고 행동을 하는 모건 프리먼의 연기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는 정말, 연기같지 않은 연기를 함으로써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느림의 미학이 있는 영화다. 복싱 영화에 느림의 미학이 있다면 다소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그렇다. 물론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복싱 경기 장면은 대단히 스피디하다. 그러나 그외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느리다고 해야 맞을 만큼 호흡이 굉장히 여유롭다. 후반부에 가면 특히나 그 느린 호흡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역시나 결말을 여기서 말하기가 곤란하다.-_-;;)
이러한 영화의 느린 호흡은, 영화 속 인물들의 처지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중심 축이 되는 세 인물-프랭키, 매기, 스트랩의 공통점은 셋 다 시간에 발이 묶여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정말 있지만, 세월이라는 장애물이 그들을 막는다. 프랭키는 누군가 큰 선수를 키우고 싶었건만, 오히려 나이에 걸맞는 여유로움이 그걸 힘들게 했고, 매기는 서른살 넘어서 그것도 여자가 복싱을 시작하는 편견이 자신을 힘들게 했다. 그리고 스트랩은 통산 109회 시합이라는 기록에서 좀 더 추가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역시 나이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렇게 세 주인공 모두 세월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지만, 역시 그들은 그 세월만큼 숙성했기 때문인지 짧은 시간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섣불리 타이틀전에 참가하지 않고 가장 낮은 시합에서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갔으며, 늦었다고 생각할 시기에 가장 기본적인 발의 움직임부터 다시 시작했다. 아마도 그들은 세월의 흐름을 지나면서, '서두름'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란 걸 몇번이고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이 영화는, 뒤늦게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사실, 우리가 TV를 통해 이러한 사람들을 보면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막상 나나, 내 주변의 사람들이 뒤늦게 뭔가를 하려고 들면 일단은 거부하고 본다. '에이, 이미 이걸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는데...' 하는 노파심에 시작도 하기 전에 일을 접을 때가 많다. 이런 생각을 지닌 우리들에게, 이 영화는 나지막히 속삭인다. 무언가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열정만 있다면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그 시작에 더욱 추진력을 불어넣어줄 연료가 될 것이라고.
 
이 영화가 강조하는 또 다른 메시지는, 서로에 대한 진솔한 소통이다. 영화가 복싱 영화의 형식을 빌리고 있긴 하지만, 영화 상당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소통'에 관한 것이다. 사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타인들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프랭키는 딸에게 꾸준히 편지를 보내지만 항상 되돌아올 정도로 가족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매기는 가족이 있지만, 집을 사다주면 보조금 끊긴다고 투덜대고 돈 좀 벌면 재산이나 탐하는, 그녀와는 코드가 좀 안맞는 가족들이다. 스트랩은 그나마 가족에 대한 언급이 적지만, 역시나 항상혼자 등장하고 체육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으로 보아 가족은 없어보인다. 이렇게 고립되어 있던 세 명의 인물들이 복싱이라는 같은 관심사 아래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안게 된다.
만약,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은 채 혼자 살아가다가, 이렇게 나와 똑같은 목표를 갖고 있고 똑같은 열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같은 처지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마치 혈육처럼 서로를 감싸안을 수 있게 된다면, 이보다 더 보석같은 인간 관계가 또 어디 있을까. 영화는 지금 비록 혼자라도, 누군가 나와 같은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어딘가 존재한다면, 그와의 관계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빛나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제목의 의미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뜻밖의 행운'이듯이, 정말 세상은 온통 우리가 만나지 못한 뜻밖의 행운으로 가득차 있을지 모른다. 그 행운의 대부분은 아마도 이렇게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고.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제대로 된 성공을 구가하지 못한 채 삶이 버거운 형편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열정'이라는 그 어느 것보다 값비싼 재산이 있기에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프랭키가 아무리 무시해도 매기가 꾸준히 체육관을 나오고, 데인저라는 청년이 아무리 바보취급을 당해도 끝까지 해보겠다며 체육관을 나오듯, 열정은 그들이 아무리 쓰러져도 다시금 일어서게 하는 거름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아카데미가 이 영화의 손을 들어준 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눈부신 성공이나 화려한 시각적 즐거움은 이 영화에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렇게 우리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놀랄만큼 감동적인 메시지를 이끌어낸다. 이것은 아마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오랫동안 성숙한 노장 감독이 아니고선 전해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곳에서 먹는 음식들보다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이 그 정성과 사랑때문에 더욱 맛있듯, 나이든 감독만이 쌓을 수 있는 깊은 내공과 철학이 스며있기에 이 영화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세상이 점점 젊은 감독을 찾고 있긴 하지만, 이래서 노장 감독은 세상에 여전히 존재해야 한다.

