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기다리다 지친다 디어 존
jimmani 2010-02-19 오후 11:57:39 4297   [0]

 
우리 인생에서는 웬만하면 그러지 않는 게 좋겠지만 영화에선 그래도 주인공들의 인생에 어느 정도 굴곡이 있어야 전개나 감흥에 탄력이 붙는다. 그 굴곡 덕분에 사랑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용기는 더욱 빛을 발한다. 하지만 이 '굴곡'이라는 요소에 지나친 무리수를 두어 버리면 관객이 느낄 감흥은 오히려 멀찌감치 떠나고 만다. 숱한 막장드라마들이 기가 차서 말도 안나오는 사건들을 실컷 벌려놓고는 언제나 결말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수습할 때 시청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지듯이 말이다. 공감할 수 없는 장애물의 극복은 극적이라기보다 비약에 가까운 것이다.
 
어느덧 우리에게도 친숙한 작가가 된 니콜라스 스팍스의 소설들은 작위적일 수 있지만 그만큼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는 이야기로 영화화하기 좋은 소재가 되어 왔다. 그리고 <워크 투 리멤버>, <노트북> 등 몇몇 결과물들은 평단의 반응과는 별개로 대중에게 최루성 멜로의 미덕을 확실히 전해주었다. 영화로 옮겨진 그의 근작 <디어 존> 역시 그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은 웬만큼 다 갖고 있다. 찰나의 사랑, 영원같은 기다림, 예상치 못한 난관, 변치 않는 감정. 그러나 <디어 존>은 아쉽게도 과거 비교적 잘 만들어진 니콜라스 스팍스 원작의 영화들이 갖고 있던 미덕을 꽤나 놓친 영화가 되었다. 난관이 태백산맥처럼 겉잡을 수 없이 솟아나와서, 바람이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는 형국이다.
 
때는 바야흐로 2001년. 육군 특수부대에 복무 중이던 존 타이리(채닝 테이텀)는 오랜만의 휴가를 맞아 고향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던 중 운명적으로 여대생 사바나(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만난다. 부유하고 보수적인 집안의 딸인 사바나는 모범적인 봄방학 휴가를 보내던 중 존의 매너에 감동해 급속도로 그와 가까워진다. 존 역시 자신은 서먹서먹해 하는 아버지(리처드 젠킨스)에게 살갑게 다가가는 그녀의 모습 등을 보며 호감을 느낀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 존은 2주 뒤면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들의 사랑은 뜨겁게 불타오른다. 결국 헤어짐의 시간은 다가오고, 둘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함께 하기 위해 꼬박꼬박 편지를 주고 받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1년 정도만 버티면 될 줄 알았던 기다림은 9.11 테러가 벌어지면서 기약없는 기다림이 되고 만다. 존 역시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복무기간 연장을 하게 된 것. 그렇게 기다림이 속절없이 길어지면서 둘의 사랑도 점점 희미해져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워크 투 리멤버>와 <노트북>이 그랬듯, <디어 존> 역시 젊음으로 만개한 배우들을 보는 재미가 어느 정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툭하면 '주한 미군' 이미지로 꼽혔던 채닝 테이텀은 본국에서도 그랬는지 정말 군인으로 나온다. (원작이 출간되기 이전부터 낙점되어 있었다고 한다.) <스텝 업> 때만큼의 날렵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특유의 남성적이고 과묵한 이미지가 꽤 효과적으로 표현되면서 여심을 잘 훔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요즘 주가가 부쩍 오른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청순투명한 외모로 멜로영화에 꽤 잘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준다.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눈망울을 한 채 기약없는 기다림을 반복하는 여인의 모습은 역시 남심을 훔치기에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 자체까지 남자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E.T>의 어린이에서 이제는 연륜이 보이는 중견 배우가 된 헨리 토마스(이웃의 싱글파파 팀 역)와 자폐증세를 앓는 존의 아버지 역을 맡은 리처드 젠킨스의 연기는 새파랗게 젊어서 자칫 흔들리기 쉬운 주연배우들에게 꽤 든든한 뒷바라지를 해 준다.
 
