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집살이’ 할매들을 만나다 <시인 할매> 이종은 감독
2019년 1월 31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2016년 이종은 감독은 ‘시집살이 詩집살이’라는 시집을 접한 후 그 직관적인 시어와 강렬한 표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까막눈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운 후 손수 쓴 시를 엮어낸 시집 속에는 기존 시인들이 선사하던 것과는 다른 결의 감동이 넘실댔다. 시를 쓴 할머니들에 대한 궁금증, 그게 다큐멘터리 <시인 할매>의 출발이었다. 이후 할머니들과 그들을 시의 세계로 이끈 도서관장님을 만나며 그 인연은 더욱 소중해졌다. 여전히 부모를 그리워하는 70대 할머니를 보며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을 다시금 떠올렸고, 강퍅한 세태 속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가족 이야기가 만연한 요즘 서로 보듬고 위하는 게 가족의 본질적인 속성임을 더욱더 확신하게 된 시간이었다.

이종은 감독이 할머님들에게 ‘시. 인. 할. 매’ 4 행시로 답가한다.

, 시인이 된 우리 어머님들의 이야기입니다
, 인간적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 할 수 있는 한 많은 분이 오셔서
, 매진사례를 기록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서울을 시작으로 경기 부산 대구 광주 전남 강원까지 7개 도시 릴레이 시사가 예정된 거로 알고 있다. 첫 스타트를 앞둔 소감은.
작년 9월 DMZ 다큐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을 때 관객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당시 할머니들 모시고 유람선 타고 서울 구경한 후 함께 영화제 참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몇 개월 만에 할머니들을 다시 뵈어 기쁜데 한편으론 언론 공개를 앞두고 있으니 좀 떨린다.

2016년에 할머니들의 시집인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발견한 후 제작에 착수 개봉을 앞둔 지금까지 어떤 힘이 이끌어 준 것 같다. 어머니(시인 할머니들을 지칭)의 삶이 진솔했고 (내가) 진심으로 공감했기에 가능했던 작업으로 개인적인 역량이나 연출력은 극히 일부라고 본다. 앞으로 어머니의 삶이 반짝이진 않을지라도 지금 그 색 그대로 안전하게 유지되기를 바라고 관객이 그 마음을 같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시인 할매>를 통해 엄마의 향을 기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사실 아들의 경우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엄마 품에 안길 일이 별로 없지만, 엄마의 냄새를 잠시 잊고 있을 뿐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거든. 이번 기회에 엄마의 향기를 떠올린다면 좋겠다. 아마도 영화 속 어머니가 진짜 자기 어머니처럼 느껴질 것이다.

<시인 할매>는 당신의 장편 다큐멘터리 데뷔작인데, 지금까지 이력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그간 방송 위주로 활동했었다. ‘다큐공감’과 ‘사람과 사람들’ 등의 휴먼 다큐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시인 할매> 스틸컷
<시인 할매> 스틸컷

<시인 할매>는 전라남도 곡성 작은 마을에 사는, 까막눈이었던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고 이후 시를 써 시집을 내는 과정 등을 그린다. 할머님들과의 인연의 시작이 궁금하다.
2016년 할머니들의 시집이 나왔다는 기사를 읽고 호기심이 생겨 책을 구입해 읽었는데 깜짝 놀랐다. 할머니들이 쓴 시가 품고 있는 감성이 남다르더라. 기성 시인들이 주는 감동과는 전혀 다른 결의 감동을 받았고 시를 쓴 할머니들이 궁금해졌다. 예전 이창동 감독의 <시>(2010)를 보고 여러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극 중 ‘설거지통에도 시가 있다’라는 대목을 보고 비슷한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 그래서 바로 김선자 도서관장님께 연락했다.

사설 ‘길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김선자 관장님은 할머니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시를 쓰도록 이끈 장본인이다. 당신의 연락을 받은 관장님의 반응은.
관장님이 할머니의 삶의 흔적을 영상으로든 다른 매체를 통해서든 남기는데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허락받았다. 처음 할머니가 아니라 관장님에게 연락한 이유는 학생(?)은 선생님이 리드하면 잘 따라가기 마련이거든. (웃음)

할머니들과 마을 입장에서 보면 외지인들인 셈인데 혹시 경계하진 않던가.
우리가 사계절을 담아야 하기에 1년 정도 촬영 일정을 잡았었다. 마을에 (촬영할) 할머니들만 사시는 게 아니니 마을 주민이 우릴 경계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했다. 그래서 떡을 해 돌리며 미리 인사하고 안면을 텄다. 작은 농촌이라 젊은이들이 거의 없고 또 여초 현상이 심한 곳인데, 우리 같은 청장년이 가니 불 꺼진 마을에 활기가 돈다고 반겨주시더라. 또, 당신들의 자녀가 거의 우리 또래라 마치 자식 챙기듯 하셨다.
 <시인 할매> 스틸컷
<시인 할매> 스틸컷

그렇게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서 할머니 시인들을 만나러 갔다. (웃음) 첫 만남 첫 느낌은.
양양금 어머니와 윤금순 어머니를 가장 먼저 만났다. 정말 반갑게 맞아 주시는데 빈말이 아니라 어머니 같은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양양금 어머니가 쓴 시인 ‘해당화’와 ‘달’을 가장 좋아한다. 달을 보며, 길거리에 핀 꽃을 보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쓴 시인데,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연령을 막론하고 당연한 건데… 내가 미처 간과했던 부분이었다. 또, 윤금순 어머님의 시 중 ‘잘 살았다, 잘 견디었다’ 이 구절을 읽으며 그 지나온 인생이 저절로 그려졌었다.

