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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로 이 영화를 봐야하는가? 오! 수정
cocteau 2004-03-25 오전 1:36:43 5857   [14]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시작된 홍상수의 짧은 영화이력이 한국영화의 지형도에서 위치하고 있는 방식은 매우 낯설고 새로운 것이어서 마치 느닷없는 화산활동으로 갑자기 솟아오른 섬을 연상시켰다. 지리멸렬한 일상의 한 부분을 아무렇게나 끊어 펼쳐놓은 듯한 그의 영화는 (적어도 한국영화 중에서는) 이전에 결코 본적이 없는 사실감과 동시대성을 갖고 있는 것이었고, 당연히 영화매니아들과 평단은 전폭적인 지지, 찬사와 함께 이제 겨우 3편을 만들었을 뿐인 이 감독을 가장 주목할만한 영화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 경이로운 낯섬과 사실감을 제외하고 그의 영화를 바라본다면, 남은 것은 불길한 화려함으로 온몸을 감싼 털많은 애벌레를 씹어 삼키는 듯한 불쾌감과 징글징글함 뿐이다. 그의 영화들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비열하고 속물이며 취향은 저속하고 성적 욕망에 허우적대며 술에 취해 터무니없이 섹스하자고 강짜를 부린다. 일상의 지루함은 서울이나 강원도나 마친가지이고 그속을 유령처럼 부유하며 온갖 추태를 부리는 캐릭터들은, 마치 '이래도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느냐'는 식의 종교적 시련을 목적한 듯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런 불편함은 예컨대 이마무라 쇼헤이의 그 인류학적 즉물성이 묘사하는 인간에 대한 신뢰나 그 강인한 생명력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어서, 엔딩 크레듯이 올라가면 인간에 대한 더욱 커진 불신과 산다는 것의 비루함에 짜증나고 답답해질 뿐이다.

물론 한 감독의 세계관이 건강하지 못함을 빌미로 그의 영화를 폄하하는 것은 문화혁명적인 발상일 것이다. 카프라나 로베르토 베니니의 "어쨌거나 즐거운 인생"라는 식의 인생찬가 뿐만 아니라, 홍상수식의 불편함도 영화보기의 쾌락 중 하나임은 분명하니까. 하지만 그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번 영화 "오!수정"의 경우는 좀 심하다. 감독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만으론 성이 안찼는지 이 영화에선 조롱기 서린 시선으로 은근히 관객을 비웃는 듯하다. 사실 이 영화의 전반부가 다소 딱딱하고 냉소적이지만 분명 전형적인 로맨스라는 점에서 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야했었다. 고은의 말을 빌자면 "언젯적 홍상수인가?"인가 말이다. 전반부에서 재훈의 뻔뻔한 구애는 홍상수 영화의 캐릭터치고는 차라리 사랑스럽다할만한 수준이고 수정이라는 캐릭터는 심지어 순진무구하기까지 하다. 그런 인물들이고 보니 수정의 동정(童貞)에 감동하는 재훈의 졸렬함도 즐겁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후반부에서 감독이 보여주는 그 인물들의 진실은, 이전 어느 영화에서보다 잔인하고 역겨운 것이었다. 근친상간의 의혹까지 있는 수정은 거짓말도 불사하며 부잣집 아들인 재훈의 환심을 사 결국 결혼약속을 받아내고, 순수한 노총각으로 파악되던 재훈은 너저분한 성관계의 혐의가 짙어진다. 극이 진행되면서 점차 인물들간의 관계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은 그의 이전 영화에서도 익히 보아온 방법론이다. 하지만 이전 영화에서 인물들의 속물성이나 그들 관계의 구질구질함은 도입부에서부터 명확하여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추이를 냉소적인 객관성을 유지한채 지켜볼 수 있는 거리두기가 가능했던 반면, 이 영화에선 인물들의 거짓과 비열을 전반부에서 의도적으로 숨김으로써 관객의 "오해"를 조장하고 있다. 이건 마치 (세상에 대한 조롱 뿐만 아니라) 로맨스라는 장르의 컨벤션, 혹은 남녀간의 애정관계의 그 저열한 욕망과 그 정체에 대한 관객의 무지나 낭만적 환상까지 조롱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또한 수정의 동정 여부에 영수나 재훈뿐 아니라 관객까지 지대한 관심을 두게 만들더니 급기야 침대보에 물드는 혈흔을 모종의 해결점으로 보여주고야 순결이데올로기적 발상도 민감한 관객의 심기를 건드릴 소지가 있다.

홍상수의 영화는 비단 해외에서의 높은 지명도 같은 것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두드러진 완성도를 보인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정된 카메라가 긴 호흡으로 잡아내는 즉흥연기적인 자연스러움과 느슨한 내러티브의 전개는 신파조의 감정오버와 작위적인 극전개 같은 것으로 눈살찌푸리게 만드는 충무로 상업영화와는 달리 예술적인 향취같은 것도 느껴진다. 하지만, 일개 관객으로서의 나 자신이 그의 영화를 더 이상 봐야 하는가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그의 영화는 감탄은 자아내지만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그렇게 징그럽게 묘사하지 않아도 나의 일상이 지루하고 무의미하며 인간이란 많은 경우 비열하고 너저분하다는 것,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스펙터클로서의 영화, 혹은 삶의 위안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면 무슨 이유로 영화를 봐야하겠는가? (2000/0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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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s1205
저는 글쓴이의 의견에 많은 공감이 가는군요~ 뭐가 어려운 말로 쓰여졌다는건지-_- 영화를 보고 난 감정을 유치하고 직설적인 글로 남겨야 이해를 하시려나? 밑에님이야 말로 자기의견과 다르다고 평론가를 폄하하고 있네요.. ㅉㅉ   
2007-04-13 14:11
harpys
가증스럽다,   
2006-10-01 20:07
harpys
어려운 말로 마치 평론가인양 그럴싸하게 포장해놓고, 나는 이 영화를 싫어해! 난 특별해!라고 말하는 님이나, 그걸 영상으로 표현하는 홍상수나 피차일반, 오십보백보!   
2006-10-0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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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수정(2000, Virgin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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