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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마.. 잊지마.. 유대인은 피해자야... 작전명 발키리
ldk209 2009-01-28 오후 12:46:28 9222   [12]
잊지마.. 잊지마.. 유대인은 피해자야... ★★★★

 

대표적인 반전(反轉) 영화의 하나로 꼽히는 <유주얼 서스팩트>는 뛰어난 스릴러란 결말이 아니라 과정에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즉 인상 깊은 반전은 과정의 치밀함이 없이는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발키리>는 역시 <유주얼 서스팩트>를 만든 감독다운(!) 실력을 발휘한 또 한 편의 뛰어난 스릴러 영화라고 할 만하다. 특히 히틀러 암살이라는 모두가 알고 있는 실패한 사건을 영화화해서 이 정도로 서스펜스와 몰입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스릴러를 만드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실력만큼은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작전명 발키리>는 클라우스 폰 슈타펜버그 대령(톰 크루즈)이 주도했던 1944년에 일어난 히틀러 암살사건을 다룬다. 결과가 실패했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러나 독일군 내부에서 이토록 치밀하게 조직되고 진행된 반 히틀러 세력이 존재했음은 알지 못했다. 아마도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또는 독일군은 히틀러를 중심으로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인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반 히틀러 세력의 존재가 영화에서 보여준 것보다 훨씬 소규모의, 별 볼일 없었던, 의미 부여조차 난감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은 독일인들이 희망하는 하나의 영웅담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전쟁영화로 생각하고 관람한 사람들이라면 무척이나 실망했을 법 한데, 이 영화엔 전쟁 장면이라고 해봐야 처음 한 번에 그치며, 군더더기 하나 없이 오로지 마지막 히틀러 암살사건이 어떻게 계획되었고,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세밀한 묘사를 통해 그려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뻔히 실패했음을 알고 있는 암살사건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마치 약간의 오차만 없었다면 성공할 수도 있었다는 듯 시치미 떼고 시종일관 서스펜스를 불어 넣고 있다.

 

이를테면, 폭탄이 터지는 순간에서의 가방의 위치가 변화하는 타이밍이라든가, 늑대굴(히틀러가 머물고 있는 지휘소)을 나가지 못하게 막는 위병소 근무자에게 장군의 전화라며 사실은 후크가 내려져 있는 전화를 바꿔주는 슈타펜버그 대령의 시도,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하는 독일군 장교들의 움직임 등등. 게다가 이 영화가 정말 뻔뻔한 건 히틀러가 죽지 않았음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탄이 터진 후 결정적인 고비의 순간까지 히틀러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채, 마치 히틀러가 죽은 것처럼 작전을 실행하는 인물들을 보여줌으로서 서스펜스의 강도를 높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히치콕 감독이 얘기한 서스펜스의 기본 규칙에 가장 충실한 것이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히치콕 감독은 서스펜스의 기본 규칙 중 하나로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책상 아래에 시한폭탄이 장착되어 있고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의자에 앉은 사람만이 그 사실을 모른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화면은 시계를 클로즈업한다. 곧 폭탄이 터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은 서스펜스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서스펜스와 스릴을 위해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작전의 계획, 진행과 실패로 가는 장면을 잘게 쪼개어 세밀하게 이어 붙임으로서 그 강도를 높이는 데 성공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영화가 아카데미 편집상 후보 정도로는 올라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은 정도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말하자면, 독일 현지에서는 혹평을 받았다고 하지만 톰 크루즈부터해서 전반적으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톰 크루즈가 혹평을 받은 건 이 영화의 연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종교와 일부 기행으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에 기인하지 않나 싶다. 독특한 건 영어가 가능한 많은 독일 배우들이 있을 터인데 반 히틀러 조직원의 대부분을 영국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대한 역사 앞에 흔들리며 유약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마지막엔 기품을 유지한 채 쓰러져간 프리드리히 올브리크트 역에 빌 나이히(우리에겐 <러브 액츄얼리>의 한물간 락커 등 약간은 코믹한 이미지로 널리 알려진 배우), 영화 초반부 폭탄이 장착된 술병으로 암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헤닝 폰 트렉스코프 역에 케네스 브레너(<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록허트 교수), 예비군 사령관을 맡아 마지막까지 히틀러 암살엔 참여하지 않았지만 끝내 처형된 프리드리히 프롬 역의 톰 윌킨슨(<풀 몬티> <배트맨 비긴즈> 등), 반 히틀러 조직의 수장인 루드비히 벡 역의 테렌스 스탬프(<히트> <원티드> 등) 등. 이들 영국배우들의 기품 있는 연기는 <작전명 발키리>의 이미지를 고급스러운 스릴러로 채색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작전명 발키리>가 스릴러 영화로서 잘 만들어진 건 맞지만, 이 영화를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과 연관 지어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것도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2차 대전을 다룬 영화들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히틀러는 나쁜 놈, 하나는 유대인은 피해자. 그런데 히틀러가 나쁜 놈이라는 얘기는 결국 그 히틀러에서 죽임을 당한 가장 대표적인 피해자가 유대인이라는 얘기로 귀결되므로 사실상 하나의 얘기로 집중된다. 즉, 유대인이 피해자라는 사실의 각인. 분명히 히틀러가 인류에게 있어서 나쁜 놈인 것도 사실이고, 유대인이 엄청난 죽임을 당한 피해자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들이 피해자였다는 과거의 사실을 가지고 2차 대전 이후 유대인에 의해 저질러진 무수히 많은 학살을 정당화하려는, 또는 덮어버리려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헐리웃의 많은 유명 감독들이 유대인 출신이다 보니 ‘유대인은 피해자’로 각인되는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또 세계적으로 커다란 흥행을 일구어낸다. 반면 유대인이 가해자인 영화는 웬만해선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영화 <디파이언스>가 상영되는 시점에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그 참혹한 학살극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폭력 가정에서 맞고 자란 아이가 폭력 가장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학살의 피해자였던 유대인이 학살의 가해자로 돌변해 버린 역사만큼 참혹한 역사는 없을 것이다. 폭력 가장이야 가정 폭력범으로 처벌하거나 정신과 치료라도 해본다지만, 이스라엘은 미국이 버티고 있는 한 제재할 뚜렷한 방법도 없다. 상황이 이러니 스스로 피해자임을 내세우는 이런 류의 2차 대전 영화들이 가증스럽게 다가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 몇 년 전 팔레스타인의 한 어린 아이가 이스라엘 군의 사격으로 사망한 동영상으로 인해 여론이 엄청나게 악화된 적이 있었다. 당시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수많은 항의 글들이 올라왔는데, 과격한 글 중에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다 죽인 후에 죽었어야 했는데 일찍 죽어 아깝다’라는 등의 글도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 대사관은 결국 게시판을 폐쇄해 버리고 말았다. 최근 가자 학살 사건이 일어나 혹시나 해서 이스라엘 대사관 홈페이지를 찾았더니 게시판이 보이질 않는다. 그 때 이후로 쭉 없었는지, 아니면 부활했다가 다시 없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목소리 중에 과도한 주장도 있긴 하지만, 분명 이스라엘의 자업자득이다.

