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퍼즐을 맞추다 보면 만나게 되는 가슴 찡한 순간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ldk209 2008-09-02 오후 11:55:48 1838   [8]
퍼즐을 맞추다 보면 만나게 되는 가슴 찡한 순간들.......★★★★

밥 딜런, 사랑, 우정, 비극, 복수... 그리고 편견...

 

대학에 입학하면서 도쿄를 떠나 센다이로 이사 온 시나(하마다 가쿠)는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Bob Dylan의 <Blowin' In The Wind>을 흥얼거리다 옆방에 사는 가와사키(에이타)를 만나게 된다. 가와사키는 만나자마자 옆방에 사는 부탄 청년 도르지에게 일본어 대사전을 주기 위해 서점을 털자고 제안한다. 얼떨결에 동참하게 된 시나에게 가와사키는 뒷문을 지키는 역할을 주며 ‘뒷문에서 비극이 발생한다’는 아리송한 얘기를 한다. 가와사키가 하는 아리송한 얘기는 이것만이 아니다. 여자가 비에 젖고 있는 고양이를 원하자 어렵게 잡아 수건으로 닦아 건네주는 남자에게 ‘내가 원한 건 비에 젖은 고양이지, 여기에 있는 고양이가 아니다’고 말하는 여자의 이야기부터 특히 부탄 청년 도르지와 코토미, 그리고 자신이 얽힌 얘기들을 들려준다. 그러나 시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와사키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들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또는 동일한 이야기지만 등장인물은 다른 이야기들. 애완동물 가게를 하는 레이코를 믿지 말라고 말한 가와사키, 그러나 우연히 알게 된 레이코는 가와사키를 믿지 말라고 말한다. 밤마다 어딘가를 갔다 오는 가와사키, 과연 그에게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이시카 고타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뜨거운 태양이 머리를 달구는 한낮에 서점을 털기 위해 걸어가는 두 남자의 뒷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러나 실제 가와사키와 시나는 저녁에 서점을 털러 간다. 동일한 대사와 동일한 장면이지만, 두 가지 다른 버전이 존재한다. 이 장면만이 아니라 뒤로 가면 갈수록 사실은 두 가지 얘기가 있음을 알게 된다. 시나가 상상하는 얘기와 실제 도르지가 경험한 얘기들. 물론 원작소설을 읽지 않은 나로선 영화 초반에 보이는 이와 같은 차이를 알지 못한다.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영화는 언뜻 재밌고 유쾌한 청춘의 한 때를 보여주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가와사키는 어렵게 시도한 서점털이의 목표인 일본어 대사전 대신 다른 사전을 훔쳐오고, 시나가 산 전공서적들은 자취를 감춘다. 혹시나 해서 찾아간 서점에서 여직원은 사장의 아들 사진이 나온 신문을 가리키며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말을 한다. 우연히 알게 된 레이코가 해주는 가와사키와 도르지, 그리고 코토미에 대한 얘기는 가와사키가 해주는 얘기하고는 어딘가 조금 엇갈린다. 레이코는 시나에게 ‘너는 너도 모르게 세 사람의 얘기에 끼어들게 되었다’라며 ‘가와시키는 산 사람이 아니다’는 묘한 얘기를 해준다. 그리고는 2년 전 발생한 애완동물 학살사건과 가슴 아픈 진실들이 조금씩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일종의 미스테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실과 과거를 끊임없이 오가는 얘기는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모티브로 사연이 얽혀 있음을 보여주며, 부탄에서 온 청년 도르지가 코토미와 가와사키를 알게 되고, 우정과 사랑을 쌓아가는 과정, 그리고 너무도 소중했던 두 사람을 잃게 되는 과정이 복잡한 구조 속에 퍼즐처럼 쌓여 간다. 별 것 아닌 것처럼, 그저 말장난처럼 던져지는 대사나 에피소드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전체적인 윤곽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며,(부탄의 조장 풍습-시체를 새가 뜯어 먹게 하는 장례의식-같은 것들까지) 그렇게 퍼즐을 맞춰 나가다 보면 어느덧 관객은 가슴 아픈 진실과 마주 대하게 되고 먹먹해지는 정서적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의 초반, 밥 딜런의 노래를 들으며 앉아 있던 가와사키는 밥 딜런의 노래를 부르는 시나를 보고는 선뜻 서점을 털자는 제안을 한다. 가와사키, 코토미, 도르지 그리고 나중엔 시나에게까지 밥 딜런은 신이고 밥 딜런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가 된다. 이렇듯 밥 딜런과 그의 노래는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노래 한 곡만으로도 진심은 통할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모티브는 애완동물이다. 도르지 또는 가와사키가 코토미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계기는 위험한 차도에 있던 애완동물을 구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건 부탄 청년 도르지가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애완동물 가게를 하는 레이코, 애완동물 학살사건, 우연한 목격과 비극. 코토미는 갇혀 있던 강아지가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서야 빙그레 웃으며 눈을 감는다. 이런 장면들이야말로 이 영화가 포착하고 있는 가장 빛나는 순간들이다.

