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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의 진국을 뽑아냈다-킹콩- 킹콩
yky109 2006-01-05 오전 12:24:04 875   [4]
 

킹콩 (2005, King Kong)

감독: 피터 잭슨

출연: 나오미 왓츠, 에드리언 브로디, 잭 블랙, 앤디 서키스 등

각본: 프랜시스 월시, 필리파 보옌스, 피터 잭슨

제작: 잔 블렌킨, 캐롤린 커닝햄, 프랜시스 월시, 피터 잭슨



-2005.12.20 메가박스 1관 4회 19:10-

 몇 달 전이었나. 극장에 갔을 때 영화가 시작하기 전, 한 영화의 예고편이 흘러나왔다. 고작 예고편 주제에 나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들었던 녀석은 끝에 가서 거대 고릴라 한 마리를 내던지더니 '킹콩'이라는 글자를 스크린에 덮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극장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지만 남들이 비웃는 그 녀석에게 농락당한 나는 계속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 예고편은 그 날 본 영화보다 더욱 기억에 박혀버리고 말았다.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으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를 하게 만든 것은 분명히 그에게 독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더라도 그 전까지는 분명히 그리 크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오던 그였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이란 괴물 때문에 이제 마음대로 그런 영화도 만들지 못할 거란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왕의 귀환' 때 관객들의 반응은 그런 예상을 더욱더 굳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반응은 뜨거웠고 열광적이었으나 그 속에는 '왕의 귀환'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부분이 너무 지루했다는 말도 있었다. 그만큼 피터 잭슨이 포부 크게 내뱉었던 이야기에만 지나치게 매료되었던 몇몇 사람들이 그가 조곤조곤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에서 귀가 간지러워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그저 제3자의 걱정일 뿐이었던 모양이다. 피터 잭슨은 차기작으로 자신이 어릴 적에 보고 감독의 꿈을 키우게 했다는 바로 그 ‘킹콩’의 리메이크 판으로 정하고 그야말로 ‘지 좋을 대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렇게 제멋대로 만들어낸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피터 잭슨은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했던 33년판 킹콩을 기본 도우로 놓고 그 위에 76년판 킹콩의 일부를 양념으로 삼고, 그 위에 자신이 오리지널 킹콩에서 보거나 듣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던 이야기를 토핑으로 삼아 엄청난 CG 기술로 꾸며, 감독 자신의 전작들을 통해 갈고 닦아온 특유의 센스와 기술이란 오븐 속에 구워내어 멋진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멋진 작품은 언제 먹으려 드냐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33년판이나 76년판 킹콩의 초반부가 이것저것 설명하려다보니 지루했던 반면, 피터 잭슨의 킹콩은 칼 덴햄과 앤 대로우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오리지널에 비해 인물을 더욱 입체적으로 바꿔놓았다. 특히나 칼이 제작사 사람들에게 예술을 논하며 화를 내는 장면은 후에 보이는 그의 변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며, 33년판과 달라진 앤의 직업도 후에 주구장창 뛰어다니는 앤의 모습이나 콩과 앤의 교감에 조금 더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또한 덴햄과 프레스턴이 옷 사이즈에 맞은 여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나왔던 페이 관련 이야기는 33년판 원작에 대해 아는 사람에겐 즐거운 농담이었다. 앤에게 싱가포르로 영화를 찍으러 간다고 속이는 것은 76년판에서 구조된 드완이 자신이 탔던 난파된 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해리라는 영화감독의 말에 따라 싱가포르로 영화를 찍으러 간다고 했던 부분에서 따온 듯하다(76년판에서 드완 역시 해리가 정말 싱가포르에서 영화를 찍으려 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이 부분은 마치 약간 따뜻한 풍의 회색빛 같다.