간결하면서 가슴에 꽂히는 시들이 많더라.
정말 그렇다. 박점례 어머니의 ‘가난’의 한 구절 중 ‘어린 동생에게 먹이는 흰죽이 너무 맛나 보여’라는 구절이 있는데, 누군가 가난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시는 처음이라고 하더라. 어머니들의 시 한 편 한 편에 담긴 정서와 서사를 모두 담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할머니들이 벽에 그림을 그리고 그 옆에 시를 적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혹 연출적인 개입이 있었는지.
전혀 없다. 글을 가르치고 시를 써서 시집을 출간하고 벽에 그림을 그려 시를 적는 것 등 모든 과정에 촬영을 위해 일부러 요청한 것은 없다. 관장님이 프로그램을 기획해 진행하는 과정을 그대로 영상에 옮긴 거다.

소복이 쌓인 눈을 비롯해 다리 건너 소풍 가는 모습 등 영상이 참 좋았다. 촬영하며 신경 쓴 지점은.
일단 곡성의 사계절이 잘 드러났으면 싶었다. 여름의 파릇함과 겨울에 내리는 하얀 눈 등을 담으려 했다.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드론 촬영을 많이 했다. 고단하고 힘들었던 어머니의 삶이 시로 아름답게 형상화되듯 생활에 깊숙이 들어가 삶의 모습을 클로즈업하는 동시에 멀리서 관조적으로 그 삶의 단면을 잡아보고자 했다. 클로즈업과 롱샷의 충돌을 통해 나름 어머니의 삶을 가깝고도 멀게 담아봤다.
 <시인 할매> 스틸컷
<시인 할매> 스틸컷

다큐멘터리라는 건 피사체를 향한 감독의 시선이 중요하다고 본다. <시인 할매>의 경우 줄곧 애정 어린 시선이 영상 밖으로 전해지더라.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어머니들처럼 매력적인 인물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처음에 호감을 가지고 시작해도 촬영하다 보면 실망하는 순간이 생기고 그게 반복되면 괴로워진다. 이번에는 그런 고통이 전혀 없었다. 편집하면서 그 평화로운 모습에 행복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분들을 만났다는 감사함에 순간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요즘 가족 간의 갈등과 대립이 만연하기에 부모와 자식을 그리워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에 더 소중함을 느꼈던 것 같다.

<시인 할매>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실버문화방송콘텐츠지원작이다. 영화 제작 과정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아까 말했듯 2016년 시집을 읽은 후 제작에 착수했고 이후 펀딩을 시작했는데 잘 모이지 않았다. 아마도 진부한 소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지지부진 하던 차에 지원작에 선정되면서 시드머니를 마련,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작업이라 중간에 엎어져 버리면 결과물이 없음에 허탈해하실 수 있어서 어느 정도 제작비를 마련해 놓고 가자 싶었거든.

총 촬영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편집하면서 주안점은.
기록하지 않아 정확히 모르겠지만, 계속 카메라 3대가 돌아가고 있었으니 몇백 시간은 되지 않을까. 편집은 시간이 걸렸지만 아까 말했듯 전혀 힘들지 않았다. 촬영한 내용을 다시 보는 것만도 행복했으니 말이다. 다만 몇 가지 원칙은 있었다. 우선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는 것은 지양했다. 어머니들이 이래서 학교에 못 갔고 저래서 고생했고 이런 인터뷰는 일부러 삽입하지 않았다. 왜냐면 ‘시’라는 게 상징과 축약의 매체이기에 할머니들이 꾹꾹 눌러쓴 시를 통해 그간의 시간이 다 설명될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들의 극적인 변화를 유도하거나 (변화에 대한) 기대를 남기지 않으려 했다. 글을 배우고 시를 썼지만, 할머니의 일상이 (겉으로 보기에) 큰 변화가 없는 게 사실이다. 단 그 내면은 당당함 뿌듯함 자신감 등등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할머니가 지닌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그대로 드러나길 바랐다.

향후 활동 계획은. 혹 극영화로 영역을 확장할 의향은 없는지.
다음 작품은 시각 장애인이 산티아고를 순례하는 다큐멘터리로 1차 촬영을 마친 상태다. 원 소스 멀티 유저를 지향하기에 극영화는 늘 생각하고 있다. 윤재호 감독이 다큐멘터리 <마담 B>를 극영화 <뷰티플 데이즈>로 확장한 것은 좋은 선례라고 본다. 좋은 콘텐츠가 있다면 연극과 영화 등 영역은 중요하지 않고 형식의 차이를 넘어 공감을 얻고 싶다.

마지막 질문! 좀 어려운 질문인 것 같은데, ‘시인할매’로 4행시를 부탁한다.(웃음)
너무 어렵다. 생각 좀 해보자.

, 시인이 된 우리 어머님들의 이야기입니다
, 인간적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 할 수 있는 한 많은 분이 오셔서
, 매진사례를 기록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종은 감독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2019년 1월 31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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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윤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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