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도, 밖에서도 천생연분 母子 <채비> 고두심 & 김성균
2017년 11월 9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개봉을 앞둔 <채비>의 주연배우 고두심과 김성균의 인터뷰가 약속된 날은 공교롭게도 故 김주혁 배우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음 날 이었다. 고인을 사랑했던 많은 팬에게도 깊은 충격과 슬픔을 안겨줬지만, 아들 같고 형 같았던 동료 배우를 떠나 보낸 심정은 무척 참담했으리라. 고인을 추모하며 조심스럽게 <채비>의 캐스팅부터 준비 과정, 촬영장의 모습까지 이야기를 풀어 놓는 고두심과 김성균.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모양이 영화 속 엄마와 아들 모습 그대로다. 처음 만났는데도 ‘쎄쎄쎄’ 호흡이 척척 맞았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해당 인터뷰는 <채비> 관련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제, 예기치 못한 사고로 배우 김주혁이 세상을 떠났는데, 故 김주혁에 대한 애도를 부탁한다.
고두심(이하 고) 드라마에서 엄마와 아들로 함께 연기한 적이 있기에 정말 아들 같다. 특히, 선친(故 김무생)과도 너무 잘 알던 사이라서 더욱 그렇다. 어젯밤에 비보를 듣고 너무 놀라서 잠시 멍했다. 세상에 나와서 할 일이 많은데 다 못하고 가서 너무 안타깝다.

김성균(이하 김) 너무 마음이 아프다. 사실 오늘 인터뷰를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진행하게 됐다. 여전히 마음이 안 좋다. 불과 며칠 전에도 <홍반장>(2004, 故 김주혁 주연)을 보며 감탄했는데 말이다.

개봉을 앞둔 소감은.
우리 영화는 제목 자체에서 많은 것을 드러낸다. 사람이 만나면 누구나 헤어짐이 있기에 숨 쉬는 동안은 모든 게 다 채비가 아닐까 한다. 요즘은 모든 게 너무 빨리빨리 돌아가고 있지 않나. 그 와중에 좋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 거 같다. 그렇기에 한편으론 느리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주 정성스럽게 만들었고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다.

아주 작게 출발해서 예산이 점점 커진 경우라 개봉한다니까 아, 하긴 하는구나 싶었다. 뭐랄까 새삼스러운 느낌이라고 할까.

상반기는 <보안관>으로 관객을 웃겼는데, 이번 <채비>로는 관객을 울리는 건가.
울리기보다 엄마와 아들 간의 일상을 통해 미소짓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언론시사회 때 보니 별로 웃지 않으시더라.(웃음)

<굿모닝 프레지던트> (2009) 이후 정말 오랜만에 스크린 나들이다.
TV에 집중했던 이유가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큰 대형 스크린에 나를 노출한다는 게 두려웠다. 또, 요즘에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흔히 ‘보따리 싼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지방 촬영이 많았다. 그래서 집을 오랜 시간 비워야 했고. 그게 싫더라. 집에 있는 걸 너무 좋아한다. (웃음) 드라마는 방송국에 잠깐 다녀오면 되고 상대적으로 익숙하고 편하다 보니 영화를 자꾸 기피하게 되더라. 또, 내가 볼 때 영화 내용이 너무 무서우면 못하겠더라. 어떻게 보면 너무 졸렬한 생각인 거지. 어느덧 나이가 드니 이젠 맞는 역할이 없다. (웃음)

드라마에서 충족하지 못한 연기적 갈증은 없었는지.
그래서 꾸준히 연극을 했다. 드라마로 해결 안 되는 부분은 연극으로 푼 거지. 연극을 하면서 사람끼리 부딪치고, 조곤조곤 모여 같이 대사 연습하고 그런 게 참 좋다. 아, 그리고 영화는 예전에는 가끔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는데 요즘은 통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캐스팅 제의가 온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당연하다, 배우라면 다 하고 싶지. 단, 아주 짙은 멜로는 못하겠다. 내가 애마 부인에 뽑혔었다. 몰랐던 사실이지?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니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포기했었다. 감독님들~ 어떤 역할이든지 줘 보세요. 고두심도 할 수 있답니다! (웃음)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현역에서 연기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다. 배우로서의 앞으로 계획은....음, 없다. 나는 선택 당하는 입장이라 계획한다고 되는 게 아닌 걸 잘 알고 있다. 어떤 역이든 주어진 역을 얼마나 잘 할까를 고민하는 게 빠르다. 새로운 배역을 맡을 때마다 ‘고두심’이 아닌 그 인물이 되려고 노력한다.

