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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만담가의 귀환 스쿠프
kharismania 2007-01-19 오후 10:39:46 925   [1]
기자라는 직함안에서 모두가 꿈꾸는 바로 그것. 특종(scoop). 이름만 내밀어도 알만한 유수의 언론사든 가쉽으로 채우는 타블로이드지든 간에 특종이라는 단어는 그 안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에게는 하나의 워너비와도 같다. 물론 모든 기자들이 특종을 좇는 하이에나일리는 없지만 특종이란 결국 기자들에게는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셈이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추든 내전국가의 내부적 비리를 들추든 그 사실이 제3자에게 놀랄만한 효과를 부르면 그 사실은 결국 특종이라 명명되어 진다. 

 

 1935년 생. 올해로 70세를 넘긴 노익장의 유머감각은 아직 죽지 않은 듯 하다. 우디 알렌의 필모그래피 중 최근작인 '매치 포인트'로 그의 영화에 입문했다면 이해못할 이야기겠지만 우디 알렌의 영화를 오랫동안 접한 이라면 이는 반가운 소식이 될 법도 하다. 그의 특별한 유머감각. 마치 만담이라도 하듯 관객을 홀리는 언변의 마술은 이번 작품에서 탁월하게 부활한다. 언제나 그렇듯 그의 입으로 직접.

 

 전작 매치포인트의 중후하고 비장한 감성은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목소리를 통해 베르디의 아리아로 조율된다. 특히 클라이막스 부분마다 흐르는 '일트로바토레(IL TROVATORE)' 중 선곡된 아리아, 오셀로와 이아고의 격렬한 이중창은 그 극단적인 방법론이 취하는 평온의 갈망을 극적으로 상징하는 음악적 기술력과도 같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중간중간에 반복삽입되는 도니체니의 희극 '사랑의 묘약(Rebecca Luker)'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은 극이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순행적 진행을 극단적으로 대변한다. -그 남자의 사악함에 대한 경악과 안도가 함께 존재하는 모순이란!-

 

 '매치포인트'는 우디알렌의 필모그래피에서 하나의 전복 혹은 또다른 방점이 되는 듯 한데 그것은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본고장 미국 뉴요커의 지정학을 등지고 영국으로 날아간 것, 그리고 우디 알렌 특유의 위트가 철저히 거세된 -그 자신도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확고히- 방식의 이야기라는 점은 이 작품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히 독특한 지점을 차지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전작이 그의 구도가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음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한번쯤 돌아보았다는 것으로 이해가 될 증거물이면서 동시에 그가 선을 갈아탄 의도가 다시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부른다. '스쿠프'는 '매치포인트'를 연결하는 모종의 방점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는 영국에서 이야기를 하려 하고 전작의 비극성을 심화시키는 스칼렛 요한슨이 다시 한번 그의 타자가 된다.

 

 일단 영화는 재즈 넘버가 흐르곤 했던 과거 우디알렌 영화들과 달리 '매치포인트'와 마찬가지로 클래식한 넘버가 쓰였다. 극의 시작과 함께 흐르며 중간중간 삽입되고 마지막 순간까지 흐르는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중 제3곡인 '작은 백조의 춤(Dance des cygnes)'이다. 전작과 등을 돌린 희극적인 분위기가 넘실거리는 이 작품은 물장구를 치는 백조떼의 한낮 망중한처럼 여유롭고 경쾌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클래시컬한 우아함이 깃든다. 그것은 영국이라는 환경이 지닌 고풍적인 우아함을 대변함과 동시에 그 귀족적 삶이 지닌 시대착오적인 정서에 대한 조롱과도 같은 느낌이 묻어난다. -마치 우디알렌이 직접 때리는 순발력있는 블랙코미디적인 위트처럼-

 

 시작부분에서 사람들은 어딘가에 모여 누군가를 추도하고 있다. 전설적인 특종기자 조 스트롬벨(이안 맥쉐인 역)의 죽음을 추도하는 동료들의 자리.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레테의 강을 건너는 그의 모습이다. 그는 그 자리, 즉 삶과 멀어져가는 저승길의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에게 특종감을 얻게 되고 그는 자신이 잡은 저승길에서의 특종을 이승으로 전파하고자 한다. 그리고 열정이 충만하지만 어설픈 기자지망 대학생 산드라 프렌스키(스칼렛 요한슨 역)에게 스트롬벨은 그런 사실을 전하고 우연히 마술사 시드니 워터맨(우디 알렌 역)은 그녀에게 얽히며 함께 그 특종에 다가가게 된다.

