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들어졌어야 했다 (오락성 7 작품성 8)
레미제라블 | 2012년 12월 18일 화요일 | 최승우 이메일

<레미제라블>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는 사람 역시 의외로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빵과 은촛대로 요약되는 그 유명한 이야기는 원전이 (그나마도 엉망으로) 대폭 축약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는 이 소설을 집필하는데 무려 17년을 투자했는데, 그만큼 분량도 방대할뿐더러 각종 문학적 양식과 소재, 기법이 얽힌 ‘사회 서서시’다. 휴 잭맨은 <레미제라블>에 대해 “사랑, 갈망, 탐욕, 정의감, 열정 등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을 다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이 거대한 교향곡과 같은 이야기를 최대한 오리지널에 가깝게 구현한다.

하나의 소스를 다른 매체에 옮겨 심을 때의 중요한 포인트는, 그 매체의 고유한 특성을 어떻게 극대화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레미제라블>이 뮤지컬로서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다분히 장황하고 격정적인 원작의 만연체를 노래라는 양식으로 함축해서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은 그 뮤지컬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무대공간을 확장, 원작의 웅장한 스케일을 스크린에 펼쳐놓는데 성공했다. 영화는 폭우 속에서 장 발장을 포함한 죄수들이 부역에 동원되어, 항구에서 커다란 목선을 인양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마디로 역동적이고 압도적인 스펙터클이다. 그 외에도 1832년 봉기 전후의 파리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장면들―대규모 엑스트라가 동원된 집회, 봉기한 군중들이 거리에 바리케이트를 쌓아놓고 시가전을 벌이는 모습, CG를 배제한 채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장대한 세트로 만들어낸 시내의 풍경 등은 어째서 <레미제라블>이 영화화되어야 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파리 전체를 무대로 사용하는 뮤지컬’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사실 <레미제라블>은 극의 중간 중간에 노래가 곁들여지는 식의 전형적인 할리우드 뮤지컬이 아니다. 아예 모든 대사가 노래로 꽉 채워져 있다. 물론 주옥같은 명곡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뮤지컬을 자주 접해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어느 정도 지루함은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려 158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에 이 부분에 얼마나 익숙해지느냐가 관건일 듯하다. 스튜디오에서 미리 녹음해놓고 립싱크를 하는 것이 기존의 뮤지컬 영화 제작방식이었다면, <레미제라블>은 현장에서 모든 노래를 ‘원 테이크 라이브’로 담아내는 과감한 시도를 택했다.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는 그 이름값만큼 전반적으로 훌륭하다. 휴 잭맨은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장발장의 수척한 외모를 위해 36시간을 굶고 촬영하기도 하는 등, 배우들의 노력과 고생이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뮤지컬 배우 경력이 있는 휴 잭맨과 앤 해서웨이에 비해 러셀 크로우의 뻣뻣한 노래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판틴 역의 앤 해서웨이가 부르는 <I Dreamed a Dream>은 그중에서도 단연 빛난다.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며 딸 코제트를 키우는 미혼모인 그녀는, 해고당한 뒤 머리와 이빨, 몸까지 팔게 된다. 비참한 삶에 절망한 그녀가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처연하게 부르는 노래가 <I Dreamed a Dream>이다. 노래의 시작부터 끝까지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앤 해서웨이의 얼굴에 고정된다.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장면이 아닌가 싶다.

2012년 12월 18일 화요일 | 글_최승우 월간 PAPER 기자(무비스트)     




-휴 잭맨, 러셀 크로우, 앤 해서웨이, 아만다 사이프리드, 헬레나 본햄 카터… 양과 질 모두 만족스러운 이름들.
-다소 투박하게 들리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그만큼 현장감이 느껴지는 노래들. 곧 발매될 O.S.T가 기대된다.
-19세기 파리를 재현하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였다니, 눈여겨보면 재미있을 듯.
-뮤지컬에 춤이 없다. 대사도 없다. 노래만 있다. 꽤나 인내심이 필요하다.
(총 0명 참여)
1

 

1 | 2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