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온거)

사실 결말에 대한 예상은 어렵지 않은거죠.
1. 인간이 이기거나.
2. 기계가 이기거나.

둘 다 아니었다는게 예상 밖이라면 밖일수도 있겠죠.

영화가 개봉하기 전 여러가지 루머가 나돌았습니다.
네오가 잠을 깨어날 것이라는게 대표적인 예였죠.
거창하게 장자지몽 얘기까지 나오면서...

영화 홍보 문구가 한몫 했다고 봅니다.
'누구도 예기치 못한 결말.'
'시작이 있는 곳에 끝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여러 사람들이 시작이 있는 곳에 끝이 있다는
얘기를 하며, 뭐 암튼, 돌고 도는거라는..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전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리지널 포스터를 보니 이렇게 써있더군요.

'Everything that has a beginning has an end.'

이건 사실 오역 아닙니까?
원래의 의미는 '시작이 있는 모든 것에는 결말이 있다'
입니다.

이건 한글 카피판하고는 정 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것 아닌가요? 제 짧은 영어 실력에도 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작이 있는 곳에 결말이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순환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시작이 있는 것은 결말이 있다는건,
새로운 시작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결말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밖에는 해석이 안되는데요.

사실 제 생각엔 영화의 결말은 순환을 강조한다기 보다는,
The end. 끝을 강조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그것이죠.
물론 다시 공생하며 생을 시작한다는 순환의 의미로써 설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길고 지루했던 인류 절대 절명의
전.쟁. 이 끝나고, 평화를 맞이한다는게 주된 흐름 아닌가요?

감독이 원했던 주제는 사랑(남녀, 인간애, 인류애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그 사람이라는 존재가 느낄수 있는 가장 뜨거운 감정. 그 사랑)과 공존입니다.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것이 가장 큰 틀로 보이나 감독은 여러 장면과 흐름을 통해 인류의 여러 인종과 병사중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이는 현실에서 소외받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집단입니다.)을 강조합으로써 공존의 중요성을 설파합니다. 흑인 동양인 뿐만 아니라 9.11 사태와 최근 일련의 이라크 사태에도 불구하고 매트릭스 3에서는 아랍계가 별다른 저항감 없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

신의 섭리보다는 네오 '그' 라는 선택론적 입장과 함께,
인간의 애정, 바로 사랑. 그 뜨거운 인류애가 인류 그 자신을
구원했다는 결.말. 즉,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 보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순환인가요? 전 네오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면, 다시 새로운 시온이 시작된다면 그것도 역시 그럴듯한 뒷받침을 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끝. 이 났습니다.
Everything that has a beginning has an end.

순환 보다는, 결말에 무게를 더 주고 있지 않습니까?

팬들의 입장 역시 매트릭스의 영원을 원하고 있고,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예상했던 것은 감독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끝' 을 알려주었습니다.

황당하다구요? 허무하다구요.
그것이 정정당당하고 보다 쿨합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정말 깔끔하지 않습니까?
순환 논리를 들먹이고 장황한 결말을 유지하지 않아도
감독은 우리에게 진실을 이야기 하려 합니다.
비겁하지 않고, 질질 끌려고도 하지 않고, 그들을 자신들이 만든 영광 아래 두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가장 진실하다고 여기는 일련의 사랑에 대한 상징까지도.

물론 매트릭스에 대한 애정은 제 평생 영화에 관한 한 최고의 전율을 느끼게 했을만큼 저도 강합니다. 또한 감독의 천재성, 그들이 받았고 또 그들의 창조물로부터 전파했던 무한한 영향력까지도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매트릭스는 그들이 만든 그 이상으로 거품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화내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꿈보다 해몽이 좋은 영화중 매트릭스만큼 부풀려진 것도 없었습니다. 감독에겐 그런 점들이 부담이 될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우쭐하지도 또한 회피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이 문제를 3편을 통해 해결(혹은 종결) 시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흥행을 고려한 수입사측의 홍보 문구가,
영화 해석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심각한 오역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오역 말이지요.
시작이 있는 그 곳에 끝이 놓여져 있다는 말은 분명히
순환 논리를 뜻합니다. 시작이 있는 것은 언제나 결말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는 큰 차이가 있지요.

사람들은 여전히 그 한글 문구를 보며 순환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역사는 시작됩니다. 하지만 전 무엇을 보아도 그것이 강조되었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영화의 끝은 말 그대로 평화로운 종말을 보여주었습니다. 상징적으로 하늘을 보여주면서도 새롭게 떠오르는 출발을 의미하는 일출이 아닌 아름다운 석양이 아니었던가요.

네오는 죽었고(이것이 제거이든 소멸이든 죽음이든)
선택받은 그와 진한 인간애와 사랑을 통해
시온은 평화를 찾았고, 인간과 기계는 해법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영화의 끝. 이자 결말 아닌가요?
매트릭스는 시작을 했던 것처럼 이제 결말을 갖게 되었습니다.

매트릭스는 끝이 났고, 우리는 우리 인생을 다시 살아갑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언제보다도 열정적으로, 또한 풍부한 감정을 느끼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영화가 아닌 우리일 뿐입니다. '선택'은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하는 것만이 남아 있습니다.

끝은 끝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