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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이 만들어 가는 한 편의 지옥도.. 눈먼자들의 도시
ldk209 2008-11-24 오후 7:30:38 1640   [1]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 가는 한 편의 지옥도..★★★☆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는 포르투갈 태생인 주제 사라마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922년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라마구는 1947년 첫 작품인 <죄악의 땅>을 발표하지만, 그 후 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한다. 그러나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1997년 <눈먼 자들의 도시>를 발표하고, 1998년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동안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것을 반대해왔던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적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데다 <시티 오브 갓>, <콘스탄트 가드너>로 평단의 주목을 받아 온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는 2008년 제61회 깐느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지만, 기대만큼의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호평보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높았던 가장 큰 이유는 영화가 소설을 영상문화로 새롭게 구현했다기보다는 단순히 소설의 충실한 재현에 그쳤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는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압축본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교차로에서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이세야 유스케), 그를 도와주면서 차를 도둑질한 남자,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의 아내(키무라 요시노), 안과 의사(마크 러팔로), 간호사 및 진료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손님들. 영화의 묘사는 소설의 자장을 벗어나지 않으며, 심지어 눈이 먼 순서라든가 그들의 에피소드도 거의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예를 들면,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가 자신을 도와주려는 사람에게 묻는다. “왜 출발하지 않죠?” “아직 신호가 바뀌지 않아서요”

 

모두 눈이 먼 사회에서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이 목도하는 것은 무엇일까? 안과의사의 아내(줄리안 무어)는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으며, 따라서 타인이 보지 못하는 진실을 혼자서 보게 된다. 그게 과연 행운일까?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점차 이성을 상실해가고 이성이 배제된 인간의 본성은 한 편의 지옥도를 만들어 간다. 수용소는 쓰레기와 더러운 오물로 뒤덮이고, 그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녀, 힘과 무기로 권력을 장악하고는 식량배급을 이유로 재물과 성을 강탈하는 무리들. 수용소를 벗어난 안과 의사의 눈에 비치는 도시는 이미 거대한 쓰레기장에 불과하고 굶주린 개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뜯어 먹으며 살아간다. 물론 지옥이라도 악(惡)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어깨를 잡고 서로에게 지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시체 대신 눈물을 닦아 주는 개, 죽은 여인의 몸을 정성껏 닦아주는 여인들.

 

소설에서는 이곳이 어디인지, 이 사람들의 이름이 무엇이며, 이들이 백인인지, 흑인인지, 히스패닉인지, 동양인인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눈이 먼 사회에서 이러한 구분은 필요가 없으며, 지구의 어떤 곳이어도 상관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영화에서도 이들의 외모를 제외한다면 소설처럼 별다른 언급이 없긴 하다. 그러니깐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와 아내를 일본인으로,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을 흑인으로, 장관을 아시아계로 설정한 것은 소설에는 나와 있지는 않지만 영상으로 옮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설정해야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상상력을 발휘한 지점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그래도 워낙 원작이 좋으니깐 기본은 한다. 다만,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실명한 자들과 보균자들과의 격렬한 대립이라든가 안과 의사의 아내가 거리에서 목격한 살벌한 풍경들이 좀 더 과감하게 담겼으면 어땠을까 싶다. 소설을 읽을 때 머릿속에 떠올랐던 풍경에 비하면 수용소나 거리의 모습은 좀 더 완화된 듯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두 번에 걸친 내레이션은 최악이었다.

 

소설에서도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영화도 사람들이 왜 실명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것을 이 영화의 단점으로 꼽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실명했다가 다시 시력을 회복하는 과정은 영화 <해프닝>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해프닝>에서 주인공은 “설명하기 힘든 자연현상인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갑자기 끝이 나는 경우가 있다”며 영화의 결말을 알려준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도 그 모든 악몽은 별다른 예측 없이 갑자기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소설 또는 영화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대체 뭘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영화를 보면서 KBS, YTN 그리고 미네르바가 떠올랐다. 이명박 정부가 새로 출범하면서 가장 큰 힘을 기울였던 정책이 바로 언론장악 정책(이것을 정책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면)이 아닐까 한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을 때, 노무현 선대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언론사 사장 취임을 막았던 대표적 세력이 한나라당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대통령의 측근이 언론사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YTN의 대표 프로그램이었던 <돌발영상>이 사라졌고, KBS의 시사 프로그램들이 이름이 바뀌면서 한적한 시간대(!)로 옮겨진 것은 너무 극적이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할까 싶을 정도로.

 

이 중 가장 극적인 사건은 미네르바였다. 네티즌 사이에 경제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는 미네르바에 대해 국가 권력이 신원파악을 하고 경제 예측을 하지 말 것을 강요하고(본인의 주장에 의하면) KBS라는 공영방송이 미네르바의 예측이 맞았느니, 틀렸느니 하며 시비를 걸고 있는 모습이 바로 현실의 대한민국에 펼쳐지고 있는 한편의 지옥도다. 무엇이 문제일까? 미네르바 사건에서 가장 핵심은 그의 예측이 틀렸느냐 맞았느냐가 아니라 한 네티즌을 상대로 국가권력이 신원파악을 하고, 입을 틀어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예측의 틀림과 맞음이 핵심이라면 그 수많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어떻게 할 것이며, 한국의 미래에 숱한 희망 바이러스(?)를 뿌려대는 행정가, 정치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단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집권만하면 한국 증시가 3000을 넘어 5000까지 간다고 예측하지 않았던가. 혹시라도 긍정적 예측은 허용하고, 부정적 예측은 막겠다는 것인가?

 

각종 시사 프로그램들이 폐지 또는 변경되고, 일개 네티즌의 입을 국가권력을 동원해 막겠다는 건 국민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과 동일하다. 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가장 원하는 건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들이다. 영화 속 지옥도는 자연스럽게 종말을 고하게 됐지만, 대한민국 현실 속 지옥도는 끝나려면 아직 많이 남았다. 누구 말대로 이제 겨우 일 년도 안 지났을 뿐이다. 그 사실이 더욱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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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자들의 도시(2008, Blin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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