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개 도시를 돌며 제작두레 시사회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관객반응이 궁금한데, 특히 광주 시사회 분위기가 궁금하다.
광주가 제일 뜨거웠다. 확실히 광주가 가장 뜨거웠다. 트라우마센터(5·18 생존자와 가족 등에게 상담치료를 하는 곳)에서 시사회를 했는데, 아… 너무 어려웠다. 인사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더라. “재미있게 보셨냐”고 여쭤 볼 수도 없고… 등에서 식은땀까지 났다. “부족하지만 남겨진 분들의 아픔을 잘 표현해 보려고 노력했다”는 정도로 얘기했던 것 같은데, 기분이 정말 오묘한 시사회였다.
그 분들에게도 오묘한 시사회였을 거다.
영화 상영 중에 객석에서 “쏴! 쏴!” 라는 말이 흘러나왔다고 들었다. 그 사람을 향해 (총을)빨리 쏘라고. 차마 스크린을 쳐다보지 못하고 허공만 응시하신 분, 고개를 떨구고 계신 분도 있었다고 하더라. 피해자 중에 한 분이 무대 앞에 나와서 함께 말씀을 나눠 주셨는데, “<26년>을 제작해 준 것만으로 너무 고맙다”고 얘기해 주셨다. 본인도 진배(진구)처럼 청와대에 갔다가, 난지도에 버려졌다는 얘기도 해 주셨고. 우리 영화가 실화를 많이 끌어왔다. 미진이 어머니가 방 안에 있다가 총에 맞아 돌아가신 장면도 실제 있었던 상황이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창문을 닫기 위해 일어났다가 총에 맞아 즉사한 걸 모티프로 그린 거라고 들었거든. 그러니까 미진이 모델이 되는 케이스가 실제 존재하고 있는 거다. 어딘가에.
개봉 첫 주 주말동안 80만 관객이 <26년>을 찾았다. 영화에 쏟아지는 관심이 느껴지나?
숫자보다도 트위터나 인터넷에 올려주시는 리뷰들을 보면서 ‘오, 관심이 뜨겁구나’를 체감한다. 너무 감사한 건, 어린 친구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준다는 거다. “언니,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하는 친구들이 많다. “처음 볼 때 화가 나서 미처 못 봤던 것들을 두 번째 때 봤어요” 하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뿌듯하다.
영화완성도와 영화가 지닌 의미는 구분해서 바라봐야 한다는 논란도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위기다.
감독님을 비롯해서, 어쨌든 영화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영화잖나. 극장을 찾아주는 관객들에게 재미를 드리는 게 맞다고 봤다. 그래서 재미에 많은 주안점을 둔 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탄생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사건이라고 본다. 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이기에, 관객과 함께 만든 영화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 또 이런 영화가 개봉함으로서 많은 걸 시사한다고 본다. 사실 우리 영화 말고도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품들이 많잖나. <26년>은 그런 분들에게 희망을 드릴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다루기 힘든 소재를 다룸으로써 영화 소재와 주제가 더 다양해 질 수 있는 폭을 넓혀 줬다는 생각도 들고. 논란에 대해서는 예상했다. 상반된 의견이 나올 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했고. 관객마다 취향이 있는 거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하기 전에는 못 봤었다. 나는 컴퓨터로 뭘 보는 게 힘들더라고.(웃음) 그래서 찾아보지 않았다.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후에도 한동안은 안 봤다. 배우에게도 캐릭터는 새로운 창조거든. 원작 속 심미진이 강하게 박히면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데 방해가 될까봐 일부러 안 봤다. 그러다가 감독님으로부터 “원작을 보면 미진이가 왜 이렇게까지 밖에 할 수 없었는지,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웹툰을 읽었다. 하지만 웹툰을 보고 나서도 원작 속 인물을 쫓아가려 하지는 않았다. 나만의 미진을 그리려고 집중했던 것 같다.