우리에게 알려진 니콜라스 스팍스 원작의 영화들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통하는 최루성 멜로의 매력을 충실히 전해줬었다. 어떻게 보면 매 영화가 비슷비슷한 이야기이면서도 매번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배우들의 매력, 낭만을 최고조에 올리는 상황 설정, 감미로운 대사 등을 통해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사랑의 감정을 폭발력 있게 전해줬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불타오르던 사랑 뒤에는 '사랑 이후의 이야기'를 언제나 삽입함으로써 얄팍한 사랑이야기로 끝나지는 않는 듯한 여운도 전해주었다. <워크 투 리멤버>에서 사랑으로 성숙해지는 남자주인공의 모습이 그랬고, <노트북>에서 흰머리가 성성해져도 여전히 빛나는 남녀의 사랑이 그랬다. <디어 존>도 외적으로는 앞에서 얘기한 영화들과 유사한 조건을 갖고 있어서 역시나 뻔하지만 여전히 힘이 있는 감동을 선사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디어 존>은 이들과는 다르게 좀 변화한 케이스였다. 안 좋은 변화였다.
 
 
소설로 출간되자마자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디어 존>의 시간적 배경은 현재와 매우 밀접해 있다. 전미를 경악케 한 9.11 테러 당시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고, 그로부터 6~7년의 세월이 지난 시점까지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이 이야기 속 사랑이 단순히 매력적인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의 연장선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영화는 예전처럼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거나 오히려 더 굳건해진다는 믿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2주간의 사랑이 몇 년의 기다림을 채워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둘의 사랑은 때때로 흔들린다. 사랑이 흔들리고 변하기도 하는 모습이 관객들에겐 현실적인 의미로 호소력 있게 다가가야 하는데, 문제는 영화가 그런 방향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다림의 발단이 된 남녀의 사랑이 너무 예쁘고 부드럽게만 묘사된 탓이다. 물론 니콜라스 스팍스 소설 속 사랑들은 언제나 로맨틱했지만, 현실에 어느 정도 뿌리를 둔 이번 경우라면 그 유들유들함이 덜했어야 했다. 휴머니즘 가득한 영화들을 잘 만드는 라세 할스트롬은 이번 영화에서 그의 그러한 성격이 오히려 부작용이 된 듯 하다. 로맨스 지향적이든, 현실 지향적이든 감독은 이 영화에서 좀 더 선굵은 감정을 보여줬어야 했다. 하지만 로맨스는 여느 할리퀸 소설 속 상황처럼 그저 낭만적이고, 현실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현재 바깥 상황은 대강 이렇습니다' 정도로 설명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현실은 우리가 체감하는 것에 비해 가볍게 묘사되고, 로맨스는 힘이 세지 않아서 난관 극복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다. 모든 걸 이겨내는 사랑의 위대한 힘도, 사랑을 변하게 하는 현실의 씁쓸한 단면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과 기다림은 니콜라스 스팍스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이지만, <디어 존>은 남자주인공이 군인이라 특히 한국에서 유난히 잘 먹힐 공산이 컸을 영화다. 군대 간 남자와 그를 기다리는 여자의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수도 없이 많이 목격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쁘게만 가다가 힘을 잃어버리는 영화의 전개는 한국 남자들이 유독 감정이입하기 쉬울 소재를 가져와 놓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쁜 로맨스로 이어지던 영화는 결정적인 이별 이후로 조금씩 변화의 기미를 보인다. 사랑만 있으면 다 될 것 같던 두 사람이 떨어져 있으면서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잘만 풀어나갔다면 현실적인 멜로물로 나아갈 수 있었겠지만, 모호하게 설명되는 인물들의 감정선과 갑자기 불거져 나오는 장애물은 애달픔보다 답답함과 허무함만 가중시킨다. 남자는 자신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사랑과 멀어지는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여자는 희대의 어장관리녀가 된다. 군대 간 경험이 있는 남자라면 속이 터질 노릇이다.
 
 
결국 둘의 애정선은 기다림이 길어질 수록 더 간절해진다기보다 이상하게 지쳐가고 희미해지는 형국을 띠게 된다. 이 때문에 영화 중간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사랑 이야기 이외의 주제(존과 아버지의 사연 등)는 에피소드 자체만으로는 꽤 인상적이나 사뭇 생뚱맞게 느껴진다.그래놓고 마치 걷잡을 수 없다가 벌려놓은 이야기를 대충 수습하려는 막장 드라마의 결말을 보는 듯한 영화의 결말은, 두 사람의 사랑의 결과로서 애잔한 감동을 자아내기보다 '이게 뭔가요...' 싶은 마음이 먼저 들게 한다.
 
기다림은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간절하고 애타는 사랑을 품게 하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반대로 불타오르던 사랑도 흐릿해지는 결과를 불러온다. <디어 존>은 안타깝게도 후자의 경우다. 7년의 기다림이 이어지면서 영화 속 여주인공 뿐 아니라 이들의 사랑이야기를 전해주던 영화의 시선도 흐릿해진다. 사랑은 꾸준히 강렬하게 이어지지 못하고, 그래서 이 사랑의 힘을 강조하고자 하는 영화의 목소리는 쉽게 전해지지 않는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더라도 사랑의 감정을 확실히 잡든가, 아니면 아예 모진 현실의 실체를 드러내든가 했어야 했다. 둘 사이에서 확실한 방향을 잡지 못한 이 영화는 결국 애매하게 부유하는 정체불명의 멜로가 되고 말았다.