극 중 딸 ‘문경’을 연기한 배우 유선이 캐스팅에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당시 드라마 <우리 갑순이>에서 유선과 모녀(母女)로 출연 중이었는데, 어느 날 시나리오를 가지고 왔더라. 촬영 중인 상태라 솔직히 신경을 안 썼다. 작품을 하는 중에 다른 작품에 신경이 분산되면 안 되니까. 촬영 종료쯤 해서 유선이 날 붙잡고 꼭 해야 한다고 해서, 읽어보니 딱 내 역할인데 싶었다! 아들 역을 누가 할지 궁금했는데, 김성균이 한다니 너무 좋은 거다. 감독님은 처음 뵙는 분이었지만 현장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이 정말 잘 만났다 싶었다.

유선 누나가 시나리오를 줬는데 솔직히 내가 아들 ‘인규’역인지 몰랐다. 처음에는 ‘박계장’(박철민 분) 역할인가 했는데, 누나가 안 할 거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인규를? 하고 반문할 정도였다. 게다가 엄마역은 고두심 선생님이라기에!

결국 출연의 결정적 이유는 상대역이었던 건가.(웃음)
시나리오도 마음에 들었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누나(유선)가 엄마역에 고두심 선생님이 캐스팅됐다는 한마디였다.

평소 배우 ‘김성균’에 대한 생각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너무 잘한다 싶었다. 그다지 잘 생기지도 않은 배우가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번에는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더라. 어디서 저 내공이 나올까 싶었던 차였다. 김성균이 아들을 한다고 생각하니 나와 그, 모자(母子) 그림이 딱 그려졌다. 솔직히 나는 그간 어머니 역할을 많이 해와서 어떻게 보면 거기서 조금 플러스알파를 하면 되는데, 김성균은 발달 장애 역할이라 정말 힘든 역 아닌가.

대선배(고두심)와 연기한 소감은.
뻔한 대답이라 느끼겠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현장에 나가는 게 기다려질 정도였다. 정말 합이 잘 맞았을 때 맛볼 수 있는 느낌이랄까. 그 전에는 선생님을 뵌 적이 없음에도 처음 만나서 ‘푸른 하늘 은하수’(쎄쎄쎄)를 하는데 너무 호흡이 착착 잘 맞더라!

모자 연기를 했는데, 실제 두 사람이 닮은 점이 있던가.
소탈한 성격이 닮은 거 같다. 배우로서는 내가 다양한 역할을 안 해봐서 언급하기 힘들고. 또, 음,,,,긍정적인 마인드? 왜냐면 그도 이미 충분히 유명한 배우인데 조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니 말이다.

연기는 성품에서 나오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성품이 워낙 좋으셔서 엄마 역할도 잘 하시는 거 같다. 현장에서 고민 상담을 하면 정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주셨다.

상담 내용이 궁금하다.(웃음)
음... 내가 배우로서 얼마나 갈까?

이렇게 물으면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혹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이 생기더라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빨리 푸는 게 좋다고 말이다. 살면서 느낀 게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스스로한테 너무 힘든 일이라 미운 사람 만들지 않는 게 최고인 거 같다. 물론 라이벌 상대를 시기나 질투, 견제할 수도 있다. 특히 이 세계는 그게 심하다, 그럼에도 만나면 겉으로는 진짜 친한 척하고!(웃음)

좀 전에 아들 ‘인규’역을 제안한 건지 몰랐다고 했는데 이유는.
어, 그게 처음 시나리오 읽으면서 ‘인규’는 좀 예쁘게 생겼지 않았을까 했다. 아이돌? 같은 젊은 친구가 해야 할 거 같더라. 그래야 귀엽다고 느낄 수 있지 않나! 나 같은 놈이 하면 정말 때리고 싶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발달 장애를 연기하기 위해 참고한 자료가 있다면.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고 들었다.
‘엄마와 크레이’ 등 즐거운 영상을 많이 봤다. 보다 보니 감독님이 이런 걸 보고 각본을 썼구나 싶은 부분이 있더라. 극 중에서 ‘인규’가 아무거나 다 잘 먹을 거 같은데 반찬 투정하고 옷도 마음에 드는 거로 입으려 하지 않나.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응도 그렇고, 여섯 살인 우리 아들을 많이 참고했다.

‘인규’ 콘셉트를 중간에 바꿨다고 들었다.
그게 처음에 ‘인규’가 장애가 있다는 생각에 너무 무겁게 접근했던 거 같다. 처음으로 촬영한 장면이 엄마가 인규를 시설에 맡겨야겠다고 결심하고 함께 시설을 방문한 장면이다.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조언해주신 게 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그 장면을 촬영하는데 “좀 정신 사납게 움직여봐! 주위 아랑곳없이 칠렐레, 팔렐레 하면서” 이러시는 거다.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시설을 찾아간 엄마와 뒤에서 해맑은 아들, 그렇게 생각하니 딱 그림이 나오더라. 그 장면을 찍고 내가 잡았던 무거운 콘셉트를 아예 바꿨다. 정말 선생님께 감사하다.