5.18을 다룬 영화들은 많다. <꽃잎>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박하사탕>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5.18을 바라봤고, <오래된 정원>은 5.18을 외면했던 사람들의 부채의식을, <화려한 휴가>는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에 우연히 휘말리게 된 시민군들을 정면 응시했다. 하지만 5.18의 근원인 ‘그 사람’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영화는 이제껏 없었다.
그런 점 때문에 <26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게 아닌가 싶다. 방금 말한 영화들을 다 봤다. 보면서 ‘너무 하다. 어쩜 저럴 수가 있지.’ 라고 생각했는데, 보고 나면 또 금방 잊었었다. 연기자라서 그런가. ‘정말 연기 잘 하신다’ 이런 위주로 봤던 것도 같고. 그런데 그 역사를 표현해 내는 사람으로 영화에 서니까, 나도 모르게 ‘알아주세요’가 됐다. 어떤 책임감, 부담감 같은 게 내 안에 생겼다.
제작이 무산되고, 감독이 교체되고, 외압설이 돌고. 출연 결정을 쉽게 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을 텐데, 어떤 점이 선택에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했나.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온전히 재미있어서다. 굉장히 좋은 시나리오를 읽으면, 가슴이 막 두근두근 거리고 조바심이 생긴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였다. 시나리오를 보는데 가슴이 뛰었다. “제가 할 거예요”라는 말을 빨리 하고 싶은 조바심이 들었다. 그만큼 시나리오 자체로 영화가 너무 좋았다. 영화적인 배경이라든지 상황은 출연을 결정한 후에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끄러웠다, 많이.
어떤 면에서?
<힐링캠프> 하면서도 느꼈지만, 이런 의미 있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내가 나밖에 모르고 살았구나’를 많이 느낀다. 그동안 성공한 연기자 반열에 오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그게 너무 부끄러웠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길 염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두레회원들을 보면서 정말 많이 부끄럽다. ‘내가 이걸 알려고 <26년>을 했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당신이 <26년>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걱정한 것 같더라.
이런 상황, 저런 상황, 다 생각했을 거다. 아무래요.
주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출연에 뜻을 굽히지 않은 이유는 뭔가.
무지해서 그런가?(웃음) 잘 모르겠다.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게, 좋은 쪽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두려움이 없다. <26년> 출연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해코지를 입지 않을까, 그런 걱정은 하나도 없었다. 나로서는 이게 <주몽> 출연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 배우들은 어차피 목숨을 걸고 작품을 하는 거다. <주몽>할 때 내가 직접 말을 탔는데, ‘말에서 떨어져 다치면 어떡하지?’ 그런 상상을 하다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노출이 있는 영화를 찍어서 시집가는데 걸림돌이 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 역시 하다보면 연기를 할 수 없다. 결국 배우는 모든 걸 다 내걸고 하는 거기 때문에, <26년>도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공감이 아닌가 싶다. 실제 있었던 역사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크게 공감해 주신다. 촬영 할 때는 관객들이 얼마나 공감해 주실지, 상상이 안 됐다. 개봉 후에 오고가는 교류를 통해 확인 중인데, 너무 좋다. 우리가 했던 것에 공감해 주시고, 알아봐 주시고, 뜨겁게 반응해 주시니까. 배우로서 그게 가장 행복하다.
어떤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나?
많은 분들이 트위터에 멘션을 남겨주신다. 티켓 인증도 해 주시고. 가장 많은 멘션은 “왜 빨리 안 쐈냐!”, “얘기 할 새가 어딨냐!”는 반응.(웃음) 또 “혜진씨에게 관심 없었는데요, 이번 영화를 통해서 당신이 좋아졌습니다.” 그런 얘기도 많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고맙다”는 말이었다. “당신이 연기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잘 절제하면서 연기해줘서 고맙다”는 멘션을 받았는데, 오묘했다. ‘내 직업이 연기이고, 나는 그냥 연기를 했을 뿐인데, 고맙다는 말을 듣네?’ 내가 오히려 더 감사할 일이다.
평소 외부평가에 일희일비 하는 편인가?
