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이 충무로 대표 ‘이야기꾼’으로 꼽혔던 이유는 재기발랄한 상황과 인물, 대사를 엮어가는 상상력 때문이었다. 기존 충무로 감독들과 색깔이 달랐던 그의 상상력은 루저와도 같은 네 남자가 국회의원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는 해프닝을 그린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부터 의뢰인을 죽이지 못하는 킬러들(<킬러들의 수다>), 동시대 서울에 급파돼 헤매이는 남파 간첩(<간첩 리철진>), ‘사랑은 전봇대를 타고 온다’고 말하던 불치병에 걸린 야구선수(<아는 여자>)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열전을 가능케 했다.
자기복제를 탈피하려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끌어들이면서도 아이러니를 바탕으로 한 ‘장진식’ 유머와 개성을 유지해 온 전작들은 어찌됐건 호불호가 갈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장진 감독이 2008년 강우석 감독과 정재영이란 페르소나를 공유한 <강철중 : 공공의 적 1-1>의 각본을 쓴 것은 대중들과의 접점을 넓혀보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최근작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성공과 <퀴즈왕>의 실패는 유머의 강약 조절과 더불어 어떠한 이야기를 꺼내놓느냐에 따라 대중들의 호응이 달라질 수 있음을 증명하는 예였다.
그의 10번째 영화 <로맨틱 헤븐>은 장진 감독 고유의 개성과 영화적 익숙함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스스로 “착한 판타지 드라마”로 규정한 만큼, ‘지옥은 없다’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죽음과 삶, 그리고 삶에 대한 선의가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구성은 암 투병 중인 엄마를 위해 골수기증자를 찾아 나선 미미(김지원),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긴 민규(김수로), 할아버지의 첫사랑과 만나게 되는 지욱(김동욱)의 이야기가 ‘엄마’ ‘아내’ ‘소녀’란 챕터로 이어진 뒤, ‘천국’으로 갈무리된다. 느슨한 옴니버스를 통해 셋을 포함한 여러 인물들의 사연을 차근차근 펼쳐 보인 후, 천국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에 이르러 꼭짓점을 향했던 각자의 사연을 인물들이 감정을 중심으로 마무리하는 형식이다.
형사들의 잠복근무에 동참하는 학생 미미, 자신을 죽이러 온 조폭과 맞닥뜨리는 변호사 민규, 천국에서 할아버지의 첫사랑을 만나는 택시기사 민규는 분명 기발한 상황 앞에서 예측불허의 대사와 행동으로 각인됐던 장진의 기존 캐릭터들과 닮아 있다. 그리고 이들을 엮어내는 솜씨도 다분히 해프닝에 치중했던 <퀴즈왕>에 비해 한층 매끄럽다. 인물들의 사연과 심리를 일관성 있게 유지해 나가면서도 예기치 못한 에피소드들이 적절히 삽입돼 웃음을 유발하는 식이다. 또 이순재, 심은경, 김무열 등 조연들의 안정감 있는 연기도 착한 판타지의 정서를 유지하는데 힘을 보탠다.
그러나 감독 스스로가 작가적인 욕심을 부려봤다는 천국에 대한 묘사나 논리는 큰 감흥이나 감동을 전해주지 못한다. 그건 온전히 선의로만 빼곡히 채워진 이 영화에서 신이나 인간에 대해 깊이 있게 돌아볼 여유나 성찰의 시선이 부재한 탓이다. 위로받거나 혹은 식상하거나. 착한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으로 천국을 묘사했던 몇몇 일본영화들의 화면과 닮아 있는 <로맨틱 헤븐>을 평이한 소망 판타지로 귀결시키는 건 바로 그 선의다.
2011년 3월 24일 목요일 | 글_하성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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