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인의 초상! 연걸 형님의 이력을 들여다본다.
2006년 2월 20일 월요일 | 유지이 이메일


순식간에 멀쩡하게 서있는 사람의 어깨를 타고 올라가 머리 위에서 곡예를 부리는 것을 보면, 정말 예전 홍콩 액션 배우들의 시대는 갔는지도 모른다.

시장 바닥에서 유리 사이를 날아가고 동그랗게 말아놓은 철조망 속을 헤집고 다니던 <옹박>의 광고 문구처럼, 이소룡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성룡은 늙었으니까. (전성기 시절 영화에 비한다면 지금의 성룡은 분명히 늙었다) 하지만 토니 쟈의 호언장담 사이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액션 스타는 쉽게 자신의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단순히 액션 만으로 그 자리에 올라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이 나타났다 사라져간 액션 스타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빼어난 액션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헐리웃으로 넘어간 성룡은, 세월이 흘러가며 잃어버린 육체능력만큼 스턴트의 합을 짜는 정교한 노하우는 업그레이드 되었음을 증명해냈다. 슬랩스틱 코미디와 쿵푸 액션을 조합한 성룡 스타일은 헐리웃도 홍콩 영화도 다가가지 못한 독특한 경지에 이르렀다. 빼어난 육체 능력을 지녔지만 단 두 편의 <옹박>에서 이미 액션의 합이 진부해진 토니 쟈 팀에 비하면, 헐리웃의 치밀한 촬영팀을 활용한 성룡 팀의 액션은 <상하이 눈>과 <상하이 나이트>를 거치며 일종의 '재키챈 무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렸다.


무술인 이연걸

홍콩 액션의 또 다른 얼굴이며, 토니 쟈의 도전장 상대 중 하나였던 이연걸은 어떤가? 헐리웃 경력으로 보자면 이연걸은 성룡에 한참 못 미치지만, 무술인으로 이연걸이 밟고 있는 땅은 성룡도 다른 홍콩 무술 배우도 밟아보지 못한 유일한 땅이다.

무술과 차력은 다르다. 무술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육체를 활용해 적을 무치르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이다. 무술의 호전성은 존재의미 자체다. 멋있게 싸우는 것도 힘이 쎈 것도 멀리 뛸 줄 아는 것도 무술의 근본에서 벗어난다면 쓸모없는 기술일 뿐이다. 힘든 수련과정을 거쳐야하지만 보여주기 위한 기술이 많았던 차력을 무술계에서 경박하게 여겨 한때 금기시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무술의 근본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니까.

성룡은 데뷔 전 원표, 홍금보와 함께 경극 등에서 쓰는 체술을 배웠다. 날렵하고 가벼운 몸놀림은 실제 날이 선 칼을 한 끗 차이로 피하며 관객의 감정을 흔들어놓는 경극식 체술의 유산이었다. 화려하고 감정을 가득 실은 동작과 정교하게 합을 맞추어 놓은 성룡의 스턴트는 자신이 배운 체술을 훌륭하게 계승한 결과인 셈이다.

반면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북경무술학교에서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고 무술대회를 휩쓴 이연걸은, 진정한 의미에서 무술인이다. 성룡과 원표가 배웠던 체술보다 우위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육체를 단련한 목표가 다르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홍콩 무술 영화의 전성기 시절, 노련한 무술 감독의 동작 연출 아래 화려한 장면을 선보였지만 이연걸의 액션이 성룡의 그것과 다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인하고 정확한 동작에 멀리 한국 땅에서 쿵푸를 수련하고 있는 제자들이 감탄하고 있음에도, 영화적으로 화려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연걸이 출연한 <의천도룡기><소호강호> 등의 영화보다 초창기 <소림사> 시리즈를 좋아하는 팬의 상당수는 무술애호가들이다)

홍콩 신무협 중심에 서서

영화배우를 꿈꾸는 무술인 이연걸을 스타덤에 올린 서극은, 80년대와 90년대 홍콩 신무협 황금기를 이끌던 거물이었다. 지금은 영화제 회고전 쯤은 되어야 감상할 수 있는 호금전과 왕우의 고전 무협극 전성기가 지난 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서극은, 홍콩 영화에 헐리웃 특수효과를 접목하기를 꿈꾸던 몽상가였다.

중국풍 시대극에 헐리웃 특수효과를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꿈많은 청년이 택한 방법은, 자신이 새로운 홍콩식 특수효과를 만드는 것이었다. 잘 단련된 쿵푸 수련자를 피아노줄에 매달아 정교하게 액션을 연출하는 서극의 방식으로 홍콩 무협 영화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홍콩 신무협을 서극이 만들어냈고 서극 영화 무술 안무의 정점에 무술감독 정소동이 있다면, 그들이 찾아낸 최고의 아이콘은 이연걸이었다. 타고난 재능에 체계적으로 제대로 배워 혹독하게 단련한 육체를 가진 이연걸은 더구나, 곱상한 외모까지 지니고 있었다.

