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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을 넘어 소생의 계절로 가을로
kharismania 2006-10-24 오전 4:27:55 964   [9]
한국의 4계절중 봄과 가을은 마치 징검다리와 같다. 봄은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는 소생의 길목이며 가을은 여름에서 겨울로 가는 소멸의 길목이다. 가을은 황량한 계절이다. 초록빛 완연하던 잎들이 갈색빛으로 고개를 떨구며 생의 끝자락에서 낙하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계절은 윤회한다. 결코 시작과 끝이 아닌 끝에서 이어지는 소생의 알고리즘은 계속된다.

 

 헤어짐이란 본래 서글픈 기운이 맺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인위적인 의지, 그것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 의지라 할지라도 차라리 단순한 엇갈림의 이별이라면 위안이 남는다. 하지만 그것이 운명적인 사별이라면 그 공백은 깊숙한 여운을 남긴다. 구원받을 수 없는 추억의 몰락. 그 끝에 남은 것은 살아있는 자의 각인된 기억들이 첨예하게 몰아치는 슬픔의 향연. 이 영화는 그런 슬픔의 한가운데 서있던 남자의 사연을 가을이라는 계절의 구도안에서 서서히 소멸시켜 나간다.

 

 사법연수생인 현우(유지태 역)와 방송국 PD인 민주(김지수 역)의 행복한 예감으로 영화는 풋풋하게 시작한다. 결혼을 앞 둔 연인이 각자의 피앙새에게서 자신들의 행복을 저당잡은듯 영화는 봄날의 햇살을 드리운다. 하지만 그 핑크빛 예감이 핏빛 이별로 도래하며 민주를 잃은 현우는 덧없는 슬픔으로 침전한다. 한없이 따스하던 봄날의 사랑은 계절과 무관하게 차가운 종적을 남기며 영화는 그 슬픔의 끝자락에 홀로 남은 한남자의 세월을 흘려보낸다.

 

 서민들을 위한 인권적 변호사를 꿈꾸던 현우는 민주를 집어삼킨 백화점의 붕괴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검사가 된다. 마치 민주의 아버지(최종원 역)의 극중 대사처럼 나침반의 분침 하나가 어긋나면 여행자의 길목 자체가 알 수 없게 틀어져버리듯 민주의 죽음은 현우의 삶을 틀어버린다. 민주와의 추억이 드리운 그늘로 인해, 자신의 의지만으로 풀리지 않는 삶의 방향성에서 실의와 회의를 느끼던 현우에게 어느날 민주의 아버지가 찾아와 민주가 남긴 유품인 다이어리를 건넨다. 다시 찾아온 옛 사랑의 서글픈 추억. 그 추억을 기억뒤로 침전시키기 위한 로드무비의 출발. 세월의 흔적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묵어만 가던 옛사랑은 무르익은 가을 단풍처럼 각인된 가을의 건조한 햇살로 발길을 옮긴다.

 

 '번지점프를 하다'를 통해 사랑의 윤회적 소생을 색다른 시각으로 표현해내던 김대승 감독의 신작인 '가을로'는 그 이야기의 굴레를 다시 되풀이한다. 소멸에서 소생의 기운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생명력을 더욱 강렬하게 잉태해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연인의 죽음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이의 모습이다. 그 덧없는 슬픔 뒤에 재회가 찾아온다. 물론 죽었던 연인이 살아돌아오는 건 아니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재회는 죽었던 인연의 우회적 소생이라는 환타지적 산물이며 지속되는 인물적 감정에 대한 일종의 보답적 답변과도 같다.인우(이병헌 역)가 현빈(여현수 역)에게 감정을 품는 것은 태희(이은주 역)의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고 영화는 그런 뉘앙스를 굳히 감추지 않는다. 윤회의 신비감이 도는 이야기는 동성애적인 오해소지를 와해시키고 말그대로 사랑이라는 신비한 감정에서 발산되는 감정의 지속성, 그 자체로 상징되는 신비감을 어필한다.