 배가 출항한 뒤부터 영화는 푸른빛 해양 어드벤처 분위기로 슬쩍 모습을 바꾼다. 그 속에는 약간 빠르지 않나 싶은 앤과 잭 드리스콜(이 이름은 아마도 33년판의 존 드리스콜과 76판의 잭 프레스캇의 짬뽕 같다.)의 로맨스도 있고, 서서히 조여 오는 긴장감도 있으며, 덴햄의 캐릭터는 더욱 흥미로워지고, 무엇보다 선원들의 이야기가 있다. 몇 마디 대화만 들어도 그 선원들이 나중에 어떤 행동을 하겠지 예측이 갈 정도로 스테레오타입의 인물들이긴 하지만 33년판에서 이름만 있고 뒤에 숨어있다시피 했던 인물들보다야 훨씬 낫다고 하겠다. 이들 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많은데 대표적 예로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빌리 엘리어트 역을 맡았던 제이미 벨과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스미골로 실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본 영화에서 킹콩 역을 맡기도 한 앤디 서키스 등이 있겠다. 잉글혼 역의 토마스 크레취만이 ‘피아니스트’에서 독일군 장교로 나왔던 것을 생각하며 잭과 있는 모습을 보면 느낌이 색다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찰리란 이름의 중국인 요리사가 초이(최)란 이름의 한국인-으로 추정되는-요리사로 바뀌었다는 점이다(풍기는 분위기는 여전히 중국인이지만 말이다.). 역시 배 부분에서도 원작을 본 팬들을 위한 장면이 있다. 나는 다른 리뷰를 읽고서야 알아챈 사실이지만, 브루스와 앤이 갑판에서 촬영하는 애드립 장면은 33년판에서 존과 앤의 로맨스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었다. 33년판 킹콩에서 존 드리스콜 역을 맡았던 배우 이름이 브루스 캐벗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역시 일부러 넣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다 칼을 수배하는 전보가 오고, 배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안개가 닥치고 하는 살짝 유치한 설정을 지나 영화는 이번에는 검은빛으로 모습을 달리한다. 원주민들은 등장부터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해 흡사 호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원주민 역시 리메이크를 거치면서 성격이 변했다고 볼 수 있는데, 33년판에서는 예절도 지킬 줄 알며 말까지 통하는 ‘나름대로 문명인‘이었는데 반해, 76년판에서는 그것이 바디 랭귀지 정도로 겨우 의사소통이 가능한 ’막춤 광 장난꾸러기 광신도‘로, 그리고 2005년판에서는 좀비에 가깝게 바뀌었다. 그리고 피터 잭슨은 그 말도 통하지 않고 외모부터 겉으로 보이는 행동까지 모조리 우리가 보아온 인간과는 다른 모습의 원주민들로 인해 주인공들이 느낄 공포를 잘 보여주어 관객들 역시 공포를 느끼도록 하는 센스를 발휘해낸다.


 결국 앤은 납치되어(이 과정에서 소름끼치는 원주민 할머니의 ‘토레 콩’을 BGM 삼아 바위와 바위 사이를 장대높이뛰기로 건너며 배로 오는 원주민 장정의 모습은 그야말로 피터 잭슨의 센스가 제대로 발휘된 부분이 아니었을까?) 무슨 놀이기구 같은 구조의 목재 구조물에 묶여 있다가 킹콩에게 제물로 바쳐지고, 그때부터는 붉은빛 열정의 액션 어드벤처와 분홍빛 로맨스가 번갈아가며 나오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피터 잭슨은 33년판의 상대적으로 강했던 액션 부분을 강화하고, 76년판의 상대적으로 강했던 로맨스 부분을 강화해 조화를 이루어냈다.


 공룡의 수는 더욱 늘어났으면서도 빤히 초식공룡으로 보이는 녀석이 인간을 무는 장면 같은 것은 없앴으며, 거대 곤충과 개불 등 관객들의 심장을 한층 더 조이며 나아가 그 속을 득득 긁어댈 정도로 소름끼치는 장면을 연출하는 녀석들을 더욱 깔아놓았다. 그리고 액션의 장면은 이종격투기를 연상케 하는 몸싸움에서부터 추격 장면,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곤충들을 향한 총기 난사 등 종류도 더욱 늘려 즐길 폭을 늘려놓았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칼이 무거운 음악과 함께 죽은 자들을 애도하는 듯하며 자신이 수많은 목숨을 담보로 찍는 영화의 정당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씁쓸한 웃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부분에선 눈에 띄는 단점이 좀 있었는데, 바로 위험에 빠질 때마다 조력자가 나타나는 식의 살짝 유치한 진행이나 선원들이 동료의 죽음에 슬퍼하는 장면이 너무 짧거나 혹은 그 전에 그들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쉽게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추격 장면에서 CG 티가 심하게 났다는 점이다. 그래도 다행히 피터 잭슨이 조였다 푸는 타이밍을 적절히 맞추어내기에 그 단점들이 영화 감상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굳이 CG 티가 나는 것에 대해 변호를 해 보자면, 씨네21이란 영화 잡지에서 인용한 다음 내용을 통해 가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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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콩>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를 비롯한 현대 특수효과의 역작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지난 10여 년간 할리우드를 통치해왔던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의 정신(실재보다 더욱 실재처럼!)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디지털 특수효과의 어떤 정점에 올라 있으면서도 '진짜와 똑같은 것'을 욕심내지 않는 <킹콩>은 오히려 레이 해리하우젠과 오리지널 <킹콩>의 윌리스 H. 오브라이언이 창조한 스톱모션의 세계를 닮아있다.