정통 무술을 배우는 과정에 잘 단련된 육체는 곧, 서극과 정소동이 합작한 쿵푸발레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렇게 신무협의 중요한 지점에는 이연걸이 있었다. 신무협 전성기가 한참 지나 장이모우의 연출한 <영웅>에 쿵푸 안무를 위해 합류한 정소동을 만난 이연걸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훨씬 유려해지고 탐미적인 액션을 선보인 <영웅>의 한참 전에 이연걸은 신무협을 만났다.

누벨바그 초입 <네 멋대로 해라>를 통해 장 폴 벨몽도를 발굴한 것처럼, 서극이 진정 이연걸을 발굴한 영화는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황비홍>이었다. 몇 편의 <소림사> 시리즈로 명성을 얻어가던 이연걸과 이미 <용행천하>같은 영화를 찍기는 했지만, 서극에게나 이연걸에게나 <황비홍>이 가지는 위치는 매우 각별하다.

익숙한 멜로디의 마초한 주제가 '男兒當自强(남자는 스스로 강해야 한다)'으로도 유명한 <황비홍>의 플레이롤을 훌륭하게 소화함으로써 이연걸은 <천녀유혼>의 왕조현, <동방불패>의 임청하와 함께 신무협을 대표하는 스타가 된다. 서극이 참여한 <황비홍> 시리즈 중에서 초창기 이연걸이 주연한 세 편이 가장 빼어난 작품이라는 것이 중론. 이후 <동방불패>와 <의천도룡기>를 거치며 신무협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하며, 이후에는 <영웅>(장 이모우가 감독한 작품과는 다른 현대 액션물)과 <탈출> 등을 거쳐 홍콩 액션 자체를 대표하는 배우가 된다.

무술인과 무술인, 이연걸과 무술가들


이번에는 마지막 영화란다. 과장된 오보덕분에 <원령공주>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줄 알고 있었던 지난 사례에 비추어 볼 때 100% 믿을 수 있는 소식은 아니지만, 스님이 되기 위해 출가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헐리웃 진출 후의 필모그래피가 전성기 때와는 현격하게 느슨해진 것을 보면 <무인 곽원갑>이 영화배우 이연걸의 마지막 영화라는 광고가 꽤 설득력을 얻는다. 더구나 이연걸의 필모그래피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실존 인물에 대한 영화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영화배우를 꿈꾸었고 결국 이루었지만 이연걸의 시작은 정통 무술인이었다. 중국식 판타지나 성룡식 아크로바틱 액션이 중요한 홍콩 액션 영화보다 정식 쿵푸를 다루는 영화에 애착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추측은 쉽게 할 수 있다. 더구나 영화배우 이연걸을 전성기에 올려놓은 영화가 청나라 말기 전설적인 무술인이었던 <황비홍>을 영화화한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홍콩과 중국에서 수없이 영화로 만들어진 <황비홍>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실존 인물이다. 청나라 말기 아버지와 함께 보지림이라는 한약상을 운영하던 의사로 빼어난 무술 솜씨로 널리 알려진 인물. 무술 실력에 대해서는 소림사 속가제자에 속한다거나 기인인 거지에게서 무술을 배웠다는 소문이 있지만 자세한 행적에 대해서는 남아있지 않다.

영화에서 다루는 <황비홍>의 영웅적인 일대기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며 적당히 붙은 픽션에 제작자의 창작이 가미된 것. 성룡이 주연한 <취권2>에서도 주인공의 이름이 황비홍(영화에서도 다루지만 이연걸이 주연한 <황비홍>과 같은 인물이다)인 것을 보면, 이 인물에 대한 소문이 얼마나 많은 영화에 영감을 주었는지 알만하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연걸이 직접 제작에도 손을 댄 <방세옥> 역시 실존인물로 알려져 있는 청나라 시대의 협객. 부모형제가 모두 소림사 속가제자로 절정 고수였다는 방세옥은 기록에 의하면 어머니에 의해 어린시절부터 소림사 무술 엘리트 코스를 소화한 강자로 전한다.

당시 소림사가 낳은 고수를 꼽는 목록에 두번째에 꼽힐 정도의 절정 고수에 수많은 협행으로 유명한 전형적인 무협지 주인공의 기풍을 지닌 인물이다. 더구나 절정의 실력을 갖추었을 때 이미 20대에도 이르지 않은 인물이니 무협의 주인공으로 이보다 더 좋을 사람이 있을까. 이연걸 역시 <방세옥>에 대한 영화를 두 편 출연하여 성공을 거둔다.

