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가 짧아 말을 하느니 차라리 입을 다물며 살겠다는 지조(?)있는 ‘킬라’. 그 신념은 직업에도 적용된다. 착하게 생긴 사람보다는 싸가지 없어 보이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딱 1억 원어치만 처리하기로. 평소에도 말 없기로 소문난 신하균이 세상도처에 살고 있는 ‘예의 없는 것들’만 골라 처리하는 킬라역에 캐스팅됐을 때 관객들은 <킬러들의 수다>에서 보여진 껄렁껄렁한 폭약전문 킬러를 연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의 없는 것들>속 ‘킬라’는 다르다.
영화는 킬라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의 복잡한 상황, 미래에 대한 허황된 기대를 단계별로 보여주는 친절함까지 지녔다. 영화적 말장난이 주는 즐거움은 독한 역설로 사회적 시스템과 맞짱 뜨고 싶은 감독의 취향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그 욕심에 걸맞은 신하균의 명연기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쯤 부딪쳐 봤던 개념 없는 것들에 대한 증오는 영화 속 캐릭터들을 통해 대리만족과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웰-메이드 영화보다는 킬러의 전형성을 살짝 비틀며 유쾌하게 관객과 소통하고자 했던 박철희감독의 의도는 매 장면마다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폭력과 살인으로 가득 찬 듯싶다가도 억지스럽지 않은 웃음코드를 자연스럽게 삽입, 액션과 코미디를 두루 갖춘 수작으로 완성된 점은 한국영화의 장르적 구분으로 볼 때 분명 독보적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인간군상들을 다양한 연결고리로 묶어 놓은 점도 신선하지만 알면서도 쉬쉬했던 교육, 종교계의 문제들을 ‘투우’라는 생소한 소재를 이용, 한칼에 해결하는 모습 또한 신선하다.
하지만 차마 그들에게 내놓고 드러내지 못했던 감정들은 킬라가 지니고 있는 현재 상황과 주변인물들의 이야기에 밀리고 만다. <예의 없는 것들>의 단점은 킬라의 사생활과 관련해 주변인물들이 겉돌게 표현됐다는 점이다. 멜로가 부각되면서 쓸쓸하게 마무리된 영화의 마지막 엔딩의 여운이 오래가지 못한다. 영화 후반 너무 많은걸 담아내고자 뻔한 상황들을 미리 배치한 점도 코믹 느와르를 표방한 이 영화의 마이너스 요소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던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예의 없는 것들>이 주는 아이러니는 악의 응징이 아닌 ‘예’를 중요시 하는 우리들의 태생적 관념이야말로 살인을 유발한다는 비극에 있다. 그 정신적 트라우마를 유쾌하게 풀어낸 <예의 없는 것들>의 평가는 순전히 관객들의 몫이다.
2006년 8월 9일 수요일 | 글_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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