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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아깝다
bistar 2004-06-22 오후 6:20:14 887   [0]
한 때 나도 소위 공포 영화라는 것을 보는 것을 즐긴다고 말하고 다녔다. 풀리지 않는 뭔가를 집요하게 쫓는 영화 속 인물들을 보고 있는 것이나 불가사의한 사건들의 실마리가 풀리는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저절로 몰입할 수 있었고,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을 즐겼던 것이다. 하지만 [링]이라는 영화를 본 이후에는 그다지 공포영화를 보는 것을 즐기지 못한다. 영화가 주는 공포가 아주 심해서 '즐긴다'는 표현이 매우 부적절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본판 오리지널보다 한국판 리메이크를 먼저 봤던 나는 영화의 마지막 TV브라운관을 통해 기어 나오던 사다코의 ‘령’을 보고 거의 숨이 멎는 줄 알았었다. 워낙 사전 지식 없이 봤기에 더욱 그랬을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매일 접하는 TV와 비디오 테이프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전파되는 한 맺힌 ‘령’의 저주는 ‘저거 완전 뻥이야, 허구야’라고 생각하며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소름 끼치고 찝찔한 잔상을 남겼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난 [링] 일본판 시리즈와 미국에서 리메이크한 것까지 모두 챙겨보는 (나조차도 이해 안 되는) 짓을 하기도 했다. 무섭고 찝찔한 느낌 때문에 다시는 일본 공포영화를 보지 않게 됐지만, [링]은 내가 공포영화라는 것에 기대하는 것을 충족시켜줬기 때문에 여전히 대단한 공포영화로 인식되어 있다.

한편, 나는 최근에 [령]이라는 한국 공포영화(?)를 한 편 보게 됐는데, 미국이든 일본이든, 어디에서든 다시 만들어진다 해도 다시 보고 싶지 않고, 제목이 주는 느낌이 아까울 만큼 공포영화답지 않은 영화였다.

사실 작년 여름에 한국에는 완성도가 있는 공포영화와 완성도 낮은 공포영화들이 몇 편 개봉을 하면서 ‘역시 여름엔 공포 영화’임을 확고하게 했었다. 그 당시 평단에서는 과연 무엇이 공포영화인가에 대한 담론이 오고 갔다. 갑작스런 사운드의 폭발적인 소리와 개연성이 없음에도 불연듯 튀어나오는 괴기스런 형상 때문에 관객을 소리지르게 하는 것이 과연 ‘공포’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담론이었다.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현상이나 대상을 소재로 심리적으로 호응하고 공포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영화가 진정한 공포영화이지, 놀이공원에 있는 ‘귀신의 집’처럼 깜짝쇼를 선사하는 것이 공포영화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계모라는 존재와 가정의 파탄, 무능한 아버지를 통해 정신 분열을 겪고, 한을 품은 ‘령’이 등장하는 [장화, 홍련]이나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덮어놓았던 과거의 아픔과 아파트가 밀집한 현대 도시에서 소외와 불신으로 인해 만들어진 비극을 다뤘던 [사인용 식탁]은 진정한 공포영화로서 인정을 받았다. 반면 여고생들의 질투와 여고의 전설을 소재로 한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여우계단]은 개연성의 결여와 깊이 없음에 계속되는 깜짝쇼를 보여줘 평단에서는 별 하나짜리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관객 동원에 관계없이 평단에서는 적어도 깜짝쇼만 있는 영화를 공포영화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2004년 여름도 역시 공포영화들이 줄을 서 있고 그 대열에서 두번째로 공개된 [령]은 이런 평단의 구분 기준으로 보나 일반 관객으로서의 나의 기준으로 보나 ‘공포영화’가 아니라 ‘깜짝쇼’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과연 이 영화의 공포의 대상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물을 소재로 하고 있고, 해리성 기억 상실증과 빙의 등을 소재로 이야기를 꼬아놓고, 하지 않아도 될 반전을 위해 플롯을 짜 놓았지만 도대체 무엇이 공포의 대상인지 확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의 꿈이나 회상 장면이라는 설정을 빌어 전혀 개연성 없어 보이는 장면들을 보여주고 모든 깜짝 놀랄 장면들을 그 안에 담아 놓았다. 공포의 대상도 아니고, 왜 나오는 지도 모를 장면 속에서 관객들은 소리를 지르고 가슴을 쓸어낸다. 이게 공포란 말인가? 심지어 이 영화는 공포영화를 몇 작품 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공포 영화라는 것을 보는 도중에 웃었던 경험이 없던 나를 실소케 한 영화였다. 여고생들이 판을 쳤던 공포영화에 신선하게도 ‘어머니’를 등장시킨 것은 나름대로 좋은 시도였는지도 모르지만 연기의 과장과 표현의 어설픔은 나를 실소케 했다. 그래서 영화에서 마련한 반전 부분에서마저도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공포영화라는 것을 보면서 웃다니… 이 영화는 나를 완전히 사이코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김하늘의 남자 친구로 나오는 류진의 캐릭터는 왜 넣었는지는 짐작은 가지만 생각이 있는 제작자와 감독이었다면 신중하게 그 캐릭터를 시나리오에서 빼 버려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령]은 제목이 주는 공포영화다운 느낌과는 달리 완전히 실망만을 안겨준 영화가 되어버렸다. 아쉽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아직도 궁금한 것은.. 계곡에 빠졌다가 나온 김하늘을 보면서 전혜빈이 던지는 대사 ‘죽을 때까지 기억하지마’가 도대체 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밀어서 물에 빠졌다가 나온 친구가 기억 상실증에 걸리라고 사주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억상실증에 걸릴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도대체 감이 안 오는 대사다. 그러고 보면 미스터리 요소를 던지긴 한건가? 하지만 절대 몰입하고 싶지 않다. 그 대사, 그냥 잘못 쓴 거겠지^^;; 내가 이해를 못한 것이라도 할 수 없고.. 그걸 안다고 해서 영화에 대한 감상이 더 좋아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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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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