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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우주전쟁
jimmani 2005-07-08 오전 2:24:41 1228   [8]

<스포일러 있음>
 
평화롭기만 하던 세상에서 살아가다 어느날 갑자기, 누군지 알 수 없는 존재가 순식간에 세상을 험상궃게 만들어놓을 때 우리는 두려워 하게 된다. 뜬금없이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날 때,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저지른 테러때문에 세계적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해질 때처럼 말이다. 외계인의 침공이라는 일도 그런 두려움을 줄 수 있을까. 사실 그동안 영화 속에서 UFO를 타고 나타난 괴상한 형상의 외계인이 요상한 목소리를 내는 식으로 해서 지구를 파괴하는 장면들은, 분명 실제로 일어난다면 무서운 일이겠지만 꽤나 우스꽝스럽게 그려졌던 게 사실이다.(물론 <바디에일리언>처럼 소리없이 사람의 몸속으로 침투하는 경우에는 상당히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 <우주전쟁>에서 외계인들이 지구에 퍼붓는 공격은, 정말 말그대로 '뜨악'이다. 단순히 스케일면에서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정말 왠만한 공포영화 못지 않게 소름이 돋게 만든다. 'E.T.'라는 영화 사상 가장 사랑스런 외계인을 데려다가 외계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쇄신에 주력(?)했던 스필버그 감독이 어느새 이렇게 외계인을 험상궃고 대책없는 캐릭터로 그리는 방향으로 선회했단 말인가. 그만큼 이 영화는 '외계인'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다소 유치한 어감과 상관없이, 외계인의 공격이 상당히 '무섭게' 느껴지게 만드는 영화이다.
 
우리의 주인공 레이 페리어(톰 크루즈)는 지극히 평범한 미국 시민 중에 한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 아들을 낳고 뒤이어 딸을 낳았지만 전 부인 매리앤(미란다 오토)과는 이미 이혼한 상태이고, 힘겹게 노동자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던 중 메리앤이 친정집에 가게 되면서 며칠동안 아들 로비(저스틴 채트윈)와 딸 레이첼(다코타 패닝)을 맡게 되는데, 혼자 사는 남자의 집으로서 기본적인 살림도 제대로 안되어 있는 상황에 자식들마저 레이에게 다소 퉁명스럽다. 그러던 중, 요상스런 하늘의 움직임과 함께 외부로부터 온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기계들이 나타나 뜬금없이 사람들을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버리기 시작하고, 가족들에게 닥쳐올 극한의 위험을 느낀 레이는 아들, 딸을 데리고 집을 나서기 시작한다. 언제 그들의 공격이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들은 보스턴에 있는 아내이자 어머니 메리앤을 만나기 위해 죽음의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우리가 이 영화를 그토록 기대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 SF에 제대로 일가견이 있는 스필버그 감독이, 어쩌면 촌티 풀풀 나는 소재일 수도 있을 '외계인의 침공'을 어떻게 그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냈을지, 또 전매특허인 거대한 스케일이 얼마나 잘 표현되어 있을지 궁금해서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지구라는 행성과 걸맞지 않게 보이는 거대한 규모로 온 도시를 휩쓸고 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입을 벌어지게 하고도 남는다. 피자반죽마냥 울룩불룩거리는 땅바닥의 움직임, 고질라는 상대도 안될 살인기계들의 당당한 풍채는 스케일 면에서 단연 압권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스필버그가 그들의 공격을 단순히 눈요기거리로만이 아니라 <죠스>, <쥬라기 공원> 이후 이 양반이 호러 종류에 제대로 삘받았구먼 하고 생각될 만큼 무섭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랬다. 만화적으로 태워버리거나 뿅 사라지게 하는 것도 아니고, 광선을 쏘는 순간 사람들이 공기처럼 가벼운 재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장면은, 그 공허하면서도 빠른 느낌때문인지 꽤 오싹하게 느껴졌다. 밤이 되어 재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옷들이 공중으로 흩어지는 장면,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로 수많은 시신들이 스르르 떠가는 장면은 어떤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존재 앞에 인간의 목숨이 개미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꽤 무섭게 느껴졌다.
 
