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쥬얼은 <트랜스포머>가 관객을 제압할 필살기다. 애니메이션이 종의 기원인 <트랜스포머>는 영상으로 영역을 옮기며 종의 진화를 꾀했다. 그들이 잉태한 <트랜스포머>의 로봇들은 이목구비만큼이나 완성도가 또렷하다. <트랜스포머>의 로봇들은 단순히 인간의 조종을 받는 도구의 역할을 하지 않는 유기체의 성격을 지닌다. 이는 결국 금속성이라는 단면적 질감을 살린 비쥬얼에 능동적인 성격의 생명력을 덧씌울 수 있는가의 고민을 부른다. 일단 <트랜스포머>는 캐릭터의 완성도에 있어서 합격이다. 거대한 로봇들이 금속으로 만들어진 지구의 동력체-주로 자동차-를 스캐닝(scanning) 후, 변신하는 과정은 할리우드의 특수 효과 기술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가를 보여주는 압도감이다. 또한 유연함을 더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시선을 압도하는 규모의 캐릭터를 장식하는 또 다른 볼거리다. 게다가 개별적인 성격이 뚜렷한 로봇들은 마치 표정이 살아있는 듯한 유기체의 성격을 보이며 캐릭터적 매력까지 뿜어낸다. 피 대신 불꽃이 튀고, 비명 대신 굉음이 나는 로봇간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도 이색적이다. 다만 현란한 움직임과 빠른 화면 전환은 종종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어지럽다. 이는 마치 인간의 영역에 만족할 수 없는 할리우드의 거대한 영역 확장 의지로도 읽힌다.
<트랜스포머>의 주인공은 실질적으로 로봇들이다. 결국 인간이란 미약한 존재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처럼 가운데 끼어있는 셈이다. 물론 고래 싸움을 종식시키는 키워드로 로봇과 조우하며 교감하는 소년이 부각되지만, 그것마저도 인간의 선택이 아닌 로봇의 선택이다. 결국 로봇의 무차별 육박전 사이에서 부품처럼 떨어져나가는 빌딩처럼 인간은 소품에 불과해보이지만 이야기는 되려 인간을 배려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답게 경이로운 전시물로 시각을 자극하는 영상적 쾌감을 위해 이야기는 수단에 불과하다. 거대한 외계 금속 생명체들이 지구를 장악해도 그 안에서 살아남는 건 인간이며, 그들의 영향력은 지속된다. 결국 할리우드 여름 전도사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는 영상적 진보와 이야기적 진부함이 공존하는 장이다.
제품의 수요와 공급은 판매와 구매 행위라는 대립 구조의 충돌로 채워지는 상충 행위다. 지금은 여름 시즌이고, 관객들이 원하는 계절 영화는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트랜스포머>는 단순히 그 재미만을 섭취하고자 하는 관객의 입맛을 고려한 할리우드의-할리우드에서만 가능한-오락적 취향이니까. 명심할 건, 마이클 베이가 만든 여름 시즌 블록버스터라는 것. 뒤에 따를 만족감 혹은 실망감은 영화를 선택한 관객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덤이다.
2007년 6월 12일 화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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