 

※ 슈타펜버그 대령이 주도한 1차 암살 시도는 그 자리에 친위대 대장이 없음으로서 무산되고 만다. 이 때 슈타펜버그 대령은 그대로 작전을 강행하자는 입장이었지만, 반 히틀러 조직의 상층부에서 반대해 실행되지 못한다.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슈타펜버그 대령은 한 마디로 “정치인들이 지휘를 하기 때문에 실패한다”라고 단정 짓는다. 이 장면에서 갑자기 조선의 사육신이 떠올랐다. 1456년 명나라 사신의 환송연에서 일단의 문신, 무신들은 세조를 죽이고 단종 복위를 꾀하고자 한다. 그런데 세조가 행사장에 칼을 들여오지 못하게 하자 운검(세조 옆에서 칼을 차고 지키는 일종의 경호)을 핑계로 세조를 죽이려던 이들은 계획을 연기한다. 그러나 계획이 늘어지자 그 사이에 마음이 변한 김질 등이 세조에게 알려 단종 복위 운동을 벌이던 연루자들이 잡혀와 죽임을 당한다. 후에 사육신으로 불린 이들 중 무신인 유응부는 잡혀서 추국을 당하는 현장에서 ‘나약한 문신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유응부는 자신이 책임질 테니 처음 계획 그대로 실행하자고 했지만, 문신들이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연기한 것이 결정적 실책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처음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을 지나, 일단 실행에 들어가면 수많은 변수들이 나타나 계획대로 일을 추진하기 힘들게 된다. 그럴 땐 그러한 일에 정통한 전문가가 책임을 지는 게 가장 타당하며, 군사작전인 경우엔 당연히 군인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문무를 겸비한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건 아닌가 보다.

 


(총 1명 참여)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7-01 10:01
powerkwd
잘 읽고 갑니다 ^^   
2009-05-28 22:28
brevin
NGC 에서 했던 슈타펜버그 특집을 안 보고 갔더라면 더 몰입해서 볼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2009-02-09 15:29
didwldus999
다 못읽갰네요.하지만 정성이담긴건 알겟어요   
2009-02-08 20:43
yvette
글, 진짜 잘 쓰십니다.   
2009-02-08 00:14
mina7359
우와 엄청 길게 잘 쓰셨네요!!   
2009-02-07 22:56
kdc98
흥미로운 글이네요.   
2009-02-06 21:00
kimshbb
흥미로워요   
2009-02-06 12:04
ooyyrr1004
정말 결말을 알고있는데도 긴장감을 끌어올릴수 있다니 놀랐습니다   
2009-01-30 16:02
okane100
길긴 하지만 명확하고 똑똑한 글인것 같네요.아주 잘봤습니다.   
2009-01-29 01:29
jhee65
추석 때 봤습니다. 아주 흥미진진하던데요.   
2009-01-28 21:34
shelby8318
글이 참 기네요,.   
2009-01-28 14:43
1


작전명 발키리(2008, Valkyrie)
제작사 : United Artists / 배급사 : 20세기 폭스
수입사 : 20세기 폭스 / 공식홈페이지 : http://www.foxkorea.co.kr/valky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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