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현실을 직면하는 영화 <해무> 김윤석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 서정환 기자 이메일

원작 연극과 비교했을 때 영화가 생각보다 세더군요.
연극이 어쩌면 더 셀지도 몰라요. 연극은 상상만 하게 했죠. 연극에서는 심지어 버린 시체가 배를 따라오잖아요. 말로만 전달하는 건데 만약 그걸 영상으로 옮겼다면 아마 더 끔찍하지 않았을까요(웃음).

원작보다 극단적으로 마지막까지 밀어 붙이더라고요.
연극처럼 풀 수가 없어요. 영상으로 옮기는 순간부터는 계속 상황을 집어넣다 보니까 굉장히 세 질 수밖에 없는 거죠. 연극으로 표현됐던 많은 이야기들을 영화에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보니 캐릭터의 표정이나 상황으로만 전달할 수밖에 없었어요.

영화를 본 직후 “처음부터 끝까지 엑기스만 먹은 느낌이라 소화불량에 걸려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다”고 했는데 생각이 좀 정리가 됐나요? (웃음)
사실 저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본 지인들도 그냥 쉽게 얘기해서 여운이 오래 가는 거죠. 상황은 상황이지만 스토리와 캐릭터만 가지고 타이트하게 들어가잖아요. 그런 것들이 인상적이었나 봐요. 그 상황 속에서 보이는 인간의 표정들, 그런 것들이 이 영화에서 담아내고자 하는 목표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굉장히 만족합니다.

선장 철주 캐릭터의 설정은 어떻게 잡아갔나요?
선장은 가장이잖아요. 가장이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가장 이성적인 판단은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니겠어요? 근데 선원들이 감당을 못하는 거잖아요. 어떻게든지 막으려 하지만 새어 나가는 그런 과정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도덕이나 윤리, 양심을 배제하고 생존 자체만 놓고 봤을 때는 최후까지 이성적이려고 했던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근데 끝까지 정신을 붙잡고 있으려고 하는데도 결국은 다 무너지는 거죠. 마지막 배를 살리려고 할 때는 선장도 맛이 갔죠. 그때는 이미 집착인 거죠.

일단 선장이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데에는 일정부분 동의해요. 하지만 한번이라도 선원들의 의견을 물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은 들었어요.
선원들이 평소 하는 행동들을 선장이 다 알고 있거든요(웃음). 그냥 돈 쥐어주고 여자 만나러 가라, 이러면 만사 해결되는 애들이기 때문에(웃음). 다큐멘터리나 자료를 찾아보고, 직접 선장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회의하고 그러지 않아요. 결정하고 통보하는 거죠. 어땠을 것 같아요? 선장이라면?

나약한 사람이라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휩쓸려 있었을 것 같아요.
이문열 작가의 단편 ‘필론의 돼지’있죠? 폭풍우가 치고 배가 뒤집어지기 일보직전이라 사람들이 전부 난리가 난 거에요. 배에서 도망간 사람이 있고, 배를 살려야 된다는 사람이 있고, 그런데 필론이라는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는 굉장한 지식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정작 돼지 한 마리는 그 난리 통에도 자고 있는 걸 보고 필론은 결국 자신이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돼지 옆에서 자는 것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거죠. 정말 말 그대로 휩쓸려 있었을 것 같다는 게 맞겠죠. 하지만 누구 한명은 뭔가를 해야 되잖아요. 그게 선장이고 선장의 역할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선장이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웃음).

시체를 버린 이후부터 딜레마일 것 같아요. 기관장(문성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상황부터요.
도덕과 윤리를 빼면 그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일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옳은 짓은 아니었잖아요. 그리고 모두들 스스로 미쳐가잖아요. 원죄를 다 속죄하는 것 같아요. 배와 함께 수장되는 것도 어쨌든 선장이 십자가를 진 거라고 생각해요.