 극도의 실재를 추구하지 않은 <킹콩>의 몇몇 장면에서 기술적인 흠집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브론토사우루스와 카르노사우루스가 질주하는 장면에서는 <쥬라기 공원2: 잃어버린 세계>의 극도로 세밀하게 세공된 공룡들의 질주와는 달리 실사 캐릭터와 디지털 캐릭터 사이의 이물감이 상당히 두드러진다. 하지만 잭슨은 그 장면을 특수효과 자체의 경이로움으로 힘 있게 밀어붙인다. 그러고 보면 <킹콩>의 특수효과는 완벽함보다는 장면 자체의 미적인 완결성을 위해 설계되어 있는 듯하다. 잭슨은 자신이 사용하고자 하는 시각효과가 얼마나 사실적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아름답고 효과적으로 환상을 시각화할 수 있냐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미니어처의 힘을 빌려 탄생한 해골 섬과 30년대의 뉴욕, 그곳을 떠도는 야수들의 이미지는 사실주의 회화가 아니라 살바도르 달리와 루소의 회화에 가깝다. 제임스 카메론이 환상을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재현하기 위해 애쓰고, 조지 루카스가 거의 강박적인 수준으로 실사를 디지털로 대체하려 한다면, 잭슨은 컴퓨터 상자의 마법에 미켈란젤로의 마음을 담는다. 마치 <천상의 피조물>의 폴린과 줄리엣처럼, 피터 잭슨에게 있어서 환상과 현실이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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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스는 원작에 비해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이라 할 수 있다. 33년판의 앤이 킹콩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했고, 76년판의 드완이 동정심과 죄책감은 느끼나 역시 킹콩을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에 반해, 2005년판의 앤은 처음에는 목숨 부지를 위해 그에게 교감을 시도하다 결국 진정으로 교감을 느끼게 되는 식으로 영화는 그 둘의 모습을 새롭게 그려낸다. 그리고 킹콩도 그에 맞게 이미지를 변신하는데, 33년판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꼬마의 모습으로, 76년판이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여성에게 온갖 짓을 해대는 (나름대로 터프한 면도 있는) 호색한의 모습으로 콩을 그려냈다면, 2005년판은 어디선가 말했듯 동족을 모두 잃고 누구도 사귀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다 자신에게 맘을 연 여자를 지키고자 하는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때문에 영화가 그려내는 로맨스는 종종 동물과 인간의 교감 그 이상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동 각본가 필리파 보옌스와 주연 배우 나오미 왓츠는 그 로맨스에 대해 각각 이렇게 말했다.  ‘근본적으로 이 영화는 성적인 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만남에 대한 영화다. 오랫동안 그 어떤 동반자도 없었던 생물에 대한 영화다.‘, ‘둘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의존증(Codependency)이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가장 극대화되는 부분이 바로 함께 해가 뜨는 것을 보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부분에서 얼굴에 슬쩍 미소를 띠며 콩의 눈치를 살피는 앤과 그에 응대하는 콩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랑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앤은 타지에서 온 방문객에 불과했고 그녀는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앤을 바라보는 잭이 있었고, 앤은 살짝 망설이는 모습도 보인다. 결국 그들은 탈출에 성공하나, 그 뒤에는 목숨 바쳐 찍어온 카메라도 잃고 어느새 그렇게 사랑했던 예술을 버리고 돈에 미친 칼 덴햄이 킹콩을 노리고 있었다. 앤이 거대한 벽을 지나 나오면서 칼과 스치는 장면에서 앤은 본능적으로 콩이 위험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결국 콩은 클로로포름(33년판-정체불명 가스 폭탄, 76년판-꽤 큰 스케일의 함정과 다량의 마취제) 속에서 앤에게 손을 내밀며 쓰러져 버린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우는 앤의 모습은 그들이 보통 동물과 사람의 관계 그 이상임을 말해준다.