외계인의 습격의 '무서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을 잿더미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피를 빨아 온 천지를 피로 실을 짠 듯 옭아매어놓은 광경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던 벌건 지옥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온갖 사람, 동물의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고 혈관처럼 핏줄기들이 얽혀있는 모습은, '이 영화가 SF 영화이면서도 동시에 살짝 하드고어 영화로군'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이렇게 이 영화 속 외계인들의 침공 규모와 방법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고,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이르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이 할 것은?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홀연히 지구 구출의 길로 나서는 것? 아니다. 무조건 도망쳐야지. 일단 1분 1초라도 더 살아야지. 영화 속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도, 결코 나라에서 중요 직책을 담당하고 있다거나 거창한 명분을 띄고 있는 인물들이 아니다. 그 어떤 유별난 힘도 갖고 있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고, 자식들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아비규환의 지옥도에서 사람들을 구한다거나 외계인들을 응징한다거나 하는 결심은 지극히 불필요한 것이며 오히려 위험한 발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그나마 영웅적인 행동을 하려는 레이의 아들 로비나 중반 이후에 만나는 약간 광기가 있는 듯한 할란 오길비(팀 로빈스)는 주인공의 시각에서 볼 때, 또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참 답답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뭐하러 주변 사람들까지 궁지에 빠뜨리면서 전혀 확신없는 무모한 시도를 하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이 그들을 보면서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극히 소수의 영웅들이 아닌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런 공격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는 거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편으로 이 영화는 재난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장 현실적으로 드러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레이 가족이 차를 몰고 항구에 다 와 갈 때쯤 갑자기 들이닥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좀 심한 말일 수 있지만 마치 공포영화 속 좀비들을 연상시킬 정도로 무서웠다. 좀 심한 거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저런 상황이 들이닥친다고 해서 우리가 저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는 결코 보장할 수 없다. 이렇게 영화는 외계인의 침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영웅적이진 못하고 나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모습을 꽤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저런 위기 앞에 내일 죽을지 살지 알 수 없는 사람한테, 어쩌면 영웅심리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차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레이 가족처럼 다소 이기적으로까지 변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처럼 영화는 이야기 구성, 전개 면에서 이상적인 이미지보다는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미지로 나아간다. 외계인의 공격에 대해 왜, 어떤 경위로 침공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들이 굴복했는지 그런 건 보여주지 않는다. 사실 나도 처음에 영화가 끝날 무렵, 어쩌다 보니까 쓰러져 있고 방어막이 없어지게 된 그들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좀 더 생각해보니까 뭔가 품고 있는 뜻이 있는 듯 싶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당장의 생존이 급한 마당에 영웅심리가 불필요한 요소이듯,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외계인이 어디서 왔고, 왜 왔고, 어떻게 왔고, 어떻게 죽었는지 그런 건 관심 밖의 요소일 것이다. 중요한 건 그들이 지금 여기에서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주변 배경을 밝혀낼 시간도 없이 피하는 것만이 상책일 것이고, 계속 그렇게 도망치다보면 어느 순간 그들의 공격은 멈출 것이다. 그렇게 일이 종결되면, 그들이 어떻게 죽고 굴복했는가는 중요치 않고 단지 우리가 기어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중요하고 감사할 것이다. 이렇게 영화가 다소 불친절하게 주변 배경은커녕 외계인의 공격 자체만 뎅강 잘라다 놓은 것은 어쩌면 이 영화가 말그대로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 거대 규모의 습격을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이 영화 <우주전쟁>은 흔히 생각해오던 외계인 습격 SF와는 많이 다르다. 1%의 활약과 그 '위대함'을 그린다기보다, 나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해다녀야만 하는 99%의 사람들의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모습에 포커스를 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거창한 명분이나 의무감이 아닌,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눈물을 머금으며 겁을 먹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한편으론 통쾌함을 주진 못하지만 한편으론 '하긴, 저게 그나마 현실적인 모습일거야'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싶다.
 
P.S : 마지막 '그들이 지구의 공기에 노출되는 순간 그들은 이미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는 나레이션. 난 왜 이 말이 '지구 공기가 하도 더러워서 외계인들이 그걸 못견디고 죽었다'는 삐뚤어진 내용으로 들리는지...;;


(총 0명 참여)
개인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충격의 영화여서 아주 만족합니다   
2005-07-09 02:25
상당히 공감합니다. 영화평 완벽하게 쓰셨내요 논문으로 제출해도 될정도입니다. 이영화의 핵심은 바로 그거인듯 어떻게 물리쳤느냐가아니라 살아남아야만한다는것.   
2005-07-09 02:24
저두 동감요^^미국식 뻔한 영웅주의 결말이었음 불쾌했을텐데..적당히 현실적인 상황을 보여준것에 대해서 만족합니다   
2005-07-08 15:24
초점을 잘못 집고 영화를 보니 허튼소리를 할 수밖에. 전 이 영화 매우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김진만님 의견 동감해요.   
2005-07-08 12:33
이 영화는 "외계인이 이렇게 처들어와서 이렇게 물리쳤다." 를 말하고 싶은게 아니라, "외계인이 쳐들어 오면 인간들의 양상은 이렇게 변해간다." 를 말하고 있습니다.   
2005-07-08 12:32
매우 공감합니다. 제가 하고싶은 말의 9할 이상이에요. 이 영화는 대단한 "습격"과, 살기위한 "몸부림" 만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 자체만으로 즐겨도 이미 충분한 영화 아닙니까?   
2005-07-0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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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쟁(2005, War of the Worlds)
제작사 : DreamWorks SKG, Paramount Pictures / 배급사 : UIP 코리아
수입사 : UIP 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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