“철주는 배가 집이다. 배가 가라앉더라도 달리 갈 곳이 없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니 철주의 의지나 삶을 붙잡고 있는 끈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이야기했어요.
이 영화를 찍기 위해서 다큐멘터리를 수십 편을 보고, 또 직접 뱃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다보니 상황이 쑥 들어왔어요. 근데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이 배가 만난 상황들이 굉장히 특별하겠죠. 그러나 그 상황 이전의 기본적인 것들은 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이에요. 이를테면 선장 말을 안 들으면 죽는다, 그런 기본적인 규율이 굉장히 센 거잖아요. 그리고 폐선 되면 선장은 진짜 끝나는 거예요. 그러니 절박할 수밖에 없고요. 또 원양어선에서의 실족사, 사고사,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 숨겨진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정말 동전의 양면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조선족들이 처음에 반발할 때 선장이 한방에 기선 제압을 해버리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나는 거죠. 그만큼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건가봐요. 사람들이 극단적이 되는 거고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철주라는 선장에 접근을 하니, 그렇게 극한에 몰렸는데 그 정도의 권한으로 배를 이끌려면 보통 깡으로 될 일이 아니구나, 생각이 드는 거죠.

배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 예를 들어 철주가 김계장(윤제문)과 붙는 신이나 조선족을 제압하는 신에서의 굉장히 강압적이면서 카리스마 있게 지휘를 하는 모습을 보면 배에서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가장으로 보여요. 그런데 집에서 부인이 다른 남자와 통간을 하는 모습을 봤을 때 마초적이고 폭력적으로 행동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더라고요. 캐릭터를 위한 영화적 설정이었나요, 아니면 다른 전사를 통해서 철주의 이면을 유추하게 만들고 싶었던 건가요?
에이,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그렇게 못해요. 뭍에 내려오면 굉장히 약한 사람이죠. 그리고 그 여자를 사랑했죠. 사랑했으니까 횟집도 차려주고 돈도 갖다 주는 거고요. 그 일 아무것도 아니야, 다 잊고 다시 시작하자, 라는 마음이 있으니까 밀항도 했을 거고요. 얼마나 불쌍해요(웃음). 그 좁은 배에서 호령해봤자 뭍에 나오면 그냥 나이든 아저씨일 뿐인 거죠. 심지어 세탁물도 직접 세탁기에 넣는데 지난번 배 타러 갔을 때 넣었던 세탁물이 그대로 있잖아요(웃음).

인간 본연의 욕망을 다루는, 선과 악의 근원적 질문의 측면에서 보면 <화이>와 유사한 화두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연극적이고 상징적인 구조를 띤 원형적 화두에 평소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측면에서 <해무>도 끌림이 있었던 건가요?
네. 작가주의 적인, 어떤 정신이 들어가 있는 영화가 요즘 많이 부족하잖아요. <화이>나 <해무>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많죠. 메시지가 정확하고요. 그런 작품들에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그리고 그런 작품들에 제가 출연함으로써 투자가 된다면 언제든지 출연하고 싶은 의사가 있어요. 만약 내가 안한다고 해서 그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끔찍합니까(웃음). 저는 재능 있고 뛰어난 감독의 작품에도 출연하고 싶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추세가 흥행 때문에 12세나 15세 관람가 영화 만들기 운동과도 같은데, 저는 그럴 때 용기 있게 19금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의 작품을 하고 싶어요. 그렇게 자꾸 우물을 파지 않고 물만 길어 먹다가는 금방 고갈 될 거라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작품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조금 피하고 싶은 이야기지만 힘들어도 우리가 현실을 직면해야 될 필요가 있잖아요. 사랑받을, 충분히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요인들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연우무대 출신이고 연기 30주년 기념으로 연우무대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에 출연한 것도 어떻게 보면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웃기죠. 재밌고요. <살인의 추억>은 송강호씨가 출연했고, <해무>는 또 제가 출연하고(웃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떻게 보면 <해무>는 선택에 대한 영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장은 어쨌건 자신의 선택에 추호의 의심 없는 인물이잖아요. 배우로서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할 텐데, 어떤가요? 후회도 하는 편인가요?
사람이라 후회를 안 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딜레마에 빠지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에요. 다음에는 좀 더 좋은 선택을 하자, 생각하고 쭉쭉 나가는 스타일이에요. 그렇게 많이 뒤돌아볼 시간이 없어요.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까, 또 나이에 맞는 작품을 만나야 하니까요.
유아인, 여진구, 박유천까지, 김윤석과 함께 호흡을 맞춘 후 배우로서 좋은 평가를 받거든요.
제가 만약 그 친구들에게 도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아마 촬영장에서 슛이 들어갈 때 온전히 이 상황에 몰입을 하는 어떤 기운을 느끼겠죠. 나를 귀찮게 하는 어떤 생각들을 다 버리고 집중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도와주는 것, 그것이 아마 그 친구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이 아닌가 싶어요.