 그 다음에 콩이 미국으로 어떻게 옮겨지는가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삼아 깎아내리는 자들이 있던데, 그것에 대해 감독 피터 잭슨은 그런 장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변명하고 나 역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 과정을 보여주었던 76년판은 이상할 정도로 왜소해져버린 콩의 모습과 함께 진행만 더 지루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 후 미국에서의 앤과 잭의 모습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때부터 영화는 수많은 색이 뒤섞인 모호한 색으로 모습을 바꾼다. 앤이 희극인 뒤에서 무용을 하며 흘리는 눈물은 그와 콩의 관계에 대해 관객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잭이 자신이 만든 희곡 대사를 통해 앤에 대한 감정을 재확인하는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앤과 마찬가지로 잭과 콩 그 어느 쪽을 응원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그 사이 콩은 칼의 돈벌이 제물이 되어 써지다 결국 앤을 가장한 여인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폭발한 분노와 함께 거리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다급히 앤을 찾기 시작하지만 그의 손에 잡히는 것은 그녀와 닮은 사람 뿐. 그들은 모두 하나 같이 비명만 질러대고 콩 역시 그들을 더 볼 것 없이 내팽개친다. 그들은 앤과 같이 마음을 열지 않았으니까. 잭은 또 앤을 구하겠다고 콩의 주의를 끌고 그에게 앤을 빼앗긴 콩은 그에게 달려든다.


 콩이 잭을 눈앞에 둔 순간, 그녀가 나타나고 콩은 순한 양으로 돌변한다. 그리고 그녀를 가볍게 감싸 안는다. 둘이 함께 빙판에서 장난을 치는 장면은 긴장감을 잠시 풀어줌과 동시에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그야말로 사랑스럽게 그려진 부분이 아닌가 싶다. 하얀 배경 사이로 환하게 웃으며 팽그르르 도는 모습, 그 얼마나 평화로우며 아름다운가. 그러나 타인에게는 그저 미녀를 위협하는 야수일 뿐이었고, 결국 잠시의 여유조차 방해받고 결국 콩은 마지막을 보낼 장소로 함께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던 곳과 흡사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택한다.  앤 역시 콩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다. 콩의 반격으로 그들이 잠시 물러난 새 그들은 이번에는 석양을 함께 보게 된다. 마치 곧 이별이라도 하려는 듯. 그리고 결국 몇 발의 총을 더 맞고 콩은 거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가게 된다. 그는 더 이상 자신과 함께 할 자가 없는 섬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더 이상 원하는 것도 없다는 듯 지는 태양처럼 스스로 손을 놓아버린다. 그가 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앤은 남은 남자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고, 죽은 콩의 시체를 둘러싸고 사진이나 찍어내는 양반들 사이에서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칼이 말한다. 총이 아닌 사랑이 죽인 거라고 말이다.


 Beauty killed the beast, 이 대사는 33년판에도 있었으나 내포하는 의미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33년판의 콩이 미녀에게 끝없이 거부당하고 결국 외로움에 죽어 ‘미녀가 죽였다’고 할 수 있는 반면, 2005년판의 콩은 앤과의 교감을 통해 뜨거운 감정을 느꼈으나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음에 죽었으니 ‘사랑이 죽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2005년판 킹콩은 3시간 6분이라는 시간 동안 액션과 로맨스를 섞어나가며 선배 킹콩들이 해내지 못한 이야기를 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설정상 오류 또는 유치한 점, 그리고 기술의 한계가 슬쩍 보이는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그것을 크게 눈에 띄지 않게 한 것 역시 피터 잭슨이 뛰어난 수완가임을 증명해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동물과 인간과의 교감과 방해하는 요소들과 싸워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같은 여자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을 사람이 여럿 되지 않았을까 싶다. 긴장감을 조였다 풀며, 사람을 웃겼다 울리며 피터 잭슨은 3시간의 마법을 펼쳤고, 보는 사람은 정말 편하게 마법의 호수에 몸을 담갔다 나올 수 있었다.


 이 강하면서도 잔잔한 호수의 마법이 후에 단순히 자본만 있으면 성공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되리라는 안일한 녀석에게 일침을 놓음과 동시에, 저 어딘가에 있을 소년 혹은 소녀에게 감독의 꿈을 키우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믿어 마지않는다.


 마지막으로 예고편과 본편 중에 나왔던, 콩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듯한 문구로 이 글을 마쳐 볼까 한다.


 ‘야수가 바라보자 미녀는 그의 손을 잡아줬다. 그날부터 야수는 병이 들었다.’








-모험 호의 동물 우리 중 하나에 'Sumatran Rat Monkey'라고 적혀 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데드 얼라이브’에서의 인간이 물리거나 긁히면 좀비가 된다는 원숭이였다고 한다. 섬도 수마트라 쪽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원주민들이 진짜 좀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면 33년 원작 제작자와 배우들에 대한 감사 메시지를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해골 섬을 맨 처음 탐험한 에드가 월라스와 메리안 쿠퍼, 로버트 암스트롱과 페이 레이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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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2005, King Kong)
제작사 : Universal Pictures / 배급사 : UIP 코리아
수입사 : UIP 코리아 / 공식홈페이지 : http://www.kingkong2005.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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