대선배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지, 무술인으로서의 자각이 영화에 임하는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인지 <방세옥>에 이어 이연걸이 고른 영화가 <태극권>이다. 이미 반쯤은 전설이 된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다) 태극권의 창시자 장삼풍이 고수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실존 인물인지 증명하는 과정을 무시한다면, 기록에서 전해지는 장삼풍에 대한 이야기는 대략 영화와 같다. 소림사에서 말직을 맡고 있는 동자승이었다가 무슨 사건을 계기로 쫓겨났는데 후에 무술을 정진하다 깨달음을 얻어 무당파를 창시한다. 이 때 깨달음을 얻어 창안한 무술이 '태극'의 원리를 따른 무술이라 하며, 후에 '태극권'이라 부르기는 하는데 현재까지 전해지는 무술은 아니다.(현재 알려져있는 '태극권'은 하남 진씨 가문에서 창시해 전해지는 것이며, 현재 무당산 꼭대기 도교 사당에서 연습하는 무술은 최근에 이르러 성립된 것이다) 쿵푸계에서 장삼풍이라는 인물이 중요한 것은 이 인물의 등장 이후에 쿵푸가 소림과 비소림으로 나뉘어 졌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나누면 신체 단련을 중시하는 외가(소림) 무술과 호흡과 내공을 중요시 하는 내가 무술로 구분하는 첫 시점을, 장삼풍의 무당파 이후로 본다. 쿵푸를 소림의 무술과 소림이 아닌 무술로 구분하는 무협계의 오랜 전통이 시작하는 지점에 위치하는 인물이다보니 실존 여부가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작품의 소재가 되었는데 이연걸의 영화 <태극권>도 그렇거니와 김용의 무협소설 <의천도룡기> 또한 비중있는 역할로 장삼풍이 등장한다.(한국에는 <영웅문> 3부로 알려져있는 그 작품)


마지막 작품이라는 <무인 곽원갑> 전에 실존 무술인을 소재로 한 가장 최근 영화이자, 매우 연관이 많은 영화가 바로 <정무문>이다. 이소룡이 주연한 <정무문>을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일제 치하에 처한 중국을 배경으로 삼는다. 영화 제목으로 쓰이는 <정무문>이란 당시 절정의 무술 실력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곽원갑이라는 인물이 세운 무술 도장의 이름.

실제 '정무체육회(정무체조학교)'를 설립해 무술 대회를 열었던 곽원갑은 1910년 정무문 설립 즈음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소룡과 이연걸이 대대로 만든 (그 외에도 견자단이 주연한 드라마판 <정무문>과 주성치가 주연한 코미디 <정무문>도 있다) <정무문>은 곽원갑이 일본 세력에 의해 독살 당했다는 소문을 영화의 기본 줄거리로 삼았다. 곽원갑 사후 유학 갔던 제자 진진이 돌아와 사부의 복수를 하다 일본군의 총에 죽음을 당한다는 줄거리.

무술인으로 실존 무술가에 대해 다룬 영화에 보인 이연걸의 애정을 생각한다면 <무인 곽원갑>을 마지막 영화로 삼았다는 광고도 그럴 듯 하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실존 인물이자 일제에 의해 간섭이 심한 시절을 배경으로 무술을 펼치는 영화는 이연걸과 잘 어울린다.

더구나 <정무문>을 영화로 만들며 선배 이소룡의 그림자를 벗어나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을 영화인이자 무술인 이연걸의 한가지 성공으로 본다면, 원류격인 곽원갑을 다루는 영화는 충분히 마지막을 장식할 만 하겠다.

영화인 이연걸의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르는 영화가 기다리고 있다.
은막에서 볼 수 있는 무인 이연걸의 마지막 영화일지도 모른다. 전설의 <무인 곽원갑>이라는 이름으로.

(총 7명 참여)
bjmaximus
이연걸,아직도 영화 잘 찍고 있다는..ㅎㅎ   
2010-04-30 18:32
kooshu
이연걸이 정통 무술인이었군요ㅎ   
2009-01-02 16:53
qsay11tem
따분함이 느껴지네여   
2007-11-24 16:21
kpop20
은퇴가 아니길   
2007-05-16 22:25
js7keien
정녕 은퇴가 아니길 바라며..   
2006-09-30 13:12
neige153
영원한 황사부님... 시사회 갔는데 절도있는 몸짓이 어찌나 멋지시던지 ;;;; 한국에 또다시 와주세요 ~   
2006-03-01 20:53
cxsxs76
이 글을 읽으니 곽원갑 더욱 보고 싶어지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2006-02-20 22:27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