극단에서 도제 시스템을 거쳐 실력을 쌓아온 배우들과 연기 경험 없이 캐스팅되고 현장으로 바로 투입되어 경험을 쌓는 배우들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겠죠.
분명 도제 시스템을 경험한 배우들과 그렇지 않은 배우들의 차이가 굉장히 컸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것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전에는 되게 심했어요. 잘못 배운 애들이 치장만 하고 예쁜 척 잘난 척만 하려고 하던 시절. 근데 요즘 친구들은 그렇지 않아요. 지금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도제 시스템의 꼿꼿함은 부드러워지고, 서로 인정하고 배우려고 하는 것 같아요.

마지막 신으로 인해 철주 캐릭터가 많이 설명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 장면을 초반에 찍었어요. 그래서 이 감정을 초반에 어떻게 담아내나, 불만이 많았죠. 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가 없어요. 굉장히 조심스럽게 예측을 하고 찍었는데, 그런 것들이 잘 투영이 된 것 같아요.

전진호가 침몰할 때 철주의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담기는데 말씀한대로 그때는 반쯤 미친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배를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감정들을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요.
배를 살릴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가야됐어요. 반쯤 맛이 간 상태이기는 하지만 지금 철주에게 남아 있는 건 그거 하나밖에 없어요. 인생의 모든 것이 이 배 하나에 달려있다는, 그 딱 한 가지. 이 배가 없어지는 순간 나도 없다는 심정 그것 하나.

그 신을 초반에 찍었다면서요.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근데 어쩔 수가 없었어요. 세트를 다 만들어놨기 때문에.
철주에게 배가 그런 존재라면 김윤석에게는 어떤 것이 그런 존재일까요?
가장 쉬운 대답은 가족인데(웃음), 음... 흥인 것 같아요. 내가 흥미를 잃기 시작하는 순간 연기고 호기심이고 다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 흥이 없어질까 봐 겁이 나는 거죠. 나이가 들어 어느 순간 피가 식어버리면 어떡하나, 왜 이렇게 빨리 확 포기하고 돌아서지, 이런 것들 있잖아요. 또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나둘씩 놓게 되고요.

그렇다면 혹시 요즘? (웃음)
아니요. 그걸 경계하고 있다는 이야기에요(웃음). 유부남이 아니면 더 많은 예를 들겠는데, 유부남이라서(웃음).

현장에서 흥을 주는 요소들은 어떤 것들인가요?
함께하는 배우들끼리 서로 흥을 주고받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고요, 여러 요소 중에 카메라가 있어요. 연기를 하고 모니터를 봤는데 ‘카메라가 이걸 잡았어? 아, 알겠어!’ 뭐 이런 상황들이 있어요. 배우들이 못 보는 걸 촬영감독이 기가 막히게 잡아냈을 때 그걸 모니터링 하면서 ‘아, 이걸 잡고 싶어 했구나! 알았어!’ 그렇게 또 흥이 나죠. 좀 전에 이야기한 마지막 침몰 장면은 굉장히 카메라가 가까이 찍은 것 같지만 아니에요. 망원으로 당긴 거예요. 굉장한 테크닉이죠. 기가 막히게 포커스를 잡았어요.

연기 외에도 영화의 전반적인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연출작은 언제쯤 보여줄 생각인가요? (웃음)
시나리오가 탈고가 되는 날이겠죠. 카메라도 공부하고 여러 가지 하고 있어요. 이러다가 나이만 들고(웃음).

<극비수사>와 <쎄시봉>을 촬영 중인데, 정말 바쁘게 연이어 작업하고 있어요.
올해가 그렇게 한 유일한 해에요. 중간에 <타짜- 신의 손>과 <쎄시봉>이 없었다면 제 패턴대로 가는 거였어요. <화이> 다음에 <해무>, <해무> 다음에 <극비수사>, 충분히 여유 있잖아요. 중간에 희한하게 <타짜- 신의 손>과 <쎄시봉>이 끼는 바람에(웃음). 두 영화는 비중이 많지 않으니까요. 이렇게 작업한 유일한 해이지 않을까. 앞으로 이런 일 없을 것 같아요(웃음).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사진_권영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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