그 장면을 상상해 봐라. 아들을 시설에 맡기려는 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무겁겠나. 내가 평소 선배든 후배든 남을 터치하는 걸 싫어한다. 좋은 마음으로 조언해도 ‘너나 잘하세요’ 이 소릴 들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 성균이가 내가 조언한 걸 기분 좋게 받아 들여줬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뿌듯하더라.

스스로 꼽는 가장 슬픈 부분은.
특히 두 가지 장면이 기억이 난다. 하나는 아들을 부탁하려고 딸의 옷가게를 찾아간 장면이다. 딸이 결혼했지만 배우자도 이상한? 놈을 만나 고생하고 또 허황되게 살지 않나. 또 하나는 중국식당에 모여 손수 짠 스웨터를 선물하는 장면이다. 손녀가 삼촌 기억 잘 한다고 하니까 ‘인규’가 누나 결혼식 날짜를 얘기한다. 그런데 자신은 참석 못 했다고. 엄마 입장에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감정 이입됐었다. 아마 실제로도 집안 행사에 안 데리고 가는 가정이 많을 것이기에 정말 눈물이 났다.

지금 그 장면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짓는 걸 보니 참 감성이 풍부하신 거 같다. 반대로 아쉬운 장면은 없었는지.
남겨진 아들이 혼자 살아갈 거 상상하니 너무 끔찍해서 차라리 같이 가자 이런 마음을 순간 먹지 않나. 그래서 테이프로 창문 틈을 막고 연탄을 피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이 좀 아쉬웠다.

선생님이 그 장면에서 테이프를 쫙! 쫙! 찢어서 좀 더 야무지게 붙였어야 했는데 덜 한 거 같다고 아쉬워하셨다. (웃음)

지금까지 ‘어머니’ 역할을 정말 많이 해왔는데, 이번 ‘애순’을 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일단은 그가 아픈 자식을 둔 엄마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까 많이 생각해 봤다. 아까도 말했듯 우리는 선택 당하는 사람이지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여배우가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어머니 역할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여배우가 너무 빨리 나이가 드는 거 같긴 하다. 나이가 든다고 감수성이 없어지는 건 아닌데 말이다. 중장년층의 멜로, 그러니까 노련하면서도 유치한 멜로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작품이 드문 게 아쉽다.

실제로는 어떤 어머니인가.
글쎄, 스스로를 평가하긴 힘들고, ‘엄마’라 하면 나는 일단 우리 엄마와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사회적 명예나 지위가 높은 분도 아니고 평생 농사만 지으신 분이지만 부모님과 다음 생에도 또 인연을 맺고 싶다. 언젠가 엄마의 손을 잡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엄마 해보니 너무 힘드니까 다음 생에는 내가 엄마하고, 엄마가 내 딸로 다시 연을 맺고 싶다고. 그랬더니 엄마가 아무 말씀 없이 손을 꽉 잡아주시더라. 그런 엄마가 그리고 외할머니가 엄마 연기의 밑거름이 된 거 같다.

외할머니 관련 추억이 많으신 거 같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회사 다닐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당시 염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켰었다. 예전 드라마 ‘춤추는 가얏고’ 작품 할 때 외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비슷하게 연기하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에 남는 작품 혹은 역할이 있다면.
나는 친정엄마 역할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데 며느리를 못살게 구는 시어머니는 자신이 없다. 잘 안되더라. 아주 예전 작품인데 ‘사랑의 굴레’라는 드라마에서 의부증 등 약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자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당시 연기를 너무 잘했다고 정신과 의사들이 상을 준다고 하기까지 했었다! 망설이다가 결국은 못 갔지만(웃음). 배우로서 이런저런 역을 섭렵해야 하는데 남을 괴롭히는 역이나 못되게 굴어야 하는 역은 내가 잘 풀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굴레’에서 안하무인 의부증 아내 역할이 참 기억에 남는다. 원래 밉고 시청자들에게 욕먹을 수 있는 역인데도 내가 하니 하나도 안 얄밉다고 작가가 날 너무 좋아했었다. 내가 너무 잘난 척인가.(웃음)

그런 말씀은 해도 되십니다. 하나도 안 얄미우세요. (웃음)

마지막으로 <채비>의 매력을 소개한다면.
사실 처음 읽고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너무 뻔한 스토리에 예상한 그대로 흘러가니 말이다. 그런데 옆에서 같이 보던 아내가 우는 거다. 정공법으로 차곡차곡 쌓아가니까, 기교가 없어도 진심으로 나가니까 알면서도 슬프다고 말하더라. 그 얘길 듣고 다시 보니 정말 그런 거다. 그래서 친한 선배한테 보여주니 자기는 돈 한 푼 안 받아도 찍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아, 내가 정말 시나리오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정말 신기한 게 같이 봤음에도 제각각 모두 다른 곳에서 슬픔을 느끼더라. 그게 특이한 매력인 거 같다.


2017년 11월 9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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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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