 

그렇다면 영화제목에 나오는 집오리와 들오리는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코토미의 말에 의하면 집오리는 외국에서 온 오리고, 들오리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오리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사실은 별 차이가 없다고 영화는 주장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굳이 둘의 존재를 나누려고 한다. 나는 집오리고, 너는 들오리다. 그래서 너와 나는 섞일 수 없다. 동아리 회원을 모집하는 학생들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등을 돌리고, 버스 운전사는 문을 닫는다. 경찰은 외국인이 신고하는 범죄는 미심쩍어한다. 이 모든 건 집오리와 들오리가 다르다고 하는 편견이고 차별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편견 대상은 그냥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보다 가난한 국가에서 온 외국인, 또는 우리보다 피부색이 검은 외국인이다. 돈을 내고 손님을 받는 가게도 백인 손님은 들어갈 수 있지만, 흑인이나 동남아시아 외국인은 들어가지 못한다. 미국 흑인은 되지만 아프리카 흑인은 안 된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 영화는 알고 보면 그건 고작 집오리, 들오리의 차이에 불과하고 밥 딜런의 노래와 애완동물만으로도 그런 차이 정도는 훌쩍 뛰어 넘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집오리와 들오리가 같이 섞일 수 있는 공간은 밥 딜런의 노래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코인로커 속 조그만 세상뿐이다.

 

※ 영화에서는 가와사키와 시나가 훔치려는 사전을 ‘일본어 대사전’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고지엔 사전이며, 가와사키가 잘못 훔친 사전은 고지린 사전이라고 한다. 고지엔 사전은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사전이고, 고지린 사전은 1926년 발행된 사전으로 단어 표기나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 영화를 보기 전에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고 인기 TV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 출연한 에이타에 대한 기사만이 주로 실려서 다른 배우들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영화를 봤는데, 보자마자 시나 역을 맡은 하마다 가쿠, 코토미 역을 맡은 세키 메구미, 실제 가와사키 역을 맡은 마츠다 류헤이의 얼굴이 익어서 보는 내내 ‘대체 어디서 봤을까?’ 궁금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집에 돌아와 확인해 보니, 하마다 가쿠는 사와지리 에리카가 주연했던 TV 드라마 <태양의 노래>, 세키 메구미는 아오이 유우 주연의 <허니와 클로버>, 마츠다 류헤이는 미야자키 아오이 주연의 <나나>에서 봤던 얼굴들이었다.

 

※ 이 영화에서 음악은 오직 Bob Dylan의 <Blowin' In The Wind> 한 곡만이 사용되었다.

 

※ 도르지가 애완동물을 구함으로서 코토미와 사랑을 하게 되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 깊었다. 왜냐면 내가 아는 거의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선배 중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 여자 선배가 외모로만 보면 산도적처럼 생긴 남자 선배와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고는 모두들 깜짝 놀랐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둘은 같은 과도 아니었고, 그다지 친한 관계도 아니었는데. 나중에 집들이에 가서 둘이 사귀게 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직장에 취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새 양복을 입고 길을 가던 남자 선배의 귀에 ‘낑낑’대는 소리가 들리더란다. 누군가 쓰레기 차 안에 강아지를 버렸던 것. 일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냥 발걸음을 옮기던 그 때, 남자선배가 새 양복을 입고 더러운 쓰레기 청소차에 들어가 그 강아지를 구했는데, 우연히 그 모습을 여자 선배가 보고 있었단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마음이 착하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됐단다. 둘은 신혼집에서 둘을 연결시켜준 버려진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 지난 6월에 개관한 <아트하우스 모모>에 처음으로 가게 됐다. 이 영화를 개봉하는 유일한 극장이었기 때문인데, 나는 극장이 이화여대 안에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연히 이화여대 근처겠지 했는데,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이화여대 안으로 들어가란다. 어쨌거나 수많은 여학생들 사이를 걸으니 기분은 좋다. 거기에 지상으로 올라간 건물이 아니라 지하로 내려간 건물이라니. 아이디어 참 기막히다. 거대한 지하공간 안에는 극장 말고도 헬스클럽, 카페, 은행 등이 들어서 있었다.

 


(총 0명 참여)
1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2007, アヒルと鴨のコインロッカ)
배급사 :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수입사 : 시네마 밸리 / 공식홈페이지 : http://www.cinemavalleyent.com
공지 티켓나눔터 이용 중지 예정 안내! movist 14.06.05
공지 [중요] 모든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 관련 안내 movist 07.08.03
공지 영화예매권을 향한 무한 도전! 응모방식 및 당첨자 확인 movist 11.08.17
현재 [집오리와 ..] 퍼즐을 맞추다 보면 만나게 되는 가슴 찡한 순간들....... ldk209 08.09.02 1838 8
69243 [집오리와 ..] 모두가 공유하는, 공유한 적이 있는 '젊음' (1) fornest 08.07.11 1643 5
69234 [집오리와 ..]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두개의 시간... jhpabc 08.07.11 1514 2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