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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요가 아닌 박해일... 은교
ldk209 2012-05-02 오후 1:25:08 602   [1]

 

이적요가 아닌 박해일... ★★★

 

교과서에 시가 실리고, 거주하는 마을에 문학관 건립이 논의될 정도로 알려진 시인 이적요(박해일). 제자 서지우(김무일) 정도만이 드나드는 한적하고 낡은 그가 거주하는 저택에 어느 날 여고생 은교(김고은)가 찾아온다.

 

단적으로 정지우 감독은 왜 박범신의 원작소설에서 당뇨병으로 죽어가는 70대 노인역에 30대의 박해일을 캐스팅했는가? 추론해 보자면, 첫째, 그 나이대에 그러한 역할을 할 만한 배우가 없다. 둘째, 아무래도 관객의 시선이 느낄 부담감을 고려해야 된다. 이건 영화의 흥행에 대한 고려다. 셋째,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잡을 수 없는,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회한의 표현으로의 캐스팅이다. 젊은 박해일의 등장은 이에 대한 상징이랄 수 있다.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마음속에 여전히 청춘과 욕망이 있지만 껍데기만 늙어간다는 관점을 젊은 배우가 노인 분장을 해서 표현하면 대단히 흥미로울 것 같았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즉 세 번째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두 번째가 제일 큰 이유였으리라 짐작해본다. 딱히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나라도 그랬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70대 노인과 17세 여고생의 사랑이라는 이야기 자체가 부담스러운 데, 그 노인이 실제 노인이라면 과연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 관람하고픈 마음이 들 것인가?

 

어쨌거나 이는 모힘이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모험, 실패한 캐스팅. 실패로 규정한 이유는 일단 몰입에 방해가 됐기 때문이다. 40년이라는 연배 차이는 연기력이나 특수분장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그 무엇이었다. 화면에서 보이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이는 70대 노인 이적요가 아니라 내내 30대 젊은 배우 박해일이었다. 게다가 이런 괴리는 의도치 않은 (아니면 의도했나요?) 코미디까지 구사하게 만든다. 어색한 박해일의 노인 말투와 노인답지 않은 행동(거울을 주우러 절벽을 내려가는 이적요, 아니 박해일의 몸짓)에 객석에선 웃음이 빵빵 터진다. 아, 이 무슨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차라리 젊은 이적요가 등장하는 장면에선 대역을 활용하드라도 가급적 노인 배우를 캐스팅했으면 지금보다는 나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 반해 은교는 최강의 캐스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반짝반짝 빛이 난다. 물론, 이는 은교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환한 빛으로 화면을 물들인 촬영, 연출, 편집의 힘도 크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은교의 빛남은 영화에서 스스로 말하듯 이뻐서가 아니라, 은교라는 인물 자체가 싱그러운 젊음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를 관객들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여튼, 아무리 강조해도 김고은이라는 신인을 은교역에 캐스팅한 건 정말 이 영화 최대의 성과물이라고 할만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 관람을 선택하거나 또는 기피하게 되는 이유는 노출, 파격적인 정사 장면 등과 관련 있을 것이다. 단적으로 노출에 대해 말하자면, 상당히 강하다, 정사장면도 쌔다. 그럼에도 그런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라거나 머릿속에 진하게 남아있지는 않다. 노출이나 정사가 극 흐름과는 무관하게 툭 튀어 나왔다면 그랬겠지만, 전반적으로 흐름에 녹아들어 있어 아마 충격(?)이 덜했나 보다. 게다가 주요인물 세 명의 노출은 모두 나름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다. 이적요의 노출은 늙고 쇠약함의 상징, 은교의 노출은 젊고 싱그러움의 상징, 서지우의 노출은 욕망의 상징.

 

그런데 제목이 <은교>이고 기본적으로 스승과 제자의 사이에 끼어든 은교라는 소녀로 인해 발생하는 이야기, 삼각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은교를 중심으로 한 관계보다 나로선 오히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더 흥미가 일었다. 제자의 젊음을 질투하는 스승, 스승의 재능을 질투하는 제자, 그리고 그 뒤에 감춰져 있는 둘의 비밀. 그럼에도 영화는 은교를 중심에 두고(어쩌면 너무 당연하게도) 진행되다보니, 김무열의 비중이 약하고 두 남자의 긴장관계에 대한 묘사가 단선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건 마치 삼발이 중 다리 하나가 떨어져나가 기우뚱거리는 느낌.

 

영화에서 이적요의 늙은 신체와 이적요가 사는 낡은 저택은 동일한 의미이고, 은교라는 싱그러운 젊음의 방문으로 늙은 육체와 낡은 저택에 변화가 찾아온다. 영화 중간에 은교가 낡은 문갑을 옮기려 하지만, 은교의 다른 요청은 선뜻 들어주던 이적요가 그 문갑의 이동만큼은 동의하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물리적으로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안타까움, 회한이 바로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은교>는 단적으로 70대 노인의 성적 판타지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은교나 제자 서지우의 캐릭터가 일관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왔다 갔다 한다. 이게 단점으로 보이진 않는다. 왜냐면 이 모든 건 17세 소녀를 보면서 열병에 빠진 노인의 시선이니깐 말이다.

 

※ 이건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처음 김고은을 봤을 때, 중국여자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기사를 보니 어릴 때 중국에서 오래 자랐다고. 외모도 그 땅의 영향을 받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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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2012, Eungyo)
제작사 : 정지우필름, 렛츠필름 / 배급사 : 롯데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eung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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