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실화를 소재로 다룬 영화가 눈에 자주 띈다. <디파이언스><체인질링>과 더불어 <작전명 발키리> 역시 실화를 소재로 다룬 영화다. 영화 제목에 명기된 ‘발키리 작전’은 히틀러 자신의 사망 혹은 유고(有故) 시 독일 예비군을 가동하여 소요사태를 진정시키고 나치 정부를 안정시키기 위한 비상 계획이다. 영화는 히틀러를 제거하고 발키리 작전을 역이용해서 쿠데타를 성공시키고 전쟁의 광기를 멈추고자 한 독일 레지스탕스 이야기를 다룬다. 히틀러 암살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반(反) 히틀러 전선에 연합한 이들은 민간계층이 아니라 독일 군부라는 특징을 가지며, 이들 중 중심인물인 폰 슈타우펜베르크 (영화에선 슈타펜버그라고 자막 처리되지만 이는 영어 발음이다. 주인공이 독일인이기에 원어인 독일어 발음으로 옮겼음을 밝힌다. 필자 주) 대령을 톰 크루즈가 열연한다.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아내 니나는 <블랙북>(2006)에서 히로인으로 열연했던 캐리스 밴 허슨이 연기했음을 알 수 있다.
독일 현지에선 히틀러에 맞선 의인으로 숭앙(崇仰)받는 슈타우펜베르크는 세계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속의 편린(片鱗) 가운데 남겨진 인물이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세계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을 발키리 작전을 그리되, 화려한 영상 기교나 스펙터클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인물의 내면 묘사에 최대한 역점을 두면서 영화를 전개한다. 스펙터클이라고 해봐야 영화 초반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연합군의 폭격 시퀀스 정도다. 거사의 주역은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지만 영화는 그에게만 일방적인 포커스를 부여하진 않는다. 그와 뜻을 같이하는 반(反)히틀러 인사들의 캐릭터 묘사에 있어 집단적으로 뭉뚱그려 몰개성화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성실하게 묘사한다. 각 캐릭터들이 히틀러 암살이라는 거사를 자신이 맡은 역할 아래서 진행함에 있어서도 일사천리(一瀉千里) 방식을 순진하게 고수하진 않는다. 암살 시도가 한 번에 이뤄지진 않기에, 스릴러의 특성을 간과하지 않기에 그렇다.
영화 시놉시스 자체가 실화를 근간으로 구축되었기에 스릴러의 묘미를 100% 발휘해내기엔 무리수가 있다. 무슨 말인고 하면, 감독이 아무리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감각적인 스릴러를 연출해낸 브라이언 싱어라 하더라도 2차 대전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가 되기에, 영화 결말을 관객들은 보도 매체를 접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발키리 작전의 결말이 어떠한가에 대해 관객은 일종의 초월자적 관점에서 파악 가능하기에, 사건의 차후 전개를 종잡을 수 없어야 매력을 발산하는 스릴러 장르에서 서스펜스라는 묘미는 영화 속에서 다소 힘을 잃는다.
슈타우펜베르크가 어떤 계기로 히틀러 암살에 동참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동기 부여화 시퀀스는 영화 초반부의 내레이션으로 간략하게 대체되기에 캐릭터의 사연 설명에 관해서는 다소 인색한 편이다. 하지만 “만일 어떤 미친 운전사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인도 위로 차를 몰고 질주한다면..나는 그 자동차에 올라타서 미친 운전사로부터 핸들을 빼앗을 것입니다.”라는 본회퍼(Bonhoeffer)의 말처럼, 영화는 인간성이 말살된 나치즘으로 독일이 극도로 변질되게 만든 장본인 히틀러에 대항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독일을 올바른 방향으로, 역사의 회전축을 바꾸려 한 이들의 노고를 캐릭터 내면의 치밀한 묘사로 세밀하게 그려내되 극적인 감정 이입은 자제하고 다큐멘터리와 같은 차분한 영상 어조로 증언한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폭탄 거사라는 소재는 독일 자국(自國)의 이야기를 자국의 배우들이 연기한 <슈타우펜베르크>(2004)를 통해서도 다뤄지니 두 영화를 비교 관람한다면 1944년 7월 20일에 일어났던 거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영화에선 나타나지 않지만 발키리 작전 이후 슈타우펜베르크 일가족이 겪었던 일화들은 다른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극적이자 감동적이다.
2009년 1월 12일 월요일 | 글_박정환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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