 

 여성 연쇄 살인 후 타로카드를 놓고 사라지는 타로카드 살인마로 지목되는 피터 라이먼(휴 잭맨 역)은 가문좋고 집안 짱짱한, 즉 잘 나가는 재벌가의 차기 주자로 살인마와는 전혀 무관해 보인다. 그런 그에게 차근차근 접근하는 산드라와 시드니는 고인이 된 기자가 그 생사의 벽을 넘고 전해온 특종의 예감이 헛것을 본것이라는 확신을 굳히게 될 뿐이다. 그런 와중에 시드니를 몰아붙이며 거짓 부자관계까지 형성하던 산드라는 라이먼과 사랑에 빠져버리게 되고 그녀는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혼돈을 느끼게 된다.

 

 일단 이 영화는 영화 그 자체의 극적인 재미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우디 알렌이 극에서 보여주는 만담가 기질의 위트는 영화에 웃음의 코드를 심는 가장 큰 축이 된다. 또한 무엇보다도 살인마를 좇는다는 서스펜스한 소재가 유머러스하고 발랄하게 채색되어 비극적 바탕을 희극으로 가공됨으로써 트랜스적이며 동시에 두가지의 상반된 극적인 감상의 동반이 이뤄진다. 이는 우디 알렌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여전하다는 것에 대한 감탄사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전작 매치포인트와 상반된 이야기를 하는 듯 하지만 이 영화는 전작에 대한 속죄처럼도 느껴진다. 한 남자의 졸속한 범행이 완전범죄로 포장되어 순탄하게 넘어가버리는 음흉한 이야기는 이 영화에서도 변형되어 등장한다. 하지만 그 결말은 다르다. '매치 포인트'에서 크리스(조나선 리스 마이어스 역)가 노라(스칼렛 요한슨 역)를 살해하고 자신의 삶에 평안을 찾게 된것은 결국 파멸적인 미래를 살해하고 안정적인 현실을 찾게 되었음으로 해피엔딩이지만 그 행위적인 방법론은 애초에 비극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행각자체는 이미 범죄적이고 지탄받아야 함이 마땅한 파렴치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이 동정을 산 것은 그 캐릭터가 지닌 인간적인 냄새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고 스토리텔링 자체의 기발한 전개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쿠프'는 그 남자의 행각을 다시 한번 봐주지 않음으로써 전작이 행했던 정의의 전복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무엇보다도 열악한 자신의 처지와 환경에서 기인한 크리스의 욕망에 비해 라이먼의 욕망이 동정을 부르기애는 이기적인 성향에 가깝다는 점도 그런 가당성에 한몫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전작에서 희생양이 되는 역을 맡았던 스칼렛 요한슨이 이번에는 그 파렴치한 행위에 일갈을 날리는 역을 맡았다는 것이다. -물론 우디알렌이 이를 염두에 둔 것인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그렇다고 믿고 싶다.-

 

 사실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서스펜스가 느껴지기에는 이야기의 선이 확실해서 추리가 필요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극의 흐름을 통해 드러나는 인물간의 관계 구도 변화는 미묘한 긴장감을 형성하고 동시에 극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동시에 대사가 주는 유머러스함은 그 긴장감과 상반되는 유쾌한 보색효과로 활용되곤 한다. 마치 그의 93년작 '맨하탄 살인사건(Manhattan Murder Mystery)'의 변주이자 현대적 확장판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또한 이 영화는 언론에 대한 비판작용을 수행하기도 하는데 물론 그것이 적극적이라기 보다는 관망하는 듯한 인상의 소극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특종이라는 하나의 관건은 기사의 질적인 형태와 무관하게 언론이 물어야 하는 추문같은 욕망이라는 것. 특종이라는 화두에 집착하는 비속성을 통해 언론이라는 것이 사실성보다도 화제성에 집중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언론의 기능성은 결국 진실과의 상관관계보다도 그것이 결과적으로 3자에게 어떤 감흥을 줄 수 있는가라는 소비적 형태로 활용되는가를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셈이다.

 

 우디 알렌 본인의 작품에 다시 한번 연기자로써의 필모그래피를 추가한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야기꾼이자 활동적인 액터이다. 40년의 감독 생활에서 40편의 영화를 찍어낸 그는 여전히 1년마다 1편의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고 있다. 매번의 영화가 모두 걸작이 아니라해도 그 정력적인 열정은 인정받아야 할 귀감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반가운 것은 상대를 홀리는 부드러운 독설적 만담가인 우디 알렌을 스크린으로 만난다는 것이다. 또한 그 나이에 자신의 생에 미련을 두지 않는 과감한 극적 효과까지. 우디 알렌의 영화를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작품이며 동시에 그의 전작에 느꼈던 호감으로 찾은 이들에게는 그의 본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어쩄든 그 식지 않는 왕성한 창작력만으로도 이 작품은 꽤나 감탄스럽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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