아무래도. 나도 연약한 사람이니까. 백 마디 칭찬보다 한마디 쓴 소리에 흔들리는 게 사람인지라, 마음이 동하고 흔들린다. 다행히 어처구니없는 쓴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26년>의 경우에는 어처구니없는 쓴 소리가 적지 않아서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악의적인 소리를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는 영화라서, 호불호가 더 갈리는 것 같다.
어떤 분들은 이미 선을 나눴더라. “한혜진은 좌파 쪽이다.”라고. 그런데 뭐. 그렇게 얘기하다가 말겠지, 한다. 평생 나에게 관심 가져 주실 것 같지도 않고.
분노의 감정을 누르고 있어야 하는 씬이 많다. 연기하면서 울컥할 때가 많았겠더라.
진배와 미진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돌아가신 분들이 있는 납골당을 찾아갔을 때 많이 울컥했다. 거기에 나오는 미진과 진배, 정혁(임슬옹) 누나의 영정사진은 소품이지만, 나머지 사진 속 인물들은 실제로 그날 희생되신 분들이다. 촬영 전에 <26년>팀 모두가 가서 묵념을 하고 “영화 잘 만들겠습니다” 인사를 드리기도 했는데, 그 분들 사진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레인에 총을 들고 올라가 있는 클라이맥스 씬은 어땠나? 당신 손가락 하나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가 쏠리는 씬이었다. ‘쏴라! 빨리 쏴!’라고 마음으로 소리친 관객이 아마 부지기수일 거다. 그래서 궁금하다.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당사자는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을지.
혼자 크레인에 올라가서 찍는데, 너무 눈물이 났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감독님이 “미진이가 그래도 냉정을 되찾아야지” 얘기하시는데도, 그게 마음대로 되나. 그때는 정말… 하… 미진이도 어떻게 보면 한 명의 평범한 여자 아이잖나.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연약한 인간이잖나. 아프고 상처 많은 인간이잖나. 미팅 한번 제대로 못 해 본,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인간이잖나. 그런 아이가 큰 결단을 내려야하는 상황이 너무 슬펐다. 눈이 퉁퉁 부어서 촬영했던 것 같다.
결말에 대해서 말들이 참 많다. 누군가가 “봐. 경찰이 흰 옷을 입었잖아. 미진이가 ‘그 사람’을 맞춘 거야”라고 하면, “아니야, 요새 경찰복은 흰색이야” 이러고.(웃음) 모두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게끔 열린 결말을 선택했다. 원하는 대로, 스트레스 안 받는 쪽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미진이 사용한 총은 ‘M16 소총’을 개조한 진짜 총이라고 들었다.
우리가 촬영했던 건물이 광주의 폐건물이었는데, 그 폐건물 안에서 시범으로 화약총을 쐈다. 사격코치님이 “혜진씨 총 들어보고 놀라지 마요. 무거워요.(5kg의 정도의 무게다) 이 무거운 걸 들고 올라가서 쏴야 해요.”하면서 “눈을 절대 깜박 거리면 안 돼요”를 누누이 강조하셨다. 다행히 눈은 깜박 거리지 않았다는 거.(웃음) 총을 쏘는데 소리가 어마어마했다. 건물이 터지는 줄 알았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 그때 그 분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저 총이 나를 겨누고 있는데, 얼마나 무서우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60발 정도를 연사로 쐈던 것 같다. 두두두두두두.
미진은 내내 감정을 숨기고 있는 인물인데, 총을 쏘면서 한편으로 시원하기도 했겠다.
시원하더라고. “(총알) 조금 더 넣어주시면 안 돼요?” 그랬다.
미진도 그렇고 <주몽>의 소서노나 <제중원>의 석란도 그렇고 강한 여성상을 자주 연기한다.