 

 '가을로'의 재회는 말 그대로 과거 연인이었던 이의 흔적을 찾아내는 기억들의 발자취이다. 현우와 세진(엄지원 역)이 맺어지는 인연의 키워드는 민주다. 현우와 세진의 여행은 민주로부터 출발하고 그 여행은 결국 과거의 상처를 치유시키며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게 한다. 아픔의 근원지로부터 멀어지는 남자와 아픔의 근원지에서 맺은 인연으로부터 구원을 기증받는 여자의 만남은 소멸을 통한 소생의 이미지를 그린다. 그리고 그 계절은 가을이다. 소멸의 기운이 도래하는 그 계절에 현우와 세진은 자신들이 짊어진 상처를 희석시키고 새로운 인연으로부터 기대되는 희망을 감지한다. 모든 것이 소멸하는 기운이 완연한 그 계절에 여행지에서 만난 특별한 우연은 결국 필연적인 만남이었음을, 그리고 그 만남은 결국 지난 세월의 상처와도 같던 추억위에 새로운 기억의 적층적(積層的) 예감을 제시하고 그 산재된 추억의 더미위로 또다른 세월로 다가올 기억들을 포장해나간다.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이영화가 제시하는 시대적 배경에 대한 묘사이다. 일단 호출기로 연락을 주고받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이 영화가 시간적 배경이 20세기의 중반 이후, 즉 90년대의 중반 이후 어디쯤이라는 짐작은 가능하다. 더욱이 그 확실치 않은 시대를 강렬하게 점지해주는 것은 연인의 행복을 소멸시킨 백화점의 붕괴. 연관시키려 하지 않아도 당연히 연관지어질 수 밖에 없는 영화속 백화점의 붕괴장면은 95년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과 겹쳐진다. 또한 백화점의 붕괴 후 사기분양에 대한 배경은 영화와 무관하게 부각되는 형세인데-물론 현우의 현실에 대한 배경이지만 영화의 장르적 목적을 생각해보았을 때 크게 어필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이는 최근 구 삼풍백화점의 터에 자리잡은 최고급 아파트의 사기분양 시비와도 맞물린다. 또한 그와 함께 보여지는 정경유착의 실태. 이는 어쩌면 비극으로 각인된 터에 자리잡은 아파트의 모양새처럼 볼썽 사납기 그지없다. 시사적인 세태적 묘사는 우회적인 비판성에 가깝다. 이는 이 영화가 장르적인 목적에서 벗어난 발언적 액자구성에 가깝다. -제작보고회 떄 김대승 감독 본인이 직접 말했던 바처럼-

 

 솔직히 이영화는 최루성 멜로에 비해 무덤덤하고 그만큼 밋밋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밋밋함에 또다른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풍광 그 자체이다. 가을의 풍요로운 자연 풍광을 폭넓게 담아내는 이 영화는 관객에게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 것만 같다. 로드무비적인 장르가 개입했다고 해도 좋을만큼 이 영화의 공간적 서사는 감정적 목적과 또다른 볼거리이며 감정의 용해를 돕는 전해질과도 같다. 마치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인우와 현빈이 번지점프를 하기전 바라보는 뉴질랜드의 풍광처럼 현우와 세진이 각자 혹은 함께 바라보는 다양한 절경의 모습은 단순히 시각적인 만족을 주기도 하지만 표현이 함축된 인물간의 감정의 교감에 대한 공유적 이해를 돕기도 한다. 하나의 공간을 찾는 두 사람의 인연이 하나의 시선을 유지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인연의 예감이 움트고 감정적인 애틋함이 돋아나는 것만 같다.

 

 어쩄든 가을이다. 하루종일 비가 오더니 바람이 거세졌다. 계절은 그렇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옷을 갈아입는다. 1년동안 소생과 소멸을 반복하며 윤회를 거듭하는 계절안에서 우리는 세월을 축적하고 그 세월안에 잉태되는 기억들을 침전시키며 삶을 지속한다. 그리고 그 삶안에서 잉태된 기억의 감정은 저마다의 계절을 지난다. 상처입은 기억안에서 맴도는 이라면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 상처로 자리잡은 기억을 소멸시키고 그 빈자리에 새살을 돋게 할 기억으로 도태될 새살을 돋게해야 한다는 것. 길이 포장되듯 그렇게 우리는 지난 추억위로 새로운 추억들을 덧붙이며 내일이라는 계절로 가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그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새로운 계절로 들어서는 자들에게 잘 되었으면 좋겠다며 흐믓하게 손을 흔든다. 물론 필자도 그렇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아픔의 기억을 지닌 이들의 새로운 계절맞이가. 그리고 그 가을로의 발걸음 모두.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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