(총 0명 참여)
mokok
잘봤어요   
2010-03-04 21:52
swerjkl
글 잘 읽었습니다..   
2010-02-22 02:07
snc1228y
감사   
2010-02-20 16:19
sdwsds
너무 기대된다.   
2010-02-20 00:35
1


디어 존(2010, Dear John)
제작사 : Relativity Media / 배급사 : (주)화앤담이엔티
수입사 : (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 공식홈페이지 : http://www.dearjohn.co.kr
공지 티켓나눔터 이용 중지 예정 안내! movist 14.06.05
공지 [중요] 모든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 관련 안내 movist 07.08.03
공지 영화예매권을 향한 무한 도전! 응모방식 및 당첨자 확인 movist 11.08.17
92222 [디어 존] 디어 존-배우들의 조합은 괜찮았는데 sch1109 12.05.12 865 0
89442 [디어 존] 남녀 모두 공감하기 어려운 영화 gmzone 10.12.05 1107 0
88836 [디어 존] 조용한 사랑이야기 bzg1004 10.11.01 357 0
85399 [디어 존] 떠날수밖에 없는사랑 (4) anon13 10.08.01 767 0
84556 [디어 존] 디어 존 mika1028 10.07.13 705 0
83806 [디어 존] 디어 존 후기 (4) deresa808 10.06.20 604 0
82715 [디어 존] '전쟁의 상흔'이 갈라놓은 그들의 사랑이야기 (3) kaminari2002 10.05.20 1233 0
81821 [디어 존] 조금은 지루하고.. 아쉬움이 남는.. (3) ehgmlrj 10.04.25 771 0
81387 [디어 존] '디어 존' 7년의 지루함같은 영화 (6) laubiz 10.04.14 1000 0
80418 [디어 존] 실망스러운... 이건뭐 난 왜 반전을 기대한건지.. (3) chamsori8 10.03.22 801 0
80341 [디어 존] 사랑이 하고싶은 영화... (7) aktlsdo 10.03.20 906 0
80236 [디어 존] 기대치에 못미치는 디어 존. (8) okongday 10.03.18 781 0
80078 [디어 존]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기대했다. (4) polo7907 10.03.13 716 0
79937 [디어 존] 시사회.... (7) gibbum2 10.03.10 961 0
79926 [디어 존] 영화가 끝나면 얼떨떨한 기분... (9) kooshu 10.03.09 875 1
79855 [디어 존] 디어존.. (5) junpaboss 10.03.08 1854 0
79851 [디어 존] "길버트 그레이프" 와 "노트북" 사이에서.. (6) pontain 10.03.08 773 1
79844 [디어 존] 볼만했던영화 (4) kajin 10.03.08 722 0
79803 [디어 존] 과연 이게 사랑일까? (4) eddieya 10.03.07 727 1
79766 [디어 존] 운명적인... (3) ttl10045 10.03.05 1338 0
79738 [디어 존] 디어존 후기 (5) chungja 10.03.05 1937 0
79723 [디어 존] 노트북의 기억.... (3) jenot 10.03.05 747 0
79713 [디어 존] 2주간의 사랑...그리고 7년간의 기다림.... (3) mokok 10.03.04 733 0
79688 [디어 존] 배우만 화려했던 B급 로맨스 (9) sh0528p 10.03.04 1034 0
79684 [디어 존] 시사회 다녀갔다 옴 (6) alwlsl15 10.03.04 667 0
79668 [디어 존] 일어날때 불쾌하고 시간이 아까운 영화에요 (42) hagood966 10.03.03 8353 1
79664 [디어 존] 디어존 시사회를 다녀와서 (2) shgongjoo 10.03.03 1454 0
79651 [디어 존] 아만다의 매력만 돋보였다는... (6) 731212 10.03.03 837 1
79645 [디어 존] [적나라촌평]디어 존 (7) csc0610 10.03.03 1284 0
79406 [디어 존] 디지털시대에 보내는 아날로그 편지만큼 지루하다 (6) marcellin 10.02.22 835 0
79386 [디어 존] 편지형식의 영화 (10) ll4545ll 10.02.22 1190 0
현재 [디어 존] 기다리다 지친다 (4) jimmani 10.02.19 4297 0

1 | 2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