깡다구 있는 역할을 은근히 많이 했다.(웃음) 여자이지만 결국 해내는, 그런. 희한하게 그런 역할들이 많이 들어온다. 맡겨주시기도 많이 맡겨주시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안 그래도 작품이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들께 물어본다. “왜 저를?”하고 말이다. 전해들은 이유를 내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운데… “네 눈 때문이다”라고 하시더라. 어렸을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내 실제 성격도 그런 편이다. 캐스팅에 대한 답도 굉장히 빨리 드린다. 영화에 출연할지 말지. 괜히 오래도록 고민하고 잡아두면서 상대를 애타게 하지 않는다.
결단력이 빠른가 보다.
빠르다. 백화점 가서 옷을 살 때 오래 고민 안 한다. 인터넷 쇼핑할 때도 장바구니에 슉슉슉 담아서 탁 산다. 성격이 급한 것도 있는 것 같은데, ‘뭘 고민해. 괜찮으면 사야지’ 이런 주의다. 그리고 결심한 것에 대해 후회도 웬만하면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집에서도 내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뭐라 안 한다. 고집이 있는 거지.(웃음)
많이 듣는다. 예전엔 더 많이 들었다. “애늙은이 같다”고. 왜 인지는 모르겠는데, 책임감 같은 게 강했던 것 같다. ‘우리가족은 내가 지켜야해!’ 이런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다. 실제로 언니가 둘이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도리어 언니처럼 행동했다. “일찍 다녀!” 걱정도 하고, “불 끄고 다녀!” 잔소리도 하고, “엄마한테 대들지 마!” 단속하기도 하고.(웃음) 그러니까, 내가 아들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엄마도 나를 아들같이 생각하시고. 지금도 그런다.
이미지에 반하는 그런 모습 때문에 <힐링캠프>에서 더 좋은 반응을 얻는 것 같다. 약간 엉뚱한 그런 모습 때문에 말이다.
의외지? 그런 의외의 모습을 의외로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웃음) 그리고 일단 내가 (이)경규 선배님과 (김)제동 선배님을 어려워하지 않으니까. 물론 너무 존경하는 분들이다. 하지만 촬영할 때만큼은 편하게 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셋이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 내가 두 분을 너무 어려워하면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힐링캠프>를 보다보면 한혜진이라는 배우는 참 ‘잘 듣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화의 시작은 듣는 것에서 부터’라는 말이 있는데, 원래 그렇게 잘 듣는 사람이었나?
예전부터 친구들이 나를 자주 불렀다. “네가 잘 들어준다”면서. 요새는 더 부르는 것 같다. <힐링캠프>를 하면서 내 안의 어떤 가치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잘 정리가 됐거든. 그러다보니, 친구들에게 조언할 때도 더 명료하게 해주게 되더라. 아닌 건 아니라고 딱 얘기 해주니까, 친구들이 상담요청을 많이 해온다. 연기자 동생들이 “언니 이건 어떤 것 같아요?” 물어보면, “해! 도전해! 무조건 해” 정확하게 조언해 주고 그런다.
가치관 얘기를 해서 궁금한데, 한혜진이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확고한 철칙이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흥행이나 시청률에 굉장한 연연했다. 나도 몰랐는데, 어느 순간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데뷔한지 불과 3년 만에 주연을 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책임감이 나를 눌렀던 거지. 지금은 그런 압박감에서 많이 벗어났다. 지금은 내가 어떤 일을 하든, 누굴 만나든,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그 속에서 분명 얻어가는 게 있다고 믿는 주의로 바뀌었다. 하다못해 흥행이 안 되고 시청률이 바닥을 쳐도, 나는 그 과정을 통해 내공을 쌓게 되는 거니까. 경험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배우로서의 한혜진이 지닌 가치관이라면,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가 아닐까 싶다. ‘이걸 왜 했지? 미쳤지’ 하며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은 절대 안 한다.