(총 0명 참여)
1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Million Dollar Baby)
제작사 : Lakeshore Entertainment / 배급사 : 노바미디어
수입사 : 노바미디어 /
공지 티켓나눔터 이용 중지 예정 안내! movist 14.06.05
공지 [중요] 모든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 관련 안내 movist 07.08.03
공지 영화예매권을 향한 무한 도전! 응모방식 및 당첨자 확인 movist 11.08.17
27971 [밀리언 달..] 초반의 유쾌함 후반의 감동(스포일러) yhc1130 05.03.19 942 2
27929 [밀리언 달..] 꼭 한 번 ysj715 05.03.16 858 2
27923 [밀리언 달..] 밀리언 달러 베이비 (2004, Million Dollar Baby) kjmctx09 05.03.15 1281 5
27915 [밀리언 달..] 오랜 연륜이 만들어낸 영화적 승리,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다! dogma 05.03.15 932 3
27902 [밀리언 달..] [cropper]숨이 막히고, 말문이 그치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2) cropper 05.03.14 1723 23
27892 [밀리언 달..] 희미한 인생, 그 가운데서 빛나는 inbi 05.03.13 860 2
27886 [밀리언 달..] 백만개의 별. 그 이상의 가치의 영화!! tmdgns1223 05.03.13 1225 7
27878 [밀리언 달..] 감동이 밀려오는 mir1778 05.03.12 900 3
27876 [밀리언 달..] 제목 그대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 hiro8426 05.03.11 1004 1
27870 [밀리언 달..] 백만불 가치 이상으로 그녀에게 얻은 것 !! odding79 05.03.11 1122 4
27860 [밀리언 달..] 강추! 힘든일을 겪고 계시는분들에게.. hes820618 05.03.10 839 1
27840 [밀리언 달..] 근래에 보기드문 감동적인 이야기 iris12k 05.03.09 874 1
27835 [밀리언 달..] 후회 없는 인생 blueteo 05.03.09 908 3
27831 [밀리언 달..] 인생은 한방~~^^; woo0116 05.03.08 855 3
27828 [밀리언 달..] 대화속에서 묻어나는 잔잔한웃음.... j9003 05.03.08 788 2
27827 [밀리언 달..] 짜한 감동..진정한 모쿠슈라~~ syshlv20 05.03.08 816 2
현재 [밀리언 달..] 노장 감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jimmani 05.03.08 885 1
27823 [밀리언 달..] "모쿠슈라" 를 외쳐보며.. bek78 05.03.08 1256 2
27796 [밀리언 달..] 진정한 감동이야기.. ahj70 05.03.05 985 5
27784 [밀리언 달..] 모쿠슈라~~ nicky35 05.03.04 914 3
27778 [밀리언 달..] 자신과 싸우는 사람들의 만남의 감동 스토리!! xerox1023 05.03.03 919 3
27774 [밀리언 달..] 헐리웃식 '감동'에 숨겨놓은 진짜 주제는 '단절'이다. (4) safellee 05.03.02 1330 4
27758 [밀리언 달..] 영화후기 적어봅니다 bbackboy 05.03.02 884 3
27749 [밀리언 달..] 의지가 강한 삶은 노력에 가깝다 -! kkogi83 05.03.01 706 3
27666 [밀리언 달..] 반가운 노장들과의 만남... CrazyIce 05.02.23 816 3
27659 [밀리언 달..] 풋풋한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 (1) shm828 05.02.23 849 0
27654 [밀리언 달..] 완벽한 감동!!! jjokko11 05.02.22 792 2
27639 [밀리언 달..] 젠종. redhair 05.02.21 920 1
27632 [밀리언 달..] 소중한 사랑 vegeta922 05.02.21 788 3
27621 [밀리언 달..] 통쾌한 한방/잔잔한 감동 dollmury 05.02.20 961 2
27620 [밀리언 달..] 또 다른 이름으로 기억되다! oyunj 05.02.20 878 2
27613 [밀리언 달..] 가족, 그 이상의 소중한 사람. 모쿠슈라! 가슴이 메어지는 감동! jestous 05.02.20 1019 2

1 | 2 | 3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