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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평가! 허망하지만 이토록 절실한, 그것이 삶
어톤먼트 | 2008년 2월 15일 금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찰나의 파문이 만들어낸 동심원의 너비는 과연 어디까지 뻗어나갈까?

<어톤먼트>는 관계라는 섬세한 수면 위에 파문을 일으킨 당사자의 고백이다. 하지만 그 고백은 당사자의 육성을 통하지 않고 활자로 대변된다. 게다가 심리를 조여오듯 일정한 속도를 내는 타자기 소리로부터 시작되는 <어톤먼트>는 발자국처럼 찍히는 활자의 행렬을 이미지로 정돈하는 작업처럼 보인다. 타자기의 발걸음에 담긴 사연을 이미지로 치환하는 영상은 그 안에 담긴 회한과 비애를 현실로 채색한다.

제인 오스틴의 고전 <오만과 편견>을 연출한 조 라이트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어톤먼트>는 이언 매큐언의 동명원작소설-국내에서는 ‘속죄’로 번역되어 출판된-을 영화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문학적 감수성을 아련한 여운이 담긴 영상미로 승화시키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인 조 라이트 감독은 다시 한번 문체의 상상력을 시각적 심상에 담아낸다. 풋풋한 홍조를 띠기 시작한 로맨스를 파국으로 몰아버린 소녀의 그릇된 결정에 대한 이야기 <어톤먼트>는 어느 한 여자의 뒤늦은 참회 속에 담긴 상흔의 깊이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남녀의 사랑에 대한 슬픔의 너비를 담고 있다.

직접 희곡을 쓸 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13살 소녀 브라이오니(시얼샤 로난)의 시점에서 출발하는 <어톤먼트>는 영화적 시선 안에 그녀의 시선을 배치하며 그녀의 내면에서 발생하는 시점과 영화적 시점을 중첩시킨다. 이를 통해 실제로 영화가 보여주는 것과 브라이오니에게 보여지는 것 사이의 간극적 오해를 관객에게 인지시키며 그것이 불러올 파국의 섬세한 예감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관객의 심리적 수축을 서서히 진행시킨다. 브라이오니가 주로 보는 것은 자신의 누이인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저택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제임스 맥어보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그 관찰에 소녀의 작가적 상상력이 얹어지며 이야기의 수면은 출렁이기 시작한다.

<오만과 편견>이 영화적 재현에 중점을 둔 작품이었다면 <어톤먼트>는 영화적 해석에 중점을 둔 작품이다. 원전에 충실했던 전자에 비해 후자가 자의적인 결말을 비롯해 독자적 노선을 선택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비교적 여유로운 감수성을 지닌 전자의 순행적인 심리에 비해 후자 신경이 예민한 심리적 변화를 표출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물론 <어톤먼트>는 풍만한 자연광을 카메라에 한껏 담아내며 우아하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시대적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이는 영화가 지닌 양면성을 드리우는 방편으로도 활용되는데 영화의 현실에 접근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색채의 광원이자 동시에 그 현실이 머금고 있는 슬픔의 낯빛을 깊게 드리우기 위한 보색의 광량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영화의 섬세한 심리에 일조하는 건 가녀리지만 뚜렷한 선율을 이루는 청각적 심상, 즉 음악이다. 마치 관객에게 미세한 강박을 가하듯 또박또박 걸어오는 타자기 소리와 정서적 수면에 물결을 만들어나가듯 조심스럽게 화음을 형성하는 피아노음, 그리고 엄숙한 멜로디를 더하는 현악적 선율은 <어톤먼트>의 아련한 정서적 대기를 채운다.

봤다는 것과 안다는 것. 그 간극에서 자신을 합리화시킨 브라이오니의 결정은 결국 훗날 깊은 후회로 자신을 몰아세우게 되고 세실리아와 로비의 삶을 가늠할 수 없는 파문의 양 극단으로 밀어낸다. 소설에서는 상상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연극에선 배우에게 달렸다고 스스로 말하는 브라이오니는 결국 현실에서 자신의 상상이 만들어낸 비극을 끌어 안고 배우의 운명까지 처참한 결말로 밀어낸다. 삶이란 결국 허구로 귀결될 수 없는 실존의 엔딩을 향하고 있으며 그 억겁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유한한 삶의 굴레에서 고단한 업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비극과 희극으로 귀결되는 인생이란 동심원은 이렇게 찰나의 순간에 내던져진 흔들림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삶이란 그래서 허망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절실하기도 하다. 해변가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행복에 젖은 세실리아와 로비를 조명하는 결말은 그 파국의 반어법이자 허구라는 현실의 반대말이다. 찰나의 선택이 만든 삶의 또 다른 이면을 담아낸 결말은 그렇게 짙은 슬픔으로 떠밀려오다 파도거품처럼 사라지지만 이는 격정에 찬 동심원을 그리며 인상적인 여운을 남긴다.

2008년 2월 15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오만과 편견>에 이은 조 라이트의 영상문학,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한 그릇이 빛을 발한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제임스 맥어보이의 섬세한 호흡에 시얼샤 로난의 영민한 눈빛을 더하다.
-우아하고도 처절하며 강렬하면서도 가녀리다. 찰나의 허망함이 전하는 절실한 삶의 영원.
-물기를 머금은 수채화같은 영상, 작은 울림으로 섬세한 격정을 만드는 선율의 고요함.
-결말에서 스며드는 예민한 슬픔은 깊고 깊은 여운을 새긴다.
-난 원래 영문 소설 따윈 젬병이라구.
-부서진 삶을 돌이켜봤자 뭐하리, 맘만 상하지.
-은은한 이야기의 평온한 인상이 자장가 선율처럼 들린다고?
25 )
cipul3049
2007년 영화 중 가장 최고라 생각하는 영화 3위라 생각함. 07년에 너무 좋은영화들이 많이 나온것도 그렇고, 어톤먼트 자체가 문학작품같은 수준의 영화라, 그 여운이 정말 장난아니었습니다.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문학작품을 지루하지않게 즐겨보시는분들에게는 정말 추천하는 명작입니다.   
2008-02-16 11:32
gt0110
오만과 편견 정도라면... 꼭 본다...   
2008-02-16 01:09
ffoy
솔직히 별로 기대 안 했던 영화인데, 작품성이 너무 극찬 받고 있어서 점점 솔깃해지는 영화~   
2008-02-15 20:11
lolekve
ㅠㅠ 제일 기대되는 영화ㅠㅠ   
2008-02-15 19:04
hrqueen1
한아름 안고있는 꽃들. 이 영화의 시놉시스와도 어울리는 것 같네요.   
2008-02-15 18:28
loop1434
기대해보는   
2008-02-15 18:05
theone777
이햐, 요렇게나 뛰어난감   
2008-02-15 17:42
ldk209
깊고 깊은 여운...   
2008-02-1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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