그렇다면 <용서는 없다>에서 당신이 얻은 건 뭐라고 생각하나? <용서는 없다>는 당신의 첫 영화 주연작인데,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우, 내가 언제 설경구, 류승범 선배님과 연기를 해 보겠나. “두 분이 출연 하신다고요? 무조건 해야 줘!” 그랬었다. 두 분의 놀라운 집중력을 보며 느낀 게 많다. 쇼킹할 정도로. 카메라 밖에 있을 땐 모른다. 평소에는 설렁설렁 다니시니까. 가진 걸 보여주지 않으시니까. 그런데 촬영만 들어갔다 하면, 와. 정말 무섭게 집중하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그리고 <용서는 없다>가 <아바타>랑 붙어서 상대적으로 흥행이 안 되게 보일 뿐이지, 실상은 안 그렇다. 제작사 대표님에게 물어보니까 흑자 수익을 냈다고 하시더라.(웃음) 손익분기점이 126만 명 정도였는데, 그 스코어는 넘었다.
이 작품은 캐릭터 하나하나가 잘 살아야 하는 작품이다. 나뿐 아니라 모든 출연진들이 유가족들의 여러 케이스를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 유가족들 중엔 분명 미진이 같이 된, 진배같이 된, 정혁이 같이 된, 사람이 있을 거다. 그런 분들을 대변해야 했기에 서로 힘을 주면서 작품에 임했다.
어떻게 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군인들이 같은 나라 국민을 향해, 그것도 벌건 대낮에 총을 쏘아대나니. 이게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도 아니고, 해외토픽감이다.
그러니까. 광주가 고향인 친한 언니가 있다. 5.18 당시 언니가 5살이었는데, 집으로 계엄군이 들어 왔었다고 하더라. 오빠가 있었다면 잡혀가거나 큰일을 당했을 텐데, 다행히 오빠는 집을 비운 상태였다고 했다. 그런데 군인들이 총을 자신에게 들이댔다는 게 아닌가. 그 어린아이한테 말이다. 벌벌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그냥 나갔다고 하는데, 지금도 생생하게 그 기억이 난다고,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신경이 쭈뼛 선다고 했다. <26년>에 내가 출연한다고 소식을 듣고 언니가 연락을 해왔다. “혜진아, 네가 이걸 해줘서 너무 고맙다”면서 말이다. 말한 대로 너무나 신기한 일이다. 그 모든 게 정말 있었던 일이라는 게, 그게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게 말이다.
<26년>에 출연하기 전에 80년 광주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나.
그 시대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게 5.18 관련 영상물이나 영화 정도였다. 마음은 아팠지만, 사실 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슬픔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26년>을 통과하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특히 영화 속 피해자 유가족들이 내 또래들인데, 그게 너무 마음 아팠다. 누군가는 대학 잘 다니고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며 그렇게 잘 사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80년 광주의 트라우마 때문에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게 너무 마음 아팠다. 그게 정말 슬펐다.
아까 <26년>을 기점으로 더 다양한 소재의 영화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혹시 생각해 둔 게 있나? ‘이런 소재의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 싶은 거 말이다.
글쎄. 구체적으로는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데. 아, 요새 여자들에 대한 영화가 많이 없는 것 같다. 여배우 입장에서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여배우들이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니 정말 너무 없다. 내가 직접 써야 할까봐.(웃음)
30대가 돼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느낌이다. 20대 한혜진과 30대 한혜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뭐라고 느끼나?
전보다 많이 열리고 자유로워졌다는 거. 옛날에는 “혜진아, 이거 해 볼래?”하면 “아니요! 저는 연기만 할래요!”, “저는 그거에 안 맞는 것 같아요!” 이랬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한혜진하면 조용한 이미지의 배우, 틀 안에 갇혀 있는 배우라는 인상을 가졌던 것 같다. 나 역시 30대가 넘어서면서 그런 내 모습이 너무 답답했고. 그걸 느낀 후에 나를 많이 열었다. 그랬더니 도전할 기회들이 많이 생겼다. 그리고 도전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들 덕분에 더 많은 용기를 갖게 됐고, 그래서 더 모험하고 도전하게 됐다. 연기자로서 사람들에게 많은 소스를 줄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2012년 12월 7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2년 12월 7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