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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민폐 캐릭터 탄생.. 감기
ldk209 2013-08-23 오후 4:28:40 1089   [5]

 

올해의 민폐 캐릭터 탄생.. ★★☆

 

※ 영화의 주요한 설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계기가 된 게 한국배 태극호라는 이유 때문에 개봉조차 힘들었던 <아웃 브레이크>가 1995년 영화.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13년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국형 재난영화 <감기>에서 치명적 바이러스를 퍼트리게 된 계기가 한국에 밀입국한 동남아 노동자라는 설정이 뭔가 불편하지 않은가? 물론, 영화는 인종차별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 다른 장치를 해 놓긴 했지만, 완전히 혐의를 벗긴 힘들 것 같다.

 

좋다. 어떻게 보면 그게 현실적인 이유가 될 지도 모르니깐. 다른 설정을 보자. 바이러스와 관련한 다른 영화의 리뷰에서 이미 몇 차례 얘기했지만, 100% 치사율의 바이러스 자체가 비과학적 설정이다. 가급적 과학적이어야 할 재난영화의 가장 기본적 설정이 비과학적이라는 문제. 바이러스는 숙주를 100% 죽이지 않는다. 왜냐면 자신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게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는 잠복기가 짧아 차단이 빠른 반면, 치사율이 낮을수록 잠복기가 길어 넓은 지역으로 전파,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낫는다고 한다. 그러니깐 만약 인류를 거의 멸망으로 이끌 슈퍼바이러스가 나타난다면, 높은 치사율에 긴 잠복기, 거기에 공기로 전염이 가능하고 특정 조건에서 변이가 쉽게 일어나는 속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도 영화적 설정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다.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법칙을 끌어다가 특정 영화의 세계를 축조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영화는 자신이 만든 법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내가 제일 짜치다고(대체 용어로는 후지다 정도?) 생각하는 영화들이 편의를 위해 자신들이 만든 규칙을 자신들이 지키지 않는 영화들이다. 호흡기를 통해 전염이 되는 치사율 100%, 걸리면 거의 이틀 사이에 죽는 치명적 바이러스라는 규칙을 만들었으면, 그 규칙에 따라야 되는 게 영화의 도리(!)다. 그런데 <감기>엔 이 규칙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건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결정적 위기를 만들기 위해 남들보다 오래 살아남고, 누군가는 아예 전염이 되지도 않는다. 대체 뭐하는 짓인가?

 

이처럼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이나 내러티브도 엉터리지만, 이 영화의 제일 짜증나는 점은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민폐 캐릭터 또는 전형적인 캐릭터라는 점이다. 이 중에서 갑 오브 갑은 단연코 수애다. 영화의 처음 부분을 보자.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치마가 올라가는 걸로 자신을 구하려는 119 대원에게 짜증을 내고, 고맙다는 인사도 없으며, 심지어 떨어진 차 속에 있는 서류를 찾아주지 않는다고 땡깡이다. 이건 싸가지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인간이 아닌 거다. 이런 캐릭터라면 당연히 영화에서 죽어야 마땅한 데 어찌된 영문인지 <감기>에선 이따위 캐릭터가 영웅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연결고리를 영화는 어처구니없게도 모성에서 찾고 있다. 그런데 수애가 발현하는 모성을 보자. 이건 완전 가족 이기주의의 극단이다. ‘우리 자식만 괜찮으면 남들은 어찌돼도 괜찮아’ 문제는 수애가 그냥 평범한 주부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야 할 바이러스 전문의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한국의 그런 특별한 모성에 대해 꾸짖어야 마땅한 데, 어쩌자고 그 따위 모성에 대해 박수를 쳐주고 있단 말인가.

 

수애만 그런가? 얼굴 예쁘다고 자기 할 일 제쳐두고 수애만 찾으러 다니는 119 구조대원 장혁은 어떠한가? 대체 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는 것인가? 게다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장혁은 어떤 경우에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 내가 영화 속 의사라면 장혁의 피부터 먼저 검사해봤을 것이다. 박민하야 말로 그저 어른들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로봇에 불과하니 딱히 말할 것도 없지만,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몇 번이나 잠깐 기다리라고 했는데도 왜 자꾸 어딘가로 움직여서 사람들을 찾아 헤매게 만드는 것인지, 옆에 있다면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유머를 담당한 유해진이나 영화 속 악역을 담당한 마동석은 그저 그런 캐릭터가 필요했기 때문에 창조된 인물일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영화에서 민족적이고 멋진 대통령과 반민족적 정치적인 국무총리가 대립되는 설정이 등장하는 데, 이건 대체 왜 그런 것인가? 행동의 개연성도 없고 생동감도 느껴지지 않는 민폐 캐릭터들의 향연.

 

전작권 환수에 대한 이슈를 개입시킨 것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뭐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점일 수 있으며, 전작권 문제가 어떤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영화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고 보여주는 방식은 완전 80년대 운동권 시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못하다. 이런 투박하고 올드하고 구태의연한 표현 방식과 그 후진 CG라니.

 

다시 캐릭터 얘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 대체 왜 한국형 재난영화에선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전문 직업인이 그려지지 않는 것인가? 차라리 수애는 바이러스 항체를 찾아 치료제를 만들려는 전문 분야에 집중하는 캐릭터로 그리면서 관객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모성 캐릭터가 필요했다면 그건 별도의 캐릭터가 담당하도록 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전작권 환수와 더불어 분당 종합 운동장에 시체들을 묻는 장면과 같은 이미지들은 분명 이 영화에서 버리기 아까운 지점들이다. 그러나 민폐 캐릭터들의 향연으로 <감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내하며 보기에 너무 힘들었다.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재난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정말 놀라기 그지 없다.

 

※ <아웃 브레이크>에 <컨테이젼>을 연상시키는 설정이나 장면을 가지고 왔던데, 그럴 거면 차라리 이야기나 캐릭터까지 좀 차용하시든가.


(총 0명 참여)
jhee65
영화 자체가 재난이라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ㅎㅎㅎ   
2013-08-28 16:13
regine99
동감합니다. 감정이입이 하나도 안되니 슬퍼해야할 장면에 실소가 나오더군요. 장르가 재난영화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재난이었습니다   
2013-08-2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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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2013, The F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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